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그 집단의 문화정체성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로 민족성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또한 사회문화적 동화의 신뢰할 만한 지표 역시 민족집단의 언어동화가 우선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민족정체성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족정체성이란 공유된 민족적 특성들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 어느 특정 민족 집단에 대해 느끼는 소속감으로 개념화 할 수 있다. 우바(Uba, L.)는 (1) 한 개인이 자신의 민족 집단에 대한 일반 지식, 신념, 기대들을 일으키고, (2) 그가 사물, 상황, 그리고 타인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의 의미를 해석하느냐를 결정짓는 인지적, 정보처리적 틀 또는 필터로서 기능하며, (3) 그의 행위 기준이 된다고 민족정체성을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나와 우리를 규정짓는 처음과 끝이 민족정체성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민족정체성은 그 집단의 언어와 떨어질 수 없다. 언어(말과 글)가 민족정체성(얼)을 지탱하는 그물망이라면, 얼은 더더욱 말과 글의 정신적 뿌리가 된다. 언어의 상실이 민족정체성의 붕괴와 직결되듯, 민족정체성의 쇠퇴는 언어의 퇴행을 필연적으로 몰고 올 수 밖에 없다. 말‧글‧얼을 떼어 놓고 이해할 수 없는 근거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가 그 대표적 경험이다. 우리의 말‧글‧얼을 말살시키기 위해 광분했던 일제의 준동(蠢動)에서 그 실상이 드러난다. 일제는 식민통치의 완성을 위하여 우리의 말‧글‧얼을 철저하게 압살해 갔다. 1910년대 후반부터 우리 얼의 중심인 대종교의 국내 거점을 궤멸시키는가 하면, 우리 국어(한글)를 외국어(조선어)로 몰아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성(神道와 일본어)을 우리의 국교(國敎)와 국어로 이식(移植)시켜 식민지의 완성을 도모하려 하였다.

일제는 1937년 중국 침략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조선에 대한 말살정책을 더더욱 가속화해 갔다. 1938년 이후 외국어처럼 가르쳤던 조선어 교육마저 폐지하고 일본어의 사용을 강제하는가 하면, 한글로 된 신문과 잡지마저 전면 폐간시켰다. 그리고 1940년에 들어서는 창씨개명을 통해 우리 이름마저 일본식 이름으로 강제화하였다.

그러한 민족말살의 정점이 '조선어학회사건(1942. 10)'과 ‘대종교지도자일제구속사건(大倧敎指導者一齊拘束事件, 1942. 11, 대종교에서는 ’壬午敎變‘이라 부름)’이다. 1개월의 사이를 두고 발생한 이 사건은, 일제가 우리의 말‧글‧얼을 없애기 위해 저지른 마지막 발악이었다.

말‧글‧얼을 분리해 이해할 수 없듯이 조선어학회와 대종교 역시 떼어 놓고 말하기 힘들다.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뿌리가 대종교였으며 대종교의 비밀결사가 조선어학회였기 때문이다.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주시경으로부터 김두봉‧이극로‧최현배‧신명균‧권덕규‧정열모‧이병기 등등, 그 중심인물들의 대부분이 대종교의 핵심이었다.

두 사건 모두 이극로와 연관이 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당시 이극로는 대종교의 국내 중심이자 조선어학회의 간사장이었다. 임오교변이 이극로가 윤세복에게 보낸 「널리펴는 말」이라는 글이 단서가 된 것 같이, 조선어학회사건은 만주에서 윤세복이 국내 이극로에게 보낸 「단군성가(檀君聖歌)」라는 가사가 단초가 되었다. 「단군성가」가 조선어학회 이극로의 책상 위에서 일경(日警)에 의해 발견됨으로써 조선어학회사건의 결정적인 빌미가 된 것이다.

일제가 우리 말‧글‧얼의 중심이었던 대종교를 그렇게 없애려 한 이유가 무엇일까. 대종교가 국내외적 모든 기반을 잃어가면서 끝까지 일제에 저항한 까닭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정체성의 다툼이었다. 지키고자 한 집단과 바꾸고자 한 세력의 양보 없는 전면전이었다.

해방 이후에 들어 우리의 정체성은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망국(亡國)의 대가로 찾아 낸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의 스스로의 노안(奴眼)에 의해 다시 풍비박산이 났다. 우리의 해방은 자력에 의한 환희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념의 족쇄와 분단의 고착은 한반도를 질시와 반목이 판을 치는 공간으로 몰아넣었다. 민족을 묻어버린 부류와 민족을 배반한 자들 간의 좌우의 굿판이 시작된 것이다.

6‧25는 근근이 숨을 쉬던 그 정체성의 잔명마저 질식시켜 놓았다. 일제강점기 정체성의 중심이었던 대종교지도자들은 해방 이후 남북으로 쪼개졌다. 김두봉을 중심으로 한 북과 윤세복을 정점으로 한 남으로 찢어진 형국이 되었다. 조만간 합쳐질 것으로 기대한 윤세복의 바람과는 달리 남과 북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치달았다.

6‧25 직전에 월북한 이극로와 홍명희, 전쟁 당시 납북 당한 조완구‧조소앙‧안재홍‧정인보‧명제세, 그리고 전쟁 발발 후 자진 월북한 정열모‧류열 등등으로 인해, 남쪽의 대종교 인물 지형은 더더욱 공동화(空洞化) 되었다. 나아가 전쟁 직후 이들의 입지는 남북 쪽 모두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한 쪽에선 종파주의로, 또 한 편에선 공산주의‧국수주의 등으로 매도되어 사라져갔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얼을 지키던 인물들의 도태와 더불어 대종교의 기반은 사라졌지만, 우리의 말과 글만은 그 인물들에 의해 지켜졌다. 북에서는 김두봉, 그리고 그를 계승한 이극로‧정열모‧류열 등이 우리의 말과 글을 갈고 닦았다. 남에서는 최현배가 고군분투하며 한글을 사수했다.

김두봉은 나철의 수제자이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대종교의 교리‧교사와 한글 부문에서 누구보다 해박한 인물이었다. 그는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나자, 스승이 못다 한 일을 이어 받아 『조선말본』을 저술했다. 당시 『조선말본』은 그 때까지 발표된 문법학설로는 가장 깊고 넓게 연구된 대표적 권위라는 평가를 받은 책이다. 1916년 나철이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결할 당시는 수석시자(首席侍者)로도 동행한 인물이 김두봉이다.

최현배 역시 주시경‧김두봉의 영향을 받고 1911년 대종교에 입교하였다. 경성고보 시절 그가 중시한 두 가지가 주시경에 의한 한글공부와 나철에 의한 대종교 참여였다. 심지어 일본인 교사로부터 대종교에 참여하지 말라는 경고까지 받았던 인물이 최현배다.

남북은 단절과 대립 그리고 전쟁으로 더더욱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북의 흰못[白淵, 김두봉의 우리말 호]과 남의 외솔에 의해 우리말‧우리글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같은 얼을 공감해 온 이들이 정체성의 외연(外延)을 놓지 않은 것이다.

개천절과 한글날이 얼마 전 지났다. 안재홍의 말처럼 ‘국가적 의미에서 개천절이요, 민족문화적 의미에서 한글날’이다. 한글을 기리는 행사가 남북 모두 열린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다만 남쪽은 한글 반포일을, 북쪽은 한글 창제일을 기준으로 함이 다를 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개천절과 한글날만은 대통령이 너나없이 딴전을 핀다. 거시기 대통령이나 머시기 대통령, 그 대통령이나 저 대통령 다 만찬가지다. 정체성이 망가진 나라의 서글픈 초상이다. 올 한글날 대통령은 세종대왕 영릉은 참배했고, 남북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 작업을 재개한다는 국무총리의 축사가 그나마 작은 위안을 주었다.

일부는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우다. 외국어도 못 끌어다 써서 안달인 판에, 표준어면 어떻고 문화어면 어떠랴. 상호(相互)만이 단어고 호상(互相)은 단어가 아니란 법 없다. 방언(사투리)이 고어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또한 향토색을 살리고 표준어를 보완해 준다는 것도 주지하는 바다.

무엇보다 같은 말, 같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뜻 깊은 일인가. 남북지도자 단 둘이 나눈 판문점 '도보다리'의 밀담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같이 웃고, 함께 고민하며, 더불어 공감하던 두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둘이 아니라는 희열을 만끽하였다.

얼빠진 말과 글이 박제된 기호에 불과하듯, 말‧글 없는 얼은 심장만 박동하는 뇌사상태와 같다. 우리의 말‧글‧얼이 한민족 정체성의 본질이자 현상임을 다시금 강조해 보는 이유다. 다만 그 말‧글 속에 숨겨진 얼을 각성할 날은 언제 올 것인지. 그러한 깨우침이야말로 한민족 정체성 확립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통일의 가장 확실한 끈임을 상기할 때다.

 

 

1957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대학에서 행정사를 전공하였고, 한신대학교 강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국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술로는 『단조사고』(편역, 2006), 『종교계의 민족운동』(공저, 2008), 『한국혼』(편저, 2009), 『국학이란 무엇인가』(2011), 『실천적 민족주의 역사가 장도빈』(2013)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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