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선 (통일뉴스 논설위원)


▶노중선 논설위원
민족 분단의 비극적 현실을 새삼 절감케 한 이산가족들의 눈물겨운 혈육 상봉 장면은 반세기가 넘도록 적대적 분단을 지속시켜온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참담한 자기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상봉이 이루어진 그것 자체는 늦었지만 민족화해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어서 그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민생`문제를 토의하고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가 그 같은 비극적 민생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분단시대의 역대 국회는 3대 국회 때 `남북협상.중립화배격에 관한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과 같이 반통일적이거나, 민주당 정권시기에는 `대한민국 헌법절차에 의하여 유엔감시하에 인구비례에 따라 자유선거 실시`를 결의한 것과 같은 사실상 분단정책 지지 역할만으로 일관해 왔다. 그리고 1991년 12월 남북당국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조차 국회 비준 절차를 생략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역대 국회는 민족화해를 위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고, 다만 다음의 몇 가지 사례들만이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즉 1948년 10월 45명의 소장파의원들이 `긴급결의안`으로 제출하여 외군철수 문제를 제기했었고, 1949년 2월 국회의원 63명이 `외군철수와 평화통일 결의안`을 상정했었는데 이 같은 내용은 국회 개원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외에 1964년 10월 이만섭 의원 등 45명이 남북면회소 설치문제를 제기했었다. 그리고 대정부 질의를 통해 개별적으로 민족화해적 통일문제를 제기했던 경우는 1985년 6월 이철의원이 "북한의 이념체계 즉 평등의 개념을 부정하는 방법으로는 통일을 지향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다"고 하였고, 1986년 10월 유성환의원은 "국시는 반공보다는 통일이어야 한다. 강대국들의 한반도 현상고착정책에 많은 국민들은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1998년 11월 이상수의원은 "남북한은 군비증강이라는 소모적 악순환에서 벗어나 군비투자를 생산적인 투자로 전환해야한다"며 남북군축협상을 제안했었고, 1999년 9월 장영달의원은 `21세기 통일시대 한반도 적정군사력과 평화군축`이라는 정책연구보고서를 통해 군축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제 민족화해와 협력 문제, 그리고 민족자주적 평화통일 문제에 관한 논의를 더 이상 방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 안에서 연방제를 포함한 통일방안 문제, 평화협정체결 문제, 외세 문제, 민족공조 문제 등 모든 통일문제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된 정세는 6.15남북공동선언으로 촉발되어 최근 장관급의 서울·평양회담, 이산가족의 교환방문, 이남 언론사 대표단의 방북, 이북 고위당국자의 서울 방문, 올림픽 개막식의 동시입장, 경의선 연결 착공, 남북국방장관 제주도 회담 등 냉전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었던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데서 일단은 `민족화해와 협력의 시대`임을 체감할 수가 있다.

그 동안 역대 국회가 민족화해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자기 임무를 다 하지 못했다면, 이제 국회는 민족화해와 협력의 시대에 걸맞게 앞으로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데서 자기 임무를 다 해야 한다. 통일은 결코 `통일이여 어서 오라`는 소원으로 이루지는 것은 아니다. 민족구성원들이 돈, 명예, 직위 등 기득권을 부분적으로 양보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과 헌신성을 발휘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는 국회와 의원들에게 그 같은 실천과 헌신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민족의 비극적 분단현실을 바로 보고 분단구조의 제거라는 민족적 과제에 대한 자기 임무와 역할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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