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들은 지게 가득 광석을 쌓아 짊어지고 앉은뱅이 자세로 갱내 밖으로 기어나왔습니다. 마대에 실은 광석의 무게는 200킬로그램이나 나갔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중노동에 혹사당한 이들의 기록이 오롯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아니 ‘단바망간기념관’에 담겼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 재일조선인 아리랑』(논형) 표지. [사진 - 통일뉴스]
일제시기 반강제로 일본으로 흘러들어 망간탄광에서 혹사당하다 진폐증인 줄도 모르고 숨져간 재일 조선인 1,2세들의 아픈 사연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특별한 책 『재일조선인 아리랑』이 논형출판사에서 나왔다.

이용식이 쓰고 KIN(지구촌동포연대) 운영위원인 배지원이 옮긴 이 책은 ‘망간광산에 새겨진 차별과 가해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됐으며, 이정호, 용식 부자의 2대에 걸친 역정과 그 고난을 뚫고 건립된 ‘단바망간기념관’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

일제시기 어린시절에 일본으로 건너온 저자의 부친 이정호는 열악한 단바지역 망간탄광에서 혹독한 여건 아래 일했고, 이 과정을 탄광촌 함바(노동자 숙소)에서 보고 자라난 저자 역시 망간탄광 광부가 됐다.

그러나 이 부자(父子)가 재일 조선인 탄광노동자로서의 가혹한 삶을 숙명으로만 받아들였다면 이 책도 ‘단바망간기념관’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큰 할아버지부터 ‘철저한 민족주의자’였고, 그의 부친은 진폐증에 시달리면서도 “내무덤 대신이다. 조선인의 역사를 남기는 것이다”며 ‘단바망간기념관’을 아들과 건설하기 시작해 1989년 5월 3일 개관했다.

일본에서 재일 조선인으로 차별받으며 일생을 살아왔고, 기념관 건립 과정에서도 결국 일본 정부의 외면을 받았지만 이들 부자의 집념과 열정으로 외부의 도움 없이 이 기념관을 개관한 것이다.

그러나 수익성이 없는 이 기념관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어서 이 책의 서문을 쓸 즈음인 2009년 5월 31일자로 20년 동안 20만 방문객이 다녀간 ‘7300’일의 기록을 뒤로 하고 기념관은 스스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책 속의 이야기는 끝나지만 아직 이야기가 남아 있다. 폐관 소식을 접한 일본과 국내 후원자들이 소중한 이 기념관을 이대로 닫을 수 없다며 재건을 위한 움직임을 활발히 벌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저자 부자의 살아온 이야기뿐만 아니라 재일 조선인 문제에 천착한 저자의 10년에 걸친 지적 산물이 2부 ‘나의 연구 노트’에 녹아있다.

일본 언론인 다나카 사카이가 망간탄광 노동을 일제하 조선인의 ‘자발적 돈벌이’로 미화한데 분개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벼려온 10년의 소중한 결실들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특히 부자가 나란히 탄광에서 일했던 재일 조선인 1세들을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나누며 그들의 삶을 기록한 '취재'는 기자들에게도 하나의 전범이 되기에 충분하다.

‘민족학교’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한 재일 조선인 문제를 일제시기 강제 연행된 탄광노동자들의 비극적 삶을 조명함으로써 보다 본격적으로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아픈 현대사와 재일 조선인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권할만 하다.

이 책을 접하면 낯선 이국땅에서 심한 차별까지 받으며 힘겨운 삶을 살다간 우리 윗세대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짐은 물론, 그 혹독한 상황에서도 민족의식을 잃지 않고 올바른 길을 찾아나서는 의지의 인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는 “가령 공격을 받아 죽더라도 뒤로 쓰러지지 말고 앞을 향해 쓰러지며 죽자”라는 삶의 자세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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