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영 신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29일 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기대감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무너진 뒤 고민끝에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며, 마지막 힘을 내 남북관계 진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사진-조천현]  
신준영 신임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29일 지속가능한 남북교류협력 사업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기대감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무너진 뒤 고민끝에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며, 마지막 힘을 내 남북관계 진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사진-조천현]  

월간 말지(誌) 기자로 북을 취재하다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던 그해 월간 민족21을 창간하고 그 뒤 남북역사학자협의회를 만들어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 조사를 비롯해 남북관계 진전에 매진한지 30년. 

대표적인 남북관계 전문가인 신준영씨가 지난 22일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으로 임명되어 2년 임기를 시작했다.

신준영 국장은 지난해 6월 남북정상의 합의로 세워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는 순간 자신의 인생도 무너지는 충격을 느꼈다며, 지난 30년간 남북관계 현장에서 목표로 삼아온 '지속적으로 실현가능한 남북 교류협력'를 위해 경기도에서 다시 신발끈을 매어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국내문제든, 남북문제든 '해야 할일은 반드시 하는' 이재명 지사의 일관된 자세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같은 결정이 정치적인 선택으로 비춰지는데 대해서는 부담스러워했다.

경기도는 북측과 직접 사업을 만들어 합의하고 집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고, 자신은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위해 지방정부의 힘과 그 책임자의 강력한 의지를 바랬던 것이 서로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3년을 보지 않은 연인에게서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벌써 2년이다. 미우나 고우나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신 국장은 그래서 제일 중요한 일은 만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좋게 생각하고 보고 싶어해야 뭐가 되지 않나. 서로 보기도 싫고 안봐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무슨 통일이 되겠나"라는 건 남북교류협력의 현장에서 쌓아올린 하나의 신앙같은 것이었다. 

지난 2019년 이후 남측의 제의에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지난 8차 당대회에서 '남측이 합의이행을 위해 움직이는 만큼 상대하겠다'고 한 언급은 진일보한 상황으로, 새로운 소통의 기회로 읽었다.

어느 시점엔가 북쪽에서도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일이 진행이 될텐데 그 시점을 지켜보고 모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중에서 제일 첫번째 할일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28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신준영 평화협력국장을 만나 폐허위에서 무엇을 할 지 고민했다는 그의 구상을 들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마지막 힘을 다해 남북관계 진전위해 노력하겠다

신 국장은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게 된데는 국내 문제든, 남북문제든 해야 할일은 한다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 이재명 지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신 국장은 경기도로 자리를 옮기게 된데는 국내 문제든, 남북문제든 해야 할일은 한다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 이재명 지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 통일뉴스 :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으로 자리를 옮긴데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한다. 멀리는 월간 말지 기자로 민족문제를 고민해왔고 가깝게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역협) 사무국장으로 오랫동안 민간에서 남북관계 관련 일을 해 오셨는데 경기도로 옮기게 된 계기나 배경을 설명해 달라.

■ 신준영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 사실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작년 12월에 결정했다. 제가 월간 말지(誌)부터 하면 남북 관련된 일을 한 게 30년, 역협은 20년 정도 된다. 구체적으로는 남북교류협력 관련 일을 했고 그동안 목표라고 하면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지속적인 교류협력 사업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2007년부터 만월대 발굴을 시작했는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도 지지를 얻어서 계속 했으니까 그게 보람이었다. 

2018년에는 진짜 기대가 컸다. 드디어 목표를 이루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2019년 이후 특히 작년 6월에 연락사무소 폭파되는 걸 보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내 인생 20년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졌다는 생각과 함께 개인적으로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년이면 나이가 60이 되는데 그 뒤에도 계속 일할 생각이 있지는 않았다. 젊은 사람들 같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었고 그때 경기도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가서 일해보자고 마음속으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이재명 지사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분을 전혀 모른다. 내 편견인진 모르지만 많은 정치인들이 남북문제는 워낙 어렵고 위험하니까 국내문제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그런데 이 지사님은 국내문제든 남북문제든 일관된 것 같다. 그동안의 활동을 보면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일관된 자세를 갖고 있다고 나는 느꼈다. 그래서 이런 분 밑에서라면 상황은 어렵지만 2년동안, 힘도 없지만 마지막 힘을 내서 해보자라는 생각을 한 거다.


□ 작년 말에 경기도에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이 있었던 것인가.

■ 공채를 했으니까 지원해서 논술시험도 보고 면접도 보고 많이 했다.(웃음) 공모절차가 있었고 제가 거기 응시를 해 시험도 봤고 합격을 해서 임용이 된 거다. 


□ 역협 일은 어떻게 되나

■ 김경순 부장이 역협을 맡아서 하게 됐다. 원래 2년 정도 남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서서히 김 부장에게 넘겨주고 2년 후에는 그만둘 생각이었다. 출퇴근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려고 했다.


□ 경기도북부청사가 있는 여기가 의정부인데 출퇴근이 오히려 더 멀어지지 않았나.

■ 집이 서울인데, 너무 머니까 지금은 주말에만 집에 가고 근처 관사에 살고 있다. 가출을 한 셈이다.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낮에는 보고도 받아야 하고 행사가 많아서  저녁에 보고서들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2020년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인생 20년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와닿았고 이후 계획에 깊은 고민을 남긴 계기가 되었다. [사진-조천현]
2020년 6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인생 20년이 무너지는 충격으로 와닿았고 이후 계획에 깊은 고민을 남긴 계기가 되었다. [사진-조천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인생 20년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 조금 전에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을때 인생 20년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어떤 느낌이었나. 2018년에 만월대 발굴 사업이 완료되거나 중단된 것이었는지.

■ 2018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두번이나 하고 북미회담까지 했으니까 엄청난 일들이 진행된 것 아니겠나. 그해 민간사업은 다 밀리는 중이었지만 만월대 발굴 조사는 통일부가 중요하게 미는 사업이니까 10월 22일 시작해서 12월 10일까지 진행을 했다. 

그때는 하노이 북미회담 전이었으니까 당연히 결과가 잘 나오면 만월대 발굴조사를 1년 내내 계속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기대도 있었다. 내 목표는 개성공단에 공장이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가듯이 사회문화사업에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전선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속 돌아가는 사업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고 그런 목표에 가까워졌다고 생각을 했던 거다. 

이런 모델을 하나 만들었으니까 내 할일은 거의 다 했다는 그런 생각...그랬는데 회담이 결렬이 되고 2020년에 그런 상황(남북연락사무소 폭파)까지 벌어지니까...

그 폭파에 대해서 평가를 가볍게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꽤 장기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에서)이렇게 까지 하는데, 그 행위 자체가 너무나 파괴적이고 충격적이지 않나. 그렇게까지 한 건데 그걸 금방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 갈 수 있다면 그렇게 했겠나. 상당히 장기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앞으로 1년, 2년에 대한 단기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다. 나는 당장 올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현장 활동을 하는데 5년 후, 10년 후가 무슨 필요가 있겠나.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 한반도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순리대로 갈 것이라는 것은 당연히 믿는다.

한두 해 안에 회복될 일이 아니라는 충격과 함께 6.15 이후에 군사적 충돌도 있었지만 남북 정상합의에 의해 만든 건물인데, 그걸 폭파해 버린다는 건 6.15와 함께 저도 그렇고 통일뉴스도 그렇지만 그동안 쌓아온 20년이 다 날아가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거다. 그 폐허 위에서 뭘 어떻게 해야되지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 원래 합의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면 만월대 발굴조사 사업은 언제쯤 마무리되는 것인가. 지속적인 사회문화교류 사업이라는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된 것인가.

■ 원래 단계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었다. 2006년 합의했는데, 순조롭게 연간 4~5개월씩 차곡차곡했다면 1단계는 5년 정도면 마칠 일이었다. 그런데 2006년에 시작해서 2018년 시점까지 보면 13년인데 그동안 1단계의 60%밖에 못했다. 순리대로라면 5년이면 끝났어야 될 일인데 13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반 조금 넘게 된 거다. 13년이라고 하지만 계산해보면 날짜로는 3년이 채 안됐다. 

그런 점에서 만월대 발굴 조사 모델로도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 사업이라는 목표를 아직 못이룬 거다. 그러니까  과제는 남아있는 것이고 그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이다. 내게는.


□ 경기도는 그 목표를 달성할 또 다른 활동무대가 되는 셈인가.

■ 경기도 평화협력국의 일로 보면 남북협력은 한 부분이다. 남쪽 내부에서 평화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업도 있고, 디엠지 접경지역을 좀 더 평화의 분위기로 바꾸는 사업, 국제협력 등 다양한 사업이 있다.

그래서 평화협력국 자체의 사업계획들을 충실히 해야 한다. 그 중에 한 파트이기도 한 남북교류협력을 잘 이뤄내는 것은 개인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경기도의 목표이기도 하다.

민간단체에서 할 때보다는 조직도, 예산도 있고 훨씬 힘이 있으니까 최선을 다 해야된다는 생각이다.

 

신 국장은 8차 당대회를 통해 북은 내부문제를 인정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으며, 앞으로 5년간 상당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조천현] 

북, 내부 문제 인정할 수 있는 단계 도달...상당한 성과 나올 것


□ 오랜 세월 남북관계 일선에서 일해 온 대표적인 민간 전문가로서 최근 북의 8차 당대회 이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보나.

■ 저야 이론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활동을 하니까, 이론을 하는 분들의 평가를 보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늘 그런 느낌이 있는데, 우리(남쪽) 입장에서 북이 이렇게 움직이면 좋겠다는 기대섞인 평가를 하는 것 같다. 

인간 세상의 상식이라는 게 자기 계획은 나를 위해서 세우지 남을 위해 세우진 않지 않나. 그쪽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최선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라고 본다.

이번에 제일 특징적으로 보였던 것은 단계가 달라졌구나 하는, 자기 내부의 문제를 정확히 인정하고 그걸 개선하고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인정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단계가 있지 않나. 그것 자체가 또 빌미가 될 수 있으니까. 경제지표가 엄청나게 미달했다는 평가를 해도 괜찮은 단계에 도달했으니까 그런 평가까지 나온 것 같다.

이것도 세상의 상식이지만 자기 자신의 문제를 알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성과는 나오게 된다고 본다. 그래서 5년후에는 상당한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보인다.


□ 북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매진할 수 있는 평화적 환경을 국방력 강화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완강한 입장이고 선 비핵화를 앞세우는 미국과 한국에 적대시정책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외교·안보 환경에 대응하겠다는 기조인데, 남북간 새로운 소통의 기회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 남쪽에 대해서는 합의 이행을 위해서 움직이는만큼 상대할 것이라는 (북측의)언급이 있었는데, 나는 그건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노이 회담 이후에는 남쪽에서 무얼해도 북측이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비례적으로 움직이겠다고 한 것은 진전인 거다.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린 것이니까 중앙정부이든, 지방정부이든, 민간단체든 현실 가능한 방향, 방법론을 모색해서 움직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 보다는 정세에서 받는 제약이 적으므로 가능한 최대한 움직여서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으로 지자체가 교류협력의 주체가 되었지만 여전히 '공유재산법' 등으로 인해 지방정부가 구매한 물품을 북에 인도하는데에는 제약이 따른다.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한데 중앙정부와 협의해 나가겠다.


□ 생명·안전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우리 정부 입장과 달리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8차 당대회에서 방역·인도적 협력 등 남측 제안을 비본질적 문제라며 거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북과 대화, 협력의 길로 되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하는데 실효적인 방법은 눈에 띄지 않는다. 어떤 방안이 있을까.

■ 질문을 받고 드는 생각은 이제 내가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됐구나 하는 것이다. 경기도에 앉아 있는 사람이 통일부나 청와대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지난해 11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경기도 평화부지사실을 찾아 이재강 부지사를 응원하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 [통일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경기도 평화부지사실을 찾아 이재강 부지사를 응원하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 [통일뉴스 자료사진]

제일 중요한 건 서로 만나는 일


□ 중앙정부보다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도가 어떤 협력사업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틔게 할 것인지 관심이 많다. 경기도 담당 국장으로서 남북 평화협력을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지금은 업무파악중일텐데 기본 방향이라도 말해달라.

■ 경기도가 계획하고 있는 남북협력사업은 이미 다 공개되어 있다. 문서로도 공개되어 있고 또 발표도 됐다. 작년 DMZ 포럼에서 이재명 지사께서 발표한 내용으로 남북공동방역 및 의료협력이라든지, 임진강 수계 관리 협력, 접경지 사업 공동조사, 산림복원, 농촌개발 등 오랫동안 추진해 온 사업도 있고 그 뒤에 추가된 일도 있다.

2018년에는 접촉 기회도 있었으니까. 일부 북측과 협의를 한 사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항상 남북사업이라는 것이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더라도 이걸 북측에 설명하고 그쪽 입장도 들어야 하지 않나. 우리는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쪽은 이차적일 수도 있는 것이고, 거꾸로 그쪽에서 일차적으로 시급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되는 건데 불행하게도 전통적으로 민간차원에서 남북사업을 담당하던 북측 단위들이 전혀 연락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는 아까처럼 비례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 천명되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그쪽도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본다. 그에 따라서 일을 해 나갈 텐데, 그 시점을 지켜보고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본다. 제일 첫번째는 만나야 하는 것 같다. 


□ 그럼 만나자고 이야기할 다른 창구가 있나.

■ 아니 지금은 중단되어 있는 거지. 북측 민화협이 2019년 4~5월부터는 창구가 단절된 상태이지 않나. 그 밖에는 공식적인 창구들이 아니니까.


□ 엊그제 일년만에 6.15북측위에서 남측위 총회에 축전을 보냈는데.

■ 좋은 일이다. 단절이었다가 남쪽과 접촉을 하지 않는 방침이 비례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으로 진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서 북측 담당부서에서 사업계획이 세워지면 움직임이 보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 경기도 같은 지방정부의 카운터파트도 북측 민화협이 되나 

■ 그게 아직 안정해 졌을 거다. 왜냐하면 그동안에는 우리쪽에서 남북교류협력법상 지방자치단체가 교류협력의 주체가 아니라  민간단체의 사업을 후원하면서 민간단체의 카운터파트인 민화협을 만났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자체가 독자적인 북측 파트너를 만난 적은 없다. 


□ 경기도가 아태평화위원회를 만났던 것도 남북교류협력법 개정 전이다.

■ 그렇다. 북측도 지방자치단체가 독자적인 교류협력의 주체가 아닌 상황에서 지자체를 누가 담당할 것인지를 그동안 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문제도 앞으로 북측과 협의해야 할 문제일 것 같다.


□ 누구보다 북측을 많이 만나왔으니 앞으로 사업재개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크던 작던 합의한 것을 지켰는지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떤 이유로든 합의가 이행되지 않아 계약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다시 사업하기 어렵지 않나.  제가 100% 지켰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최선을 다해서 합의는 지켰다고 생각한다.


□ 경기도에서 북측과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시기적으로 지나 버린 일들도 많이 있다. 개성공단 재개 촉구, 개성관광 재개를 비롯해 도라전망대에 경기도 집무실 설치 현안들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이재강 평화부지사께서 굉장한 열의를 갖고 '개성공단 재개 선언이라도 남북이 함께 하자'는 의미에서 도라전망대에 평화부지사 집무실을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평화부지사 집무실은 지금 수원에도 있고 의정부에도 있다. 도라전망대에도 설치해서 돌아가면서 일을 보겠다는 뜻이다.

군 1사단과는 조건부 승인이 되어서 진행이 되어온 일이었는데, 설치 당일 군이 유엔사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치가 지연되었고 지금까지 이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기도와 1사단이 DMZ와 관련해서 함께 하는 일이 꽤 있다. 생태로 조성을 위한 부지교환 등 여탸 사업에 대해서는 군 당국과 원만한 협의가 됐었는데, 도라전망대 집무실 설치에서 유엔사 동의라는 문제가 돌출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별안간 유엔사 동의가 없어서 안된다고 하니까, 정전협정을 뒤져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오래된 관행일 뿐이지 정전협정 자체가 그런 내용을 규제하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개성 육로 방문할 때 유엔사 동의를 받고 들어가는 것도 오랜 관행이 제도화된 것 아닌가. 

물러설 수는 없고 문제제기를 해야되겠다는 마음에서 임진각에 텐트를 치고 임시집무실을 만들어서 11월 10일부터 12월 22일까지 43일간 평화부지사실 직원 6명까지 같이 가서 농성을 한 것이다. 삼보일배까지 하고...


□ 이재강 평화부지사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한다.

■ 부산에서 활동하던 분인데, 저도 여기와서 처음 뵙게 됐다. 개성갈 때 지나야 하는 통일대교가 상당히 긴 거리인데 거기서 삼보일배 할 때 날씨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갔다. 

연세도 올해 60살이니까 적다고 할 수는 없는데 알고 보니 체육중·고등학교를 나왔더라. 꿈이 축구선수였을 정도였으니까. 남북문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가진 분이 체력까지 탄탄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삼보일배가 가능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철이들어서 공부를 하기로 하고 부산대학교에 80학번으로 진학해서 학생운동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43일 동안 누구도 못할 일을 했다. 지방정부의 부지사가 몸으로 부딪히면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었으니까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다. 그러면서 부지사의 뜻을 이어 받아 개성공단 재개선언을 밀고 나가는 단체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개성공단재개선언 범국민연대회의'를 결성하고 2월 9일 오후 4시에 임진각 디엠지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 출범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코로나 방역상황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공동대표들만 모여서 행사를 치를 예정이고 경기도는 지원역할을 할 예정이다.


□ 유엔사와는 구체적인 협의나 진척이 있나.

■ 더 이상의 언급은 없다고 들었는데-, 자기들 권한이니 승인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2018년 9월 말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 재개됐다. 사진은 발굴 예정지인 만월대 서편 축대 부분.[통일뉴스 자료사진]
2018년 9월 말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조사 재개됐다. 사진은 발굴 예정지인 만월대 서편 축대 부분.[통일뉴스 자료사진]

만월대 공동사업, 발굴 넘어 정비로 계속 확대될 것 


□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 사업은 교류가 끊기면서 북측 단독사업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는 않다. 개성 만월대 사업은 남북간에 공동사업으로 합의되었기 때문에 북측 내부에서도 존중한다. 

좀 독특한 일은, 2006년 역협과 북측 민화협이 만월대 발굴조사 사업을 공동으로 진행한다고 합의한 후 2018년까지 2번 중단된 적이 있다. 남쪽이 가지 않아서 중단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의 문화재청과 같이 북측에서 실제 발굴조사를 하는 기관인 '조선민족유산보호지도국'에서는 문화재 보존차원에서 불만이 없지는 않다. 

진도가 늦어지면 '단독으로 했으면 벌써 다했다'고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발굴조사라는 것이 짧은 시간안에 해야 효율적이고 문화유산의 훼손도 없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역협과 북측 민화협 간에 남북공동으로 추진한다는 합의가 있었으니까 오히려 북에서도 단독으로는 못한다고 조선민족유산보호국을 설득하고 있는 거다.


□ 공동사업이 중단됐다는 건 잘 못 알려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 한번 비슷한 일은 있었는데, 그 경우도 단독으로 했다고는 할 수 없다. 2015년 11월 말에 남측이 철수를 할 때였는데, 그때도 박근혜 정부로부터 2016년 1월부터는 일년 내내 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고 북측의 동의도 받아서 만월대 임시사무소를 지어놓고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철수직전에 금속활자가 나왔다. 금속활자는 그 조그마한 것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노동강도가 뒤따른다. 먼저 금속활자가 있을 수 있는 지역을 특정한 다음 흙을 다 파서 1cm X 1cm 정육면체의 금속활자를 찾아내기 위해 파낸 흙을 일일이 쳐야 하는 노동을 해야만 한다. 

2015년에는 금속활자 발굴을 위해 채를 치는 조를 별도로 구성해서 하루 종일 했다. 그때도 발굴기간을 6개월이나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측은 2016년 1월에 오겠다고 했지만 핵실험과 개성공단 폐쇄(2.10)상황이 발생하면서 개성에 들어가지 못했고, 북측은 작업량이 많은 채치는 조를 남겨서 1, 2, 3월 동안 작업을 벌여 활자 4개를 추가로 수습하고 철수한 것이다. 북측이 단독으로 발굴한 것은 아니다.


□ 공동사업 재개를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발굴 조사 재개를 위해서는 코로나 사태 해결과 남북관계 재개가 필요하다.

이 조사가 한번 시작되면 적어도 3~4개월은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문제가 중요한데, 남측조사단의 만월대로 출퇴근하려면 개성공단 숙소가 필요하다. 2018년에는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 숙소 신세를 졌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생각같아선 제3국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서 개성시내에 머물면서 단기간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라도 성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지금까지는 통일부와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사업이 진행되었는데, 발굴에서 정비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필요예산도 더 커지고 있다. 경기도도 개성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만월대 조사에 참여해서 사업을 보다 확대해서 진행하는 방향으로 협의해 보려고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개성 만월대 열두해의 발굴'이라는 순회전시가 진행될텐데 경기도도 올 하반기에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발굴성과를 도민들에게 보여드리고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지지와 공감을 넓히려고 한다.


□ 암튼 대단한 전문가를 모시고 경기도에서도 기대가 클 것 같다. 이재명 지사의 특별한 당부는 없었는지.

■ 그 이전에 이재명 지사님이나 이재강 부지사님과는 개인적으로는 전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기도에서는 민간에서 남북사업을 오래한 경험이 있는 현장활동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정책 담당자가 아니라 북측과 직접 사업을 만들고 개발하고 합의하고 집행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다. 

저는 어려운 상황에서 뭔가 작은 구멍이라도 내려면 민간단체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제가 목표로 했던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을 하는데 경기도와 같은 지방정부의 힘과 지방정부 책임자의 의지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로 필요가 맞은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원서를 내고 필기와 면접시험을 통과한 사람들 중에 최종적인 결정은 지사가 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를 선택한 것을 보면 남북사업을 현장에서 해 본 사람을 택한 것이다. (경기도가) 남북사업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 남과 북이 만나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는데, 왜 그러한지 다시 한번 말해달라.

■ 말지에서 처음 방북취재를 시작할 때 혼자 북에 왔다 갔다했는데 그 때 사람들이 너만 혼자 그러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오갈 수 있도록 하라고 해서 그때 생각한게 사람이 오고가야 관계가 진전이 되는 것이니까 나 혼자 그럴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만든 게 남북역사학자협의회였다.

학자들은 교류라는 게 기능적인 접근이고 한계가 있다고 비판도 하지만 결국 남북의 사람들이 서로 좋게 생각하게 하는게 교류의 목표인 것 같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좋게 생각하고 보고 싶어해야 뭐가 되지 않나. 서로 보기도 싫고 안봐도 아무렇지도 않으면 무슨 통일이 되겠나. 

'3년을 보지 않은 연인에게서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벌써 2년이다. 미우나 고우나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