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우 / 전 인천대 교수

 

필자의 말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 현상을 반영하는 거울입니다. 미디어를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친 우리 자화상을 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사회를 성찰하고 뒤돌아보는 글이 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주 목요일에 게재됩니다.

 

넷플릭스를 시청하다 보면 섬뜩할 때가 있다. '이런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다니'하는 놀라움과 더불어 위기의식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 방송에서라면 절대 제작될 수 없었을 파격적 내용의 드라마에 흔쾌히 제작비를 투자하는 그 방식이 놀랍고 또한 무섭기까지 하다. 이런 컨텐츠가 제작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네 통상적 인식을 훌쩍 뛰어넘은 의사결정 과정이 넷플릭스에 있다는 것이고,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업이 향후 컨텐츠 시장을 어떻게 장악할지 두려움을 자아내게 만든다. 

일단 투자를 결정하면 영상물의 내용은 전적으로 창작자에게 자유를 주고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니,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드라마와 영화가 가능하다. 당연히 창작자는 넷플릭스의 투자를 반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투자 자본이 어디건 좋은 컨텐츠를 만들 수만 있다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특정 기업에게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어쨌거나 찜찜한 일이다.

넷플릭스 특유의 투자 산물 중 하나인 "인간사냥"은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 드라마이다.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청춘물인데, 여기에 묘사되는 등장 인물들은 우리가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고등학생이 아니다. 반항기 넘치는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벌레도 아니고, 흔하디 흔한 학교 폭력의 희생자도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감과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남자 주인공 오지수는 학교에서 외톨이 아웃사이더이지만 성적은 최우등으로 일류대 진학을 목표로 삼고 있는 모범생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지수는 채팅 어플을 통해 "삼촌"이라는 별칭으로 성매매를 온라인으로 알선하고, 해결사 이실장을 연결해서 진상 손님을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곧 전통적 의미의 사창가 포주인데, 다만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할 일 없이 핸드폰만을 가지고 온라인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지수가 관리하는 여자 중에는 같은 반 여학생도 있다.

부모 역할은커녕 민폐만 끼치는 아버지와 절연하고 혼자 사는 지수는 학업을 계속하고 대학 진학을 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수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여주인공 배규리는 오지수와 정반대 캐릭터이다. 규리는 성공한 사업가인 부모 밑에서 상류 생활을 하고 있으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학교내의 핵심 인싸(인사이더)이며 역시 최우등생인 모범생이다. 하지만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규리는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압박으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상태를 숨기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은 규리가 지수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서로 얽히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부모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돈이 필요한 규리는 지수를 압박해서 같이 성매매 사업에 뛰어든다. 친한 남자 유도부원들까지 성매매를 시키려 할 정도로 과도한 규리의 욕심은 결국 조직폭력배와 엮이며 결과를 알 수 없는 엔딩으로 흘러간다. 사회과학 동아리의 회원이자, 모범생이고 우등생인 두 학생의 이면은 이렇게 한없이 복잡하고 어둡다.

이런 모습의 고등학생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한국의 네트워크 방송국에서는 제작하기 불가능한 내용이다. 아르바이트로 성매매 포주를 하는 우등생과, 그 약점을 잡고 성매매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또 다른 우등생,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복잡한 내면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명암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드라마를 과감하게 제작해서 방영하자는 결정을 내릴 경영진은 아마도 한국에는 없을 것이다.

인간수업이 보여준 2020년의 한국 고등학교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낯설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명암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에 익숙하기도 하다. 과거에는 어른들 세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회의 어두운 갈등과 치부가 청소년들의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곧 그저 밝고 찬란해야 할 청소년 시절이 실상은 그렇게 순진하지도 순수하지도 않으며, 짙은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들이대고 있다. 드라마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해서 답답한 것은 오히려 기성세대이다. 지수와 규리를 모범생으로만 알고 있는 담임은, 그렇게 얌전하게만 살지 말고 사고도 좀 치라고 조언을 한다. 치열하고 어두운 청소년 세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아무것도 할 능력도 없는 담임의 존재를 드라마는 한껏 조롱하고 있다. 

이런 파격적인 드라마는 넷플릭스가 보여주는 차별화된 지점이다. 그런 제작 방식과 의사 결정과정이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언젠가 한국의 모든 컨텐츠가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글로벌 자본에 종속될 것 같은 우려 때문이다. 지금 딱히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경각심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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