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없이 결렬된 이후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 교착이 4년째로 접어들며 장기화되고 있다. 2년전 처음 발생한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산은 물리적 국경 봉쇄로 이어져 서로간의 접촉 자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계개선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근본문제'에 대한 상호불신을 해소하지 못한데 있다. 또 미국과 중국·러시아의 전략경쟁이 신냉전질서 속 군비경쟁을 우려할만큼 격화되는 것도 남북관계 개선에 불리한 상황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이 내년에 각각 대선과 중간선거를 치르는 리더십 변동기에 들어가는 것도 관계개선을 위한 일정관리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북측은 남북 및 북미관계에 크게 개의치 않고 '보강·정비전략'을 앞세워 내부문제에 몰두하는 분위기이다.


북 연초부터 '남북관계 개선 전망 불투명' 천명...'여전한 불신'이 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29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남북통신연락선 재가동 지시를 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29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남북통신연락선 재가동 지시를 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올해 연초에 열린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언급했다. 

"남조선에서는 의연히 조선반도 정세를 격화시키는 군사적 적대행위와 반공화국 모략소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걸 그 이유로 꼽았다. 

물론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가까운 시일안에 북남관계가 다시 3년전 봄남과 같이 온 겨레의 염원대로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에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이같은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 천명은 남측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고 관계개선에 대한 북의 의지도 크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위원장은 당대회 보고에서 "북남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풀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를 가져야 하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행위를 일체 중지하며 북남선언들을 무겁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해 나가야 한다"고 남측 당국에 주문했다. 

한국정부가 대북제재, 한미연합군사훈련, 첨단무기도입을 비롯한 민감한 남북관계 현안을 결정하면서 '동맹의 가치'를 존중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한 양립하기 쉽지 않은 조건들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북측의 입장은 9월 29일 김 위원장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북남관계 악화의 원인들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방치했으며, 아무러한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그간 남측 당국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은 우리 공화국에 대한 대결적인 자세와 상습적인 태도부터 변해야 하며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으로 민족 자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자세에서 북남관계를 대하며 북남선언들을 무게있게 대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남측을 압박했다.


친서교환·통신연락선 재가동 등...관계개선 불씨는 남아 있는 셈

지난 10월 4일 오전 9시 남북 통신연락선들이 일제히 복원됐다. 사진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시통화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지난 10월 4일 오전 9시 남북 통신연락선들이 일제히 복원됐다. 사진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시통화 모습. [자료사진-통일뉴스]

그런 와중에도 끊어졌던 남북통신연락선이 복원되고, 단절되었다가 다시 재가동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 배경에는 남북 정상의 친서교환과 한미군사훈련 강행,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등이 매 계기에 역동적으로 작용했다. 관계개선에 대한 불씨만큼은 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셈인데, 딱 거기에서 멈춰있다.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구체적인 단초는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언급하고 실제로 10월 4일 남북통신연락선이 재가동되면서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도 그 길은 쉽사리 열리지 않고 있다. 

남북통신연락선은 지난해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에 앞서 6월 9일 끊어진 뒤 13개월을 넘겨 올해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 오전 전격 복원되었다. 남북 양측은 이날 청와대 발표와 북측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통신연락선 복원을 공식 확인했다. 

청와대는 남북정상이 지난 4월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친서를 교환하며 남북관계 회복문제에 대해 소통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끊어진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북측 통신은 "통신연락선들의 복원은 북남관계의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키웠지만, 그것도 딱 거기까지였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시작 발표와 함께 대미·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여정 당 부부장은 8월 10일 담화를 내어 한미군사훈련 재개를 규탄하고 이에 국방력 강화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날 오후 남북통신연락선은 재개 보름만에 다시 단절상태로 빠져들었다.

통신연락선 단절 몇일 전인 7월 30일 북의 흐름을 대변하는 재일 [조선신보]는 '남북통신연락선 재가동 합의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실천적 이행을 전제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남북정상이 친서를 통해 합의한 조치인만큼 통신연락선 복원은 '북남관계의 개선과 발전에 긍정적인 반응'을 하겠지만, 그것은 당연히 교착을 초래한 원인에 대한 반성과 재발방지에 대한 다짐이 전제된 것이라는 설명으로 읽혔다. 

그 뒤에 나올 북의 '선결조건'을 미리 상상할 수 있게 한 언급이자, 남북관계 개선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임을 보여준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김 위원장은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상호존중 △이중적 태도와 적대시정책 철회를 선결조건으로 복원의사를 밝힌 뒤 10월 4일 남북통신연락선은  전격 재가동됐다.

한국정부는 통신연락선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대면 및 비대면 상황에 모두 대비할 수 있는 화상회의시스템 구축을 북측에 공식제안했지만 지금까지 호응은 없는 상태이다.

또 대화재개 상황에 대비해 '남북합의 이행을 포함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의제'를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북측에는 보건의료·재해재난·기후환경·민생분야 등 인도적 협력과 민간차원의 남북협력 지원을 병행할 계획을 여러차례 밝혔으나 역시 묵묵부답이다.

종전선언 제안..복잡한 주변 환경속 낙관 힘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 종전선언 제안을 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 종전선언 제안을 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9월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하고, 이에 대해 북측이 '흥미있는 제안'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북측으로서는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물리적으로 끝내자'는 종전선언 제안이 나쁠리 없으니 진행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궁리도 있겠지만, 내년 남측 대선을 앞두고 교착상태의 남북관계보다는 두차례의 정상회담을 계승하는 새 정부가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제재, 자연재해, 코로나 등 3중고 조건에 더하여 미국과의 교착이 장기화되고 있는 만큼 북측이 남북관계 동력으로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북측은 초기에 김여정 당부부장 담화로 '종전선언은 물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도 빠른 시일내에 좋게 해결될 수 있다'는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며칠 후 김 위원장도 9.29 시정연설에서 종전선언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신호를 보냈다.

김 위원장은 "지금 남북관계는 현 냉각관계를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대결의 악순환속에 계속 분열의 고통을 당하는가 하는 심각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진단하고는 장시간 침묵하고 있다.

될듯 말듯 하면서도 교착이 타개되지 않는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노이 노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해석이다. 북측은 영변 핵시설 철거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민생분야 제재완화를 받겠다는 협상 구상이 어그러지자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 않는 한 더 이상 협상은 없다며, 지금까지 일절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의 역할에 대한 불신도 그 이후 여전하다. 김여정 당 부부장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흥미있는 제안이며 좋은 발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김정은 위원장이 호응이라도 하듯 남북통신연락선 재가동을 지시했지만 거기서 멈춰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북적대는 없다며 조건없는 대화를 제안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북은 적대의사가 없다는 걸 실제 행동으로 입증하라며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이미 하노이에서 대북제재의 효과를 확인했다고 판단하는 미국은 북의 적대시 정책 철회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 일치된 평가이고 보면, 종전선언과 포괄적 인도협력 사업, 민간차원의 남북협력을 매개로 관계개선을 꾀하려는 한국정부의 제안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신냉전구도·군비경쟁 관리..중대 과제될 듯

한국이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9월 15일 도산안창호함(3천t급)에 탑재돼 수중에서 발사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한국이 독자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9월 15일 도산안창호함(3천t급)에 탑재돼 수중에서 발사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8년 판문점선언과 훨씬 앞선 2007년 10.4선언에서 남북정상이 합의한 종전선언을 다시 꺼내든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방한한 미국 국방장관에게 "차기 정부에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가 진행 중인 상황을 물려주기 위해 종전선언을 제안했다"는 발언까지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미국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정전협정 이후 현상유지를 기본전략으로 삼아 온 미국으로서는 종전선언이 몰고 올 파장이 달가울리 없다.

더욱이 중국과의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이 주한미군(한미연합사, 유엔사)과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한미동맹의 물리적 기반을 훼손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우려하는 종전선언을 순순히 수용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중국이 종전선언 제안에 동의한 것도 미중경쟁 상황에서는 미국의 우려를 자극해 오히려 성사 가능성을 낮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북이 신냉전질서의 도래와 남북 군비경쟁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상황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개 여하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에 인화력이 높은 현안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은 지난 9월 15일 문 대통령이 SLBM 잠수함 발사시험을 참관한 당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는 한미 당국이 북의 무기발사실험만 문제삼는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미 연초 8차 당대회에서 언급한 △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탄도) 개발 △수중 및 지상 고체 발동기(엔진) 대륙간 탄도로케트(ICBM) 개발 △핵잠수함 및 수중발사 핵전략무기(SLBM)보유 계획 등 일부를 꾸준히 실제 시험발사 형식으로 지속하고 있다.

북은 이러한 행위가 자위를 위한 주권행사라며, 국방력 강화를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만 8차당대회에서 공언한 '미 본토에 대한 핵 선제 및 보복타격 능력 고도화', '전술핵무기 개발과 초대형 핵탄두생산 추진' 등은 자제하는 듯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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