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상 지음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삼인, 247쪽. [사진 - 통일뉴스]
지난 5월 장기간 휴가를 다녀온 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보도자료가 있는 것으로 봐선 신간 서적을 안내해달라는 출판사의 뜻이 담겨있는 책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출간일이 두 달이나 지난 3월이었고 <통일뉴스>가 주로 다루는 영역도 아닌지라 그 책은 그렇게 오랫동안 책상 위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저자가 아는 이라는 사실 때문에 부담감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일인명사전’이나 ‘4대강’과 관련된 현장에서 늘 마주치던 가수 이지상의 세계를 엿보기 위해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를 펼쳐든 순간, 나는 뒤늦은 서평이나마 쓸 수 있는 구실을 얻었습니다. 그의 첫 이야기가 ‘기다림’이었기에.

도무지 정신없이 돌아치는 바쁜 세상, 더구나 한나절 지나면 이미 뉴스가 아닌 인터넷 세계지만, 인내와 기다림을 첫 이야기로 올린 그가 설마 책 소개가 늦었다고 화를 낼 수는 없을 듯해서 입니다.

흔히 386세대를 ‘비장한 세대’라고도 합니다. 역사와 민족, 민주주의와 민중 생존권 같은 무거운 수레바퀴를 스스로 떠안고 모든 것을 버리고 청춘을 불살라온 이들이 갖게 되는 비장미 때문일 것입니다.

가수 이지상 역시 그 세대가 갖는 비장미가 넘쳐 납니다. 책 표지의 사진부터 시작해서 글 속에 언급한 사실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 역사와 사회 밑바닥의 깊은 아픔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아픈 현실을 자칭 ‘중얼가요’에 담았겠지요. 우리가 가수 정태춘.박은옥을 좀더 고상하게 ‘음유시인’이라고 부른다면 그 역시 ‘음유시인’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리겠지만요.

그의 책을 읽다보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부터 전태일 열사를 거쳐 용산참사 희생자까지 우리 사회의 그늘이 빚어낸 비극이 서사시로 펼쳐지고, 일본 에다가와 조선학교에서 칠레의 비극을 지나 이라크 전쟁의 현장까지 눈길이 가닿게 됩니다.

꼬박 스무해를 ‘비주류 음악인’으로 살았다는 그이지만 기자인 제가 보아도 그의 발길과 눈길이 머문 곳은 넓고도 깊숙합니다. 그러나 그 그늘진 역사 속으로 천착해 들어간 그의 귀결은 결국 ‘노래’입니다.

“비 오는 날엔 비가, 눈 내리는 날엔 눈이
때 아닌 모진 바람도 창을 들이쳐
너희들의 책을 적시고 뺨을 때리고 할퀴고
공부까지 못하게 만들어도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中>

에다가와 조선학교에서 그가 창작해 처음으로 부른 이 노래는 결국 ‘눈물’을 몰고 왔습니다. “무대 뒤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던 김지석 씨는 내 손을 잡고 눈물만 그렁거렸고 함께 공연했던 금강산 가극단 단원들도 눈물을 훔치며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는 시노래 동인 ‘나팔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굳이 옛날처럼 노랫말이 다 시여야 한다고 강변하지 않지만, 80년대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민중가요의 시심처럼 시대성이 꼭 있어야 한다고 우길 순 없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사랑과 이별은 좀 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진동이었으면, 우리들 일상의 그리움은 단지 혓바닥 끝의 넋두리보다는 심장의 두근거림에서 기인한 눈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라고 ‘눈물’을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노래듣고 울어보기’ 숙제를 내줄 정도로 노래의 최고 경지를 ‘눈물’로 치고 있습니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지닌 아내보다 평소 요리를 더 많이 한다는 자잘한 그의 삶보다는 우리 역사와 사회의 아픈 곳, 중심을 파고드는 것이 그의 삶임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속물인 저에겐 그가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맡고 있고, 아내와 아이들과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의 책 한 권에 담긴 이야기만으로도 그가 비주류 음악인으로서 헤쳐온 지난 20년의 버거움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노래에 밝음과 즐거움이 깃들어 있게 되는 날엔 아마도 우리 사회도 그만큼 진보해 있을 것입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즐거움에 가슴벅차 눈물 흘리는 날이 있을까요? 사족으로 좀더 밝고 대중적이고, 북녘까지를 껴안는 그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소망을 괜스레 보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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