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탈북자 문제를 인권이라는 보편적 문제로 위장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기존 이데올로기 논리를 실사구시로 해체시키는 거의 유일무이한 책이다."

조천현, 『탈북자』, 보리, 202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1997년부터 조선과 중국 접경지역을 다니며 우리 민족의 삶을 취재해 온 조천현 피디의 신작 『탈북자』에 대한 박현옥 캐나다 요크대학교 교수의 추천사이다.

파란색 바탕에 『탈북자』라는 강렬한 제목. 책을 둘러싸고 있는 노란띠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탈북자 이야기'라고 쓰여있다. 

불쑥 이런 의문이 생긴다. 왜 굳이 뭔가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탈북자'라는 제목을 썼을까. 탈북자 문제란 무엇이고 이 책은 어떤 점에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일까. 

먼저 명칭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자. '귀순용사'같은 용어는 생략하고...한때 새터민이라는 명칭도 권장되었지만 지금은 북한이탈주민(줄여서 '탈북민')이라는 법률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생활속에서 통용되는 표현은 '탈북자'이고, 밑바닥 생활 현장에서 온몸으로 그들을 만난 저자로서는 그 이상의 표현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이다.

2005년 정부는 부정적 인상을 씻겠다며 '새로운 터전에서 삶을 시작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새터민'이라는 명칭을 내놓았지만 막상 탈북단체들은 자유를 찾아 북을 떠난 뜻이 퇴색되었다며 반대했고 결국 새터민 명칭은 흐지부지됐다.

1997년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제 2조 1항은 "'북한이탈주민'이란 군사분계선 이북지역(이하 '북한'이라 한다)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 법에 따라 국가는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으려는 의사를 표시한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각종 지원을 추진해야 할 책무를 지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탈북자는 북한을 탈출한 사람을 일컫는다.

책에 담긴 내용은 먹고 살기 퍽퍽했던 '고난의 행군'시기, 인신매매범에 납치되거나 탈북 브로커인 선교사들에게 속아 중국 동북3성에 들어오게 된 탈북자들의 이야기이다. 시기로는 1997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가 해당된다.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조 피디는 이 때 어둡고 퀘퀘한 연길 뒷골목 노래방, 찜질방, PC방에서, 그리고 불빛 하나 없는 산골동네와 한족마을 한 귀퉁이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이야기에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거의 모든 탈북자가 한국행을 원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돈만 벌면 다시 북으로 돌아가거나 중국에 정착해서 살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돈벌면 조국으로 돌아가는 이주노동자'라는 소제목으로 소개된 사례는 북으로 돌아가려는 탈북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2004년말 장춘에서 만난 탈북생활 4년째의 장씨(32살, 함남 함흥)는 '도강(탈북)한 것도 죄인데 조국까지 배신하고 두번 죄를 지을 수 없잖습니까'라며 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함경북도 무산에서 인신매매범들이 친 약에 취해 1999년 중국으로 납치된 김씨(28살, 함북 청진), 북에서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예술단 활동을 하다 한 마을에 살던 화교친구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 들어온 탈북생활 5년째의 강씨(34살, 평양)도 같은 경우이다.

'한국 안가요. 올 겨울에 두만강 얼면 조선으로 건너갈 거에요'라고 말하는 부류이다.

다음은 중국에 정착해서 살려고 하는 탈북자들의 사례이다.

2005년 중국 훈춘시 경신진 변경마을의 허름한 초가집. 강건너 함경북도 은덕군이 지척인 이곳에서 만난 조씨(35살, 함북 온성)와 그녀의 남편 류씨(37살), 그리고 탈북생활 5년째인 김씨(33살, 함북 새별)와 함께 마른 명태를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간다고 그곳에서 용되는 것도 아니고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에 산다. 여기에서 잘사는 게 한국에서 못사는 것보다 낫다."

중국 남성과 결혼한 탈북 여성에게는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다. 중국에서 출생한 아이들에게만 국적을 부여하는 중국 당국의 정책으로 인해 조용히 정착하며 살려는 탈북 여성들의 일상은 늘 불안하다.

탈북생활이 장기화되면서 북으로 돌아가 적응하는 것도 어렵게 된 이들은 중국에 머물면서 훗날 자유롭게 북을 방문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가장 많은 경우이자 낯익은 유형은 한국행을 택한 탈북자들이다.

거액의 정착금이 큰 동기가 되는데, 경제적 이유외에도 범죄행위에 연루된 사람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한국으로 오는 경우가 있다.  

이중 일부 탈북자들은 북한이 사람 못살 지옥이 될 수록 자신들에게 엄청난 반대급부가 돌아온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자신들이 떠나온 땅에서 겪었던 배고픔과 사회·정치적 억압을 점차 과잉 묘사하기 시작했다. 

탈북 브로커 조직과 그 배후의 정치세력은 열심히 탈북자들을 부추겼다.

이같은 탈북자들의 폭로에 힘입어 북한 인권실태를 개선하라는 압력이야말로 주민들의 안녕을 위한 인도주의적 요구라는 공고한 정당성이 부여되었다.

경제적 후원이 대가로 주어지면서 경쟁적으로 증폭된 폭로가 거짓임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들의 파렴치한 범죄행각이 공개되기도 했지만 특별히 문제되지도 않았다. 

탈북자들을 '미리 온 통일'이라고 환대하고 '통일역군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의 저변에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박교수에 따르면, 탈북 문제는 탈냉전시기, 인권이라는 가치 아래 민족의 애환과 휴머니즘이 섞이고 거기에 종교적 선이라는 확신이 더해지면서 여러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대한 비판은 인권이라는 윤리에 묻힌 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향한 급진주의자들과 일부 주사파, 극우 복음주의 교회가 이 문제에 주목했다. 

이들은 미국의 보수NGO와 손잡고 북의 인권침해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국제학술회의를 열고 북한의 강제수용소 문제를 공론화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미국 의회 증언을 불쏘시개 삼아 2003년 북한자유법과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

박 교수가 지적한 '탈북자 문제를 인권이라는 보편적 문제로 위장해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기존 이데올로기 논리'란 이런 것이다.

박교수는 이런 저간의 복잡한 과정에 대해 강력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 『탈북자』는 "탈냉전 이데올로기와의 힘겨루기에서 우리를 가까스로 버틸 수 있게 해준다"고 상찬했다.

탈북자들의 두려움과 고뇌, 희망과 겹쳐진 욕망,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인신매매범과 브로커들, 국적은 달라도 기꺼이 정착을 도와주는 친척들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미안함, 서운함.

조 피디는 20여 년 전 연길시내 뒷골목에서 만난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은 시대의 진면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그 과정을 주목하지 않고 어느 편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 일에 몰두하면서 사람과 사실에 대한 충실한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 날선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도 분명한 입장을 세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탈북자 선교를 앞세워 20억원을 편취한 예랑선교회의 실체', '북경 주재 외교공관 기획망명 전말' 등 첨부된 르포기사는 탈북 문제를 둘러싼 탐욕과 광기를 가감없이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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