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 리영희 선생이 5일 별세했다. 직업인으로서 그의 삶은 크게 언론인(1957-71)과 언론학자(1972-99) 시기로 나눠진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언론’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그 이유는 그가 세상을 바라본 남다른 시각과 진리를 찾고자하는 열정적인 탐구정신 때문이다. 지난 세기 동서냉전과 군사독재가 판을 치는 시대에, 그에게 있어 ‘언론’이란 단지 시대와 역사를 투시하는 하나의 창(窓)이었을 뿐이다. 한 탁월한 인간의 죽음을 두고 그의 삶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마침 그의 타계를 두고 언론과 학자들이 여러 별칭을 불러주고 있다.

‘사상의 은사’, ‘의식화의 교사’, ‘시대의 지성’, ‘실천하는 지식인’, ‘지성인의 양심’, ‘시대의 양심이자 스승’, ‘야만의 시대’에 맞선 ‘이성의 시대’ 개척자, ‘한국 진보계의 대표적 학자’, ‘한국 현대 지성사의 큰 별’,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한국 현대사의 증인’,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이자 실천가’, ‘엄혹한 1970년대 젊은이들의 사표(師表)가 된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80년대를 산 모든 젊은이들의 정신적 지주’, ‘우리 사회의 행동하는 지성의 표상’, ‘군부독재 시절 많은 지성인들에게 용기의 상징’,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의지와 열정’,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한길을 걸어간 분’ 등등...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의 진가(眞價)에 접근하기가 부족하다. 말의 상찬(賞讚)이자 고인에 대한 상투적인 예의일 수도 있으니까. 물론 그가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차례의 해직을 당하고, 반공법·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구속·감금을 당했다는 경력도 그의 진면목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하나의 현상일 뿐 본질에 접근하진 못한다. 아마도 리영희를 가장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저서가 아닐까 한다. 다행히도 그는 그의 사상과 지적 편력을 정리한 매우 주목할 만한 저서들을 남겼다. 그가 남긴 저서야말로 그를 이해하는 진수(眞髓)다. 그가 삶에서 사고와 실천을 일치시키고자 했다면, 그의 저서는 그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뛰어난 저술가였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건 책 제목이다. 그의 저서는 물론 그 내용이 압권이지만,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그의 책 제목은 당대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하다. 책 제목만으로도 그의 사상과 시대정신을 알 수가 있을 정도니까. 그의 책 제목은 마치 아포리즘(aphorism)의 정수(精髓)를 보는 것 같다. 간략한 책 제목 하나로 자신의 의도와 나아가 시대의 표상을 명징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언어와 문장을 다룸에 있어 각고의 노력을 했음을 짐작케 한다. 책 제목을 일별해보자. ‘전환시대의 논리’(1974, 전논)를 필두로 ‘우상과 이성’(1977), ‘8억인과의 대화’(1977), ‘베트남 전쟁’(1985), ‘역정’(1988), ‘자유인, 자유인’(1990),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스핑크스의 코’(1998), ‘동굴속의 독백’(1999), ‘반세기의 신화’(1999), ‘대화’(2005) 등등...

‘전논’만 봐도 이 책은 한국 현대사와 국제정치 현실을 보는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책 제목 그대로 사람들의 시각을 ‘전환’시킨 것이다. ‘우상과 이성’에선 세상의 우상과 허상에 도전해 이성의 눈으로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8억인과의 대화’와 ‘베트남 전쟁’에선 당시로선 언급조차 어렵던 중국과 베트남의 실상을 각각 다룬다. ‘역정’에는 그의 청년시대가 자전적 에세이로 묘사되며, ‘자유인, 자유인’에는 ‘영원한 자유주의자 리영희’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아마도 책 제목의 압권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제목 자체만으로도 좌익과 우익에 무한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반세기의 신화’는 부제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만으로도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된다.

그렇다면 ‘리영희’는 누구인가? 그는 마지막 저서 ‘21세기 아침의 사색’(2006)에서 자신에 대해 “난 휴머니스트입니다. 인도주의자 그리고 평화주의자이고, 덧붙인다면 우상파괴자!”라고 답한다. 아울러 저술가로서 그가 이토록 치열하게 글쓰기에 매몰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우상과 이성’에서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휴머니스트 ‘리영희’는 야만의 시대에 반공과 친미라는 ‘우상’을 파괴하고자 글을 쓰고 실천하고 지금 우리 곁을 떠났다. 물론 그의 저작들은 영원히 고전(古典)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진실을 호도하고 우상을 다시 세우려는 무리들이 창궐하고 있다. 평화를 전쟁으로 바꾸려는 자들이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당장 제2, 제3의 ‘리영희’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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