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3일 통일교 성지인 경기도 가평에서 성화(聖和, 별세)했다. 향년 92세. 그는 문제적 인물(problematic character)이었다. 대개의 문제적 인물들이 그러하듯 그도 양극단의 평가를 받아왔다. ‘세계적인 종교인’ 대 ‘사이비 교주’가 그것이다. 특히 그는 기독교로부터 끊임없는 이단·사이비 시비에 시달렸다. 그가 지난 2009년 출간한 자서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에서 “나는 이름 석 자만 말해도 세상이 와글와글 시끄러워지는 세상의 문제인물”이라면서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반대부터 했다”고 세상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의 양극단의 평가가 가장 잘 드러난 게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이 아닌가 한다. 그는 반공주의자이자 승공주의자였다. 1920년생인 그가 종교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곳은 1946년 개척교회를 세운 평양이었다. 그는 1948년 북측에 의해 ‘사회질서 문란죄’로 구속돼 5년형을 언도 받고 흥남감옥에서 2년 8개월의 옥고를 치르던 중 한국전쟁을 맞아 월남하게 된다. 이후 6·25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를 창시했으나 국내 선교가 막히자 1958년 일본에, 59년엔 미국에 각각 선교사를 파송해 본격적인 국외 개척에 나선다. 특히 1970년부터 미국에서의 선교활동은 눈부시다. 그는 미국에서 냉전체제에 기대 반공정책을 표방하면서 승공·멸공운동을 벌였다. 그리하여 50여년 만에 통일교를 전 세계 194개국 300여만 명 신도를 가진 종교단체로 성장시켰다. 이런 그가 김 주석을 만난 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반공주의자 문 총재와 공산주의자 김 주석이 만난 것이다.

문 총재는 1991년 11월30일부터 12월7일까지 평양을 방문해 김 주석과 만난다. 일설에는 이때 두 사람이 의형제를 맺었고 문 총재가 김 주석을 형님으로 모셨다고 한다. 김 주석이 세상을 뜨기 전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문 총재를 각별히 배려하도록 유언을 했다는 설도 있다. 두 사람은 회동에서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개발을 비롯한 남북경제교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통일교의 대북 경협사업이 본격화된다. 1994년 금강산국제그룹을 창립했고 1998년에는 금강산 유람선관광사업을 추진했다. 2000년에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을 목적으로 통일교 계열 단체인 평화대사협의회를 만들었다. 현재 통일교는 북한 남포의 평화자동차를 비롯한 평양 보통강호텔과 세계평화센터, 평화자동차부품회사, 평화주유소, 7-8개의 현지 법인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두 사람의 의리는 대를 이어 애경사(哀慶事)에서 발휘되었다. 통일교는 1994년 7월8일 김 주석이 사망하자 남측에서는 유일하게 당시 세계일보 박보희 사장을 평양에 보내 조문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문 총재의 생일 때 산삼과 장미꽃 화환을 보내 각별히 배려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문 총재의 ‘종교적 후계자’인 7남 문형진 통일교 세계회장이 평양을 방문해 조문했다. 이번 문 총재의 부음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조의 표시를 한다면 ‘김일성․김정일-문선명’의 의리가 ‘김정은-문형진’으로 이어지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가장 궁금한 점은 문 총재가 왜 김 주석을 만났는가 하는 점이다. 거꾸로는 김 주석이 왜 문 총재의 방북을 허용하고 만났는가, 이다. 김 주석은 통일을 위해서는 과거를 묻지 말고 사상․이념․종교에 관계없이 뭉치자면서 민족대단결을 주창했다. 문 총재가 종교인이고 반공주의자일지라도 민족공조에 입각한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문 총재가 왜 방북했는가, 이다. 문 총재의 고향은 김소월의 고향이기도 한 평안북도 정주(定州)다. 그는 통일교의 창시자로서 교내(敎內)에서 메시아로 불렸다. 통상 종교의 창시자는 그 생가가 성지(聖地)로 보존된다. 그의 생가가 북측지역에 있다는 것은 통일교가 북측과 관계 형성이 안 된다면 교인들의 성지 순례는 하세월(何歲月)이 될 것이다. 당연히 문 총재는 장차 자신의 생가가 교인들의 순례지로 되기를 바랐을 터다. 그렇더라도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근본적인 공통점은 민족과 평화 그리고 통일에 있지 않을까? 김 주석은 공산주의자이기 전에 민족주의자였고, 문 총재는 반공주의자였지만 평화주의자였다. 두 사람이 각각 공산주의자와 반공주의자로 만나지 않고 민족주의자와 평화주의자로 만났다면 그 결합 지점은 ‘통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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