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잘 아는 동생이 찾아 왔다. 음식점을 하다가 갑자기 친형이 운영하던 시계사업을 물려받아 중국과 한국에서 생산해서 판매한다고 했다. 원래 아버지가 하시던 가업이라 한국에서 시계제조업을 다시 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이 이어졌다. “개성공단 재개되면 진출하려구요. 중국하고 비교해 보면 인건비도 너무 싸고, 말도 통하지, 가깝고, 안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필자는 반갑기도 하지만 걱정되어 “개성공단이 좋기는 하지만 혹시 또 문 닫으면 타격이 너무 클텐데…”라고 반문해 봤다. “이번에 재개되면 문 닫을 일 없지 않을까요? 대세가 될 거라서, 아마 그럴 일 없을 것 같습니다.” 남북경협이 이제 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에게도 현실적인 꿈이 되었고, 부흥을 위한 돌파구로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다.

사실 누구나 안다. 남북경협이 가져올 편익이 얼마나 큰지를. 말이 통하고, 가까우며, 양질의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다. 요즘 김정은 위원장이 시찰한 공장을 보니 산업용 로봇, CNC공작기계를 갖추고 있는데, 기술력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 현재 신남·북방경제가 남북 모두의 활로다. 경제논리로는 남북경협을 신속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재개하는 것이 답이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남북경협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어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 평양방문 때 대규모 경제인이 동행하는 등 기대가 높아졌지만 현실화된 사업은 아직 없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보다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북의 핵무력 완성 선언과 대북 국제제재, 북미간 대화 정체, 미국의 제재유지론 등과 같은 남한 정부가 홀로 넘기 어려운 외부적 요인이 많이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부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려야 할까?

이제는 남북경협을 재개하기 위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첫째, 데드라인 시한을 설정하는 것이다. 미국을 배려하여 북미협상에 혹시 부정적 영향이 갈까봐 남한 정부는 남북경협을 그 동안 자제해왔다. 하지만 우리 경제에 사활적인 문제이고 통일이라는 헌법적 사명을 완수해야 하기에 무한정 미국에게 시간을 줄 수 없는 것 아닌가?

데드라인은 늦어도 평양선언 1주년인 올 9월 19일이 되어야 한다. 그 이후에는 경협을 재개해야 한다. 두 정상간에 남북경협을 활성화 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한지 1년이 되는 때라는 점에서 상징성도 크다. 그 시한이 지나면 유엔안보리 제재와 무관한 금강산 관광부터 재개하고, 방송컨텐츠-문화산업의 경협을 시작한다.

유엔안보리 제재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서는 민족내부 거래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제재예외를 신청한다. 특히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의류 반출이나 남북 도로 및 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SOC 건설 등에 대해 예외를 받도록 노력한다.

둘째로 정치와 경제교류의 분리, 즉 정경(政經)분리, 정치와 문화교류의 분리, 즉 정문(政文)분리 원칙을 세우고 흔들림 없이 이행하자는 것이다. 정세에 따라서 경협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어떤 경제인도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위험이 비용으로 전가 되고, 경협의 경제성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에서 정경분리 원칙이 오랫동안 주장돼왔고, 일부 정부에서 그 원칙을 내세웠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에는 그 원칙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박왕자씨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천안함 사건으로 대부분의 경협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개성공단이 중단되었다. 안보와 직결되는 특수한 영역을 제외하고 정치 문제로 남북경협을 중단할 수 없도록 법규화한다면 정권 변동과 정세 변화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특히 남북의 방송과 문화컨텐츠 교류, 공동제작은 민족 동질성 회복과 주변 국가의 국민들에게 한류를 통해 한민족 통일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 조성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므로, 정문(政文)분리 원칙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즉, 문화교류는 안보와 상관관계가 매우 낮으므로, 어떤 경우라도 정부가 방송과 문화컨텐츠 교류 및 공동제작을 중단시킬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는 남북이 상생하자는 것이다. 가만 보면 남측이 제안했던 남북경협 사업들은 아무래도 남한의 이익에 기울어져있지 않았나 반성해 봐야 한다. 캄보다아나 베트남보다 낮은 개성공단의 최저임금을 두고 어찌 민족 상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북측에게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북측이 원하는 방식의 경협을 해야 한다.

남측 기업이 북의 저렴한 노동력만을 이용하기 위해서 또는 남한에서 규제로 인해 더 이상 할 수 없는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3D 산업을 북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절대 그럴 일이 없겠지만 북을 남의 경제식민지로 본다면 일제가 조선을 그렇게 수탈해 간 것과 다를 바 없다.

북측이 최근 과학기술을 강조하고 있고, 김책공대팀이 대학생 국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서울대팀에 이어 8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단번에 최첨단 산업으로 도약하려는 북측의 의도를 읽을 수 있고, 충분히 그럴 실력이 있다. 따라서 향후 남북경협은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의 관점에서 남측의 자본과 경험, 북측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식을 주축으로 하되, 더불어 북측의 두뇌와 과학기술을 활용해 최첨단 산업에까지 남북경협의 범위를 넓히는 것도 염두해 둬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이 예정되어 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름다운 편지’를 보내 또 다시 한반도 평화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처럼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또 다시 남북경협은 뒤로 밀리게 될 것이다. 남측 경제의 활로 모색과 민족경제의 균형을 위해서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

이에 정부는 경협재개를 위한 시한을 못 박고, 정경분리(정문분리), 남북상생 원칙을 지켜간다면, 신남·북방경제가 활성화되고, 미중 간 자율성이 확대될 것이며, 남북의 자주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37기)을 수료한 후 법무법인 도담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4대강 공사 취소 행정소송(한강담당)과 천안함 민간조사위원 신상철씨 형사사건 1심을 공동으로 변론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법정에 참여하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통일위원회와 미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민단체들과 함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활동을 벌였고, 서촌 궁중족발 사건을 변호하였다.

저서로는 「골목사장 생존법」, 「변호사가 풀어주는 공정거래법 Ⅰ, 하도급편」(개정판)을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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