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평화대행진단 서진이 제주를 시발로 전라도를 거쳐 충청도에 들어섰다. 사진은 전남 여수시를 우중에 행진하고 있는 모습.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 대행진을 시작하면서 거의 한 달에 달하는 기간 동안 모든 일정을 희생하고 걸어야 한다는 것과 장마와 폭염 속에 과연 무사하게 걸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하여 이 시대 목회자로서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개인적인 많은 부분을 포기하면서 걷기를 결단하였다.

7월 3일 제주시청의 문화제로부터 13일 논산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의 생각에 자리잡은 것은 역시 ‘분단’이였다. 그리고 분단이 낳은 비정상적인 것들이 주위에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게 되었다. 이념갈등이 그러했고, 지역갈등이 그러했다. 그리고 분단에 기생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 4.3 평화공원의 외견 모습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나긋한 바닷바람이 평화공원까지 밀려들며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제주 바다가 보이는 정취는 육지에서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정취 뒷면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있었다. 젖먹이 어린 아이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학살당한 흔적과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역시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발굴이 중단된 이야기가 있었다. 제주도에서 일상적 삶속에 갑작스런 학살의 억울함은 과연 언제 발굴될까 싶었다. 그리고 엄마의 품안에 안긴 채 죽어간 이름 없는 아이의 꿈은 어부였을까? 혹은 학교선생이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들었다. 그러나 그 꿈을 몇 년 채 가지지도 못한 체 죽어간 아이들의 위폐를 바라보노라니 먹먹해져갔다.

▲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추도하고 있는 행진단.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 여순사건 희생자 현장을 찾은 행진단.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여수의 여순사건 희생자 현장에서도 역시 같은 마음이였다. 자신의 몸뚱아리를 태울 장작을 짊어지고 끌려가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 산등성이에서 몰래 숨죽이며 쳐다보았을 어미들, 그리고 그 학살당한 동생과 남편의 시신들이 타는 냄새를 맡아야 하는 누이와 아내들.

한 마을 모든 주민들을 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부역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생과 사의 갈림길로 구분하는 유일한 방법 바로 눈짓의 눈총, 손가락의 지적인 손총이였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저 저 사람을 걸러내야 내가 살 수 있었을 분위기, 그리고 눈총과 손총을 받은 그는 생의 무리에서 끌려나와 죽을 수밖에 없는 무리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무참하게 학살당하였다.

그 학살의 피해자들이 알고 있던, 유일하게 자신이 죽는 죄, 그 이념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국제평화대행진단의 행진은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고 있었다.

▲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찾은 행진단.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행진단.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 만석보 터를 둘러보고 있는 행진단.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추모의 공간이었다. 머리를 숙이고 들어간 공간은 온통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로는 작은 불들이 수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름 없이 죽어간 농민군들의 넋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추모하러 들어간 우리의 수도 역시 반사되는 유리로 인해 몇십 배 많아 보였다. 단순한 추모의 숫자가 아니라 계승해야 하는 우리의 숫자였다.

전봉준 장군이 봉기를 시작한 말목장터에서 혁명의 시작을 보았으며, 사발통문의 작성지에서 혁명의 결의를 보았다. 그리고 혁명군이 허물었던 만석보의 터를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몸짓을 보았다. 그리고 지평선이 보이는 드넒은 우리의 땅, 우리의 토지를 보았다. 또한 그곳에서 애써가며 생산한 곡식을 모두 빼앗긴 농민들의 아픔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빼앗긴 농민의 모습에서 이제는 무안읍 조그마한 농촌에서도 통일쌀 경작을 하고 있는 현장을 보았다. 나이 80이 가까운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통일쌀 경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빼앗기던 농민이 이제는 통일을 꿈꾸며 논을 돌보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구조조정의 위기에도 승리한 노동현장에서 출근 선전전을 하면서 바라본 여명은 밤늦은 일정 탓에 지쳐있는 행진단의 모자라는 잠을 잊게 만들었다. 노동자의 행복을 위한 길이 바로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였다.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많은 발걸음이 필요함을 느끼기도 했다.

▲ 군산 미군기지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는 행진단.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 군산 시내를 행진하고 있는 모습.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 정읍옆 앞에서 홍보활동에 나선 대행진단. [사진 - 국제평화대행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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