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인권 무시하고, 국제법 발전추세에 역행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민성철)는 지난 4월 21일 일본군 성노예(The military sex slave by Japan: UN인권위원회 1998년 공식 명칭)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면제를 이유로 피해자 원고들의 소를 각하하는 판결(이하 4.21법원판결)을 선고하였다.

반면 동일한 성격의 사건에 대해서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정곤)는 배춘희 할머니 외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인도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서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까지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질서 및 국제인권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판시하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 일본 정부의 항소포기로써 판결이 확정되었다.

일본군 성노예라는 동일한 성격의 사안에 대해서 금년 1월 8일 한국 중앙지방법원은 피해자 손을 들어주고, 3개월 보름이 지난 4월 21일 동 법원은 가해자 일본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자는 피고인 일본정부에게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고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고, 후자는 피고인 일본정부에게 국가면제를 적용하여 본안 소송 없이 소송 자체를 각하하였다.

그런데 이번 4.21법원판결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보장받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명예회복을 무시하고, 국제법의 국제인도주의화라는 국제법 발전추세에 명백히 역행하는 것이다.

이번 4.21법원판결의 논평을 위해서 국가면제에 대한 국제법적 분석과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UN 인권위 논의라는 두 가지 쟁점을 살펴본다.

우선 4.21법원판결의 기준인 국가면제(state immunity)라는 것은 외국국가를 피고로 하는 민사상의 소(訴)가 내국법원에 제소되면 내국법원은 이 소(訴)를 각하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국가면제 이론은 19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형성된 절대적 국가면제론에서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점차 제한적 국가면제론으로 현재 변화하고 있다.

19세기 초 제국주의, 식민지 열강시대에는 절대적 주권면제론이 통용됐지만, 특히 20세기 들어와서 제2차 대전 이후 국가자신이 통상활동 등 사경제적 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가 급격히 증대하면서 절대적 주권면제론에 강한 비판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행위 중 권력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부여하되, 비권력적 행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국가면제를 부여하지 않는 제한적 국가면제론이 대두되어 현재 일반화되었다.

이론상 국가의 비권력적 행위는 사인의 행위와 동일한 법적 성격을 가진 것이며, 여기에는 재판권의 면제를 인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제한적 주권면제이론이 새로운 국제관습법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제2차 대전 이후에 나타난 반인도적 범죄 및 대량살상행위 등 강행규범(ius cogens) 위반시에는 국가면제이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묵시적으로 일반화되었다.

다음으로 일본군 성노예는 전시하 국가에 의한 조직적 강간 및 성노예이고 전쟁범죄이라고 UN 특별보고관 게이 맥두걸(Gay McDougal)은 1988년 6월 22일 보고했다. 동 보고서에 따라 1998년 UN 인권위원회 이사회는 그 권고결의에서 ‘이는 1930년 일본이 비준한 ILO 강제노동금지조약 제29호에 위반이고 동시에 강행규범위반이다. 그래서 UN 인권위 이사회는 일본정부에게 특별국내입법조치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합당한 조치를 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전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상기 국가면제 및 일본군 성노예의 분석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4.21법원판결의 다섯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로, 4.21법원판결이 이태리-독일 Ferrni 사건의 ICJ 판결(2012)을 유일한 논거로 강조하는데, 이 사건의 최종 종결은 이태리 헌법재판소가 ICJ(유엔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뒤집고 이태리 대법원 판결처럼 피해자 Ferrni의 승소를 재확정하여 주권면제를 독일에게 인정해 주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둘째로, 일본 정부가 늘 강변하는 한국의 국제법 위반이라는 논거로 들이대는 1965년 청구권협정 및 2015년 한일합의를 법원판결의 주요한 논거로 보는데, 국제법상 타당하지 않다. 부연하면, 1965년 청구권협정 제2조 1항은 ”최종적 완전한 해결“은 양 정부간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에 불과하고, 피해자 개인이 가해국 일본정부에 갖고 있는 손해배상청구권은 전혀 별개라는 것이 국제법의 원칙이다.

국제법상 인권을 구성하는 개인청구권은 국가간 조약으로 소멸할 수 없으며 국내법상으로도 자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되므로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1991년 야나이 순지 일본 조약국장도 일본 중의원 질의응답에서 공개적으로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과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한 바 있다.

또 2015년 한일합의로 몇몇 피해자가 화해재단에서 금전을 수수했다는 것이 양정부간 불가역적 최종해결로 합의한 것으로 보는 것도 큰 오류이다. 더구나 2015년 한일합의는 정식 조약의 성립요건을 갖춘 국제적 합의문서가 아니고, 그 자체가 피해자 동의없이 양 정부간 정식 조약체결 절차를 밟지 않고 밀실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셋째로, 제2차 대전이후 국가주의로 인해 벌어진 엄청난 전시중 인권침해 참상은 UN 체제에서 국제인권법 발전을 강하게 추동하였다. 이로 인해 절대적 주권 면제이론은 개인의 중대한 인권침해와 반인도적 범죄 등 강행규범에는 적용하지 않는 경향이다. 지난 1월 8일 한국법원 판결은 이태리 대법원 및 그리스 국내법원 처럼 강행규범을 위반한 반인륜범죄에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법적 추세에 부합한다.

넷째로, 4.21법원판결은 2005년 12월 UN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에 위반한다. 동 원칙은 1980년대로부터 축적되어온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국제적 기준을 마련하려는 노력의 결실로서 피해자의 권리를 정의와 배상, 진실에 대힌 권리로 분류하였다.

다섯째로, 4.21법원판결은 2018년 대법원판결의 취지를 위반하고 있다. 당시 대법원판결은 불법적인 식민지배 하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비롯해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본군성노예 피해는 국제적으로 반인륜범죄로서 강행규범위반으로 판명되어 국가면제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4.21법원판결은 국내 헌법상 보장받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명예회복을 무시하고, 또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나아가 국제인도주의화라는 국제법 발전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

- 고대 법대 졸업,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킬대학 법학박사(국제법)
- 한국외대 법대 학장, 대외부총장(역임)
-대한국제법학회장, 세계국제법협회(ILA) 한국본부회장.
-엠네스티 한국지부 법률가위위회 위원장(역임)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통일교욱협의회 상임공동대표,민화협 정책위원장(역임)
-동북아역사재단 제1대 이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역임)
-민화협 공동의장, 남북경협국민운동 본부 상임대표,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동아시아역사네트워크 상임공동대표, SOFA 개정 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현재)
- ‘남북평화기원 강명구 유라시아 평화마라토너와 함께하는 사람들’(평마사) 상임공동대표
-한국외대 명예교수, 네델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재판관,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 Editor-in-Chief /Korean Yearbook of International Law(현재)

-국제법과 한반도의 현안 이슈들(2015), 한일 역사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공저,2013), 1910년 ‘한일병합협정’의 역사적.국제법적 재조명(공저, 2011),“제3차 핵실험과 국제법적 쟁점 검토”, “안중근 재판에 대한 국제법적 평가” 등 300여 편 학술 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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