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뉴스 25년의 정신적 지주 김남식과 정수일

[통일뉴스 백서(2000-2025)] 돋보기② - 이계환

2026-01-02     이계환


민족언론을 표방한 <통일뉴스>의 사시(社是)는 민족주의에 근거해 있다. 통일뉴스 25년 역사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통일뉴스의 사시 유지와 확장에 절대적 영향을 준 분은 두 사람이다. 다름 아닌 북한문제 전문가인 김남식 선생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인 정수일 선생. 두 분 모두 작고하셨다. 김남식 선생은 2005년, 정수일 선생은 2025년이다.

두 분 모두 통일은 민족과 민족주의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남식은 남과 북은 사상이나 이념, 체제나 제도가 아닌 민족으로 통일을 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독일식 흡수통일이나 베트남식 무력통일은 한쪽이 다른 쪽을 먹어 큰 피해를 입기에 양측에 피해가 없는 오직 ‘민족’으로만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수일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정수일은 민족주의적 접근을 통해 독일통일과 베트남통일, 예멘통일을 분석하면서 불완전한 통일이 아닌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야 하는 ‘진화통일론’을 주장했다.

특히 두 분 모두 자칭, 타칭으로 ‘지독한’ 민족주의자였다. 북한문제 전문가 김남식에게는 ‘정통적 민족주의자’라는 칭호가 붙었고, 문명교류학자인 정수일에게는 ‘민족주의적 문명교류학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리고 두 분에겐 모두 민족론과 통일론의 입론(立論)을 시도한 저서가 있다. 김남식은 『21세기 우리 민족 이야기』(2004), 정수일은 『민족론과 통일담론』(2020)을 남겼다. 두 책 모두 민족문제, 통일문제와 관련해 기념비적인 저작들이다.

두 분이 민족문제와 통일문제를 주요하게 다뤘지만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김남식의 민족론이 비교적 북측의 입장에 서 있다면 정수일은 민족론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다. 한 예로 민족의 징표 중의 하나인 핏줄에 대해 김남식은 “생물학적 과정의 혈연이 아니라 사회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혈연”으로 정의하지만, 정수일은 “피는 피다. 씨족이나 종족, 민족의 피는 어느 것이나 다 생물학적 실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실천적 의미에서 이러한 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민족론을 두고 다투자는 게 아니라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을 이루자는데 있기 때문이다.

◎ ‘정통적 민족주의자’ 김남식

김남식은 통일뉴스가 창간된 2000년부터 2005년 작고할 때까지 상임고문을 맡았다. 통일뉴스 출범과 함께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일찍이 고전이 된 『남로당 연구』를 저술해 현대사 연구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진 김남식은 북한문제 전문가이자 정세분석가로 저명했다. 김남식을 처음 만나 상임고문직을 허락받을 때 ‘통일뉴스는 민족주의를 일관되게 지켜라’는 당부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김남식은 상임고문직을 맡아 단순히 이름만 걸친 것이 아니라 통일뉴스에 칼럼과 기고, 대담 등 글을 쓰고 외부 강연 등을 통해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통일뉴스와 만난 김남식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나이도 잊고 청년처럼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더구나 당시 남북 정상이 최초로 만나 6.15공동선언을 발표하자 김남식은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했다. 특히 이때는 6.15시대라 통일 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김남식은 전국적인 강연과 토론회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는 민족문제와 통일문제의 전령사가 되어 지방이든 어디든 원하면 다 갔다. 그만큼 열린 통일공간에서 통일 관련 인사들이 김남식의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김남식은 통일뉴스에 ‘북한의 민족론’, ‘북한의 민족관과 민족주의관’, ‘북한의 사회주의론’, ‘북한의 강성대국론’, 북한의 ‘통일론’ 등의 논문과 ‘우리 민족제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강의, ‘우리 민족의 최우선 과제는 전민족적 차원에서의 자주권 확보’라는 대담, 그 외에도 민족문제와 관련된 숱한 칼럼과 기고를 썼다.

김남식 통일뉴스 상임고문은 작고할 때까지 민족주의를 견지할 것을 강조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04년 4월 팔순을 맞아 이 논문들을 모아 『21세기 우리 민족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고 출판기념회도 가졌다. 김남식은 출판기념회 감사의 말을 통해 “이 순간이 가장 뜻 깊고 행복한 시간”이라면서 “통일뉴스는 지금 이상으로 열심히 민족, 자주, 통일을 위해 활동할 것으로 믿고 있다”며 ‘민족’과 ‘통일’을 강조했다. 특히, 강정구 교수가 당시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21세기 우리 민족 이야기』 서평에서 김남식을 가리켜 ‘정통적 민족주의자’라는 평을 했는데, 이 서평을 읽은 김남식은 너무 좋아하면서 만족해했다.

김남식의 민족주의 확장은 일본으로까지 나아갔다. 재일 통일운동단체인 ‘평화통일협회’(평통협)의 초청으로 2003년과 2004년에 두 차례나 강의를 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2003년 7월 일본 방문길에 오르면서 김남식은 “내가 일본에 가는 것은 전적으로 6.15선언 덕분이다”고 몇 번이나 말하면서 감격해 했다. 김남식은 2003년 7월 24일-29일까지 일본을 방문해 도쿄를 비롯해 오사카, 효고, 교토 지역을 순회 강연했다. 특히 첫 강연인 도쿄에서의 ‘6.15공동선언 발표 3주년 기념 통일강연회’는 대성공이었다. 대회장은 꽉 찼고 재일동포들은 김남식의 강연에 열광했다.

재일 평통협은 2004년에도 김남식을 초청했다. 2004년 4월 일본방문에는 나도 함께 초청받았다. 재일동포 사이에서 김남식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통일뉴스의 칼럼과 기고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지만 무엇보다도 2003년의 일본 순례 강연 때문이었다. 2년 연속 초청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김남식은 두 번째 일본방문에서도 도쿄에서 ‘6.15공동선언 4주년 초청강연회’를 비롯해 나고야 등 지방 순회강연이 이어졌다. 김남식의 명성으로 통일뉴스가 재일동포들 사이에서도 주가가 높아진 순간이었다.

김남식은 2005년 1월 초 일본을 세 번째로 방문했다가 타계했는데, 이때 재일동포들이 뜻을 모아 그의 『21세기 우리 민족 이야기』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로 약속했고 이 약속은 지켜져 1년여가 지난 2006년 3월 도쿄에서 일본어판 출판기념회가 성대히 열렸다. 분단 이후 재일동포와 남측 인사들이 서로 힘을 합쳐 일본에서 공동으로 책을 출판하게 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남식이 통일운동과 통일뉴스에 이룬 공헌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가 남긴 단 하나의 언명으로 요약한다면 “6.15공동선언 이후 한반도 문제의 모순구조는 ’남북 우리 민족 대 외세(미국)’”라는 구절이 아닌가 싶다. 그의 묘비에도 조탁(彫琢)되어있는 이 언명은 6.15시대 한반도의 모순구조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었다. 아울러 김남식은 “아무리 세계화, 지구화 시대라고 하지만 민족이 중심 되는 것이 바로 미래라 본다”며 민족자주성을 강조하고, 통일의 본질은 ‘민족자주성의 쟁취’라고 어디에서나 강조했다.

◎ ‘민족주의적 문명교류학자’ 정수일

김남식이 타계하고 2년 정도가 지난 후 통일뉴스는 박중기 후원회장을 통해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을 만나게 된다. 두 분은 연세가 같았고 또 이른바 ‘거시기산우회’ 회원이었다. 그때 정수일이 문명교류학자이자 당대의 석학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통일뉴스는 정수일의 식견을 대중에게 알리는 강연을 하고 싶었다. 박중기 후원회장의 중재와 통일뉴스의 간청으로 어렵사리 성사가 됐다. 사전 만남에서 정수일은 문명교류학과 실크로드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위대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정수일이 문명교류학자일 뿐 아니라 민족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민족주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통일뉴스는 2007년 4-5월에 ‘한국 속의 세계’라는 큰 제목 아래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정수일의 대중 강좌를 진행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어, 그해 7월에는 일군의 통일운동활동가들과 함께 ‘21세기 민족주의포럼’을 창립했는데, 이때 정수일이 사실상 좌장 역할을 했다.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된 포럼에 정수일은 매번 참석하면서 민족과 민족주의 담론을 우리 시각에서 정립하는 과업을 진행해 왔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은 21세기민족주의포럼의 좌장으로서 민족론과 통일론의 초석을 다졌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특히 포럼을 통해 정수일의 ‘문명과 민족, 교류론과 민족론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에 따르면, 원래 문명교류란 것은 본질적으로 이질문명 간의 주고받음인데, 그 이질문명은 최대 인간집단인 각이한 민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갈라진다. 민족이 없었던들 문명다운 문명은 애당초 창조 불가능했을 것이며, 민족주의가 없었던들 문명의 성장이나 전파, 교류는 역사가 기록한 그러한 양상으로 전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정수일은 문명교류학을 연구하면서 민족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민족주의와 더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포럼은 2년여 동안 집단 토론과 연구를 통한 결과물들을 모아 2010년에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때 정수일은 이 책에 ‘왜 다시 민족주의인가’라는 서문에 이어 「민족과 민족주의, 그 재생적 담론」이라는 논문을 실었다. 정수일은 이 논문에서 민족론 및 민족주의와 관련해 기존의 입장과 달리 세 가지 독창성을 제시한다.

먼저, ‘민족의 징표’에서 혼혈로 인한 혈연의 공통성이 옅어지고 장기간 분단으로 남북 사이에 경제적 공통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당연히 순수한 혈통은 아니지만, 아직까

지는 한민족의 고유혈통을 기본(핵)으로 하는 혈통보(血統譜)가 유지되고 있다”는 논지와, 경제적 공통성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기층구조, △경제생활, △자연지리적 여건이라는 3대 요인의 공통성을 의미한다는 매우 독창적인 논지를 제시한 것이다.

두 번째로, 기존의 민족발생론인 근대주의와 영속주의를 넘어서는 ‘연속주의’를 새롭게 제기한 점이다. 민족이 18세기 말엽부터 시작된 유럽의 경험을 반영한 근대주의는 물론, 민족이

‘영구불멸의 초역사적 상수’라는 영속주의까지 비판하며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발생해 단절 없이 연속적으로 존재하다가 조락된다는 민족의 역사적 존망을 거시적으로 반영한 이론”으로,‘연속주의’를 제시한 것이다.

세 번째로, ‘민족주의 속성’을 △연대의식, △민족수호 의지, △민족 발전지향으로 규정하고 정식화했다. 특히 세 번째인 ‘발전지향성’은 기존의 민족주의 속성에는 나와 있지 않은 독창적 이론으로 “진정한 민족주의란 민족의 발전을 지향해 민족이나 민족국가의 경계에 빗장을 잠그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공생공영을 추구하며 폐쇄와 배타가 아닌 개방과 수용을 추구해 왔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통일뉴스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활동과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 발간에 힘입어 2012년 창간 12주년을 맞아 ‘한국사회와 민족주의’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민족주의가 한국사회에서 ‘구식’, ‘보수주의’라며 비판받는 가운데,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이 심포지엄에 정수일이 토론자로 나서는 열정도 보여주었다. 또한 정수일은 2018년 국학연구소와 21세기 민족주의포럼이 공동 주최한 ‘국학과 민족주의 만나다’는 주제의 월례강좌에 강연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놀라운 건 민족을 향한 정수일의 열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0년 「민족과 민족주의, 그 재생적 담론」이란 논문을 통해 난공불락과도 같았던 민족론 입론을 시도한 정수일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에겐 여전히 과제가, 마지막 과제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름아닌 통일문제였다. 민족론 입론 이후 꼭 10년이 지난 2020년에 그는 새 논문 「민족주의적 통일담론」을 <통일뉴스>에 네 차례에 걸쳐 연재 발표했다.

정수일이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논문에서 제시한 진수는 ‘진화통일론’이다. 정수일의 ‘진화통일론’이란 ‘분단 → 불완전통일 → 완전통일’이라는 패턴으로의 통일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종래의 불완전 통일론을 완전 통일론으로 진화 발전시킨 통일론이다. 정수일은 베트남, 독일, 예멘 등 선행 통일국가들의 통일행적을 연구한 결과 “완전통일까지는 갈 길이 멀고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수행해야 할 새로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다.

정수일은 「민족과 민족주의, 그 재생적 담론」과 「민족주의적 통일담론」 두 논문을 엮어 『민족론과 통일담론』이란 저서를 출간한다. 한국에서는 민족문제 및 통일문제와 관련한 사실상 첫 저작이다. 그의 풍부하고 체계적인 문명교류학 저서들에 비하면 단 한 권이기에 왜소할지 모르지만 그 함의와 가치는 심대한 것으로 평가된다.

불세출의 문명교류학자인 정수일은 그가 새롭게 제시한 △민족론의 한 영역인 민족발생론에서의 ‘연속주의’와 △통일담론에서의 ‘진화통일론’을 학문적으로 정립하지 못하고 타계해, 이 두 가지 사안은 후학들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 김남식과 정수일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민족’과 ‘통일’

민족주의자이자 통일문제 전문가한테는 ‘민족’과 ‘통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가 보다. 온갖 민족론과 통일론이 난무하지만 결국에는 민족이란 무엇이고 통일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귀결된다. 더구나 한국사회가 다민족·다문화로 가고 있다는 견해도 일부 나오고, 또 80년간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민족이 밥 먹여 주냐?’ 또는 ‘통일을 왜 해야 하냐?’라는 뒤틀린 질문도 나오기 마련이다.

김남식은 통일이 되지 않고 오래 걸리자 사람들이 ‘민족이 밥 먹여 주냐?’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맞다. 통일이 밥 먹여 준다”면서 “남과 북이 통일 되면 경제가 발전하고 취직도 잘 될 테니, 민족통일을 이루면 민족이 밥 먹여 주는 게 된다”고 말하곤 했다. 정수일 역시 ‘통일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통일의 필요성과 이유에 대해 한마디로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을 해야 한다”라고 아주 쉽게 단호히 말한다. ‘전쟁 방지’니 뭐니 이런저런 이유를 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남측에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흡수통일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북측이 2023년 말 ‘두 개 국가론’을 주장했다. ‘두 개 국가론’에는 민족과 민족주의 그리고 통일이 사상(捨象)되어 있다. 북측은 ‘민족’과 ‘통일’, ‘화해’ 개념을 제거했으며, 그 상징으로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까지 철거했다. 남측에서도 통일운동단체들이 ‘민족’과 ‘통일’자가 들어간 단체명을 바꿨다.

평생을 민족문제와 통일문제로 부대껴온 김남식과 정수일이 살아 있다면 이 시대에 상존(相存)하는 ‘흡수통일론’과 ‘두 국가론’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실까? 전자에 대해서는 두 분의 견해를 비교적 많이 들었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듣지를 못했다. 두 분을 보내고 새로운 시대 앞에 서 있는 <통일뉴스>가 늘 갖는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