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타계했다. 조선중앙TV는 19일 낮 12시 특별방송을 통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김 위원장이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시였다”고 알렸다. 급서(急逝)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발표문은 김 위원장이 “강성국가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노고와 심혈을 바치시며 초강도의 현지지도 강행군 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순직하시였다”고 알렸다. 과로로 인한 순직(殉職)이라는 것이다. 또한, 북측은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되었다”고 밝혔다. 사인(死因)이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성 쇼크사라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은 김 위원장의 사망과 관련 그 원인 및 상황과 관련된 일체의 것을 명백히 밝혔다. 그 이유는 ‘은둔의 나라’ 북한이 최고 지도자의 죽음을 두고 불거질 수 있는 세간의 억측과 논란을 앞서 차단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사망하자 세간의 관심은 두 가지로 쏠렸다. 하나는 ‘후계자’ 김정은의 권력 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질 것인가의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의 문제다. 전자에는 ‘29세의 풋내기’, 후자에는 ‘예측 못할 도발’이라는 기우가 숨어있다. ‘대국상’(大國喪)에 처한 북한은 당연히 중심을 잡고 평화를 추구할 것이다. 마침 북한은 위에서 언급한 발표문을 통해 이 두 가지 우려를 불식시켰다. 김 위원장의 사망시각과 발표시각에서는 만 이틀 이상이 차이난다. 이 시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상상은 어렵지 않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북한이 내부 수습을 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틀 만에 부고와 사망원인, 장의위원회 구성 등을 일사분란하게 마무리지었다. 특히 발표문에도 나왔듯이 김정은 부위원장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대를 잇는 ‘백두혈통’임을 명확히 했다. 놀라운 건 이 모든 사안들이 외부세계가 전혀 모를 만큼 철통 보안 속에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북한에 악의를 품은 세력이라도 꼬투리를 잡을 여지를 없앤 것이다. 북한이 정상국가로서 위기관리시스템이 온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김정일 위원장은 누구인가? 1942년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난 고인은 69년 동안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북측은 발표문을 통해 김 위원장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민족 최대의 국상과 혹심한 자연재해 속에서도 그 어떤 원수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핵보유국으로 전변’시킨 점, 둘째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받들어 강성대국건설의 웅대한 목표를 제시’한 점, 셋째 ‘우리 민족끼리의 숭고한 이념이 실현되는 6.15통일시대를 열어’놓은 점, 넷째 ‘북한의 국제적 지위와 권위를 높여 인류자주위업 수행에 불멸의 공헌’을 한 점 등을 열거했다. 그런데 남측으로서는 아무래도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상이 깊다. 김 위원장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6.15공동선언을 내왔으며,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10.4선언을 내왔다. 권력적 차원에서는 남과 북이 보는 김 위원장의 공과(功過)가 다를 수 있겠지만, 민족적 견지에서는 김 위원장에 대한 공과가 다를 수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남과 북의 화해와 통일, 평화와 번영의 이정표를 세운 세 사람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렇지만 세 고인이 남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그 생명력으로 인해 앞으로도 놀라운 생활력을 발휘할 것이다.

문제는 김정일 사후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의 향방이다. 이는 남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 남측 당국은 1994년 김일성 주석 타계시 김영삼 정부의 태도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유고를 당하자 일방적으로 북한의 붕괴나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대국상을 당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북한으로서는 천추의 한이 된 것이다. 남측 당국은 조의를 표명하고 나아가 조문을 해야 한다고 본다. 북측은 국가장의위원회 공보를 통해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한다”고 밝혔다. 여기 ‘외국’에는 남측과 제외동포가 제외된다는 점이다. 북한이 보는 ‘민족’ 개념은 ‘남.북.해외’를 통칭하는 것이다. 이미 재일 총련은 민족 구성원으로서 조의대표단을 북측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남측 당국이 조문단을 보낸다면 이는 그간 이명박 정부 4년간의 남북 대결관계를 일시에 화해 분위기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건상 당국 차원의 조문단 파견이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민간 차원의 조문단 방북이라도 허락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타계로 남북이 ‘하나의 민족’임을 입증할 수 있는 호기(好機)를 실기(失機)해선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