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된 리영희 선생의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는 남침 위협을 밥먹듯이 외쳐대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역작이었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차단된 속에서 정부나 보수세력이 걸핏하면 북한의 무력침공 위험을 부풀려 국민들에게 협박을 일삼던 시대가 비로소 막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김병욱의『현대전과 북한의 지역방위』(도서출판 선인) 표지.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국민들은 다시금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경계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군은 어떤 때는 고물이 다 된 무기에 석유도 부족해 제대로 훈련조차 못하는 내일 모레 쓰러질 집단이 됐다가, 어떤 때는 우리 군인들을 가볍게 따돌리고 최첨단의 무기를 휘두르며 우리를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탈북자 출신 ‘북한학 1호 박사’라는 타이틀(?)을 단 김병욱이 자신의 박사 논문을 책으로 펴낸 『현대전과 북한의 지역방위』(도서출판 선인)는 북한 내부의 지역방위에 관한 연구를 통해 북한이 걸어온 길과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즉, 북한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보기 드문 북한 군 관련 길라잡이인 것이다.

저자는 북한의 지역방위체계가 1950년대는 정규무력에 의한 ‘정규무력 지역방위체계’에서 출발해 1960년대 정규무력의 주도적 역할과 비정규무력이 지원하는 ‘정규무력 중심 지역방위체계’로 변화했고, 1990년대 민방위무력의 자립적 역할을 중심으로 정규무력이 지원하는 ‘민방위무력 중심 지역방위체계’로 전환되었다고 논하고 있다.

이같은 북한의 지방방위체계의 변화는 북한의 국가방위체계가 1950년대 공격적인 방위전략 -> 1960년대 공세적인 방위전략 -> 1990년대 생존적 방위전략으로 바뀌어 온 것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특히 1990년대 민방위무력 중심 지역방위체계 등장의 배경에는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상황 악화, 소련과 중국의 군사 지원정책 변화, 걸프전의 교훈 등이 놓여있다고 분석해 북한의 수세적 대응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지금의 북한 민방위무력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노동적위군과 지방군의 형성에서부터 변천, 현재를 상세히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붉은청년근위대, 속도전청년돌격대, 건설돌격대, 노동적위대 고사총부대 등까지 다양한 민방위무력을 다루고 있다.

또한 전시군수생산체계와 지역방위 지휘체계 등 전문적인 내용이 다양하게 수록돼 있으며, 관련 도표만도 여럿이다.

저자는 “민방위무력 중심 지역방위체계는 지역내 민수산업의 군수화를 통해 가능한 것”이라며 “이는 민수품의 생산규모가 축소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북한사회에서 민생난을 지속시키는 원인의 하나”라고 꼽았다.

또한 “향후 북한은 민방위무력의 정규무력화를 강하게 추진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에 따라 민방위사령부가 진행하는 후방군단을 통한 민방위무력에 대한 군사실무적 지도가 주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책을 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 노동적위대가 노동적위군으로 강화됐고, 왜 인민군 창건기념일 등에서 노동적위대가 퍼레이드의 주축을 이루는지, 2003년 민방위사령부 신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다.

막연한 북한 군사력에 대한 위협의식 보다 북한의 지역방위를 통해서 북한의 전시대비 태세는 물론 선군시대 북한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중요한 창을 제공하고 있다.

사족을 달면, 사실 저자 김병욱은 엄밀한 의미에서 탈북자 출신 ‘북한학 1호 박사’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미 현성일 박사 등이 북한 연구로 먼저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좁은 의미에서의 ‘북한학’ 박사 1호 타이틀은 저자에게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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