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의 역사를 찾아
[통일뉴스 백서(2000-2025)] 돋보기① - 이계환
통일뉴스는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통일뉴스 백서(2000-2025) - 민족통일 정론의 한길 25년』을 발간했다. 백서 내용 중에서 주요사안을 집중 조명한 [돋보기(1~7)]를 순서대로 싣는다. /편집자 주
[돋보기①] 통일운동의 역사를 찾아_이계환
[돋보기②] 통일뉴스 25년의 정신적 지주 김남식과 정수일_이계환
[돋보기③] 역사적 미스테리, KAL858과 천안함 사건_김치관
[돋보기④] 통일뉴스와 함께 설정한 의제들_이시우
[돋보기⑤] 국가보안법을 이겨낸 시간_이정희
[돋보기⑥] 남북 기사교류와 방북취재의 언론사적 의미_정창현
[돋보기⑦] 남북 언론교류사 다시 쓴 <오익제 인터뷰>_김치관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금언이 있다. 물을 마실 때는 그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은 없고 모든 일에는 역사와 전통이 있기 마련이다. 통일운동도 예외일 수 없다. 오늘날의 통일운동이 모진 압박과 투옥 속에서도 8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음은 무릇 선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일뉴스>는 통일운동의 역사를 주요 취재 대상으로 삼았고 따라서 분단 이후 통일을 위해 헌신해온 조직과 인물에 관심을 가졌다. 여기에는 한국전쟁 전후의 빨치산, 통혁당, 남조선해방전략당, 인혁당, 남민전, (비전향)장기수 그리고 통일일꾼들이 포함된다. 특히 이미 타계한 주요 통일운동 인사들이 묻혀있는 묘역 참배와 전적지 탐방은 관련자들과의 동행으로 적지 않은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참배는 고인에 대한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실체와 진실 찾기이기도 했다. 이 같은 탐방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경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 빨치산 전적지 탐방
비전향장기수들의 단체인 <통일광장>은 빨치산들의 전적지를 답사했다. ‘소년 빨치산’으로 불린 김영승 선생은 고(故) 빨치산들에 대해 비상한 기억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특히 전적지 탐방의 귀재였다. <통일뉴스>는 2005년 5월 7-8일 통일광장이 주최한 ‘지리산 역사기행’을 동행 취재해 한국전쟁 당시 노동당 전남도당 박영발 위원장이 은신처로 활용한 ‘비트’를 탐사했다. 지리산 반야봉 함박골 일명 ‘박영발 비트’에서 지리산 빨치산들이 사용했던 잉크통이 50년 이상이 지났지만 마르지 않은 채 발견됐고, 통일뉴스가 이를 단독보도했다.{54546}*
(* 통일뉴스 해당 기사는 {54546} 형식으로 표기. 이는 기사 URL 마지막 고유번호임.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4546)
통일광장 주최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가 2004년 5월 29~30일 지리산 대성골에서 열렸다. 이는 남측에서 빨치산을 추모하는 사실상의 첫 대규모 추모제로 당시 대개의 빨치산 출신과 관련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등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44432} 2005년에는 5월 28일~29일 회문산 청소년수련원(구 금천초등학교 터)에서 열렸고,{55314} 이후 빨치산 추모제는 격전지 장소를 달리하며 매년 열렸다.
2005년 11월에는 빨치산 격전지 백운산을 찾아 전남 빨치산 총사령관 김선우의 가묘와 비트터들을 탐방했으며{61078}, 12월 말에는 빨치산 3대 격전지 중의 하나인 백아산 갈갱이 마을을 찾기도 했다.{62024}
◎ 황태성 묘소 최초 보도
2006년 12월 중순에는 황태성의 질녀인 임미정 씨와 그녀의 남편인 권상릉 씨의 안내로 최초 대남 밀사 황태성 묘소를 찾았다. 두 부부는 황태성 사형 후 망자의 시신을 직접 확인, 인수한 당사자들이었다. 황태성 묘소 참배는 공개적인 첫 참배였고 <통일뉴스>가 최초 보도를 한 셈이었다.{70355} 이 참배는 황태성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43년 전 바로 그날인 2006년 12월 14일 이뤄졌으며, 기사는 ‘최초 대남 밀사 황태성 묘소를 찾다’라는 제목으로 하루 뒤인 2006년 12월 15일에 게재되었다.
후에 이 기사를 보고 2008년 12월 황태성 친손녀의 아들이 댓글에다 “이제사 보게 되었네요. 저의 어머니 황유경께 보여 드리면 무지 기뻐하시겠네요. 하나뿐인 손녀니까요. 미국에 있어 찾아뵙지 못한 것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2009년 3월에는 황유경 씨가 “황태성 씨의 친손녀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위의 글 중 할아버지의 산소가 야산 중턱이라 하셨는데 그곳은 저희 대대로 내려오는 선산임을 알려드립니다. 제가 늘 다니면서 길도 다듬고 벌초도 하였는데 지금은 사정상 제가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이후에도 황태성 묘역 참배는 계속되었고 2015년에 『박정희 장군, 나를 꼭 죽여야겠소』라는 제목으로 황태성 평전이 출판되기도 했다. 이에 맞춰 2015년 12월 황태성 52주기 참배 때는 이 황태성 평전을 봉증했고, 미국에 거주하는 황태성의 손녀 유경 씨가 메시지를 전해 왔으며, 또한 홍일선 시인이 황태성을 다룬 ‘시천주(侍天主) 오늘’이라는 제목의 시를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114795}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의 최고 책임자인 권재혁 선생의 묘역 참배도 잊을 수 없다. 노중선 통일뉴스 상임고문이 이 사건의 연루자로서 권재혁 선생에 대해 잘 알고 있있고, 통일뉴스의 계속된 참배와 보도 덕택인지 고인의 딸인 재희 씨가 통일뉴스 창간 기념행사에 기꺼이 두 번이나 사회를 보는 인연을 맺기도 했다. 전략당 사건은 2014년 5월 16일 재심 무죄 확정판결이 내려진다.
◎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가겠다’
5.16쿠데타로 인해 1961년에 강제 폐간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참배도 이뤄졌다. <통일뉴스>와 <민족일보>와의 실질적인 관계형성은 2006년경부터 박중기 후원회장을 통해 4.19와 5.16 시기 당대에 함께 활동했던 민족일보 관련인사들과 친교를 맺으며 이뤄졌다. 2006년 12월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 45주기 추모행사’의 첫 참배에 이어{70376}, 2007년 11월 ‘통일뉴스 창간 7주년 기념식’에서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으며 당시 민족일보 기자였던 김자동, 전무배 선생들로부터 통일뉴스 기자들이 민족일보 영인본을 이어받는 이벤트를 연출하기도 했다.{75238}
2008년 1월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4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통일뉴스는 2011년 11월, 창간 11주년을 맞아 ‘민족일보 조용수 50주기 기념 학술토론회’를 개최했으며{96530}, 이날 토론회 발표문들과 민족일보 관련 자료들을 한데 묶여 『반세기 만의 복권 - 조용수와 민족일보 재조명』으로 출간했다.
2012년 5월에는 “민족일보 이름과 의미, 정신 길이 남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민족일보기념사업회{98572}를 창립했으며, 이 기념사업회가 2019년부터 ‘조용수언론상’을 제정해 통일뉴스 창간 기념행사와 함께 매년 수상하고 있다.
조용수 사장과 함께 한날한시에 5.16쿠데타 세력으로부터 사형을 당한 최백근 사회당 조직부장의 묘도 2007년 최초로 공개 참배를 하며 통일뉴스가 최초로 보도했다.{75991} 이후 매해 12월 21일 즈음에는 망우리에 안장되어 있는 최백근 선생의 참배에 이어 경기도 남한산성 근처에 안장되어있는 조용수 사장 참배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 남민전, 인혁당 관련자 탐방과 자서전
2006년부터 남민전 최고책임자인 이재문 선생{63388}과 2012년부터 중앙위원인 신향식 선생{100160}의 참배도 이뤄졌다. 이재문 선생의 묘소는 인천교구천주교 묘역에 있었으며, 신향식 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에 있었다. 그러다가 2019년 3월 30일, 이재문 선생과 함께 남민전을 이끌었던 중앙위원 신향식, 김병권 선생이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장했다.{128278} 40년 만에 남민전 ‘전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특히, 2019년 10월 13일 남민전동지회는 마석 모란공원 이재문 선생 묘역에서 ‘이재문, 신향식, 김병권, 박석률 남민전 민족민주통일열사 합동추모제’를 최초로 거행했다. 이날 추모제는 모란공원에 안식 중인 다른 남민전 전사들을 비롯해 세상을 떠난 스물 네 명 남민전 동지들의 합동추모제를 겸했다.{130169}
통일뉴스에 실린 특정 통일운동 단체나 통일운동 인사들 중에서 아마 인혁당 관련 기사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박중기 후원회장 자체가 인혁당의 관련자였으며, 통일뉴스는 인혁당 사건 진상규명과 묘역 참배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통일운동 인사들인 임방규 선생의 자서전 ‘광주형무소 이가사’, 양원진 선생의 자서전 ‘곡절 많은 한 생을 살아오며’. 안재구 선생의 자서전 ‘끝나지 않은 길’ 그리고 안재구 선생 사후 아들인 안영민이 아버지를 회상하며 쓴 회상기 ‘아버지, 안재구’ 등은 통일뉴스가 살펴온 통일운동역사 탐사에 큰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