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 이양재(白民 李亮載) / 애서운동가(愛書運動家)
3. 우리 민족의 중요 사료 및 역사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옛 천문학 문헌에 관심이 많았기에 여러 점의 천문학 관련 자료를 수집한 바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숙종조 석각본 탁본을 1점 소장하고 있다가 필요로 하는 곳에 양여하였고, 조선후기 정조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혼천전도(渾天全圖)』 목판본을 1점 입수하였으나 도난(盜難)되었다. 현재는 이순지(李純之, 1406~1465)의 『천문류초(天文類抄)』 2권1책과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 낙질 1책 등등의 6~7점을 소장하고 있다.
(5)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천문류초』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395년 12월에 석각(石刻) 완성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이 국보(제2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각석의 크기는 가로 122.8cm, 세로 200.9cm 크기이고, 이 조선초기 석각을 숙종(肅宗, 재위 1674~1720) 13년(1687)에 복제(複製)한 석각은 보물(제83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두 점 모두 1985년 8월 9일 자로 지정하였다.
가. 『평양성 천문도』와 고인돌 성도(星圖)
고구려 평양성 천문도 탁본으로 다시 만들었다. 고구려 평양성이 함락되고 당나라 군대가 대동강에 던졌다고 하는데, 조선초에 그 탁본을 바치는 자가 있었다는 것은 고구려가 망한지 724년 후인 1392년까지 고구려의 문적(文籍)이 전해져 내려 올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조선초 그것으로 다시 만들었다. 조선초기 석각과는 달리 제목이 위로 올라가 있다.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은 고구려 시대 평양에서 각석한 천문도(平壤 星圖) 비석의 탁본(拓本)을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인데, 양촌(陽村) 권근(權近, 1352~1409)은 천문도에 새긴 글에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만들어진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전에 평양성에 천문도 석각본(石刻本)이 있었다. 그것이 전란으로 강물 속에 가라앉아 버리고, 세월이 흘러 그 인본(印本)마저 매우 희귀해져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태조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그 천문도의 인본을 바치는 사람이 있었다. 태조는 그것을 매우 귀중히 여겨 서운관에 명하여 돌에 다시 새겨두도록 했다. 서운관에서는 그 연대가 오래되어 이미 성도(星度)에 오차가 생겼으므로, 새로운 관측에 따라 그 오차를 고쳐서 새 천문도를 작성하도록 청했다.”
남과 북의 과학사학자들은 대체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별자리 그림은 고구려 천문도의 한 모습이며, 이를 계승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4세기의 성도(星圖)에 대한 동아시아 사람들의 지식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한다. 특히 북측의 과학사학자들은 고구려 천문도는 고조선 시대의 고인돌 덮개에 새겨진 성도(星圖)에 원류를 두고 있는 것으로까지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과거 우리 민족의 천문 관측 기록만 보아도 우리 선조들의 고대 천문에 대한 지식은 매우 깊었다.
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평양성 천문도
유래가 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한 장의 탁본(拓本)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 주는 경우가 있다. 조선초에 발견된 고구려시대의 평양성 천문도 탁본이 그러한 예이다.
고구려 천문학의 별자리에 대한 또 다른 확실한 지식은 고구려의 여러 고분에 벽화로 남아 있는 그림 속의 해와 달, 그리고 별을 사실적으로 그린 이른바 일월성신도(日月星辰圖)에 의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용총(舞踊塚) 주실 천정의 해와 달, 그리고 별자리 그림은 그 좋은 예이다. 여기에는 별들을 원으로 그리고, 그 원들을 3줄의 선으로 이어서 별자리를 그려 놓고 있다. 별자리를 그린 이러한 수법은 별들을 이어놓은 선이 3줄이라는 것이 다를 뿐,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 그림과 기본적으로 같다.
무용총 천정에 그려진 별자리 그림은 28수 중의 주요한 7개의 별자리를 상당히 충실히 나타냈다. 또 진파리(眞坡里) 1호분에는 금으로 그려 넣은 90개의 별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이와 거의 같은 별자리 그림을 각저총(角抵塚) 주실 천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 해방 후에 발견된 여러 고구려 고분과, 일본에서 발견된 고송총(高松塚, 다까마쓰총) 고분의 별자리 그림에서 우리는 그 별자리 그림들이 매우 정확한 천체 관측에 의해서 작성된 천문도를 바탕으로 해서 그려졌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러한 여러 점을 미루어 볼 때 조선 태조 4년(1395)에 오석(烏石)에 새긴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규격화된 고구려 천문도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고구려 천문도의 원형은 4세기 후반에 이미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3세기경으로 그 관측 연대를 앞당겨 추정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고구려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거의 모든 별이 망라된 정확한 별자리 그림을 제작했다는 사실은 고구려 천문학의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료(史料)이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천상(天象) 즉 천문현상을 12분야로 나누어 차례로 늘어놓은 그림이란 뜻이다. 이것은 중국에도 없었던 독특한 이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1,464성(星)의 별이 그려져 있다.
태조 때의 천문학자들은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해서 28수의 거극도나 적도수도는 고구려 원본의 것을 그대로 옮겨 도설(圖說)에 썼으나, 별자리 그림의 별들의 위치는 석각할 때의 시대에 맞게 바로 잡아 다시 그렸다.
『증보문헌비고』 권2, 상위고2에, “을해년(태조4년, 1395) 여름 6월에 「신법중성기(新法中星記)」가 완성되었는데, 그 24기의 저녁과 아침의 중성이 옛 천문도에 비하여 점차 차이가 났다. 그래서 성상(星象)은 옛 그림에 따르고, 중성은 「신법중성기」에 따라 돌에 새겼다”라고 쓴 것은 이런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8세기 초에 서양 천문도가 조선에 도입되기까지 조선 천문도의 표준이 되었다. 이 천문도는 고려말 조선초의 천문학자들이 중국의 옛 전통적 우주관의 영향을 받았음도 말해주고 있다. 권근이 쓴 논천(論天) 기사는 그것을 잘 요약하고 있다.
권근은 그 글에서, 예로부터 하늘을 논한 것에 여섯 학파가 있었다면서, 그 학설을 열거하였다. 그것은 첫째가 장형(張衡)의 혼천설(渾天說)이고, 둘째는 주비(周髀)의 개천설(蓋天說), 셋째는 선야(宣夜)의 설인데 선야는 중도에서 끊어져 이어지지 않았고, 넷째는 우희(虞喜)의 안천(安天)이고, 다섯째는 요신(姚信)의 흔천(昕天)이며, 여섯째는 우용(虞聳)의 궁천(穹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통적 우주관은 혼천설이라 하고 개천설도 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고려말 조선초의 천문학자들이 혼천설을 그들의 우주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 하늘과 우리 민족
『환단고기』에 천문현상 기록이 일부 있음으로써 『환단고기』가 진서(眞書)임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환단고기』에 보이는 천문현상 기록 ‘오성취루’가 그 책이 진서임을 입증해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조선시대 천문학을 이해하거나 이순지의 『천문류초』를 본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적어 넣을 수 있는 수준의 천문 지식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독자분들에게 이 기고(寄稿)에 별첨하는 사진의 자료, 즉 조선초기의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 1406~1465)의 『오성통궤(五星通軌)』와 『천문류초(天文類抄)』의 설명문을 참조하고 깊이 검토하여 보기를 권고한다.
1434년에 주조한 초주(初鑄) 갑인자(甲寅字)로 인출(印出)한 책인데, 판심이 상하하향흑어미(上下下向黑魚尾)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초주 갑인자를 주조한 초기에, 대략 1434년에서 1450년 사이에 인출한 오성(五星)의 통궤(通軌)를 계산한 책이다.
내용은 첫머리에 각성(各星)의 추보에 필요한 중적일(中籍日)‧영축차(盈縮差) 등의 용어를 나열하였고, 다음에 오성단목(五星段目)의 단수(段數), 원나라 수시력(授時曆)의 역원(曆元)을 기초로 한 구중적분(求中積分)‧구윤여분(求閏餘分) 등의 계산법을 설명하였다. 이어서 오성영축성검(五星盈縮成鈐)을, 그 다음에는 각 성의 상수와 단목(段目)별로 단일(段日)‧평도(平道)‧한도(限道)‧초행률(初行率)을, 끝으로 오성의 합(合)‧복(伏) 기타를 구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오성(五星)의 통궤(通軌)를 계산하면, 오성이 하나로 늘어서는 천문현상, 이른바 ‘오성취루’가 언제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가 있다.
태고적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에 관심이 깊었다. 단군 신화도 그렇고, 해모수 설화도 그렇다. 난생(卵生) 설화 자체가 하늘과 연관이 깊은 것이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천손사상(天孫思想)을 갖게 한 배경이다. 또한 하늘을 숭배해서인지 우리 민족이 만든 성도(星圖)가 그려진 고인돌 덮개도 북한과 남한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수많은 천문현상을 기록하여 놓았다.
필자는, 어쩌면 『환단고기』는 이러한 우리 민족의 열정적인 천문 기록의 신뢰성을 이용하여 “우리 민족의 본류(本流)를 모독(冒瀆)하며, 역사상 실존한 인물들의 업적을 농락(籠絡)하는 것은 아닌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 필자는 이번 회 연재에서 ‘임종삼’의 「오산시 외삼미동 탁자형 고인돌의 성혈(性穴) 연구」의 끝부분 ‘D. 제언’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2000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이제 인문 분야는 물론 자연과학 분야에 걸쳐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고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우리의 천문학과 천문관이 고구려,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고고학, 천문학, 종교학 등 학제 간 공동연구와 고구려 고분을 보유한 북한과의 교류 협력이 절실하다. 우리나라의 천문학과 천문관은 고조선의 고인돌에서부터 출발하여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천문도, 고려의 고분벽화, 조선의 『천상열차분야지도』로 이어지는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다른 어느 나라의 천문관과 매우 다른 독창적인 문화유산이다.” (『기전문화』 제16집, p.p.218~219. 2014년 12월 30일, 사단법인 기전행토문화연구회 발행)
현재 이 책은 훈련도감목활자본, 교서관목활자본, 현종실록자본, 목판본 등 여러 종이 전하고 있다. 교서관목활자본과 목판본은 상하화문어미로 되어 있는데 이 두 책은 숙종조(肅宗朝)본으로 보이며, 훈련도감목활자본과 현종실록자본은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로 되어 있다. 이들 판본 가운데 임진왜란 직후에 사용된 훈련도감 목활자로 찍은 훈련도감목활자본이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하권은 24장으로 되어 있는데, 천체‧천문‧기상현상을 국가의 안위와 만생의 재변과 연관시키는 점성술을 기술하고 있다. 하권에서 다루고 있는 천체의 천문‧기상현상들은 아래와 같다.
① 천지‧일월‧성신, ② 서성(瑞星)‧유성(流星)‧비성(飛星)‧요성(妖星), ③ 성잡변(星雜變), ④ 객성(客星), ⑤ 서기(瑞氣)‧요기(妖氣)‧십휘(十煇), ⑥ 기상현상 등.
오성(五星)이 하나로 늘어서는 천문현상, 이른바 ‘오성취루’를 말하고 있다.
『천문류초』는 이순지의 독창적인 저술이 아니라. 당시 중국의 여러 고문헌과 조선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국내외의 천문학 현상과 이론을 종합하여 편집한 책이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은 고조선으로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동북아 천문학의 정수를 담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