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 정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시우 사진작가가 『유엔군사령부』라는 역작을 출간했다.

이미 2004년부터 ‘유엔사 해체 걷기명상’을 통해 유엔군사령부(유엔사) 해체를 위해 온몸을 던져온 그가 집필기간만 6년이 걸리고, 참고문헌 목록만 60쪽이 넘는 방대한 연구 결과를 토해낸 것이다.

 

▲ 이시우 작가의 최근작 『유엔군사령부』(들녘) 표지.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시우 작가는 18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을 받는 과정에 검찰측 증인으로 나선 보수 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학문적이지 않다며 ‘아마추어의 단순한 주장’으로 치부해버린데 자극받아 다시 학문적 방식의 접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그는 기존 학계가 접근하지 못했던 유엔사의 본질에 보다 깊이 다가설 수 있었고, 새로운 시각과 해법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총 841쪽이라는 방대한 내용이 사실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시점부터 7월 25일 유엔군사령부 창설까지의 단 한 달 간의 과정을 분석하는데 할애됐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그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그는 6월 25일 유엔안보리 결의가 “북한의 무력공격이 평화의 파괴를 구성한다”고 규정한 대목부터 유엔헌장이 잘못 적용됐고, 6월 27일 유엔안보리 결의 중 “군사적 조치 권고”를 미국이 자의적으로 해석.왜곡했으며, 7월 7일 유엔안보리 결의는 유엔군사령부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군사령부 창설 결의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태생 자체가 불법인 유엔군사령부가 지금까지 정전 관리의 주체로 돼 있어 유엔군사령관이 현재도 사실상 한국을 군사점령하고 있으며, 유사시 북한을 점령하는 주체로 돼 우리나라의 국가주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전협정의 틈인 한강하구에서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발기한 그가 제안하는 한강하구 수역 남북 공동관리위위원회 구성을 통한 민간의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의 참여나, ‘유엔사 해체’라는 전략적 의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함으로써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한국 정부가 나설 수 있다는 제안은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곱씹어볼만 하다.

“아침마다 작업실까지 두세 시간을 걸으며 수없이 길 위에 질문을 쏟아놓았고, 바람결을 맞으며 그 답을 구했다”는 그의 결론들을 직접 들어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 우리가 누리게 된 특별한 행운임에 틀림없다.

다음은 18일 오후 <통일뉴스> 사무실에서 이시우 작가와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한국전쟁 유엔군 참전, “국제법상 유엔안보리 결의 자체가 위법”

 

▲ 이시우 작가는 18일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유엔사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통일뉴스 : 먼저 신간 『유엔군사령부』 책을 들녘출판에서 냈는데, 상당히 오래 걸린 역작으로 알고 있다. 준비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 이시우 작가 : 준비 시간으로 보면 2001년 9.11 이후부터 제가 고민을 본격적으로 했으니까 한 13년 정도 된 거다. 집필 자체는 제가 감옥 나와서 2008년부터 『한강하구』 책 끝나자마자 바로 들어갔으니까 집필만 한 6년 걸린 셈이 된다.

□ 상당히 오래 걸렸는데, 오래 걸린 이유가 있나?

■ 책을 이렇게 낼 생각은 안했다. 그전에 <통일뉴스>에 유엔사 관련된 글들은 많이 썼었고, 저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옥에 가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학자들이 나와서 “이건 뭐 학문적인 게 아니고, 그냥 아마추어의 단순한 주장일 뿐이다” 이렇게 간단히 치부해버리고 말더라. 그때 제가 느꼈던 게 ‘아, 이 학자들까지 설득하려면 다른 방식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학문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해 감옥 나온 이후부터 전혀 새로운 글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3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단 자료를 구하는 것이 큰 문제였었고, 그 다음에 그것을 번역하고 분석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렸다. 그리고 처음에는 유엔군사령부만 초점을 맞춰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까 결국 유엔 문제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결국 세계체제, 유엔체계 문제까지 같이 연구하다 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리게 됐다.

□ 이번 책은 세계체계와 유엔체계, 그리고 1950년 7.7일 유엔군 안보리 결의까지 밖에 안 나오는데, 이후에 후속작이 나오나?

■ 7월 25일 유엔군사령부 창설까지 나온다. 원래는 전쟁 발발과 유엔군사령부 창설부터 현재까지를 계획했는데 창설에서 끝난 것이다. 워낙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 다음 작업을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겠다.

6월 25일부터 7월 25일까지의 한 달 동안의 기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다 보니까 사실은 유엔군사령부 창설 자체의 불법성, 위법성을 밝히는 데는 그 한 달 정도의 기간이 가장 핵심적인 기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기간의 이야기를 일단 마무리짓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 기존에도 많은 글을 발표하고 강의를 쭉 해왔는데, 이번에 이 책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좀더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 제가 국제법과 국제정치, 역사학, 이 세 분야를 통합해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는 목표 하에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역사나 국제정치도 새롭게 공부하게 됐고, 국제법은 교과서 놓고 새로 공부를 했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는 주로 정치적이거나 군사적 관점에서 다뤘던 내용들인데, 이번에는 국제법적 문제를 주로 중심으로 다뤘다.

내용의 구성을 6월 25일 안보리 결의, 6월 27일 안보리 결의, 7월 7일 안보리 결의를 핵심쟁점으로 몰아간 것도 그렇게 된 결과다.

그러다 보니까 유엔헌장에 입각해서 유엔안보리 결의 자체가 위법이라는 것을 많이 밝혀내게 됐고, 더불어 유엔군사령부 창설도 유엔헌장 입장에서 봤을 때 위법한 것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 국제법적으로 볼 때 유엔안보리 결의 자체가 위법이라는 결론을 설명해 달라.

■ 날짜별로 보면 6월 25일 안보리 결의가 “북한의 무력공격이 평화의 파괴를 구성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유엔헌장 39조에 보면 유엔의 조치를 취하려면 반드시 세 가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어떤 사태가 평화의 위협인지, 평화의 파괴인지, 침략인지, 이 셋 중의 하나를 반드시 정해야만 거기에 따른 조치가 나오게 된다. 그에 의해서 ‘평화의 파괴’라고 규정하게 된 거다. 그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

그런데 ‘평화의 파괴’라고 하는 것은 ‘국제평화의 파괴’의 준말이다. 유엔헌장에서 쓰는 모든 평화라고 하는 말은 국제평화의 준말이다. 그런데 국제평화는 국가 간의 평화인데, 유엔안보리 결의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보지 않고 대한민국은 국가로 봤다. 북한은 국가로 보지 않고 일개 단체 정도로 봤다. 반란단체나 반국가단체 같은 것으로 봤던 것이다. 어쨌든 북한을 국가로 보지 않으면서 북한에 의해서 평화의 파괴가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헌장 자체의 잘못된 적용인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보통 6.25전쟁, 한국전쟁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헌법이나 유엔안보리 결의에서는 북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전쟁이란 국가와 국가 간에만 성립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전쟁이라는 말을 쓰려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또 만약 한국전쟁이 아니라 한국내란이라는 개념을 쓰게 되면 미국이 개입하게 된 것은 유엔헌장 위반이 되기 때문에 유엔의 응징을 받아야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유엔헌장 2조 4항에 따르면 국내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가 개입할 수 없도록 한 불간섭조항이 있어서 이런 모순이 또 발생하는 거다.

그래서 전쟁으로 정의하느냐, 내란으로 정의하느냐, 어느 것도 만만치 않은 모순에 걸려있게 되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평화의 파괴’라는 개념 규정 자체가 6월 25일 결의에서는 가장 큰 모순을 안고 있는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 6월 27일 유엔안보리 결의에서는 “군사적 조치를 권고한다”고 해서 본격적인 미군의 참전을 합리화시키게 된다. 그런데 ‘권고한다’라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안보리 결의의 모든 단어나 개념은 아주 굉장히 치밀하게 계산된 법적 개념들이다.

그런데 당시 유엔은 창설부터 지금까지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뭐냐면 군사력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군사참모위원회라고 하는 기구에서 유엔의 군사력, 상비군대를 꾸리는 것을 목표로 했었는데 결국 초기에 실패했고 지금까지 그게 안 돼 있다. 결국 유엔이 운영하는 군사력이 없기 때문에 유엔에서의 군사적 강제조치라고 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취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정쟁이 군사조치가 취해진 전쟁이 돼 버렸다. 이것을 미국이 어떻게 합리화시키냐면, 유엔안보리가 군사적 조치를 권고했고, 이것은 ‘유엔헌장 39조의 권고’라고 자기들이 해석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군사력 투입은 유엔 조치라는 논리를 강조한다. 이게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모든 조치를 유엔의 조치로 둔갑시킨 결정적 문장이 된 거다.

39조에는 ‘권고’와 ‘조치’ 두 가지 기능이 있다. 권고는 평화적 수단에 대해서만 권고를 할 수 있고, 조치는 군사적 수단에 대해서만 조치를 언급할 수 있다. 그러니까 법적 용어로 볼 때는 ‘군사적 수단을 권고한다’ 이런 말은 불가능하다. 또 ‘평화적 수단에 대해 강제 조치를 취한다’는 것도 논리 모순이 된다.

이처럼 권고와 조치가 분명히 나눠져 있는데, 미국에서는 이 권고라는 단어를 가지고 ‘군사조치를 권고받았다’고 해석하고 유엔의 권고에 의해서 자기들이 행동한 것이기 때문에 유엔 조치라는 논리로 갔다. 이것이 유엔헌장 해석에서의 오류이자 억지가 된 것이다.

사실 이 문제가 어디까지 확산될 수 있느냐면, 일본에서 1951년 9월 8일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이라는 것에 의해서 “일본정부는 한국에서의 유엔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시설과 역무를 지원한다”고 합의했는데, 이것이 지금 일본에서 가장 크게 논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유엔활동이 법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게 되면 사실은 이게 다 날아가 버리는 거다. 일본이 유엔군 후방기지를 둬서 시설을 제공하고 역무를 제공하는 그 모든 게 다 날아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결론내린 바는 6.27 안보리 결의는 유엔의 조치가 아니고, 그것에 따른 미국이나 16개 참전국의 군사적 개입은 유엔의 조치가 아닌 각 회원국들의 자발적 조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법적 결론이다.

 

▲ 이시우 작가는 2004년 '유엔사 해체 걷기명상'의 연장으로 일본을 찾았다. 일본 헤노코마을의 미군기지 이설반대 농성 100일째 기념 집회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유엔군대가 도와준 것으로 다 알고 있는데,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도 유엔이라는 걸 명분으로 한국에 개입하려고 하거나 이런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6.27결의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유엔군사령부가 아니라 미국의 통합군사령부였다
6.26 미군 참전, 6.27 유엔 참전결의는 ‘소급입법’

□ 또 하나의 쟁점은 유엔군사령부가 위법하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설명해 달다.

■ 그 문제는 7.7결의이다. 7월 7일 유엔안보리 결의는 명백하게 미국의 통합군사령부임을 밝히고 있다. 7.7결의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미국 내부에서 계속 논의가 뒤바뀌었던 과정을 이 책은 쭉 서술하고 있다.

미국은 결의안을 만들 때부터 이것이 미국의 조치가 아니고 마치 유엔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까봐 굉장히 걱정했다. 미국 자신이 패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의안에도 ‘통합군사령부’를 창설한다면서 괄호를 해놓고 ‘USG’(US Govenment)라고 약자를 명시했다. 분명히 미국의 통합군사령부라는 것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결의안에 그런 내용을 박아 넣었던 것이다.

이것이 7월 25일 통합군사령부를 창설하면서 갑자기 바뀌어버린다. 통합군사령부를 유엔군사령부로 작명하면서 갑자기 바뀌어버린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유엔군사령부가 된 건데, 정확하게 말해서 7.7 안보리 결의는 유엔의 군대를 총괄하는 사령부를 창설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의 통합군사령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 같은 것을 창설한다고 했던 것이다.

유엔의 군대로서의 사령부 같은 것은 언급된 적도 없고 미 합참에서도 그렇게 이해하지도 않고 있었다. 유엔군 사령관으로 행세했던 맥아더조차도 자기가 유엔과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증언할 정도였니까 이건 명백하게 유엔군사령부는 작위로 만들어진 작명일 뿐이라고 하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사는 실체로 작용해 왔다. 어떻게 보면 시작 자체가 불안정한 근거에서 출발했는데, 왜 그렇게 미국의 입장이 왔다갔다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오랜 기간 유지되고 있나?

■ 미국 스스로가 정리하지 못하고 왔다갔다 했던 과정은 자기들도 내부에서 계속 논쟁이 있었다. 미국의 사령부로 할 거냐,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을 쓸 거냐 논쟁이 많았다가 결국 자기들 내부에서 이제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을 쓰자고 논쟁 끝에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여기에 서술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유엔군사령부라고 하는 것은 유엔의 상비군으로서의 군대가 아니라는 것은 당시로서는 명확하게 다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군대가 만들어진 적도 없고,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미국사령부라는 것을 미국이 거듭거듭 강조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엔안보리 다른 나라 대표들이 “통합군사령부 앞에 유엔이라는 이름을 달아줄 수 있느냐”고 부탁까지 한다. 그런데 그것을 미국이 아주 냉철하게 거절해버린다. 그러니까 당시로서는 유엔군사령부가 아니라고 하는 건 명확하게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유엔군사령부로 이름을 바꿔 쓰면서는 다른 나라 대표들이나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유엔안보리에서도 통합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을 혼용해서 썼다.

안보리 결의가 나오는 과정을 보면, 미국이 법적 용어라든가 이런 것들을 아주 기묘하게 운용해서 잘 통과시키고, 규칙을 새로 만들어 변용시켜내는 과정들에 대해서 다른 나라들이 잘 눈치를 못 챈다. 이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그냥 흐름 같은 것을 묵인해버리면서 미국이 한 조치가 합법화되는, 사실은 이게 미국의 패권이다. 유엔 체계 내에서 미국이 갖고 있는 패권의 장점과 특혜 같은 거다.

예를 들어 6.27 유엔안보리 결의가 나오기 전인 6월 26일 미군은 참전해서 김포공항에서 인민군 야크기를 벌써 추락시켰고, 자기들도 이게 첫 번째 전쟁의 시작이라고 확인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미 전쟁은 참전했고, 안보리 결의는 뒤늦게 나오고, 전형적인 사후입법, 우리나라 개념으로 소급입법이다. 일을 저질러 놓은 다음에 합리화시키는 법이 나온 것이다.

원래는 유엔의 질서, 유엔이라고 하는 것의 가장 큰 특징은 법적 질서에 의해서 세계 집단안보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엔체계의 정신인데, 법을 자신들의 맘대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계속 만들어낸 거다.

저도 책을 쓰면서 새로 발견한 것이었는데, 유엔체제 내에서 미국의 패권체제가 작동하는 전형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사후입법이다. 일 저질러놓고 뒤에 유엔안보리 결의 같은 것을 통해서 살짝 바꿔쳐서 합법화시키는 거다. 다른 나라가 묵인하도록 조장해서 인정하게 하는, 이것이 전형적인 수법이었는데, 유엔군사령부도 그런 전형적인 방법이 적용된 걸로 볼 수 있다.

□ 미군이 이미 26일 참전했고 27일 결의를 통해 사후 합리화 했다는 사실이 기존 학계에서 밝혀진 것이 있었나?

■ 별로 없다. 그 부분은 많이 눈감았다. 국제법 학자들도 법적으로 진행된 것만 가지고 법적 해석을 가하다 보니까 미국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맴도는 해석밖에 못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법적 해석 이전에 사실관계 자체를 정확히 역사적으로 밝혀 놓았다. 논쟁의 여지가 다 없어져 버린 것이다.

사실 법적 논쟁이 아주 무의미한 논쟁들이 많다. 예를 들면 국제법에서 한국전쟁을 놓고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이게 전쟁이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의 발동’이라는 논리가 상당히 보편화된 논리 중의 하나다. 그런데 집단적 자위권이라고 하는 것은 정작 미국 스스로가 인정한 적이 없고, 유엔의 조치로만 보이도록 항상 미국 정부가 신경썼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딱 입증된다. 사실 집단적 자위권을 주장하는 미국 학자들의 논의는 아무 소용없는 논쟁이 되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는 역사학적 관점, 그 다음에 그것이 발생했던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법적 해석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 2004년 '유엔사 해체 걷기명상' 중인 이시우 작가. [자료사진 - 통일뉴스]

□ 26일 전쟁이 이미 시작됐고, 27일 소급해서 결의가 나왔다는 자체가 진지하게 다뤄진 논의가 없었나? 이 책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나?

■ 그런 셈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서술은 정치군사적 맥락만 가지고 해석하고 밝히는 쪽으로 갔었는데, 한국전쟁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엔체계가 동원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이것을 간과해왔다.

역사학계에서도 한국전쟁을 바라볼 때 유엔이라고 하는 것을 보통 미군과 동일화 시켜서 취급하든지 구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엔이라고 하는 체계를 미국이 이용했는데, 유엔의 내재적인 논리, 유엔헌장에 입각해서 바라봐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전혀 그렇게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들과 유엔헌장에 입각한 안보리 결의들을 면밀하게 연구해서 이것은 유엔의 행동으로 적합한 것이냐? 예를 들어 유엔을 이용하지 않고 미국이 독단적으로 자국의 군사적 행동에 들어갔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유엔이라는 이름을 썼고 모든 유엔체계를 이용해서 한국전쟁을 합리화했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도 유일한 유엔의 전쟁으로 돼 있는 게 한국전쟁이다.

유엔이라는 원래 처음의 내재적 목적에 따라서 연구한 성과는 드물다. 이번에 이 책이 그런 것을 좀 언급했다는 의미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약간 다른 시각 같은 것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 기존에도 유엔사와 관련해 많은 검토와 발표를 해왔는데, 이번에 틀이 바뀜으로써 새롭게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고, 사실관계를 새롭게 알아냄으로써 달리 평가될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관계 발굴된 게 있나? 학계에서도 참조했으면 하는 것이 있나?

■ 새로운 사실관계까지 제가 발견한 건 없다. 이미 역사학계에서 논의된 것, 그 사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의 해석의 문제에서 새로운 시각을 취했다.

예를 들면 ‘6월 25일 누가 먼저 총을 쐈느냐’가 가장 예민한 한국전쟁사의 쟁점이었는데, 전지적 시점에서, 현재 모든 밝혀진 연구성과의 시점에서 누가 먼저 총을 쐈다고 하는 쪽으로 책임을 밝혀가는 것이 지금까지 역사학계의 과제이다시피 했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취한 것은 당시에 숨겨 있었던 진실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허위였든 아니면 오해였든 아니면 사기에 의한 것이든 당시에 유포됐던 관념, 대표적으로 ‘해주 점령설’ 같은 것이 있다. 해주를 점령했다는 것은 현대 역사학회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오류로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해주점령설이 광범하게 유포됐고 그것에 의해 모든 정책이 입안됐다.

그래서 그때 당시로 돌아가서 ‘당시의 시점에서 정보와 판단들이 어떻게 정책을 만들고 갔고 전쟁을 형성해 갔는가’라고 하는 관점에서 다시 이걸 재구성했다. 그러니까 당시의 관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보자는 것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그게 이번 책에서의 새로운 시도라면 시도다. 전쟁 발발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 형성의 문제로 본 것이다.

1975년 유엔총회의 유엔사 해체 결의는 여전히 유효

□ 이후에도 유엔사의 지위가 적법하냐는 논란이 있었고, 유엔총회에서 해체 결의도 있었다. 더구나 2000년대 들어와서는 해체될 가능성도 이야기가 나왔다가, 최근에는 오히려 더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전쟁 발발과 전쟁이 구성돼 나가던 당시와 그 이후 현재까지 유엔사 논쟁이 쭉 있어 온 셈이다.

특히 유엔사 해체 결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큰 논점이었던 것 같다. 이 작가가 이문항 선생과 해체 결의 주체가 어디냐를 놓고 이견을 보인 적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 문제에 관해 이번 연구 결과는 어떤가?

■ 이번엔 거기까진 다루지 못했는데 ‘들어가는 말’에 조금 언급했다. 여기에 제가 7월 25일 이후의 다루지 못한 문제들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유엔총회 결의가 유효하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었다. 원래는 유엔 창설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위는 안보리를 중심에 놓는다고 하는 것이 유엔 창설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었다. 이점이 이전의 국제연맹과 가장 다른 점이었다.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안보리가 실질적으로 굴러갈 상태가 안 됐기 때문에 한국전쟁 결의 같은 경우도 소련이 안보리에 참석하지 않고 있었던 기간 동안에만 통과가 가능했다. 안보리에 50년 8월 1일부터 소련이 참석하니까 모든 것이 소련의 거부권으로 안 되니까 10.7결의부터 안보리를 통하지 않고 모두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서 결정해버린다. 10.7결의는 보통 ‘북진 결의’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1월 13일에는 아예 ‘평화를 위한 단결’ 결의를 제출해서 안보리가 제대로 의무를 못할 때는 총회가 그 의무를 대신한다고 하는 내용의 결의를 통과시킨다. 그때부터는 모든 사항들이 안보리를 거치지 않고 총회를 중심으로 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당시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유엔 회원국들 대다수가 미국과 친한 친미적 국가였기 때문에, 다수결로 유엔총회에서 패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게 상황이 바뀌어서, 70년대부터는 제3세계 국가들이 대거 유엔에 진출하게 되면서 유엔총회에서 미국이 소수가 되고 몰리게 됐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미국이 오히려 거부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서 유엔사 해체결의도 나왔던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만들어놨던 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정이었기 때문에 미국이 그걸 부정한다는 것은 사실 어폐가 있는 것이다. 75년 유엔군사령부 해체 결의의 경우도 안보리가 제 기능을 못했기 때문에 유엔총회까지 간 거다. 그것을 만약 미국이 부정해버리게 되면, 사실 그 틀 자체를 만들어 놓은 게 미국이기 때문에 모순된다고 본다.

□ 그래서 유엔사 해체를 위해 안보리 결의가 있어야 하느냐, 총회 결의가 있어야 하느냐 문제가 쟁점이 된 것으로 안다. 그 자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유엔사 해체 절차를 놓고 보면 앞으로도 걸릴 문제 같다. 이 작가의 결론은 무엇인가?

■ 유엔총회 결의가 유효한 것으로 봐야하고, 결의가 실행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1976년 1월 1일 부로 유엔사 해체를 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몇 가지 조건이 있었지만.

그것을 실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다시 추궁을 하면서 실행을 촉구하는 결의 같은 것이 나온다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도 아마 어느 순간 유엔사 해체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그런 과정들을 밟을 수도 있다.

□ 평화체제 이야기도 나오고 하면서 유엔사 해체를 미국도 동의하는 흐름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한 때의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가 나오면서 오히려 유엔사가 향후 주한미군의 영향력 유지에 중요한 고리가 될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이런 논의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 60년대 초반부터 유엔사 해체에 관한 준비를 미국이 한다. 60년대 초반부터 마샬 그린이라든가 국무성 관계자들이 유엔사 해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면서 유엔사가 해체됐을 때의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그 결론이 한미연합사 창설로 가게 된 거다.

미국에서는 이미 국제적으로 유엔사의 존립이 더 이상 고집하기 어렵다는 것을 당시에는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엔총회 결의가 이행되지 않고 지금까지 그냥 계속 보류돼 오면서, 유엔사는 거의 미국 스스로도 큰 의미가 없는 명목상의 단체로만 보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제가 분명히 메시지를 받았던 느낌으로는, 2004년 마크 민튼 당시 미대사관 부대사와의 대화라든가 이런 걸 통해서 보더라도 유엔사 해체를 미국 쪽에서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에 이게 바뀌게 된 것은 전적으로 군부 쪽의 흐름이었다고 생각된다.

군부 쪽에서 당시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처음으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를 관람시킨다든지 이런 걸 시작했다. 그 후로 계속 합참의장이나 간부들을 일본에 있는 유엔사 후방기지에 데려가 구경시켜 주고 유엔사라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왔다.

이것은 전적으로 미군 쪽에서 계속 어떤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왔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지금 군부 입장에서 볼 때는 분명히 놓치기 아까운 기구인 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야전사령관의 직위로서는 전투까지만, 침략을 격퇴하는 임무까지밖에 행사할 수 없는데 유엔군사령부는 점령 통치까지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군부로서는 원래 군사작전이라고 하는 것의 마지막은 점령과 군정까지로 돼 있다. 그런 점에서는 군부의 입지가 강화되는 것이고 그래서 유엔사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충동은 당연히 있는 것이다. 유엔사 유지의 불을 지펴 온 것은 군부 쪽이라 생각하고 있다.

한미 군통수권 이양 문서는 법적 효력 없어
작전통제권의 진정한 환수는 유엔사 해체해야 가능

□ 최근에는 전작권 환수를 2015년 12월 1일에서 더 늦추자는 제안을 우리 측에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어떻게 보나?

■ 전작권 문제는 이 책에서 근본적인 문제부터 다시 제기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맥아더 사령관한테 군통수권을 이양한 것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군 통수권을 이양한 것이 조약이나 협정으로서 효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조약으로서의 효력을 갖지 않는 이유로는 강제와 강박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와 압박 하에서 이루어진 조약은 무효다. 한일합방조약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제가 정확하게 역사적인 자료를 제시 못하고 다른 학자의 2차적인 판단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첫째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문서형식 자체가 조약으로서의 형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시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조약을 체결할 때는 대통령 사인과 국무위원들의 부서, 즉 연명 사인이 있어야만 효력을 갖는 걸로 명시가 돼 있다. 그런데 지금 이승만 대통령 사인이 들어간 원문 자체가 발견이 안 되고 있고 번역된 복사본만 있는 상태인데,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문서에도 이승만 이름만 있고 국무위원들의 부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원문에 이승만 서명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데, 서명 자체가 지금까지는 밝혀진 게 없다. 설령 이승만 서명이 있는 문서가 나오더라도 국무위원 부서가 없으면 무효다. 그런데 국무위원들의 부서가 없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군통수권이라는 것을 이양하는 것이 가능하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 주권의 일부 사항을 임시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가능한데 주권의 핵심사항인 군통수권을 이양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하냐는 것이다.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주권을 이양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한일합방 문서가 불법이라는 것 딱 그대로다. 이 주장을 그대로 가져다 대입해보면 역시 이승만의 군통수권 이양 문서도 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

또 하나, 계약이라는 것은 쌍방의 내용이 일치해야 성립되는 건데 당시 이승만은 군통수권을 이양한다고 분명히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무쵸 대사가 그걸 받기를 군지휘권을 이양받는다고 다시 수정해서 보내왔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을 이양한다고 했고, 그런데 정작 받는 쪽에서는 군지휘권을 받는다고 했기 때문에 서로 계약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거다.

이럴 경우에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이 문서로 인해 군작전권이 넘어갔다든가 조약으로서의 법적 효력이 성립됐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로부터 우리가 출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뒤에 군 작전지휘권이 작전통제권으로 바뀌고 이런 과정은 다 이 문서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볼 때는 작전권 자체가 이양된 적이 없다라고 하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출발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우리가 제대로 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그동안 진행돼 왔던 것에 토대해서, 인정하고 작전통제권을 인수받자는 것은 실무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본질적으로 볼 때는 맞지 않다.

이런 걸 무시하고 작전권 환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을 또 연기시킨다거나 또는 아예 포기한다는 분위기까지 가고 있는 것은 명백히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다.

 

▲ 지금도 해마다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진행되고 있으며 전시작전통제권은 물론 정전시 위기관리권도 한국 정부가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전작권 환수 과정에서 유엔사의 기능이 강화될 수도 있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이 작가의 견지에서 보면 유엔사가 원래부터 불법이고 지금까지 명맥만 살아있었는데, 현실은 오히려 더 강화될 수도 있는 운명에 처해 있다. 최근 유엔사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해법을 제시해야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있다고 보나?

■ 유엔사의 법적 기능은 변화된 적이 없다. 실질적으로 약화돼서 유령, 껍데기만 있는 단체 아니냐, 이름만 있는 단체 아니냐 이렇게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지 법적으로는 유엔사의 지위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왜냐하면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할 때 단서 조건 자체가 “한미연합사령관은 유엔사령관을 겸직할 때만 연합사령관의 지위가 효력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유엔사령관이 없어지게 되면 연합사령관은 자동으로 없어지게 돼 있는 구도다. 그리고 유엔사령관이 보유하고 있던 작전통제권을 이양한 것이 아니라 위임한 것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유엔사령부에서 다시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이미 법적 문서로 돼 있는 거다.

실질적으로 그럴 리가 있겠나 자위를 하지만 법적 문서는 명확하게 그렇게 돼 있다. 이렇게 유엔사를 강화 시키는 쪽으로 가는 것은 사실은 필연적인 것이었고,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작전통제권의 진정한 환수는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통한 환수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주장이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더라도 유엔군사령관이 정전협정 당사자로서 정전관리 책임을 맡고 있다. 정전관리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은 정전시 위기관리 기능, 위기관리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민감하게 느꼈던 것은 한국 대통령도 모르게 한미연합사령관이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전시기 위기관리권을 유엔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갖고 있기 때문에 위기절차를 유엔군사령관 이름으로 진행시키게 되면 도루묵이 되고 만다.

위기절차는 전시가 아니고 정전시 기능이다. 사실 평시 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엄밀히 말하면 정전시와 전쟁시만 존재한다. 정전시기 위기관리권을 유엔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갖고 있기 때문에 유엔사령관의 정전관리 기능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에서는 이미 위기관리가 들어가면 그 다음 단계, 전쟁시점에 대한 판단에서는 이미 우리가 개입할 수 없는 구조다.

마지막에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법적 문제다.

주한미군의 평화유지군 전환은 “완전히 어불성설”

□ 유엔사 문제 외에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 문제가 있다. 좁혀보면 결국 주한미군의 존재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랬지만, 최근 진보진영 내에서도 ‘통일이 되더라도 주한미군은 성격을 달리하여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써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논의거리로 남아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 북한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문제는 북한에서 받아들였느냐 말았느냐를 떠나서 우리가 자주적 입장에서, 우리 입장에서 판단해 볼 때 미군이 어떤 형태로든, 유엔 평화유지군 같은 형태로 남는다는 것은 완전히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유엔 평화유지군이라는 것 자체가 유엔헌장에 법적 근거가 전혀 없다. 그래서 미국이 유엔안보리를 통해서 유엔 사무총장의 권한을 확대해 임의로 만들어낸 것이 유엔 평화유지군이다. 따라서 유엔 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은 법적 요건 자체가 불비한 개념이다.

또한 현재 유엔 평화유지군들의 최근 추세를 보면 평화유지 업무가 아니라 거의 점령 업무 내지는 국가창설 업무를 하고 있다. 소말리아라든가 이런데 유엔 평화유지군들이 가서 처음에는 질서유지를 하는 것처럼 하다가 나중에 총선이라든가 대선 같은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는 과정까지를 다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평화유지군의 역할 자체가 완전히 변질돼 버렸다고 보는 것이다.

유엔 평화유지군 자체가 법적 근거가 약한 건데, 이걸 가지고 지금 유엔이 정권창출까지 하는 과정으로 간 것은 유엔 정신의 변형태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주한미군이 유엔 평화유지군 형태로 남는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견해 중의 하나인데, 북한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이전부터 우리한테도 들려왔다. 북한이 만약 그런 판단을 하고 있다면 그건 잘못이라고 본다.

제가 이 책에서 북한 쪽에 제시한 메시지 중의 하나가 뭐냐면, 유엔은 문제가 없는데 유엔군사령부 창설만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미국이 패권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 문제가 된다는 관점을 깨야 된다는 것이다.

유엔군사령부를 창설한 것은 유엔 자체의 봉합돼 있던 내재적 모순과 갈등이 폭발한 것일 뿐이지, 유엔은 아주 정상적이고 좋은 기구인데 그 시대 때 잘못 적용돼서 문제가 생겼다라고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라는 거다.

북한 『정치학사전』에 보면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도 있더라. 유엔은 괜찮은 단체인데 미국이 패권을 휘두르기 때문에 문제라고 돼 있다. 이건 좀 잘못됐다고 보는 거다. 유엔 자체가 문제다.

유엔 자체에 내재돼 있는 어떤 모순, 균열점을 정확히 봐야만 한반도 평화 문제도 정확히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을 유엔 평화유지군 형태로 남기는 것은 그런 관점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큰 오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유엔에 대한 관점을 다시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고, 유엔 평화유지군 형태로 남는 것은 패착이 될 수 있다.

 

▲ 이시우 작가는 6자회담이 세력균형의 틀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려고 한 것지만 균형자는 미국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유엔군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형태로 동북아 균형자로 남쪽에 남아있겠다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보나?

■ 균형자라고 하는 개념은 세력균형체계의 관점에서 나온 건데, 미국은 90년대에는 그런 논의가 가능했는데, 지금은 6자회담이 세력균형의 틀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려고 했던 것 아니겠나. 지금의 균형자는 미국이 아니고 중국이란 말이다. 중국이 균형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데, 이런 시스템 자체가 사실 세력균형의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세력균형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법칙 같은 것이 있는데, 유럽의 세력균형 역사를 보면 최소한 대여섯 개 정도의 나라가 하나의 틀을 만든다는 것은 6자회담 틀과 똑같다. 중요한 것은 균형자의 문제인데, 세력균형 체제를 유지하는데 균형자가 사실 가장 중요하다. 유럽에서의 균형자들은 다 대륙적 이해관계가 없는, 떨어져 있는 영국이 성공적으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6자회담 같은 경우도 동북아시아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있지 않는 미국이 사실은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미국이 스스로 하지 않고 중국을 내세웠다. 이미 세력균형 게임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 짜여졌다.

특히 미국은 사실은 세력균형에 대해서 혐오감을 갖고 있고, 영국의 세력균형 정치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머지 이걸 집단안보체계로 만들었던 것이 유엔이었다. 그래서 세력균형은 미국식 방법이 아니다.

미국이 그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그냥 아이디어만 내가지고 균형자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앞서가는 것일 수 있고, 그리고 미국이 그런 역할에 적합한 나라도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주둔군의 변형된 연장이지 균형자 역할로 볼 수 없다.

철저하게 미국은 세력균형체계가 아니라 동맹체계로만 갔다. 따라서 한반도에 어떤 형식으로든 남는다는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의 강화일 뿐이지 절대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의 전형인 협조체제 같은 이런 틀로 갈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 때문에 정치적 거래는 있을 수 있지만 원론적으로 볼 때는 현명한 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체제를 만들면 실패하지 않는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살펴 실패가 예정됐거나 예상되는 것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체제를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 자체가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한반도 문제, 결국은 북한과 미국의 대결

□ 이 작가의 연구는 미국 중심의 유엔체계, 유엔을 통한 한국전쟁 형성과정인데, 결론적으로 유엔군 창설은 불법이고 미국 패권의 관철이라는 것인가?

■ 그렇다. 제가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은 현재 국제체계는 크게 4가지로 역사적으로 형성돼 왔다. 국가주권체계, 세력균형체계, 집단안보체계로서의 유엔, 그 다음에 미국 패권체계다.

이 네 개의 체계가 공존하고 있는 구조인데, 이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모순 관계는 국가주권체계와 미국 패권체계 사이에 만들어져 있고, 세력균형체계나 집단안보체계는 하위체계라고 보는 거다.

한반도 문제의 경우도 북한에서 6자회담도 거부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도 수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결국은 북한과 미국의 대결만 남게 된다. 미국이 결국은 세력균형체계나 유엔 결의 같은 것을 통해서 북을 압박해도 결국은 힘대결로 가게 되니까, 패권에 대해서 굴복하느냐 저항하느냐 이것으로만 남는다.

이것이 기본적인 틀이기 때문에 예를 들면 미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른 정책들을 바라볼 때도 이 구도가 기본적 구도로 해석되고 분석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미국의 기본적인 모순구도, 대결구도가 굉장히 오래돼 분단이나, 대북제재, 미군주둔이 상당히 오랜 동안 굳어져온 상황이다. 한반도에서의 북미 대결구도를 해결해야 평화체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 가장 핵심이 지금 핵문제로 갈등하고 있지만 사실은 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남한이 미국이 핵을 갖고 있다고 해서 미국한테 문제를 삼지 않는다. 또 중국이 핵을 갖고 있다고 해서 북한이 중국 핵을 문제 삼지 않는다.

적대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핵이 문제가 되는 거다. 결국은 핵을 포기시키는 과정만 딱 따로 진행된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라 적대관계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같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핵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적대관계를 풀어가는 과정과 같이 연동될 수 밖에 없다는 기본적 관점이 돼야 된다고 보는 거다.

민(民)이 평화협정의 주체로 참여해야
한국 정부, ‘유엔사 해체’ 의제설정력 가져야

□ 북한의 핵폐기 과정과 병행해 북미 간 적대관계 해소와 평화체제 구축이 되어야 한다는데는 공감이 간다. 그러나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많이 이야기하고는 있는데, 실제로는 안 되고 있다. 평화체제 수립 구호가 현실화되려면, 북미 대결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게 되려면 실제로 어떤 과정들을 밟아야 한다고 보나?

■ 민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넘어서 우리가 상상하고 주장하는 것은 좀 겉도는 것 같다고 생각된다. 가능하지도 않고 우리 범위도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평화협정 운동을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중에 가서는 정부끼리 사인한다는 것이다. 민간이나 민중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게 되고, 그런 결과 평화협정이 체결까지 가기도 힘든데, 체결된 이후 휴지통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평화협정 문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화체제가 중요하다고 하는 말에는 이 평화협정이 그냥 종이 쪼가리가 아니고 되돌릴 수 없는 문서로 평화체제를 만들어 내서 법적 문서가 되도록 해야 된다는 뜻이다.

 

▲ '한강을 평화의 강으로'를 기치로 2005년부터 시작된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평화협정 체결에서 가장 빠져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민(民)이 주체가 되어 평화협정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제가 주장했던 것은 그 방법의 하나로 한강하구 지역을 주목해야 된다고 본다. 한강하구 지역이 현재 정전협정의 아주 묘한 틈인데, 한강하구에 항해가 됐든 뭐가 됐든 남북 간에 한강하구를 다루는 민간위원회가 만들어져서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이미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정전협정 상태에서 이건 가능하기 때문에, 이렇게 운용하고 있다가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 ‘평화협정에서 비무장지대는 평화지대로 만들고 한강하구수역은 평화수역으로 만들고’ 이렇게 내용들이 나오게 될 것 아닌가. 그때 이미 한강하구를 관리하고 있는 민간위원회 같은 것이 있으면 이걸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주 자그마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민이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놓자는 거다. 그렇게 됐을 때 정부 당국자끼리 서로 틀어져서 평화협정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려 할 때 민간의 동의를 받거나 민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쐐기 역할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장치가 평화협정에 필요하다.

그 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강하구 남북 민간위원회 같은 구조를 민간 평화통일운동이 빨리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은, 비무장지대 같은 지역은 법적으로 쉽지 않지만 그러나 한강하구지역은 법적으로 일단 가능하기 때문에 시도 가능한 영역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에 그런 여지를 빨리 찾아내야 한다.

정부끼리 평화협정을 체결하느냐 마느냐 논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사실 어찌보면 너무 느긋한 것일 수 있고 우리가 어떻게, 민간이 어떻게 평화협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이냐라고 하는 준비를 아주 빠르고 치밀하게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평화협정문이 아니라 평화체제로까지 발전될 수 있는 단서도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한강하구 남북 민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그 자체도 쉽지는 않지만 전체 평화체제의 구도에서 너무 작은 사안 아닌가?

■ 평화협정체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사자 문제다. 지금 북미 간에 어쨌거나 평화협정 논의까지 말이 나온 것은 북한이 핵이라는 의제를 90년대 이후 던졌기 때문에 북이 싫든 좋든 북이 이 문제를 이끌어갔던 측면이 있는 거다.

결국은 어떤 전략적 의제를 던지느냐에 따라 당시 국면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라 보여지는데 북은 어쨌든 핵을 가지고 그걸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남쪽인데, 남쪽에서 노무현 대통령 때 “3자 내지 4자 간의 평화협정 논의를 한다”라고 하는 걸 합의한 것은 중요했는데, 실질적으로 남한에 북이 제기했던 핵에 버금갈만한 의제설정 능력을 갖고 있는 의제가 준비돼 있느냐. 저는 그런 게 전혀 없다고 본다.

남한에서 기껏 할 수 있는 게 남북 간의 교류 정도인데, 이런 정도 가지고는 북미대결에서 만들어진 평화협정 체결까지 가는 정세에 낄 수 있는 자격, 힘, 패권을 추구할 수 있을 정도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결국 남쪽에서도 북의 핵에 버금가는 전략적 의제를 설정해서 평화체제 수립에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는 어떤 요소를 쥐고 있을 때만이 주체적으로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 의제 중의 하나가 유엔사 해체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유엔사 해체 문제는 남쪽 정부가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결국 ‘유엔사 해체 문제가 북의 일방적 주장이다’ 라고 하는 것에서 ‘그렇지 않고 남의 주권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중요한 문제다’라는 것을 빨리 인식해서 남쪽이 이 의제라도 성사시킬 수 있다면 북.미 평화협정에서 남이 같이 낄 수 있는 정도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보는 거다.

작전권 환수 과정에서 조금만 노력했으면 될 수 있는 문제였었는데 이 문제를 놓치기는 했었는데 현 정권이든 아니면 차기 정권이든 이 정도의 의제설정력을 발휘했을 때만이 남.북.미가 서로의 힘을 존종할 수 있을 정도의 비중을 가지고 협정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크게 볼 때는 북의 핵에 버금가는 의제 설정 능력을 남쪽의 평화운동 내지 정부가 발휘해야 된다. 그리고 민간 쪽에서는 구체적으로 평화협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 우리가 유엔사 해체를 들고 나왔을 때 어떤 의제설정 능력이 생기나?

■ 주도적으로 남쪽 힘으로 유엔사를 해체했다라고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북에서도 ‘남쪽이 평화체제를 만들어갈 수 있는 당당한 당사자구나. 미국에 예속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미국과 남한이 한편이 아니고 따로따로 정말 3자가 평화협정을 할 수 있구나’라고 하는 어떤 지위를 가지려면 그런 정도의 역할을 했을 때 가능하지 않겠나 보는 거다.

정전협정상 한국은 유엔군사령관이 군사점령 중

□ 이 외에도 이번 책에서 주목해서 봐야 되는 부분들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 여기서 많이 다루지 못했는데 서문에만 요약해 놓았다.

유엔사 문제가 북쪽의 정치선전으로만 인식돼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돼 있었다. 그런데 유엔사 문제가 북한의 정치선전이기 때문에 이걸 거부하다 보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를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다. 그것이 뭐냐면 우리의 주권문제다.

유엔사라는 존재 때문에 한국의 주권이 얼마나 침해받을 수 있는가라고 하는 부분에 대한 연구나 고려가 전혀 없었는데 저는 이 점을 부각하는 것이 유엔사 문제에서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현재 정전협정의 틀에서 볼 때는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이 “군사분계선 이남에 대해서는 유엔사령관이 군사통제한다”라고 하는 문장이다. 그런데 이 ‘군사통제’라고 하는 단어가, 군사용어사전에는 ‘점령’으로 나온다.

실제로 1954년 유엔군사령관이 이승만 대통령한테, 62년에도 유엔군사령관이 박정희 대통령한테 보낸 공식문건에 따르면 군사통제라고 하는 단어의 개념이 군사점령이라고 명확하게 자신들이 해석하고 있다. 사실은 남한 전체를 현재 정전협정 상으로는 유엔군사령관이 군사점령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거다.

이것이 일상적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대성동마을 같은 경우 실제로 입법권이라든가 사법권이 미치지 못한다. 독도문제가 섬과 관련된 주권 문제로 쟁점이 되고 있다면 정전협정이라고 하는 것은 남한 전체의 주권이 침해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유엔사의 존재가 주권과 충돌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이 만약 점령되거나 했을 때 북의 점령주체가 유엔사가 되도록 돼 있다. 이것도 한국 헌법하고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사실 보수세력들이 이건 굉장히 열심히 주장하고 구조를 개선했어야 될 문제인데, 이 문제는 가장 핵심문제인데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 문제다.

제가 처음 유엔사 문제를 다룰 때 보수 국제법 학자들이 이 점을 가장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작 보수세력 내에서도 유엔사령부가 통일과정에서 남한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고 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인식을 갖고 있었는데 이건 사회적으로 전혀 여론화돼 있지 않다.

그래서 유엔군사령부 문제는 북한한테 유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남한의 주권문제와 충돌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우리가 스스로 빨리 해결해야 된다. 이 문제의식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 중 하나다.

그래서 유엔사 해체 의제를 남쪽이 주도해야 한다는 근거도 지금은 여러 가지 북한 이미지로 씌워져 있지만 사실은 남한의 주권과 충돌한다는 의미에서 홍보되고 연구될 필요가 있다는 것과 연결되는 거다.

□ 이번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행사나 강연도 많을 것 같다. 민간에서도 행사는 다양하게 많을 것 같은데 의미가 있나?

■ 뭐라도 하고 있으니까 안하는 것 보다 낫지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좀더 예리한 행동, 예리한 의제설정이 더 고민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당위성은 많이 이해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전쟁위협도 많이 있었고 당위성은 널리 알려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할 것인가라고 하는 부분들이 더 예리하게 설정돼 나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 이시우 작가는 자신은 "그냥 사진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논란을 빚었던 강화도 고려산 미군 통신시설을 찍은 사진. "전파의 기교도 빛의 장엄을 넘지 못한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개인적으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됐다가 무죄를 받고, 이렇게 연구해서 책을 썼는데, 이제 학자가 된 건가? 사진가와는 영역이 다른 것 아닌가?

■ 아니다. 그냥 사진가일 뿐이다. 사진작업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사진작업에서 추구하는 이미지를 아주 예리하게 찾아내려면 이런 이론적 작업이 필요하다. 남이 해놨으면 그걸 제가 배우면 되는데 없었기 때문에 제 스스로 이론적 작업을 하고 이런 걸 통해서 사진으로 연결시켜야 된다.

유엔군사령부는 사진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 가장 최근에 ‘주체사상主體寫象전’을 가진 것으로 아는데 계속 전시 준비를 하고 있나?

■ 준비 돼 있는 작업들이 있어서 전시할 수 있는 기회만 된다면 할 수 있다.

□ 이번에 통일맞이가 주최하는 ‘휴전선 국토대장정’에 같이 한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가나?

■ 그렇다. 거기는 중간에 빠질 수 없어서 결정을 ‘모 아니면 도’로 해야 하기 때문에 12박 13일 일정을 같이 한다.

저도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그거라도 하자는 생각이 있었고, 그리고 계속 걸을 때마다 새로우니까 새롭게 걸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도 더 다듬어보고 싶다.

□ 걷기도 오래하고 감옥에서 장기간 단식도 했는데 건강은 괜찮나?

■ 정상으로는 안 되고, 술을 전혀 먹을 수 없고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좋은 거로 받아들이고 있다.(웃음)

□ 다음 저술이나 활동계획은?

■ 바로 오끼나와와 제주 관련 책을 준비하고 있다. 유엔체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이냐는 고민의 일환이다. 당분간 이런 작업 몇 개를 더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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