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유일한 카드”

▲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의 『노무현과 함께한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 - 하드파워를 키워라』(열음사) 출판기념회가 10일 국민일보 빌딩에서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다가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출판기념 행사가 연일 이어졌다. 자신을 알리고 정치자금도 챙겨야 하는 출마 예정자들의 입장에선 피할 수 없는 중요 행사겠지만 이같은 행태에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이 쏟아진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자신의 살아온 여정과 경험을 공유하고 미래 비전까지 제시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필은 기본이고 인터뷰나 기고문 짜깁기로 시간에 쫒겨 ‘편집’된 책들을 접하면 씁쓸함이 더해진다.

각설하고,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북 콘서트(Book-conert)’ 형식으로 열린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의 『노무현과 함께한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 - 하드파워를 키워라』(열음사) 출판기념회는 주목할만한 점이 적지 않았다.

형식만 놓고 보더라도 참여정부 시기 안보전략을 총괄했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저자인 박선원 전 비서관이 나란히 자리해 내실있는 북콘서트를 진행했고, 송영길 인천시장이 게스트로 등장해 인천시의 남북교류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구나 이 책의 추천사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썼다.

먼저 저자인 박선원 박사는 이 책의 맨 뒷부분에서 “문재인은 노무현의 아이콘일 뿐만 아니라 미래의 아이콘이고 여성, 젊은 층, 지역 등 그동안 우리가 획득하지 못했던 부분, 이명박이 가져갔던 것을 우리가 되가져 올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2010년 12월에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회장과 소장을 데려와 문재인 이사장과 양산 통도사에서 만나도록 주선한 사실도 털어놓았다. 이른바 문재인 대권행보에 총대를 멘 셈이다.

이같은 저자의 실천적 정치행보도 돋보이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참여정부 시기 북핵외교와 남북정상회담을 담당했던 주역 중 한명이 최초로 전 과정을 밝혔다는데 의미가 있다.

문재인 이사장이 『운명』에서 자신의 저작이 출발점이 돼 각 분야별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시기의 실상이 알려질 수 있도록 후속저작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했는데 저자의 이 책이야말로 참여정부 시기 통일외교안보전략 분야에서 그 같은 바람을 충족시키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종석 “문성근 씨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맨 왼쪽)의 사회로 진행된 북콘서트에는 이종석 전 장관, 저자, 송영길 인천시장 등이 함께했다. 송영길 시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박선원의 『하드파워를 키워라』 첫 장면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초인 2003년 4월초 안보관계장관 간담회의 생생한 장면부터 펼쳐진다. 북측에서 고위급 특사 파견과 식량지원을 요청한데 대한 검토회의였다는 것.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면서 매우 격렬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문희상 비서실장, 신건 원장,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격렬하게 반박했다... 결국 대통령은 남북 장관급회담을 통해서 식량 지원은 하되 특사는 보내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그룹의 손을 들어주었다. 남북관계의 중요한 계기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21쪽)

이후 2003년 12월말 문성근 씨를 대북특사로 보냈고 “그때는 주로 남북관계의 발전 방향, 평화번영 정책, 북한비핵화 필요성 등 노 대통령의 기본 입장을 이해시키는 데 주목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북콘서트에서 이종석 전 장관은 “사실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은 2003년 4월부터 있어서 문성근 씨를 특사로 대통령께서 보내시고 제가 담당했는데 저는 문성근 씨를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왜냐하면 문성근이라는 사람이 갖다 와서 지금까지 위키리크스로 인해서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단 한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대한민국 국정원장은 일만 생기면 말을 하는데, 참여정부에서 보낸 문성근 씨는 물론 대통령의 특사였지만 민간인이었지만 무용담으로라도 이야기할 텐데 안 했다”고 증언했다.

결국 제 2차 남북정상회담은 북미간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 해결이 지연되면서 “실제로 정상회담 조건이 갖춰진 게 2007년 6월경”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아프간 인질사태 해결을 위해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과 박 비서관이 현장에 투입돼 문재인 비서실장 대신 김만복 국정원장이 대북 특사 역할을 맡았다고 밝혔다. 아프간 인질문제 해결과정에서 저자가 인질들과 맞교환 될 뻔했던 일화는 책에서 직접 확인해보길 바란다.

BDA 문제 해결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한 박 비서관은 그 전말을 이 책에서 상세히 적고, 그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중재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폴슨 미 재무장관과 사진을 찍은 에피소드도 밝혔다.

“내가 북한을 설득하겠다. 그런데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한미 양국 사이에 합의됐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나는 당신네 장관과 사진을 찍어야 되겠다.”

남북정상회담 발표 두세 시간 전에 미국에 통보

▲ 참여정부 시절 호흡을 맞춰 일했던 이종석 전 장관(오른쪽)과 저자.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갑자기 하루 더 머물고 가라는 제안이 나온 배경에 대해서는 “사실 전략팀 방에 있었던 (국정원) 서(훈) 차장과 나는 그 말의 배경을 알고 있었다. 2005년에 우리가 처음 정상회담 얘기를 꺼내면서 한 이야기였다. 대화가 잘 통하면 하룻밤 더 묵으면서 허리띠 풀고 밤새 한민족 역사를 다시 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설득했었다. 우리가 그렇게 얘기한 걸 김정일 위원장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다 보고를 하지만 우리는 대통령께 그런 내용까지는 보고하지 못했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고 밝혔다.

또한 정상회담 발표 당일인 2007년 8월 8일 오전 7시 이후에야 백종천 안보실장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박선원 비서관은 데니스 와일러 선임보좌관에 통보했고, 송민순 외교장관이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알려줬다고 기록했다. 공식 발표 두세 시간 전에야 통보받은 미국 입장에서는 화가 날만한 일이었으리라.

무엇보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한미동맹에 관한 문제이다. 책 제목 ‘하드파워를 키워라’도 사실은 이 주제와 연관돼 있다.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 지향적인 대외정책을 쓰되 내부적으로는 힘을 길러서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며 “구체적으로는 한미동맹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으로는 대한민국의 진취적인 장래가 온전히 확보되지 않는다고 봤다”고 서술하고 있다. 참여정부의 북핵외교와 동북아균형자론 등이 모두 이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매번의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관계자를 보내 ‘개념계획 5029’나 ‘평화체제’와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미국과 사전 조율을 시도했고, 그래도 안 될 때는 대통령 자신이 뚝심으로 돌파한 많은 일화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노 대통령 ‘한국전쟁’ 발언, 윤영관 외교장관 조언 따른 것

▲ 노무현과 함께한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 - 하드파워를 키워라』(열음사) 표지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런 과정에서 나온 “한국전쟁 때 미국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라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윤영관 당시 외교장관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고, 저자는 “우리의 잘못이 결국 대통령께 부담이 되어 이후에 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갖게 했던 것 같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기 한미 간에는 전시작적권 이양, 이라크 파병, 한미FTA, 북핵 문제 등 굵직한 현안들이 첩첩이 쌓였고, 이같은 문제들을 풀어가는 과정을 실제 주역으로 참여한 저자가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참여정부의 안보전략에 관한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는데 이 책은 필독서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북콘서트에서 “우리 대통령은 좀 이상한 분이다. 이지스함 나간다고 하고, 장보고함 개발한다 하고,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들여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회고하고 “제일 좋아하셨던 것이 동영상이다”고 밝혔다. 이 동영상은 우리가 개발한 OOOOkm급 순항미사일이 오차범위 40cm 내에 명중된 20분짜리로 노 대통령은 2006년 7월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시험에도 이 때문에 안보위협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든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참으로 외롭고 힘든 싸움을 벌여왔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고뇌에 찬 순간을 보내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면서도 “평화와 신뢰, 대화와 타협을 위해 우리도 국력에 걸맞는 자주국방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은 무엇보다도 강력했다”고 정리했다.

참여정부의 공과 과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함께 재평가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직 본격적인 재검토 작업이 충실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발간이 2012년 양대 선거에서 통일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저자의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저자는 문재인 이사장 대권 프로젝트와 자신의 정치권 진입이라는 좀더 구체적인 목표에 관심이 더 클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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