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문호 루쉰(魯迅)은 외세침탈기 중국 식자층의 불가해한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건달패들에게 변발을 잡혀 머리를 담벽에 찧이고도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거나 다름 없어"라는 식으로, 자위하는 '아큐(阿Q)'의 모습을 통해서다.

새삼스레 루쉰이 생각난 이유는 어제 제37회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내뱉은 말 때문이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 자주 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중국이 북한보다는 한국에 더 매력을 느낄 것이라거나, 강화된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북한이 백기 들고 나오도록 중국이 책임있는 역할을 하라고 끈질기게 설득하겠다고 치기를 부리던 때가 엊그제다. 이제와서 이 대통령이 '북.중 밀착'에 시선을 180도 바꾼 것이다.

왜 일까? 아마도 '천안함 사건' 대응과정에서 '한.미 VS 북.중 대립구도'가 가시화되면서 신냉전 우려가 커지고,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대외.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날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너무 한국과 미국의 한축, 그리고 북한과 중국의 한축을 만들어서 대결 또는 냉전 국면으로 해석하는 얘기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쪽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현 국제상황을 너무 이분법적으로 보고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해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대통령께서 하신 발언도 이런 냉전적인 시각, 부정적인 시각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보지 말고 보다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고, 또 다른 분들도 그런 시각으로 평가를 해 주십사 하는 측면에서 말씀을 하신 것 같다."


그러나, 북핵.북한정책 담당자들은 김 위원장의 방중 메시지가 '친중원미(親中遠美)'라는 해석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북한이 말을 어떻게 하든 '미국과의 대화에 매달려 있다'는 게 저류에 있고 그러한 기조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위 외교소식통의 발언이 그 근거다.

'미국과의 대화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게 방중 메시지라면, '제재-대화를 적절히 배합해서 (임기 내에) 북한의 태도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이 정부 대북 대응기조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것이다. 최근 당국자들에게서는 그에 따른 당혹감이 드러난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아큐의 '정신승리법'이 연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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