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성주 (KAL858기 사건 연구자)


▲ 서울 주재 호주 대사가 작성한 1988년 1월 15일자 KAL858기 사건 관련 대외비 문서 166쪽. ‘친필지령’에 대해 “핵심사항이지만, 증거가 있는가?”(A key point, but is there evidence?)라고 적고 있다. 
[사진제공 - 박강성주]
서울에서 작성된 1987년 12월 22일자 문서에 따르면, 여성 용의자가 아직 말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HAS NOT YET TALKED), 그럼에도 한국 당국은 북쪽 관련 고리를 보여줄 강력한 증거가 드러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118쪽). 이는 요약된 내용인데, 문서의 내용 자체는 모두 지워져 있다. 한국은 김현희의 ‘자백’이 있기 전 결론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1987년 12월 24일자 문서는 버마 랑군에서 작성되었다. 버마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정황 증거로 볼 때 북쪽 책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었다. 곧, 북쪽 공작원들은 체포가 되었을 때 흔히 자살을 시도한다는 것이다(120쪽). 아울러 일본의 적군파의 경우 자살을 절대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988년 1월 12일자 문서는 당시 주한 호주 대사가 직접 작성하였다. 브로이노브스키 대사는 하루 전날 어떤 이(조 아무개)와 점심 식사를 같이 했는데, 이 관계자는 김현희가 자백을 했으며 북쪽 고위 관료의 딸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형을 당할 것 같지는 않으며, 나아가 한국 사회에 새롭게 정착할 수 있는 기회(REHABILITATION INTO THE SOUTH KOREAN SOCIETY)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135쪽). 다시 말해, 정부는 공식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전부터 김현희에 대한 사면을 계획하고 있었다.

미국 워싱턴 대사관에서 작성된 1988년 1월 13일자 문서에 따르면, 미국 관계자는 한국의 수사발표 기자회견 관련해 그 (빠른) 속도를 우려하고 있었다(138쪽). 그리고 한국은 미국에게 그 발표를 빨리 지지해줄 것을 촉구할 예정이었는데, 그러한 지지는 시간 제약상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금 단계에서 결과의 신뢰성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였다.

친필지령, “증거가 있는가?”

호주 대사가 작성한 또 다른 문서는, 한국 정부의 공식 수사발표 자료에 대한 것이다. 대사는 몇몇 흥미로운 사진들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들이 1월 16일-17일 언론에 널리 사용되었다고 적었다(147쪽). 물론 여기에는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이른바 김현희 ‘화동사진’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언론이 북쪽을 비난하고 있지만 군사적인 보복이나 제재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호주 대사의 문서는, 한국 외무부가 각국 대사들을 위해 가진 설명회와 관련된 것이다. 여기에는 안기부가 각색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현희가 여성 조사관의 가슴에 파묻히며 구체적으로 자백을 하기 시작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대사는 발표가 설득력이 있었다며 언론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적고 있는데, 만약 언론이 이를 자극적으로 다룬다면 북에 강하게 보복하라는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163쪽).

한편 똑같은 내용의 문서에 누군가의 메모가 첨가된 문서도 별도로 있다. 이 공작이 김정일 현 위원장의 ‘친필지령’을 통해 지시되었다는 부분에 대해, 이 관계자는 “핵심사항이지만, 증거가 있는가?”(A key point, but is there evidence?)라고 적었다(166쪽). 그리고 김현희가 침대를 북쪽 식으로 정리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것이 남쪽과 다르단 말인가?!”(Is this different from the south?!)라며 다소 의아함을 표시했다(167쪽).

1988년 1월 18일자 문서는 중국 베이징에서 작성되었다. 이 문서는 사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전하고 있는데, 중국의 조심스러운 중립적 입장은(CAREFUL NEUTRALITY), 보통 한반도 문제에서 북을 지지해왔던 관행을 생각했을 때 약간 의외라고 적고 있다(170쪽).

같은 날 작성된 또 다른 문서는 호주 정부가 사건 결과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한국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호주는 한국 발표에 따른다면 북쪽 정보기구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김정일 현 위원장이 서울 올림픽경기를 방해하기 위해 공작을 지시했다는 결론을 완전히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증거를 조심스럽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며(EXAMINE THE EVIDENCE CAREFULLY) 신중하게 접근했다(171쪽).

같은 날 미국 워싱턴에서도 문서가 작성되었는데,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이 북에 절제되고 책임있는 방식으로 대응하도록 권유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81쪽).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한국의 대응은 절제된 것이었다며 이유는 올림픽경기와 민주화과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1988년 1월 18일 호주-중국 군축회담이 있었는데, 문서에 따르면 호주는 회담 관련 저녁 식사 자리에서 KAL기 사건을 언급할 계획이었다. 회담 관계자는 호주의 입장, 곧 북쪽 공작원이 관여했을 가능성은 많이 있지만, 김정일 현 위원장이 개인적으로 개입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unable to assess whether Kim Jong-il was personally involved)는 내용을 전할 예정이었다(189쪽).

1988년 1월 21일자 문서는 서울에서 작성되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북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을 얻어내려 많이 애쓰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정부들은 이 사건을 북쪽과 직접 연관시키기를 꺼려하는(RELUCTANT TO MAKE THE DIRECT CONNECTION WITH NORTH KOREA) 상황이었다(216쪽).

모스크바에서 작성된 1988년 1월 20일자 문서는 북쪽이 가졌던 기자회견에 관한 내용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관영통신사인 <타스> 보도에 사건에 관한 언급이 적은 것은 그만큼 당시 소련이 공개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 아울러 그동안 우호 국가들의 기자회견 때와는 다르게 통신사가 북쪽 기자회견을 미리 홍보하지 않았다는 점도 덧붙였다(223쪽).

앞에서 언급했듯이 호주는 한국의 지지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었다. 빌 헤이든 당시 호주 외무부장관의 경우, 처음에는(earlier) 누가 했는지를 지칭하지 않은 상태로(without identifying a perpetrator) 우려와 비난을 표시해야 한다고 느꼈다(229쪽). 왜 처음에 그렇게 느꼈는지에 관한 부분은 지워져 있다. 참고로 논의 결과 헤이든 장관은 1988년 1월 22일 공식 성명을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북쪽의 책임을 짧게 언급하는 대목이 포함되었다(249쪽).

호주 비밀문서의 의미

이상으로 이번에 공개된 호주 외무부의 비밀문서를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호주 문서는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그 분량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는 호주가 다른 영어권 국가(미국, 영국)와 비교했을 때 자체 청문회를 열지도, 유엔 안보리 논의에 참여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의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많은 자료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이냐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99건의 문서 중 완전 공개된 문서는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부분 또는 완전 삭제된 내용들은 대부분 호주-한국의 관계에 해를 끼칠 위험(damage to our relations with the Republic of Korea), 또는 국가들 사이의 비밀유지 준수 등이 그 이유였다.

다음으로 이제까지 공개된 다른 국가들 문서와는 달리, 북쪽의 입장이나 그 관련 기록들이 ‘비교적’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북쪽이 냈던 거의 모든 공식 성명들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아울러 역시 다른 국가들 문서와 비교했을 때, 해외주재 대사관들의 문서가 자주 보인다는 점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호주는 (적어도 문서상으로) ‘북쪽의 관여 가능성은 많지만 김정일 현 위원장의 지시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는 입장을 지녔던 것 같다. 이는 첫 번째 글에서 언급된 당시 호주 대사의 말과 비교적 일치하는 것이다(참고로 그는 올림픽 겨냥 부분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끝으로 덧붙인다면, 호주 비밀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개인 연구차원에서’ KAL858기 사건 관련, 지금까지 5개국에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국가들은 한국, 미국, 영국, 호주, 그리고 스웨덴이다(한국과 미국의 경우, 다른 분들도 청구를 하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5개국에 대한 동시 정보공개 신청을 하며 느낀 점을 따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2011년 11월 29일, 사건의 24주기 추모일이 다가온다. 115분의 실종자와 그 가족분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사건과 관련이 있을 또 다른 많은 분들. 이유는 다르겠지만, 저마다 사건과 관련된 삶의 무게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 씨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 방식은 다르겠지만, 그 무게들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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