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KAL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는 28일 민주노총 교육관에서 ‘KAL858기 사건 34주기 추모제’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대한항공 KAL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는 28일 민주노총 교육관에서 ‘KAL858기 사건 34주기 추모제’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사과도 없이 전두환 씨는 죽었습니다... 무엇보다 KAL858 사건의 유족인 저희 안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오직 진실이 열릴 때 누릴 수 있음을 저희는 직감하고 있습니다.”

1987년 11월 29일, 6월 민주화운동으로 마련된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11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채 대한항공(KAL) 858편이 미얀마 안다만 해상 상공에서 사라졌다. 34년의 세월이 흘러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씨도 유명을 달리했지만 유족들의 아픔은 가시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 KAL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이하 유족회)가 주최하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 후원한 ‘KAL858기 사건 34주기 추모제’가 ‘희생자 유해를 하루속히 가족의 품으로!’를 제목으로 28일 오전 11시 35분 서울 중구 정동길 민주노총 15층 교육관에서 열렸다.

지난해 1월 대구MBC가 미얀마 안다만 해저에 가라앉아있는 KAL858기 추정 물체를 촬영, 보도한 지도 한참 지났지만 미얀마 정정불안 등으로 인해, 현지 수색 예산까지 책정됐지만 현지조사는 아직까지 기약조차 없는 상황이다. 유족들은 지난 10월 13일 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이 사건의 재조사를 신청한 상태다.

김호순 유족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추모제 사회를 맡은 나우식 KAL858기 부기장의 아들 나형성 신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호순 유족회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은 추모제 사회를 맡은 나우식 KAL858기 부기장의 아들 나형성 신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김호순 유족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올해 저희 유족들에게는 어찌나 시간이 더디게 가는지 하루가 3년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미얀마 안다만 해역에서 KAL858기로 추정되는 동체를 발견하고도 2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수색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애타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김호순 회장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온 유족회 회원들이 있고, 늘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며 위로와 격려, 용기를 북돋아 주시는 여러분이 있으니 지난 34년을 버티어 온 것처럼 또 다시 힘을 내어 씩씩하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유인자 유족회 부회장이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유인자 유족회 부회장이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추모제 참가자들은 유인자 유족회 부회장이 낭독한 호소문을 통해 사과도 없이 전두환 씨가 죽었다며 “그들은 짜여진 각본대로 KAL858기 사건을 철저히 이용했고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로 정권을 유지했다”고 규탄하고 “가족으로서 동체의 인양과 유해 수습을 바랄 뿐”이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진상규명 과정에 노력한 이들을 거론하며 감사를 표한 뒤 “부디 KAL858기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꺼지지 않는 격려의 촛불 하나 놓아달라”고 요청하고 “참된 사과, 진정한 화해는 입술이 아니라, 함께 찾아가는 진실에 있다”고 밝혔다.

항공기 기장 출신 김성전 씨가 항공기 기장 복장을 입고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항공기 기장 출신 김성전 씨가 항공기 기장 복장을 입고 연대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항공기 기장 출신 김성전 유족회측 미얀마 현지조사 참관추천인은 기장 복장을 갖춰 입고 연대사에 나서 “이 사건은 선박사고가 아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마치 선박사고인 것처럼 해양 전문가들이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것은 엄연하게 항공기사고다. 항공기사고는 항공기사고 전문가들이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전 씨는 “저는 기장이었던 사람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석에서 기장, 부기장은 이 비행기를 살리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었고, 아마도 생존자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며 “사고기 잔해를 인양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인멸하고 조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연제연 유족회 고문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연제연 유족회 고문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추모제를 마치고 유족회 회원들은 2021년도 정기총회를 가졌단.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서온 신성국 신부(왼쪽)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추모제를 마치고 유족회 회원들은 2021년도 정기총회를 가졌단. 이 사건의 진상규명에 앞장서온 신성국 신부(왼쪽)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 사건으로 희생된 나우식 KAL858기 부기장의 아들 나형성 신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추모제에서 최규엽 신한대 초빙교수와 폭약전문가 심동수 박사가 연대사를 했고 연제연 유족회 고문이 추도사를 한 뒤 헌화가 이어졌다.

한편, 공개된 외교부 공문에 따르면, 나우식 부기장은 사건 발생 하루 전인 1987년 11월 28일 UAE(아랍에미리트) 대사관 직원인 유시아 참사관과 만찬을 가졌고, 유 참사관은 “동항공기 항속거리 및 제원등에 대한 의견청취”를 해서 다음날 사건이 발생하자 “아부다비 출발시에는 동항공기가 양호한 상태였다함”이라고 보고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서 초기 수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관련기사 보기]

추모제를 마치고 유족회 회원들은 김선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의 사회로 김호순 회장의 주재 하에 '2021년도 정기총회'를 열어 지난해 활동과 결산을 보고, 승인하고 올해 사업계획과 예산을 승인했다.

 

KAL858기 탑승 희생자 유족회의 호소문(전문)

사과도 없이 전두환 씨는 죽었습니다. 또 계속 그렇게 죽어갈 이들이 있겠죠. 34년의 회피…그들의 침묵은 결코 고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두려움 뒤로 숨는 것이고, 뻔뻔함으로 추한 자기 얼굴을 가리는 것입니다. 저희 유족들이 그저 기도를 올린다고 그들의 진심 어린 사과가 이루어지지는 않겠죠.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이라는 신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용서했을 수도 있습니다. 대문에 “전방고지의 백골로 묻어달라”는 자기 삶과는 괴리된 그런 부끄러움도 모르는 말을 뱉어낼 수 있었겠죠. 또한 지금도 많은 이들이 그 우스꽝스러운 대장놀이를 의리라는 이름으로 따라갈 수 있겠죠.

그러나 그들의 게임 결과는 많은 이들의 삶을 참담하게 만들었고, 지금도 저희 유족의 입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짜여진 각본대로 KAL858기 사건을 철저히 이용했고, ‘만들어진 테러범 김현희’로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사망신고도 멋대로 해버렸고, 대한항공의 영국보험사에 이를 조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그렇게 50미터도 안 되는 안다만 해역에, “수천 미터 심해”라는 이름으로 수장시켜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저희는 그 불쌍하기까지한 이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 메마른 이들이 ‘지옥’에 가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 저 깊숙이에 숨죽여 갇혀있는 ‘사람스러움’이 조금이라도 깨어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KAL858사건의 유족인 저희 안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오직 진실이 열릴 때 누릴 수 있음을 저희는 직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위로란 대상도 없는 껍데기뿐인 사과를 받아내고서야 느끼는 승리감이 아님을! 그들과 같은 폭력의 길이 아님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자기불착과 부덕의 소치”라면서 결국 누군가 희생해야만 했다는 역겨운 말로 포장하는 것은 저희 유족들의 마음을 화장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진실은 진실입니다. 그 앞에 정치적 이해와 상황을 운운하며, 거짓말을 진실로 포장하고, 진실을 왜곡시키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폭력이고, 유족들에 대한 계속되는 모욕입니다. 저희는 정치투쟁을 원하지도, 이를 이념화시켜 분열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나, 가족으로서 동체의 인양과 유해 수습을 바랄뿐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들이 겪은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모욕과 억울함의 세월을 지내온 저희에게 너무도 감사하고, 또 생각할수록 눈물겨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드디어 정부 차원의 지시와 함께, 국회에서의 예산확보를 통해서 KAL858기 동체 수색과 사랑하는 이들의 유해수습을 위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희는 어서 빨리 유해 발굴이 적극적으로 안정적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연대가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설훈 의원님과 민주당의 정의로우신 분들, 당의 차원을 넘어 온몸으로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특별히 심병철 대구MBC국장님과 수색을 함께 해주신 분들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국회를 통해 책정된 수색 예산을 내어주신 분든 바로 국민 여러분입니다. 국민의 권리를 지키고, 아픈 이의 상처를 싸매주는 것은, 그저 한 정권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저 먼 이름이 아니라, 내 옆의 이웃, 옆집의 한분 한분이 시민이고 국민입니다. 이 연대가 서로를 위한 힘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광주 민주화운동에서도 보았고, 세월호의 비국에서도 보았습니다. 저희는 이 관심의 촛불이 서로를 계속 비추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디 KAL858기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서 꺼지지 않는 격려의 촛불 하나 놓아주십시오. 저희 또한 억울한 일이 계속되지 않도록, 여러분을 위한 작은 기도의 손길이 되겠습니다. 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피를 흘리고 있는 미얀마의 시민들을 위해서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한마음으로, 저 안다만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된 사과, 진정한 화해는 입술이 아니라, 함께 찾아가는 진실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11월 28일 KAL858기 사건 34주기 추모제에서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