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전 경희총민주동문회 사무국장)

지난 2008년 가을 평양과 백두산 등을 참관했던 이창훈 전 경희총민주동문회 사무국장이 방북기를 본사로 보내왔다. 필자는 뒤늦은 방북기를 쓰게 된 이유를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 탓에 혹시라도 새 세대들이 통일에 무관심하게 될까 하는 우려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연재는 매주 토요일 6회에 걸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편 : 프롤로그 - 나와 DPRK
2편 : 인천공항과 순안공항
3편 : 평양이야기
4편 : 백두산이야기
5편 : 묘향산과 못 다한 이야기들
6편 : 에필로그

이명박 정권에서 마지막 대규모 민간방북

딱 삼일이었다. 겨우내 쌓여있던 집 앞 마당의 눈이 다 치워졌다. 마당 시멘트위에 달라붙어 도저히 떼어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얼음덩어리들이 영상의 날씨가 삼일동안 이어지자 삽으로 이리 저리 쳐대니 ‘똑’하고 떨어져버린 것이다. 얼어붙은 남북관계에서도 민족화해 기류만 형성돼도, 사람이 오고가고 물자가 오고가고 민족이 오고가는 것인데, 이 정권에서는 올 겨울 날씨처럼 며칠의 상온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삼 년 전 남북화해의 기류를 타고 북녘땅을 밟은 나는 마치 말로만 듣던 미지의 세계를 찾아가는 탐험가의 심정이었다. 나는 2007년에 금강산 관광을 다녀온 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방북이 실감나지 않아 꿈이려니 했지만, 북녘의 심장부인 평양과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간다는 것은 더더욱 큰 감동이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설렘으로 인해 방북 전날 밤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청계천 행사를 마치고 소주를 몇 잔 걸친 탓에 더 잠은 안 오고 머릿속은 이런 저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방북을 마치고 돌아와 할머님에게 드릴 선물과 이야기를 준비해야한다는 계획부터 카메라 배터리 충전이 잘 됐는지, 여벌의 옷들은 잘 챙겼는지, 혹시 준비물에서 빠진 것은 없는지 등등, 그리고 혹시라도 이 정권이 방북을 불허할 수도 있다는 걱정까지...

앗, 이런! 집결시간보다 삼십분이나 늦게 인천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미아삼거리에서 가장 이른 공항버스를 탔는데도 불구하고 예정된 6시 반이 훌쩍 지난 7시가 다되어서 도착한 것이다. 다행히도 나의 도착시간은 그리 늦은 것은 아니었다. 약속장소에서 ‘평화3000’ 관계자들이 방문단 성원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있었는데 나의 이름을 부를 무렵 내가 도착한 것이다. 게다가 남북 항공운행 담당자들 간에 협의가 늦어져 전세기 출발시간이 한 시간이나 늦춰졌다고 하니, 그제야 좀 여유를 갖게 되었다.

▲ 평양전세기 안내전광판- 나에게는 ‘전세기’를 타본다는 말도 처음이지만, 평양 가는 비행기를 탄다는 말도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평양전세기’ 이 다섯 글자가 주는 놀라움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사진-이창훈] 

출국수속 장소에는 안면이 익은 분들이 여럿이 있었다. 그중에 반가웠던 분은 바로 1974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돌아가신 도예종 선생의 미망인이신 신동숙 여사였다. 신 여사는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가 마련한 ‘북녘 통일나무심기사업을 위한 평양 양묘장 참관단’ 방북 팀에 참여하고 있었다. 또, 민가협의 권오헌 선생이 교통사고로 방북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다. 이번 우리를 데려갈 평양행 전세기에는 삼백여명이 탑승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에서 이처럼 대규모 민간방북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한 가운데 '평화3000'과 '겨레하나'의 방북단은 설레는 가슴을 안고 전세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움직입니다

둥! 둥! 둥!
비행기가 움직입니다.

둥둥! 둥둥! 둥둥!
민족화해는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합니다.

둥둥둥! 둥둥둥! 둥둥둥!
덩달아 나의 심장박동 수가 늘어납니다.

둥둥둥둥둥… 두~웅!

지금은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방북하지만, 돌아올 때는 고려항공을 타고 김포공항에 내릴 것이라고 한다. 비행기는 서해상의 NLL끝까지 갔다가 서해공해상을 거쳐 다시 한반도 영역으로 들어와 평양순안국제공항(平壤順安國際空港)에 착륙한다고 승무원이 이야기 한다. 직항로라고는 하지만 진짜 직항로는 아닌 셈이다. 승무원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안내멘트에도 간간히 우리를 부러워하는 기색이 보인다.

평양 날씨며 다음날 예정되어 있는 백두산 기상까지 안내를 한다. 아마도 세계 곳곳을 가보는 그들도 아직 평양은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지나자 바다만 보이던 비행기 창문 밖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가옥들이 보이고 바둑판처럼 정열이 된 논과 밭들이 보인다. 논은 가을걷이를 했는지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다. 비행시간이나 풍광으로 보면 김포에서 제주도에 가는 길과 같았다.

고막이 몇 차례 울렁거리더니 비행기 바퀴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린다. 비행기의 속도를 줄여대는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순간 머릿속이 텅 빈 듯하다. 비행기 승무원들이 도착했으니 짐을 챙겨 순서대로 내리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때까지도 그 멍한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과연 내가 정말 평양에 도착 한 건가?’

출발 전 한 지인이 농인지 진심인지 모를 말투로 평양에 도착하면 바로 비행기장에 엎드려 바닥에 키스를 하란다. ‘인증샷’도 찍고... 그러나 그 멍한 기운에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할머님 이곳이 평양입니다”

▲ '평화3000' 평양-백두산 방문단이 평양순안공항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비행기가 도착하니 이미 북측 안내원들이 탑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지점까지 다가와 서있다. 사람들이 내려오니 일일이 방문예정자 명단과 대조를 해가며 확인한다. 그리고는 바로 공항버스에 올라타 정해진 공항환영장소로 이동한다. 환영단도 있었다. 순안공항의 직원들로 보이는 일단의 여성들이 꽃을 흔들며 일제히 “반갑습니다”하며 환영한다. 그리고 남측에서 온 기자들과 북측의 기자들이 촬영을 시작한다.

기념촬영을 한다고 순안공항을 배경으로 방문단이 줄 맞춰 섰다. 나도 내 키에 맞춰 자리를 찾아 섰다. 카메라에 눈을 맞추다 활주로로 눈을 돌렸다. 서로 다른 태극마크와 별마크를 부착한 똑같이 생긴 비행기 두 대가 마주보고 있었다.

▲ 순안공항에 도착한 대한항공 - 우리 땅의 가을 날씨는 어딜 가도 저리 푸르다. 날씨만 봐도 우리 민족의 숨결이 담겨있는 땅인지 아닌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순안공항에 외로이 놓여 있는 저 남녘의 큰 비행기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진-이창훈] 

간단한 입국수속이 시작되었다. 입국심사대 앞에 방문단이 순서대로 섰다. 나의 차례가 되고 나는 순항공항 직원 앞에 섰다.

딱딱하다. 나의 눈은 눈물로 글썽한데, 울음이라도 터뜨릴라 치면, 마치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이 무서워 보이는 선생님을 마주한 것처럼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일상처럼 대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평생 간직해온 그 설움의 울음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만약 혹시라도 그들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오누이처럼 나를 반갑게 안아주었다면, 반세기 울분에 참아야 했던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민족적 설움을 맘껏 토해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곧 왔다. 나는 마음껏 울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면서 말이다.

이렇게 나의 첫 평양방문의 일정은 시작되었다.

“아~, 할머님 이곳이 평양입니다. 할머님이 평생토록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신 평남 순천이 여기서 지척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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