임정희 / ‘민주야 놀자’ 회원

 

‘비운의 독립투사’로 불리는 약산 김원봉을 기리는 ‘약산 김원봉과 함께’(이사장 김언호)가 올해 조선혁명선언 1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의열단 밀양 역사기행’을 1월 28-29일 1박 2일로 진행했다. 앞서 ‘약산 김원봉과 함께’는 창립총회를 지난해 11월 10일 개최한 바 있다. 이번 ‘의열단 밀양 역사기행’은 ‘약산 김원봉과 함께’가 창립 후 진행한 첫 역사기행사업이다. / 편집자 주

 

양지 바른 표충비각 앞에서.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양지 바른 표충비각 앞에서.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약산 김원봉과 함께’에서 진행하는 의열단 밀양 역사기행에 참여했다. ‘민주야 놀자’ 모임에서 최근 2년, 안동과 공주 역사 유적지 답사를 차례로 다녀왔다. 올해도 1월 말 탐방을 예정했는데 마침 기간이 일치한 데다 안내까지 받으면서 둘러볼 멋진 기회가 생겨 함께 했다. 1월 28일 29일, 1박 2일 일정으로 드디어 밀양을 다녀왔다.

첫날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 근처에서 출발할 때 실무 담당자 분이 이번 답사에 전국에서 80여 명이 참여한다 했다. 우리가 타고 내려가는 버스는 꽉 찼고 개별 차량으로 이동하는 분들은 밀양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새로 연 답사 톡방에 80여 명이 모였으니 대단했다. 내려가는 길에 금강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휴게소 옆으로 흐르는 금강과 맞닿은 철봉산과 서밭산 자락의 위용은 이틀간 밀양답사의 서막을 알렸다.

금강휴게소에서 바라본 금강과 철봉산 자락. [사진-임정희]
금강휴게소에서 바라본 금강과 철봉산 자락. [사진-임정희]

이후 이동하면서 앞자리에 앉은 김언호 선생님부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이크 잡은 분들의 서사는 짧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진행하는 단체 역사기행이라 충분히 이해됐다. 한 사람씩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소개한 사람 이름을 톡방에서 찾아 친구추가 했다. 이름 옆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짧게 기록했다.

광복회서울지부 김기봉 선생님은 약산 김원봉과 함께 만주 길림성에서 의열단을 조직한 초산 김상윤의 손자 분이다. 김상윤 선생님의 유해는 아직 발굴하지 못했지만 발굴 과정에 함께한 분들의 감사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소개받으면서 새로 추가한 친구만 서른 명이 넘었다. 인천에서 온 김은숙 선생님, 호주에서 온 황명하 선생님, 회계사로 세무 상담이 필요하다면 연락 달라한 김영주 선생님, ‘민족혁명가 김원봉’ 책을 쓴 이원규 선생님, 방정환 연구를 하는 이정아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소중했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관심과 열정을 가진 분들로 둘러싸여 독립운동 이야기를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답사의 묘미 중 하나가 참여한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다. 세대를 넘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출발할 때 받은 밀양답사 자료집에는 답사 일정과 설명이 상세했다. 대규모 답사를 진행해본 분들의 능숙함이 묻어났다. 자료집 외에도 초산 김상윤 선생 기록과 돌아올 때 버스 안에서 받은 최필숙 선생님이 제공한 자료-선열들의 발자취를 따라 미리벌을 걷다!-까지 참고할 자료가 풍성했다. 어떤 분들과 함께하는지 무게감을 느꼈다. 점심 식사하고 인사 나눈 박호균 선생님은 곧 군 입대를 앞둔 아들과 참여했다. 자녀와 함께 역사탐방을 할 수 있다니 두 분의 부자 관계가 부럽다.

황상규 묘소 앞에서.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황상규 묘소 앞에서.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밀양독립운동기념관 앞마당에는 밀양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밀양독립운동기념관 앞마당에는 밀양 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황상규 선생 묘소를 참배하고 이준설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시작으로 첫날 오후 답사가 이뤄졌다. ‘선열의 불꽃’ 주위 밀양 독립운동가 흉상이 세워진 밀양독립운동기념관부터 밀양 의열기념관, 의열체험관은 밀양의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사를 기억하려는 밀양 사람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장소였다. 김원봉 생가터에 세워진 의열기념관과 석정 윤세주 생가터는 바로 옆에 있었다. 독립운동은 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의 연대 활동이었기에 어느 마을에 독립운동가가 있다면 최소 두 세분 이상의 독립운동가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당제3동 주민자치회에서 ‘삼일공원 역사문화행사’ 할 때 참고할 자료도 많았다. ‘태극기’에 색을 입히고, 다양한 태극기 문양을 스탬프로 찍어보는 체험 활동지 사진도 찍었다. 일반 대중에게 독립운동가는 안중근, 유관순, 김구 같이 극히 일부 이름만으로 불리는 경향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알리고 독립운동사를 찾아내고 기록하고 보존하는 노력이 지금도 꾸준히 요구된다.

석정 윤세주 집터 표지석. [사진-임정희]
석정 윤세주 집터 표지석. [사진-임정희]
의열기념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윤세주 집터. [사진-임정희]
의열기념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윤세주 집터. [사진-임정희]

저녁 시간에는 ‘약산김원봉의 독립운동과 그 사상’으로 김영범 교수님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의 열정과 강의 듣는 어르신들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서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의열단 정신 계승하자!” 단체 사진 찍을 때 외친 말이다. 우리가 계승할 의열단 정신은 무엇이고 의열단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이번 답사에서 생각난 질문이다.

강의 이후 늦은 저녁을 먹고 참여자 모두 모여 이야기 나누기는 어려웠다. 각자의 숙소에서 첫날 답사의 아쉬움을 달랬다. ‘민주야 놀자’로 참여한 우리도 따로 모였다. 낮에 들은 최수봉 의사의 기록 중에 숭실학교를 다녔다는 기록과 사진 부분에 오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가보훈처 역할이 새삼 강조되었다. 독립운동을 기록하고 연구하는 네트워크의 활발한 교류도 꾸준히 요구된다. 전태일 열사처럼 자신의 활동을 기록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듣고 읽고 말하고 쓰는 국어 활동이 이렇게 중요하다니,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밀양관아 터에서.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밀양관아 터에서.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답사 이튿날, 밀양관아 터와 최수봉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밀양경찰서 터와 함께 동화학교 터, 영남루를 먼저 둘러보았다. 관아 터 앞의 시장은 꽤 컸다. 영남루 앞에 도착해서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밀양 시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위쪽 무봉사에 올라가 보았다.

남쪽으로 내려올 때마다 남해와 대조되는 장엄한 모습의 산들을 보며 감탄한다. 일상에서 자연스레 산과 강을 바라보고 자연을 느끼며 산다면 우리의 삶도 자연을 닮지 않을까. 밀양시청 앞이나 영남루 앞에 시야를 가리는 큰 건물들이 없어 다행이다. 산등선을 가리거나 싹둑 잘라내고, 개천을 덮고 강을 막고 흙을 밟을 기회를 빼앗는 무분별한 개발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부끄럽다. 누구나 한 생을 살고 나면 자연으로 돌아갈 텐데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탐욕과 무지가 못내 안타깝다.

무봉사에서 내려다본 밀양교. [사진-임정희]
무봉사에서 내려다본 밀양교. [사진-임정희]
영남루에서 내려다본 밀양교. [사진-임정희]
영남루에서 내려다본 밀양교. [사진-임정희]

영남루를 둘러본 후 표충비가 있는 홍제사로 향했다. 표충비 앞에 세워진 안내문 맨 아래 정치적, 종교적 문제로 표충비가 땀 흘린 내용기재를 생략한다는 문구를 보며 아쉬웠다. 표충비가 왜 땀을 흘렸을까 하는 역사 해석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땀을 흘린 날을 기록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

쇠귀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도 어느덧 7년이 지났다. 선생님 묘소가 밀양에 있다는 건 이번 답사 일정을 보며 알았다. 선생님을 뵈러 가기 위해 대법교 가까이 버스를 세우고 모두 내렸다. 대법사까지 참석한 분들 자가용을 이용하여 이동했다. 묘소까지 가는 길에 깔린 나무껍질과 이끼, 낙엽이 반가워 앞사람 발꿈치를 보며 걸었다. 묘소가 멀리 있어 사람들이 자주 찾아뵙는 건 어려울지 몰라도 선생님은 고향 산천에서 좀 더 평화롭지 않을까? 아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궁금해서 외로워하실까? 참배 후 박중기 선생님이 올린 말씀에 울컥했다.

박차정의 묘소.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박차정의 묘소. [사진제공-약산 김원봉과 함께]

박차정 묘소로 가는 길에 김춘복 선생님이 들려준 나혜석이 박차정을 찾아와 건넨 얘기에 솔깃했다. 나라를 되찾는 일이 시인 등단보다 먼저라고 했단다. 시를 쓰는 감수성이 있는 분이라 반가웠고 상대방의 제안을 덥석 받지 않는 면도 괜히 좋았다. 일제강점기에 심지 곧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말을 쓰고 우리 역사를 배우며 살 수 있다.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부분은 앞으로도 평생 안타깝겠지만 요즘처럼 맘이 흐트러질 수 있는 시기에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듣고 직접 답사할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 박차정 묘소는 이름 모를 다른 이들의 묘와 함께 낮은 곳에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름 없이 떠난 이들도 많을 텐데 이들을 어찌 다 위로하랴.

표충사 아래 주차장에서 보이는 재약산. [사진-임정희]
표충사 아래 주차장에서 보이는 재약산. [사진-임정희]
표충사 아래 주차장에서 보이는 향로산 능선. [사진-임정희]
표충사 아래 주차장에서 보이는 향로산 능선. [사진-임정희]

시간이 늦어져 표충사를 들르지는 못하고 표충사 아래 주차장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이동했다. 표충사 가는 길 산세가 범상치 않았다. 나무들이 가지런하게 머리를 빗은 듯 뒤덮은 산을 지났다. 주차장에 내리니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이 높은 만큼 계곡은 깊었다. 하늘은 또 어찌나 파랗던지. 표충사를 못보고 떠나는 게 아쉬웠다. 1박2일로 밀양을 다 본다는 게 무리였다. 이십대에 들른 해인사처럼 이곳도 다시 한 번 들러야할 곳이 되었다.

우리가 선 곳에서 천황산 너머에 얼음골이 있다. 고향 청송에도 얼음골이 있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밀양의 얼음골과 청송 얼음골의 공통점은 북으로 폭이 좁은 내가 흐르고 남쪽에 높은 산이 이어져있다. 얼음골의 지리적 특징이 있을 텐데 누군가 연구하지 않았을까.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산이 참 좋다.

아차! 밀양에서 마신 막걸리도 잊을 수 없다. 마지막 점심 때 마신 더덕 향 짙은 더덕막걸리와 전날 마신 생탁 모두 뒤끝이 없었다. 막걸리를 조금이나마 마실 수 있는 체질에 감사한다. 요즘처럼 시절이 하 수상한데 술과 산을 벗 삼아 수십 명이 함께 의열단 정신을 이야기하다니 몸도 맘도 부자가 된 시간이었다. 1월 31일 조선혁명선언 100주년 기념식 참석은 어렵지만 이번 답사로 독립운동을 다시 돌아볼 수 있어 뿌듯하다.

다음에 또 어떤 답사를 다녀오게 될지 예상할 수 없지만 좀 더 넓은 세상이 아직 나를 기다리는 듯해서 설렌다. 이원규 선생님의 ‘민족혁명가 김원봉’ 책을 펼치며 2018년 김육훈 선생님의 ‘독립운동가가 꿈꾼 나라’ 강의를 들었을 때처럼 다시 꿈을 꾼다. 마냥 기다리지 않고 작은 돌이라도 끊임없이 쌓아올리는 2023년을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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