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가 기로에 섰다. 이명박 정부 3년, 오바마 정부 2년이 되도록 남한과 미국은 북한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줄곧 대북 제재정책을 폈고, 특히 남북관계는 지난해 사상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새해 들어 한반도 정세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같은 변화의 조짐이 우연히 생긴 것은 아니다. 지난해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와 남북 간 연평도 포격전이 올해 정세변화를 주도할 쌍끌이 사건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 쌍끌이 사건이 만나는 접점이 다름 아닌 6자회담 개최다. 우라늄 농축 문제의 해결은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가능하고, 서해 해상 NLL(북방한계선) 문제와 정전협정 문제는 그 해결이 6자회담과 병행할 평화협정회담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쌍끌이 사건이 각각 지향하는 목적지의 노루목에 있는 게 6자회담이라는 것은 확연하다.

따라서 지금 형국은 너나할 것 없이 6자회담을 열어야 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이유는 6자회담이 오랜 기간 폐쇄됐기에 6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과 한반도 평화협정회담을 진행하기 위해 6자회담을 병행해야 할 입장이고, 중국도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주재국으로서 6자회담을 열어야 할 입장이다. 미국 역시 북한의 우라늄 농축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할 입장인데 동맹국인 남한이 완강히 버티고 있어 난감한 처지이다. 남한은 지난해 악몽과 같은 천안함 침몰사태와 연평도 포격사태로 인해 웬만해선 북한과 대면하고 싶지 않은 심정일 테다. 이렇게 보면 남한만 빼고 대개가 6자회담 재개를 원하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전원 합의를 지향하는 6자회담 특성상 남한을 제치고 6자회담으로 바로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미.중.일.러가 고안해 낸 게 다름 아닌 남북대화 우선이다. 선(先) 남북대화-후(後) 6자회담,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의 심기를 좀 누그러뜨리자는 것이다. ‘전략의 나라’ 북한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새해 들어 북한의 대남 대화공세가 계단식으로 상승하면서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남북 간 대결상태 해소’ 의지를 천명하고, 5일 ‘정부ㆍ정당ㆍ단체 연합성명’에서 ‘조건 없는 남북 당국 간 회담’ 개최를 제안하고 나섰다. 그리고 8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담화를 통해 당국 간 회담뿐 아니라 적십자ㆍ금강산 회담 등 다양한 분야의 회담을 제안했으며, 아울러 지난해 남한의 5.24조치에 따른 대응조치로 폐쇄했던 판문점 적십자 연락채널과 개성공단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복원 의사도 밝혔다. 속도감도 그렇지만 내용에 있어서의 파격성도 가히 현기증이 날 정도다. 북한의 유화공세는 물론 남북대화를 하자는 것이지만 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미대화와 평화협정회담을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남한이 당혹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남한이 북한의 ‘조건 없는 대화’를 뿌리치긴 어렵다. 가뜩이나 지난해 12월 20일 국제사회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평도 해상 사격훈련을 강행한데다가 이번에 북한의 대화 제의마저 거부한다면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이에 남한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낸 게 ‘진정성’이다. 남한은 북한이 공동사설에서 밝힌 ‘남북 간 대결상태 해소’와 연합성명에서 제의한 ‘조건 없는 남북 당국 간 회담’ 개최에 대해 “진정성이 없다”고 평가절하 했으나 조평통 담화에 대해서는 “내용과 의도, 배경에 대해 검토해보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는 식의 북한의 유화 공세에 남한이 ‘진정성’이라는 잣대로 마냥 거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맹국인 미국이 묘한 스텐스에 있다. 북한이 지난해 공개한 우라늄 농축 문제로 인해 미국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사실상 파탄났다. 당장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새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처지이다. 그럼에도 동맹국을 고려해 인내심을 갖고 남북대화 선행을 내세웠다. 그런데 남한이 계속 ‘진정성’ 운운하면서 뻗댕기면, 미국은 남한에 대한 인내심 고갈로 직방으로 대북 대화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 경우는 남한에 있어 최악이다. 판단할 시간이 많지 않다. 다행히도 정수가 있다. 남한이 국제사회에 ‘진정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조건 없이 남북대화를 수용하고 이참에 6자회담까지 가는 것이다. 그것이 북한의 예봉(銳鋒)에 맞대응하면서 동맹국 미국의 입지를 넓혀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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