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을 ‘만들어진 전통’으로 문제 삼았던 책이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또한 우리 전통이 허상인 듯 폭로하며, 국가 및 민족을 둘러싼 전통 창조의 담론을 주장하던 책이 많은 회자가 되기도 했다. 두 책 모두 ‘근대=민족’이라는 등식을 전제로 짭짤하게 재미를 본 것들이다.

민족의 성립이 근대의 부산물이라면, 민족의식이나 전통 역시 근대 이전으로 소급할 수 없다. 이러한 사고는, 유럽의 역사 줄기로 우리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가려 한데서 온 ‘전제의 오류’와 맞닿는다. 보편성이라는 기득권적 삶을 토대로 여타의 모든 삶을 구속해 보려는 의도된 논리다.

우리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찾기 힘든 면면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민족의식의 발아가 이른 시기(늦게 잡아도 삼국시대)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또한 각 왕조의 역사가 유구하다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이러한 시선으로 우리의 과거를 되짚으면, 우리의 많은 전통들이 만들어진 전통보다도 이어진 전통의 모습이 뚜렷하다. 그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가 홍익인간이다.

홍익인간은 『고기(古記)』의 단군사화를 인용하여 『삼국유사』에 실린 말이다. 그것은 동이고조선(東夷古朝鮮) 계열에서 탄생한 보편적 가치 구호로, 동이은상(東夷殷商) 계열에서 나타난 인(仁)과 함께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아마도 우리의 시·공간을 가장 폭 넓게 싸안을 수 있는 ‘공변의 가치(public thought)’로 홍익인간만한 것도 찾기 힘들 듯하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정체성(正體性)을 확인시킨 대표적 가치 역시 홍익인간이다. 일제와 정체성을 놓고 건곤일척의 총체적 투쟁을 펼치며 산화한 집단이 대종교다. 홍익인간은 그 집단의 교의(敎義)였다. 또한 사상적·계급적 대립을 통합할 민족적 지도이념 정립으로 소환된 철학적 기재가 홍익인간이었다.

담원 정인보는 “아사달 창기(創基)의 초에 이미 홍익인간으로써 최고의 정신을 세우니 만큼, 이내 전민족 공통의 교의(敎義)로 널리 또 길게 퍼지며 내려온지라……”는 인식으로, 우리 민족사 개창기의 개국정신으로 홍익인간을 주목했다.

그는 홍익인간을, 우리민족이 인간세계를 열고 나라를 세운 최고의 준칙으로 이해했으며, ‘조선의 조선됨이 그 근본 되는 연원’이자 ‘겨레의 줏대 되는 정신’이 홍익인간임을 강조했다. 오히려 공익을 사적 이익에 앞세우던 홍익인간의 전통을 망각하고 실천하지 않은 데서 망국이 초래되었다는 논리가 그의 담론이다.

민세 안재홍이 주창한 신민족주의의 얼개 역시 홍익인간이 씨줄과 날줄이다. 그는 다사리·만민공생·대중공영·민주주의·민생주의 같은 현대적 정치원리로 홍익인간이념을 재해석하고, 그 가치를 ‘새시대창건의 지도원리’인 신민족주의 이론의 한 기둥으로 삼았다. 그에게 홍익인간은 민주·평등·복지·평화와 같은 현대정치적 이념을 함축하는 고유적 이상으로 해석되었고, 나아가 통일된 신국가 건설을 주도하는 기본 이념으로 작용한 것이다.

홍익인간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조소앙이다. 그는 홍익인간을 통일국가의 건설과 세계일가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최고 공리로 바라본 인물이다. 특히 균등사상(均等思想)의 측면에서 홍익인간을 해석하여 그의 삼균주의(三均主義, 정치균등·경제균등·교육균등) 정치이론의 사상적 토대로 삼았다. 조소앙 정치사상의 응집체요 대한민국임시정부 이념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대한민국건국강령」에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 건국정신은 삼균제도의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선민(先民)이 명명한 바 수미균편위(首尾均平位)하면 흥방보태평(與邦保太平)하리라 하였다. 이는 사회 각층 각 계급의 지력(智力)과 권력(權力)과 부력(富力)의 향유를 균평하게 하며,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유(保維)하리라 함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하자는 우리 민족이 지킬 바 최고공리(最高公理)….”

조소앙의 이러한 인식은 그의 「한국독립당당의해석」에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그는 위의 인식을 토대로 “물(物)이 평(平)함을 부득(不得)하면 반드시 명(鳴)하며, 명하여도 평할 길이 없으면 필경 난(亂)에 이르게 되고, 수미의 위(位)가 평균하면 인간을 홍익할 뿐만이 아니라 세계까지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과(寡)를 불환(不患)하고 불균(不均)을 환(患)할지니, 이는 동서고금에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인 것이다”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조소앙 삼균주의의 역사·사상적 근거는 『신지비사(神誌秘詞)』에 나오는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 흥방보태평(興邦保太平)’이라는 구절이다. 현전하는 전거(典據)로는 『고려사』까지 소급되며, 『용비어천가』제15장 「주(註)」에도 언급이 있다. 조소앙은 『신지비사』를 도참설(圖讖說)이나 종교적 비서(秘書)로만 보지 않았다. 균평(均平)의 근본원리를 밝힌 전거(典據)로 취하고 여기에 홍익인간·이화세계의 건국이념을 연결시켜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중심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홍익인간이 한국교육의 지도이념으로 채택된 시기는 광복 이후다. 미군정하에서 교육문제를 자문하던 조선교육심의회에서 안재홍·백낙준 등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백낙준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기독교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홍익인간 이념의 유래가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보다 훨씬 옛적부터 전해온 것으로, 우리민족의 이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에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으로 손색이 없다고 강조하였다.

교육이념으로 채택한 동기도 분명하다. ‘인류공영’과 ‘민주주의’, ‘민족정신의 정수’와 모든 종교를 넘어선 ‘전인류의 이상’이 그 핵심 이유였다. 1958년 『문교개관』에서 천명한 다음의 설명이 이를 말해준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란 뜻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정신과 부합되는 이념이다.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의 박애정신, 유교의 인(仁), 그리고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인류의 이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홍익인간의 이념 정착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당시 마르크시즘의 계급중심적 유물사관론자들은 홍익인간을 과학 아닌 신화에 토대한 반동적인 관념이라 규정했다. 그리고 민주건국이라는 시대과제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부하였다. 또한 서구의 학문적·종교적 경험을 습득한 이들 역시 홍익인간이 실증되지 않은 신화라는 공박과 함께 구체성이 결여된 추상적·포괄적 관념이라고 매도했다.

이것은 홍익인간이라는 가치가 진보와 보수로부터 늘 괄시당해 온 경험을 말해준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니 피아(彼我) 구별이 될 리 없다. 주인된 자존심이 없으니 나를 바라 볼 용기조차 솟지 않는다. 늘 남을 기준으로 나를 저울질할 뿐이다. 정체성을 망각한 집단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지난 3월 존경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황당한 법개정안을 발의하였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김민철·문진석·변재일·소병훈·신정훈·안규백·양경숙·양기대·이정문·황운하·김철민 의원 등이 동참한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모두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다. 그 주된 골자는 우리나라 교육이념 등 기본 방향을 규정하고 있는 ‘홍익인간’을 삭제하고 민주시민을 교육의 기본 이념으로 구체화하자는 내용이다. 그들이 법개정을 내세운 이유는 이렇다.

“현행법 제2조에서는 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육으로 육성해야 할 자질로는 인격도야,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의 자질 등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궁극적 목적은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표현들이 지나치게 추상적입니다. 교육지표로 작용하기 어렵습니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의 교육이념이 1998년의 현행 교육기본법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지난 70년간 변화된 사회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추상적이고, 교육지표로 작용하기 어려우며, 지난 70년간 변화된 사회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개정의 변이다. 그리고 개정안의 핵심으로 ‘모든 시민의 자유와 평등 지향’, ‘민주시민으로서의 사회통합’, ‘민주국가 발전에 이바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념 지향은 탈시간적·범공간적인 가치일수록 외연확장성을 갖는다. 홍익인간은 우리의 시·공간을 아우르는 공변의 가치이며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도다. 오히려 위의 법개정안에 실린 변명들은 서로 중복된다는 지적과 함께 홍익인간이라는 이념 지향보다 훨씬 더 상투적이고 산만할 뿐이다. 또한 변화된 사회현실 속에 홍익인간만큼 절실한 가치가 또 있는가. 오히려 사회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철(때) 모르는 어설픈 정치인들’의 궤변에 불과하다.

지금이 어느 때(철)인가. 우리의 현실은 분단의 고착화로 기우는 분위기다. 다문화사회의 갈등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닌가. 중국이나 일본의 정체성 확산에 우리의 존재마저 희미해져가는 지금이다. 이런 난국에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자는 법개정안을 제출했다니 의아스럽다. 더욱이 집권 여당의 의원들이 앞장섰다는 점에서는 경악감마저 감출 수 없다.

홍익인간은 이러한 난국에 대항할 우리의 둘도 없는 정체성 제고 방안이다. 홍익인간은 동북아시대의 존립근거인 우리 정체성의 상징이다. 또한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외쳐대는 통일과 다문화사회의 모순·충돌을 녹여낼 귀중한 철학이기도 하다. 그 속에는 구심(민족정체성)과 원심(인류애)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은 우연히 자리매김한 가치가 아니다. 몽고의 침략으로부터 일제식민지의 암흑 속에서 천신만고와 간난신고 끝에 지켜오고 세워놓은 정체성이다. 국민이 4년 간 위임해 준 알량한 정치권력으로 희롱당할 그런 값싼 가치가 아니다.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념과 종교, 그리고 신분을 넘어 하나로 뭉쳤던 경험을 되새겨 보라. 일제강점기 우리 백성들 모두가 살 한 점, 피 한 종지를 희생해 만들어낸 고귀한 가치였음을 각성해 보라.

홍익인간, 그것은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할 천혜의 철학질서다. 혼돈의 시대에 우리의 정체성으로는 못 내세울망정, 중심 없는 이 집단에 국시(國是)로 자리매김 시키진 못할망정, 교육이념에서도 빼버리자는 일부 ‘철부지정치인들’의 장난질을 접하면서 우려를 넘어 절망감을 곱씹게 된다.

이런 정치판에서 통일, 다문화사회의 융합, 동북아시대의 생존, 세계화의 꿈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더욱 요원할 뿐이다. 복도 지어야 받는 법, 선열들이 피땀으로 넘겨준 고귀한 가치를 스스로 짓밟으려는 집단에 무슨 경복이 있을 것인가. 순리(順理)를 버리면 날벼락 맞는다. 자기를 부정하는 집단에게는 무엇으로든 생존의 보장을 담보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민족정체성의 문제에 있어서는 진보나 보수, 여당이나 야당 모두 언제나 방관자였다. 우리의 정치가 얼빠진 군상들의 굿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그 사회의 질을 변화시키는 기술자다. 기술을 망각하면 그 집단은 엉망진창이 된다. 그 원천기술이 정체성이다. 제발 ‘양주 밥 먹고 고양 구실’하는 얄팍한 기술은 부리지 말자. 그러한 정치인, 이제는 더 이상 꼴도 보기 싫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위원)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통일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