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미스테리, KAL858과 천안함 사건
[통일뉴스 백서(2000-2025)] 돋보기③ - 김치관
통일뉴스는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통일뉴스 백서(2000-2025) - 민족통일 정론의 한길 25년』을 발간했다. 백서 내용 중에서 주요사안을 집중 조명한 [돋보기(1~7)]를 순서대로 싣는다. /편집자 주
[돋보기①] 통일운동의 역사를 찾아_이계환
[돋보기②] 통일뉴스 25년의 정신적 지주 김남식과 정수일_이계환
[돋보기③] 역사적 미스테리, KAL858과 천안함 사건_김치관
[돋보기④] 통일뉴스와 함께 설정한 의제들_이시우
[돋보기⑤] 국가보안법을 이겨낸 시간_이정희
[돋보기⑥] 남북 기사교류와 방북취재의 언론사적 의미_정창현
[돋보기⑦] 남북 언론교류사 다시 쓴 <오익제 인터뷰>_김치관
통일뉴스의 【테마기획】 중 가장 많은 기사는 총 309건이 실린 〚KAL858〛이다. 2001년 11월부터 현재까지 기사가 업데이트되고 있다. 【현장소식】이나 【인터뷰】 등으로 분류된 기사들까지 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단적으로 2001년 14주기 추모제부터 해매다 11월 29일에 열리는 추모 행사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보도했다.
◎ KAL858 사건,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 ‘테러지원국’
◎ 천안함 사건, 한국의 독자 대북제대 ‘5.24조치’
통일뉴스가 이처럼 꾸준한 관심을 갖고 기획취재한 주제는 【테마기획】 중 〚KAL858〛과 〚천안함〛이다. 두 사건 모두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에 대해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자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기 때문이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1월 29일 발생한 미얀마 상공에서의 KAL858기 실종사건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1988년 1월 15일 북한 공작원 김승일, 김현희에 의한 폭파 테러사건이라고 발표했고, 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반파돼 침몰한 천안함 사건은 민군 합동조사단이 북한의 ‘1번 어뢰’로 폭파된 사건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정부의 발표 때부터 숱한 의혹들이 제기됐고, 당사자로 지목된 북한은 이를 적극 부인했다. 더구나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에 이 사건들을 가져갔지만 북한을 꼭집어 규탄하는 성명이나 조치를 내놓지 못했다. KAL858 사건의 경우 ‘김현희’의 자백 외에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고, 천안함 사건 역시 북한의 ‘1번 어뢰’ 외에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수사결과를 국제사회가 공인하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KAL858기 폭파 책임을 물어 1988년 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대북 제재를 가했다. 이른바 미국이 북한에 대해 ‘독자 제재’를 가했고, 이에 따라 2007년까지 북한은 ‘테러지원국’으로 규정당했다. 또한 우리 정부는 2010년 5월 24일 천안함 폭침을 이유로 북한에 대해 ‘5.24조치’를 취해 북한과의 교류를 단절시키는 이른바 ‘독자 제재’를 단행해 아직까지 남북교류가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뉴스는 이 두 사안의 중대성과 제기된 의혹들에 주목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취재와 보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 의혹 덩어리 KAL858 사건, 애타는 유족들
KAL858기 사건 14주기 추모제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2001년 11월 16일 통일부 북한자료실 TV시청실에서 통일연대가 주관한 KAL858기 관련 비디오 시청 모임이 열렸다. 감사원 직원으로 일본에서 근무하던 중 이 사건을 접했다는 현준희 씨가 해설자로 나서 이 사건을 ‘실종사건’으로 규정하고 김현희가 어렸을 때 자신이라고 주장한 사진 속의 주인공의 귀 모양은 김현희의 귀 모양과 완전히 다르다며 ‘완전히 쇼’라고 단언했다.{13339}*
(* 통일뉴스 해당 기사는 {13339} 형식으로 표기. 이는 기사 URL 마지막 고유번호임.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39)
통일뉴스의 KAL858기 사건 취재는 이때부터 시작돼 KAL858기 가족회 차옥정 회장, 김호순 부회장 인터뷰{13416}를 거쳐 이철승 등이 행패를 부린 14주기 기자회견과 추모제 취재까지 숨가쁘게 진전돼 ‘김현희 KAL기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 발족으로 귀결됐다. 14주기 기자회견을 취재한 통일뉴스 기자는 이철승 무리의 행패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해 KAL858기 가족회 측의 승소에 일조하기도 했다.
차옥정 가족회 회장과 시민대책위 신성국 신부를 주축으로 KAL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03년 5월 서현우 작가의 소설 『배후』가 출간되고 2004년 3월 일본인 저널리스트 노다 미네오의 『파괴공작』이 번역 출간됐다. 통일뉴스도 김현희와 함께 폭파범으로 발표된 김승일의 국과수 부검감정서를 행정정보공개청구를 청구해 2002년 5월 단독 보도했고, 특히 김승일 부검감정서에 첨부된 신원미상의 젊은 남성의 사진 한 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19134}
이 같은 분위기 속에 2003년 MBC ‘PD수첩’ “KAL858기사건 진실은 무엇인가”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16년간의 의혹과 진실, KAL858기 폭파사건”, 그리고 2004년 KBS ‘역사저널 그날’ “KAL 858의 미스터리” 1편과 2편이 방영되기에 이르렀다. 방송 3사가 앞다퉈 이 사건을 재조명할 정도로 사회적 분위기는 무르익은 셈이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발전위)는 KAL858기 사건을 재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건으로 선정했고 2006년 8월 1일 조사결과 중간발표에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 공작(무지개 공작)’ 계획 문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66869} 이른바 ‘무지개 공작’이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13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둔 1997년 11월 29일 KAL858기가 실종됐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2월 2일 실종 3일 만에 이 사건을 “북괴의 테러 공작”으로 규정하고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공작을 펼친 것이다.
통일뉴스는 국정원에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해 2007년 4월 4일 ‘무지개 공작’ 문건 사본을 공개받아 단독 보도했지만 5쪽 분량 중 2쪽 정도만 공개됐다.{72064} 이후 이 문건의 대부분은 역시 통일뉴스의 행정공개청구에 이은 행정소송을 거쳐 2019년 8월 30일자 대법원의 판결(2019두44255)에 따라 ‘일부 공개’ 판결을 받아 통일뉴스의 단독 보도로 공개됐다.{129046} KAL858 가족회가 의뢰하고 채희준 변호사가 사건을 맡아 이룩한 어렵지만 값진 승리였다.
서현우는 국정원 발전위의 종합보고서(2007.10.24)와 소송을 통해 확보한 4천여 쪽의 재판기록(2007.9.4 공개 결정) 등을 토대로 이 사건의 의혹들을 종합 분석한 “서현우의 KAL858사건 분석 보고서” 38회 연재를 통해 이 사건의 전말을 샅샅이 뒤졌고, 박강성주는 미국 국무부, 미국 중앙정보국 정보공개 (비밀)공문 분석은 물론 각국 행정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영국, 호주, 스웨덴 정부가 공개한 문건들을 분석해 통일뉴스에 연재물로 실었다. 최근 외교부가 30년이 지난 공문서를 공개한 것 중 KAL858 관련 문건들도 분석 기고했다. 통일뉴스가 KAL858기 사건 관련 정보의 저수지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국정원발전위의 재조사와 그 이후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KAL858기 사건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고, 차옥정 가족회 회장도 건강상 더 이상 가족회를 이끌지 못한 상태를 맞아 가족회는 내분을 겪게 되고 신성국 신부도 일선에서 물러나는 상황을 맞았다.
이 같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2020년 1월 23일 <MBC 뉴스데스크>는 미얀마 안다만 50미터 해저에서 KAL858기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대구MBC의 현지취재로 확인했다고 단독 보도했다.{131108} 문재인 정부는 외교부에 동체 추정 물체의 확인을 위한 현지조사를 추진하고 예산을 편성하기도 했지만 미얀마가 정변에 휩싸이면서 한국과의 외교적 관계도 사실상 단절돼 현지조사는 미뤄지고 덧없는 세월만 흐르고 있다. 사체는커녕 유품 하나 확인한 바 없는 가족들의 애타는 심경은 곁에서 지켜보는 이들조차 힘들 정도다.
물론 아직 대구MBC가 확인한 비행기 동체가 KAL858기의 동체일지는 수중 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미지수다. 또한 그것이 맞다고 확인되더라도 이 사건의 전모가 규명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KAL858기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야 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오랜 세월 제재를 가해온 것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내려질 수 있을 것이다.
◎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 없이 5.24조치 해제 가능할까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자 윤석열 정부의 비정상적인 반북 행태들이 하나둘씩 바로잡혀 가고 있다. 대북 전단이나 대북 방송 등이 중지되고 다시금 전방지역 주민들도 그나마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으로 대표되는 대북 대화파들은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형국이다. 천안함 사건(2010.3.26.)의 책임을 물어 대북 제재를 가한 ‘5.24조치’도 원위치 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5.24조치의 무효화 선언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5.24조치의 근거가 됐던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측에 뭐라고 해명해야 할지 난감한 일이다. 북측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공동조사를 제안하는 등 적극 연관설을 부인해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군함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에서 반파돼 침몰했고(2010.3.26), 민군 합동조사단은 북한의 ‘1번 어뢰’ 발사로 인해 발생한 ‘버블젯’으로 천안함이 반파, 침몰됐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처음부터 숱한 의혹제기에 직면했고, 아직도 논쟁 중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대북 경제협력 등을 전면 금지한 5.24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했고, 북도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남북관계는 단절됐다. 이후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사상검증의 잣대로 들이댔고 2012년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인정한다고 공언해야만 했다.
통일뉴스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사안의 중대성을 감지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천안함 특별취재팀’을 구성했고, 최문순 의원실과 백령도 현장취재에 나서 천안함 침몰지점 가까운 해저에 대형 침몰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 보도하기도 했다.{91220} 특히 “물기둥, 관측장비로도 관측 불가능했다 - <단독> 백령도 초병 자필진술서 입수”{90731}, “사건 당일 북 잠수함 동향 ‘영상질 불량’ - <단독> ‘북한 서해 잠수함 동향’ 정부자료 입수”{90756}, “"21:15분경 천안함이 침수되어 조치 중" - <단독> 해작사 상황보고 입수, 사건 시각 논란 재연될 듯”{90854} 등 중요한 단독기사들을 보도했지만 진상규명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후 사회적 관심이 줄었지만 신상철 재판 취재 보도를 비롯해 인터뷰, 기고글 게재 등 천안함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천안함 항적이나 백령도 인근 감시초소의 TOD(열상감시장치) 영상 등을 공개할 경우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생존자나 사건 관계자들의 양심선언이나 증언을 통해서도 정부의 발표가 거짓임이 드러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