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전 경희총민주동문회 사무국장)

지난 2008년 가을 평양과 백두산 등을 참관했던 이창훈 전 경희총민주동문회 사무국장이 방북기를 본사로 보내왔다. 필자는 뒤늦은 방북기를 쓰게 된 이유를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 탓에 혹시라도 새 세대들이 통일에 무관심하게 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연재는 매주 토요일에 걸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편 : 프롤로그 - 나와 DPRK
2편 : 인천공항과 순안공항
3편 : 평양이야기 (상/하)
4편 : 백두산이야기 (상/하)
5편 : 묘향산과 못 다한 이야기들
6편 : 에필로그

모닝콜이 울린다. '어서 일어나시라우요' 이랬을까? 하여간 벨은 울렸고, 나와 주동욱 선배는 일어났다. 7시까지 호텔정문 앞에 집합!

서둘러 몸단장을 하고, 양각도 호텔 1층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아직 어제의 전장(?) 탓에 나의 속은 아주 불편하다. 어제의 용사들도 하나 둘씩 보인다. 김 대표, 김 기자와 인사를 나누고 생존의 기쁨을 누린다. 아침은 콩나물국이다. 어떻게 끓였는지... 아님 분위기 탓인지... 단박에 속이 풀어진다. 저절로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터진다.

그리고 또 하나, 어제 점심에 맛본 개인용 종지에 담겨 나오던 북녘땅의 김치다. 아, 이번에는 김치가 종지에 담긴 채 냉장고에 하나씩 보관되어 있다. 남녘의 어느 호텔에 가도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보는 이마다 다른 생각을 가질 테이지만 나는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북녘동포들의 소중한 손길을 느꼈다.

어제 저녁 단고기 집에서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단고기가 세계적으로는 ‘핍박을 받는 음식’이라 하지만, 그러나 민족음식임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북녘이 아직 세계와의 문호개방을 미루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단고기를 그리도 곱게 차려 내오는 남녘의 보신탕집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녘에서 보신탕은 불법음식이다. 도축도 불법이요. 음식 만드는 기준도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김치나 단고기에서 북녘 동포들의 애틋한 민족사랑의 감정을 느꼈다면, 굳이 지나친 감동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 모든 음식에 따라 나오는 북측 김치. 종지에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적당한 양으로 나오고, 물김치보다는 국물이 덜하지만 국물이 흥건하고 아주 담백하다. 나는 그 김치를 한 번에 서너 종지씩 먹었다. 남녘에서는 값이 비싸 가끔 ‘금치’가 되지만, 북녘에서는 김치를 자랑하는 뽐새로 ‘금치’이다. 지금도 군침이 돈다. [사진-이창훈]

다시 순안공항으로 이동한다. 속이 편해진 나는 부족한 잠을 청한다. 거리에는 분주한 아침 발걸음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 새벽 평양시가지를 보지 못했구나!' 서둘러 일어나 움직이는 바람에 그것을 하지 못했다. 내일 새벽은 백두산에서 보낼 테고, 마지막 날 새벽에는 꼭 일찍 일어나 평양의 새벽을 눈으로 보리라. 해 뜨는 것까지 보면 더욱 좋으련만...

비행기 흔들림에 잠시 잠에서 깼다. 비행기 창밖으로 보니 바다가 보인다. 대충 이동경로를 따져보니 동해바다로 판단된다. 남으로 내려가지 않는 이상 왼쪽이 육지고 오른쪽이 바다라면 동해가 틀림없다. 평양에서 직선으로 백두산을 가는 줄 알았더니, 평양을 출발해 동쪽으로 이동한 다음 다시 백두산을 향해 가는가 보다. 아마도 뭔 까닭이 있는 듯하다.

잠에서 완전히 깼다. 비행기 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날 한반도는 전역이 맑게 개인 날씨인가 보다. 위로는 파란 하늘이 보이고 아래로는 구름 한 점 없이 펑퍼짐한 땅이 보인다. 다들 알겠지만, 저 평평한 땅이 ‘개마고원’이다.

▲ 백두산 천지에서 바라본 개마고원. 어디선가 불이 났는지 허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혹시 산불이 났는가 싶어 안내원동무에게 ‘저것이 산불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간단히 대답한다. ‘작업중이라요’. [사진-이창훈]


개마고원의 정확한 면적을 산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가장 넓게 보는 것이 약 4만 평방킬로미터이다. 대략 유럽의 네덜란드와 비슷한 크기이고, 전라남도보다 약간 넓다. 그리고 그 고원의 곳곳에 2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섬처럼 우뚝 우뚝 솟아 있다. 그러다 보니 평지에서는 그 규모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고, 이렇게 하늘에서 봐야 개마고원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개마고원의 평균높이는 1300 미터라고 하니, 한반도의 지붕 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다.

개마고원(蓋馬高原)의 어원이 재미있다. 일단 한자말을 해석해 보면, 말안장이라는 뜻이다. 백두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땅의 패인 곳은 채우고 계곡을 채워 펑퍼짐하게 만들었으니, 억지로 해석하면 ‘말안장’이 맞을 수도 있다. 불편한 말 등에 사람이 편히 탈 수 있게 했다는 뜻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예전에는 백두산에 많은 이름이 있었다. 그중에 개마(蓋馬)산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래서 ‘개마산에 있는 고원이다’해서 개마고원이 된 것이다. 결국 말안장은 개마고원이 아니라 백두산인 셈이다. 하여튼 하늘에서 보는 개마고원의 풍광은 대단하다.

▲ 삼지연공항. [통일뉴스 자료사진]

삼지연공항에 내렸다. 한 50여분정도 걸린 것 같다. 인천에서 평양순안공항 가던 시간과 비슷하다. 이국적 풍광이다. 한반도의 유일한 밀림(密林)지대 한 복판이다. 북녘에서는 이곳을 ‘백두밀림’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 시절 김일성 주석이 백두밀림을 방패로 삼아 일본군과 수차례의 유격전을 벌여 상당한 전과를 올린 일도 있다. 내가 아는 ‘더운 지방의 제3세계 인민들이 정글을 무기로 제국주의와 싸웠다’는 이야기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공항 활주로나 건물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지만 공항을 둘러싸고 있는 풍광은 가히 절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삼지연공항은 넓디넓은 개마고원의 침엽수림 한 복판에 난 ‘큰 구멍’정도라 할까? 아마도 높은 하늘에서 삼지연 공항을 보았다면 그리 보였을 것이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을 막지 않았다면 곧이어 열릴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삼지연공항은 백두산 관광의 관문인 곳이다. 사실 북녘으로 치자면 삼지연공항은 아주 중요한 군사시설이다. 고지에 위치한 까닭도 있겠지만 백두밀림은 온전한 방어막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열어 남북화해의 길을 터보려 했건만, 무슨 생 원수가 졌다고 그 호의마저도 거절하는가.

지난 정부 시절 2005년에 나는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사업회연대회의’(추모연대)를 통해 ‘삼지연공항 피치 지원사업’에 참여하였다. 그때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함께 한 지원사업 모금활동에서 약 2억 원 정도를 모아 피치를 지원하였으며, 그 외에도 남북협력기금에서도 상당한 금액이 백두산 도로포장과 공항 피치 지원사업비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재정지원이 소용이 없게 되었다. 아마도 훗날 다시 백두산관광이 시작될 때쯤에는 그 노력을 다시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삼지연 공항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다. 누군가 옆에서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남녘에서 산길이라면, 소나무가 즐비한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대부분이건만, 여기가 내 나라 내 민족의 땅인가? 분명 해발 1500m의 고지대인 산중에서, 이런 평탄한 길을, 이런 곧은 길을, 나는 내 나라 내 땅에서 달려 본 적이 없다. 포장과 비포장도로가 연이어 이어진다. 그 양편으로 가을답게 노랗게 물든 이깔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림의 밀림이 끝없이 펼쳐진다.

▲ 백두밀림 사이로 난 길로 버스가 달리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그렇게 아득한 밀림 길을 사십 여분 달리니, 나무의 밀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숲에 가려져 있던 현무암 바위덩어리들이 나뒹구는 황량한 고원이 시작된다. 수목한계선을 지나고 있는 셈이다. 높이도 2000m 이상이다. 가파른 경사길 없이 완만한 고갯길을 몇 구비 넘고 돌아가더니, 저 멀리 높고 장대한 봉우리가 보인다. 경사길도 급해 보인다. 마치 예전의 대관령길을 버스로 오르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나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바닥은 현무암 돌로 닦아 길을 냈다.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가 캐나다에는 대리석으로 길을 닦아 놓은 곳이 있다고 하더니, 여기는 현무암 돌로 길을 닦아 놓았다. 아마도 현무암 포장도로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 백두산 천지를 향해 오르는 길은 현무암 포장도로 되어 있다. [사진-이창훈]

'백'번 올라야 '두'번만 보여준다는 백두산 천지가 열렸다. 천지의 하늘은 맑게 개였다. 파란 가을하늘이다. 온도는 영하 10도라고 하지만 가을 햇볕이 따가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산 정상에서 부는 바람만 없었으면, 봄 날씨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산 정상의 바람은 매섭게만 분다. 그늘진 곳에는 어제 내린 눈이 남아 있다.

목이 메인다. 거대한 천지의 풍광 탓도 있고, 소중한 경치가 첫 방문에 내 눈앞에 펼쳐졌다는 감격도 있었겠으나, 무엇보다 조국이 분단되어 있어 이곳을 이리도 힘들게 와야 하는 내 처지에 대한 설움 탓이다. 차라리 이곳이 내 민족의 땅이 아니었으면, 맘 편히 좋은 구경하고 돌아가는 것인데... 천지 저 건너편의 땅! 만주의 땅까지 내 민족의 숨결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마치 이국살이에 지친 해외동포가 겨우 마련한 차비로 조국을 밟고 선 심정과 같다고나 할까? 할머님께 인사말까지 하고 나니 그 설움이 더 복 받쳐 오른다.

▲ 백두산 천지에서 - 좌측이 방북을 함께 한 주동욱 선배이다. [사진-이창훈]

안내원동무의 긴 설명이 다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이리 저리 기념촬영에 바쁜 척 해보지만, 다시 돌아 천지의 그 깊은 물을 쳐다만 봐도... 천지를 둘러싼 기세 좋은 산봉우리들만 봐도... 홧김에 속으로 한마디 한다.

“내 다시 너 천지를 보러 오지 않으리, 통일이 되기 전에 내가 다시 너를 보러 온다면 난 사내도 아니다.”

그렇게 만감이 교차하는데, 어느 새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까지 올라왔다. 여기가 한반도의 꼭대기다. 저 반대편 쪽은 중국이다. 중국 쪽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왔나보다. 그 먼 거리인데도 사람 움직임을 미약하나마 볼 수 있다. 그들은 이쪽을 바라보면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천지는 너무도 넓고 아를다웠다. 천지에 산천어들이 많이 산다고 한다. 그 산천어 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아마 나는 오늘 저녁, 베개봉호텔에서 그 산천어 구이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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