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정 (j_j_suh@hotmail.com / 미국 코넬대학 정치학과 교수)


미국의 미사일방어구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적국의 미사일로부터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한다는 이 구상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켠데 이어 부시 행정부의 적극적인 추진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미사일방어구상의 부활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럼스펠드가 국방장관으로 임명되어 이를 힘있게 밀고 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 국방전략을 총괄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앤드류 마샬 국방장관 고문이 원거리 지원사격을 해주고 있다.  슈와르츠 한미연합사령관과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등이 북 미사일위협설을 확산시키는 가운데 이번 7월 14일 미사일 요격실험이 성공함으로써 가속화되는 미사일방어구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은 물론 미국의 우방인 유럽국가들조차 반발하며, 미국의 미사일방어구상이 21세기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최대관심사로 떠오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문제는 현재 북미간의 최대현안이며 남북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한반도 7천만 민족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된 `사활적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시급성과 중요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이 글은 지금까지의 인식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고, 미국 미사일방어구상과 북 미사일 문제는 미국의 탈냉전군사전략과 연결지어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한다.  즉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한 근본원인과 미국이 미사일 방어를 추구하는 근본원인이 모두 미국의 기본군사전략에 있다는 것이며, 미국의 미사일방어구상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전쟁준비 완료를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라는 것이다.  미사일방어구상은 미국 패권주의의 발로이자 아시아 냉전의 부활을 부추긴다는 점에서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6.15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남북화해에 찬물을 끼얹고 한반도전쟁 위기를 바로 부추긴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 모두에게 위급한 현안이다.


미사일인가, 인공위성인가?
 
1998년에는 금창리 지하터널이 핵시설이라는 의혹과 함께 `핵위협`이 다시 불거져 나왔으나 이 `위협`은 일년 후 미국 정부의 사찰 (북에서는 방문이라고 주장) 결과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러나 1998년 8월 북에서 광명성 1호를 시험발사한 이후 `미사일위협`설이 끊임없이 한반도 상공을 떠돌고 있다.  1999년 6월말 커트 캠벨 미 국방부 차관은 북이 다시 미사일 발사준비를 하고 있다고 공식적인 언명을 하기에 이르렀고, 7월 29일에는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북의 미사일 저지를 위해 `군사적인 대응`을 펴기로 약속까지 했다.  북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강력히 공동대응하며 군사적인 조치도 불사한다는 것이 한미양국의 공식입장이다.  북의 인공위성 발사 이후 계속되는 "북 미사일위협"설은 최근 들어 부시행정부가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7월12일 2002회계년도 국방예산을 심의하는 상원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방어수단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북한이 공격을 하면 수만 내지 수십만명의 인명피해가 있을 것"이라며 겁을 주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북 미사일 위협설을 이해하기 위해 1998년 북의 광명성 1호 발사에 대한 한미 양국의 반응부터 검토하자.
 
북의 인공위성 시험발사를 미사일발사로 규정하며 군사적인 대응을 운운하는 한미양국의 반응은 매우 특이하다.  국제법적으로도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의 미사일/로켓 발사가 한국이나 주변국의 영토를 겨냥한 공격용 발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주변의 국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 한 어느 국가라도 미사일 또는 로켓을 시험발사할 권리가 있으며 시험발사 자체는 문제를 삼을 수 있는 근거가 사실 없기 때문이다.  미사일에 관한 국제조약은 주로 미국과 구 소련 사이에 맺어진 것 (ABM, INF, START I, START II) 들이며 유럽의 핵미사일을 감축 내지 통제하기 위한 조약들이다. 다자간 군비통제기구의 하나인 미사일기술통제기구(MTCR)는 미사일 보유국이 미사일 관련기술을 이전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것이지, 미사일 시험발사 자체를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북이 미사일을 개발하고 시험발사하는 것은 비행기를 개발해 시험비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제재를 받을 근거가 없다.
 
일본은 이미 1995년 2월  로켓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북이 98년 8월 시험발사한 광명성 1호가 과학기술용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으려는 것이었다는 주장과 같이 일본 역시 95년의 시험발사가 과학연구용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로켓은 북의 것과는 성능에서 훨씬 앞서 있는 것으로 이를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하면 바로 대륙간탄도탄(ICBM)급 미사일이 될 수 있는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이 시험발사 때문에 제재나 위협을 받은 일이 없음은 물론이다.  북이 광명성 1호를 발사하기 불과 한 달 전인 1998년 8월 2일 중국은 사정거리 8000km급 둥펑31을 시험발사했다.  군사적 목적의 대륙간탄도탄급 미사일 시험이었다.  물론 광명성 1호보다 사거리도 길고 군사적 성격도 뚜렷했다.  중국 역시 이 시험 때문에 제재를 받았다던가, 이 시험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는 위협을 받은 사실이 없다.
 
단지 북이 중장거리 로켓 시험을 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로켓이 일본의 영토 위를 지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도 국제법상으로는 문제가 될 부분이 없다.  일본을 지나가는 시점에서 로켓의 고도가 너무 높아 영공 침해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이 자국의 상공을 지나간다고 문제를 삼는 국가가 하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지난 1998년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미사일을 퍼부었을 때도 미국 미사일들이 다른 국가들의 상공을 지나갔음을 상기한다면 북의 로켓 시험을 가지고 `군사대응` 운운하는 것은 적어도 국제법이나 관례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 북의 인공위성 발사설은 표면적으로는 사실일 수 있지만, 인공위성 발사만을 위해 로켓을 개발했다는 것도 신빙성이 약하다.  과학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다른 국가의 로켓을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금까지 무궁화 1호에서 3호까지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의 로켓을 임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물론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이 방법이 로켓을 자체 개발 생산하는 것보다는 경제성이 높은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북이 로켓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과학과 군사 목적 두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양수겹장`일 가능성이 높다.  로켓의 성격상 그 끝에 무엇을 다느냐에 따라 과학연구용 인공위성 발사가 될 수도 있고, 군사용 미사일 발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추정은 북이 이번에 시험하는 로켓이 지난 60년대부터 지속된 군사용 미사일 개발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에도 근거가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이 국제적인 관례를 엄청나게 벗어나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당연히 로켓의 군사적 이용가치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북이 개발하고 있는 미사일들은 과연 어떠한 군사적 가치를 지니는 지, 북은 어떠한 의도를 갖고 있는지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 미국이 과잉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의 미사일 개발 역사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거리와 정확도이다.  다음에서 보겠지만 북의 미사일 개발은 사거리의 증대에 역점을 둔 반면 정확도에는 큰 관심을 돌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북의 미사일이 갖는 군사적 가치와 북의 의도를 이해하는 열쇠는 여기에 있다.
 
북의 미사일 개발은 1960년대 FROG-5와 FROG-7 지대지 미사일 생산과 함께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1976년에서 78년까지는 사거리 600 km의 둥펑 (DF)-61 중국 미사일 개발사업에 참여했으나 이 사업은 중도에 중단됐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북이 본격적으로 미사일 개발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인 것으로 보인다.  북은 이집트에서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구입하여 역엔지니어링 방법으로 스커드 미사일 생산을 시작, 1984년 이 미사일 ("개량형 A")을 시험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1톤 무게의 탄두를 장착하고 280-300km의 사거리를 가지고 있으나 시험용으로만 생산되고 실제로 배치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은 이 미사일의 중량을 줄이고 추진엔진의 출력을 강화시키는 등 개량작업을 하여, 1985년에는 "개량형 B"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미사일은 사거리를 320-340km까지 늘렸지만, 소련제 스커드 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정확도는 높지 않다.  정확도를 측정하는 기준인 공산오차율 (CEP)이 300km 사거리에서 450-1000미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라크와 전쟁 중이던 이란은 1980년대 중반 이 미사일 개발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그 대가로 미사일을 받기로 했다.  북은 86-87년에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 87년 가을에는 이란에 "개량형 B" 1백여기를 제공했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미사일 몸체를 키워서 엔진의 연료량을 늘리는 것이다.  북은 이 방법을 이용한 "개량형 C"를 1989년 생산하기 시작, 1990년 6월 첫 시험발사를 했다.  이 개량형은 600-700kg의 탄두를 장착하고 500-600km의 사거리를 갖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련제 스커드-B에 기초한 미사일 개발은 이로서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연료를 50% 이상 증가시키더라도 사거리 증가는 10% 정도에 머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추진력을 갖는 엔진을 새로 개발하거나,  "개량형-B" 미사일의 엔진 4개를 같이 묶어서 추진체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북은 후자의 방법으로 사거리 1000km의 "노동" 미사일을 개발, 1993년 5월 그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당시 북은 미사일 4기를 시험발사했으며, 이중 하나나 둘이 노동이고 나머지는 "개량형-C"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험 당시 미사일은 500km만을 비행했으나, 미사일의 크기와 형체를 기초로 추산한 사거리가 1000km이다.)  노동 미사일도 기본적으로는 스커드 미사일과 같은 조종장치를 사용하므로, 부정확하기는 마찬가지여서 1300km의 사거리에 공산오차율이 2000-4000m 이상 될 것으로 추산된다.
 
미사일 사거리를 여기에서 더 늘리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로켓의 몸체를 알루미늄-마그네슘 합금으로 만들어 중량을 줄이거나, 보다 강력한 엔진을 개발하는 것, 또는 다단계 미사일을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은 합금기술만 있다면 손쉽게 할 수 있지만 사거리를 1300km까지밖에 못 늘린다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북이 지금까지 갈고 닦은 로켓엔진과는 다른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야 하므로 상당한 시간과 연구, 시험이 필요하다.  세 번째 방법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술을 요구하지만, 이미 성능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엔진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북은 세 번째의 방법을 택해 "대포동-1" 미사일 ("대포동"은 미국 정보기관에서 붙여준 이름이고 북은 "광명성 1호"로 부른다)을 개발, 1998년 8월 시험발사를 한 것이다. 이로써 북은 사거리 2000km의 미사일 시대를 열었다.  대포동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아직 접하기가 어렵지만, 1단계는 "노동" 미사일, 2단계에는 "개량형-B"를 사용하면 이 정도의 사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과, 북이 이 두 미사일에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대포동-1은 노동과 개량형의 접목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998년 8월의 시험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첫 번째는 북이 다단계 미사일을 개발한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2단계 로켓을 건너뛰고 3단계 로켓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 로켓의 3단계 추진체가 고체연료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이 시험발사를 두고 북은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 등의 정보기구들은 3단계 분리에 문제가 있어 인공위성 궤도 진입에는 실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하튼 양측 모두 북이 적어도 2단계 로켓을 띄우는 데는 성공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북이 1999년 재시험을 강행하겠다고 했던 데는 일 년 전의 시험에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이며, 따라서 3단계 분리에는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로켓들의 접목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엔진을 3단계에 올리는 데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표 1) 북이 개발한 미사일

                                 개량형-A  개량형-B   개량형-C    노동    대포동-1 대포동-2
1차시험                       1984         1985?         1990        1993?      1998          ?
길이 (km)                    11.25         11.25         12.55        15.5         27?          ?
지름 (m)                       0.88           0.88           0.88          1.3         1.3?
사거리(km)/탄두(kg) 300/985   340/985   500/700  1000/1000 2000/1000 4000?/1000
공산오차율 (m)                             1000                          3000


이상에서 보았듯이 북은 지난 20여년간 줄기차게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데 집착해 오고 있다.  다시 말해서 미사일의 정확도에는 그만큼 관심이 없다는 얘기이다.  왜일까?  여기서 잠깐 정확도의 중요성을 보자.  북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의도와 밀접히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북이 미사일을 남침 공격용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개전 초기에 상대방의 작전지휘소나 군사력 집결지, 공군 기지, 항만 등을 공격, 파괴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공산오차율을 이용하면 이러한 목표물을 파괴하는데 미사일 몇 기를 발사해야 하는 지를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북이 지금까지 개발한 탄도미사일들은 매우 부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정성이 높은 현대식 미사일의 공산오차율이 통상 사거리의 0.1%인데 비해 스커드 개량형과 노동 미사일은 공산오차율이 사거리의 0.15%에서 0.3%에 이른다.  (공산오차율이 클수록 미사일은 부정확하다)  이런 부정확한 미사일은 앞에서 얘기한 남침용으로는 별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 휴전선에서 100km정도 떨어진 공군기지 작전지휘소 하나를 파괴하기 위해 필요한 미사일 수를 계산해보자.  이 계산을 위해 북은 작전지휘소의 25%를 75%의 확신도를 갖고 파괴하려 한다는 가정을 하고, 북의 미사일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정확하여 그 공산오차율이 0.1%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면 스커드미사일 40-90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미연합사의 전투기들이 이착륙을 못하도록 활주로를 파괴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 미사일 100-225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에 의하면 북은 현재 단거리 FROG 미사일 24기와 스커드-C "30여기" 보유하고 있다.  북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로는 공군기지 하나도 제대로 파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표 2) 공격에 필요한 북의 미사일 수

                           공산오차율 (m)   목표가격확률   필요 미사일 수
작전지휘소 공격       100                   0.041816                41
작전지휘소 공격       150                   0.018806                91
활주로 공격              100                   0.205905              101
활주로 공격              150                   0.138094              226

그렇다면 북은 이렇게 부정확한 미사일을 왜 계속 만들어 낼까?  북의 미사일이 공격용이라면 개량형-B를 개발한 시점에서 정확도 향상 작업에 눈을 돌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러나 북의 미사일 개발역사는 북이 이에는 관심이 없었음을 보여 준다.  한국 전역을 사거리에 넣을 수 있는 개량형-B를 개발한 이후 왜 정확도 향상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부정확한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는 데만 집착했을까?   이와 관련해서 미 국방정보국(DIA) 등의 정보기관이 북의 미사일은 공격용이라기보다 `테러용`이라고 추정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음은 주목할 만 하다.  테러용이라면 누군가를 공포에 떨게 하겠다는 말인데, 북은 과연 누구를, 왜 떨게 하려 하는가?  이 궁금증을 풀려면 한반도의 군비경쟁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남북군비경쟁과 미사일
       
군비경쟁의 본질은 상호작용에 있다.  적대관계에 있는 두 국가 중 하나가 군비를 증강하면, 이에 대응하여 상대국도 자신의 군비를 증대한다.  상대국의 군비증강은 다시 군비증대를 촉발하고, 이는 군비증강의 상호작용을 일으켜 끊임없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 같은 단순한 본질을 놓칠 경우, 우리는 군축의 실마리를 잃게 된다.  즉 한쪽은 순전히 방위를 목적으로만 군사력을 보지하고 있는 반면 적대국은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만을 노리며 공세적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는 일방적 사고는 군비경쟁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군사력은 1백퍼센트 방어용도 없고 1백퍼센트 공격용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은 방어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군사력도 상대방 측에서 보면 공격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방어력의 증강이 상대방에게는 공격준비의 강화로 비춰지고 결국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군사력의 강화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관점의 확립이 필요한 것이다.  한반도 남북간의 군비경쟁도 이와 같은 보편론에서 예외일 수 없다.  북한의 군사력 강화는 한국의 군비증강을 야기하고, 한국의 군비증강은 다시 북의 군비증강을 촉발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초기 전차의 위력을 확인한 북한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차의 확보에 주력, 1970년에는 소련제 T-54와 T-55를 중심으로 해서 거의 900대에 달하는 전차를 보유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M-4셔만 전차를 주력으로 500대만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전차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하여 한국은 1971년부터 미국에서 M-48 전차를 군원으로 받기 시작, 이를 주력전차로 키워나갔다.  또 휴전선 남방에 대전차 방어벽을 구축하는 한편, 대전차용 토우미사일을 수입하기 시작하는 동시에 토우를 장착할 500MD헬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북한은 78년 소련과 T-62 면허생산계약을 맺고 자체 생산체제에 돌입했다.  한국의 주력기종인 M-48 전차가 90밀리 포를 장착한데 불과한데 비해 T-62는 115밀리 포를 탑재했고 장갑판도 두껍게 해서 한국의 전차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었다.  북의 T-54/55에 대응해 한국이 마련한 M-48은 북으로 하여금 T-62를 구비하도록 하는 전형적인 군비경쟁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M-48전차만을 믿을 수 없게된 한국은 우선 이를 M-48 A5형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90밀리 포를 105밀리 포로 바꾸고, 엔진도 휘발유용에서 디젤용으로 바꾸어 운행거리와 기동성을 혁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73년 중동전쟁에서 입증된 것과 같이 T-62전차에 압승을 하기 위해서는 M-60 전차가 필요한데, 미국이 신형인 이 전차를 한국에 팔기를 거부한 것이다.  더욱이 당시 소련의 최신형인 T-72전차를 북한이 구입할 것이라는 정보가 퍼지면서, 한국은 T-72전차마저도 압도할 수 있는 한국형 전차를 독자적으로 개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가 1988년에 첫 선을 보인 한국형 전차 K-1인 것이다.  현재 한국은 K-1전차의 포를 120밀리로 키운 K-1 A1개량형까지를 개발, 생산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한국군은 미군의 최신형 전차인 M1 A1에 비견되는 K-1 A1을 구비하고 있는 데 비해 북은 아직까지 T-62를 주력전차로 운용하고 있다.  즉 80년대말 동구권·소련의 몰락과 90년대 북의 경제난이 겹치면서 북은 K-1전차의 개발을 촉발시켰던 T-72전차마저 구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의 최신형 전차인 T-80U는 북이 아니라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다!) 1991년 중동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처럼 T-72형 전차는 M1 A1뿐만 아니라 M60에도 맞수가 되지 못한다.  당시 이라크의 정예사단 리퍼블리칸 가드가 운용하고 있던 T-72는 미군의 전차에 의해 전멸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의 전차를 단 한 대도 파괴하지 못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이를 한반도에 적용하면 북의 T-62는 한미연합사의 M1 A1과 K1 A1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고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1990년대 들어 나타난 북의 군사력 열세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군비경쟁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군사전략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전진방어 중심의 한미연합사 전략이 「공지전」 개념을 기초로 한 공세적 방어전략으로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바뀐 것은 한반도 군사력 균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원래 공지전은 1970년대 유럽전장의 특수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군이 개발한 전략이었다.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소련은 우랄산맥 동쪽에 배치된 막강한 군대를 전선에 신속히 투입할 수 있는데 비해 미국은 본토에서 대서양을 건너 유럽 전선까지 군대를 전개하는데 시간이 많이 든다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이 약점을 우세한 공군력으로 극복한다는 것이 이 전략의 기본이다.  즉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전투를 전선에만 국한하지 않고 적진 후방까지 깊숙이 확대, 우랄산맥 동쪽에 있는 소련군이 유럽전선에 배치되기도 전에 타격, 섬멸한다는 것이다.  이를 더욱 확대하여 전쟁초기부터 소련의 정치군사적 핵심부분들을 타격하며 핵무기까지 동원한다는 전략이다.
       
한미연합사는 70년대 말부터 이 전략을 한국적 특수성에 맞게 일부 수정, 80년대 초 기본전략으로 채택했다.  그 결과는 한국의 공군력 강화로 이어졌다.  70년대 말부터 새로운 전투기의 도입 또는 생산을 모색하던 한국은 81년 레이건 대통령이 F-16 전투기 대한이전 금지조치를 해제하면서 활기를 띈다.  F-16을 도입하는 한편, 율곡사업에서 한국형 전투기 개발, 생산이 핵심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다분히 공세적인 이 전략을 이행하기 위해 팀스피리트 훈련이 부각된 것도 이 때이다.
       
북한은 공지전 전략에 대한 대응으로 군대를 휴전선 쪽으로 대폭 이동 배치했다.  `끌어안기` 작전으로 통칭되는 이 전략은 이미 유럽에서 소련과 동유럽 군대가 나토군의 핵공격 대응책으로 개발한 것이었다.  즉 군대를 서방국가 바로 옆에 모아 놓음으로써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나토군을 `끌어안아` 이들에 대한 핵공격을 어렵게 만든다는 논리였다.  1980년대 들어 팀스피리트 훈련 등에서 핵무기 사용이 보다 노골화되고 북한의 전후방을 동시에 타격한다는 공지전 전략이 구체화되자 북한은 동유럽의 `끌어안기` 작전을 도입한 것이다.  이 결과 현재 평원선 (평양과 원산을 연결하는 선) 이남에 북한군의 65-70퍼센트가 집결돼 있다.  또한 북은 기동성을 갖춘 장거리포를 휴전선 부근에 배치했다.
       
소련이 몰락하고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국으로 자리를 굳히는 1990년대에 한반도의 상황은 또 한번의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전차에서 단적으로 나타난 것과 같이 한국군이 이미 질적으로 육해공에서 북의 군대를 압도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1994년부터 러시아와 극동지역에서 공동군사훈련을 해 온데 이어 1998년 8월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 해병대가 우수리만에서 상륙작전훈련까지 했다.  7월에는 일본 해상자위대와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동해상에서,  10월에는 한국이 러시아 해군과 공동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또한 미 해군은 중국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과 함께 12월에는 홍콩 근해에서 합동훈련을 하기에 이른다.  일본과도 97년 신가이드라인을 채택, "일본 주위의 지역에서의 유사시"에 대비한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밑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국제적 상황이 조성된 것은 미국이 1990년대 들어 탈냉전세계의 군사전략으로 「양대전쟁전략」을 채택, 이를 시행해나간 결과이다.  북의 입장에서 봤을 때 군비경쟁에서 이미 한국에 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이 러시아와 중국까지 동원하여 완전포위 작전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할 상황이 된 것이다.
       
북한은 이미 거의 한계상황에 와 있었다.  동구권의 몰락으로 경제가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년 내리 홍수와 가뭄이라는 천재지변을 겪은 것이다.  군비증강을 뒷받침할 경제력이 소진한 데다가, 유일한 자산인 대규모 보병도 훈련은커녕 경제복구에 투입을 해야 할 형편이 됐다.  이에 북은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유지비에만 많은 돈이 드는 보병은 재해복구 사업에 동원하고, 소수의 과학자와 기술자만을 동원해 미사일을 개발, 생산한다는 것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는 전술이라고 인식했을 법하다.  이미 91년의 중동전에서 입증이 된 바와 같이 북한이 가지고 있는 구식 무기체계와 육군 중심의 군사력은 첨단기술을 앞세운 한미연합군의 공지전에 맞수가 되지 못한다.  북이 전방에 배치한 장거리포도 한미연합군의 첨단 대응책으로 초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 졌다.
 
그렇다면 북의 `부정확한` 미사일들이 군사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까?  이미 공격용으로는 부적합 판단을 받았는데.  여기서 다시 미사일 사거리의 군사적 의미를 볼 필요가 있다.  사거리 2000km이면 북에서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포함해서 일본 전역을 사정권 안에 둔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언론에서 추정하는 것과 같이 대포동-2호의 사거리가 4000-6000 km이면 괌의 미 공군기지, 쉬미아의 조기경보 레이더, 알라스카의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에 있는 미군 기지와 도시까지도 사정권 안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북은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 위기 상황이 되면 미국과 일본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됐다.  다시 말해서 공격용으로는 큰 가치가 없는 미사일이지만, 후방의 경제 중심지와 인구 밀집지대를 가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이러한 목표물을 치겠다고 위협하는 데는 정확도가 전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도쿄가 사정거리 안에 있다고만 하면 되지 일본 자위대본부를 파괴하겠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영토 안에 떨어질 수 있는 미사일이 있다고만 하면 되지 구태여 작전지휘소나 공군활주로를 파괴하겠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위협`의 목적은 전쟁억제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우선 위에서 분석한 것과 같이 부정확한 미사일은 공격이나 방어용 작전에는 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미국은 전쟁에서 자국민의 인명피해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피해자가 늘수록 전쟁을 그만 두라는 여론이 높아져 전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군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도 월남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1990년대 걸프전과 코소보전에서는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중폭격과 미사일공격을 중심으로 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미사일로 현지의 미군을 가격하거나, 설상가상으로 장거리미사일로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도 전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뻔히 보이는 인명피해 때문에.  1994년 북한과 핵문제로 대립했을 때도 군사력의 사용을 고려했지만 결국 포기한 것도 전쟁이 가져올 미국인 인명피해 때문이었던 것이다. 북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전략적인 열세의 상태에서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사일로 상대방의 후방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인식했을 것이 가능하다.  이는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로 서로 상대방의 도시를 `위협`하며 핵전쟁을 억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전쟁억제전략」인 것이다.
 
따라서 우월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공세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한미연합사의 `아킬레스건`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북의 미사일이라는 이해가 가능하다.  한미 양국이 신경질적으로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비로소 이해가 되고, 북이 미사일 개발은 결코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한반도 군비경쟁의 와중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사일의 볼모가 된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볼모로서 전쟁억제에 기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한미 양국 정부의 대응방식을 살펴보자.  현 대응방식의 문제점을 분석하는데서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 구상과「양대전쟁전략」
 
미국의 대응방식은 탄도미사일방어 구상으로 요약된다.  미국이 만들려고 하는 탄도미사일방어는 무엇인가?  적국이 발사한 미사일이 미군 또는 미국인을 다치지 못하도록 `방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탄도미사일방어는 크게 두 가지 체제로 되어 있다.  즉 미국 본토를 지키기 위한 전국미사일방어와 해외에 파견한 미군과 동맹군을 보호하기 위한 전역미사일방어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체제는 적대국의 미사일이 목표물에 이르기 전에 방어미사일로 요격하려고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국미사일방어는 기존의 조기경보 레이더 개량형과 고해상도 X선 레이더 시스템을 이용하여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포착한 후 이 정보를 알래스카와 노스다코타 등지의 기지에 실시간으로 전송, 육상발사 요격미사일로 적국의 미사일을 격추시키려는 체제이다.  이에 비해 전역미사일방어는 적국의 중단거리 미사일을 전쟁지역에서 요격한다는 것으로 상·하층의 양층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즉 전역고공지역방어와 해군광역지역방어 체제로 적국의 미사일을 대기권 밖에서 요격하는 상층체제가 1차방패이다.  이를 뚫고 들어온 미사일을 대기권 안에서 요격하는 하층체제는 패트리옷 개량형-3, 해군지역방위, 중간공중방어 등의 세 겹으로 구성된다.
 
미사일방어체제의 역사는 미사일의 역사만큼이나 길지만 미사일방어를 가장 열성적으로 추진한 것은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통상 「별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야심찬 계획은 숱한 기술적 문제들과 엄청난 경비 때문에 좌초했으며, 무엇보다도 냉전종식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회생불능인 것처럼 보이던 미사일방어체제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미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1994년「미국과의 계약」을 내세우면서부터였다.  이 「계약」에 미사일방어가 주요 공약으로 포함된 것은 안보정책연구소의 프랭크 개프니 소장을 위시한 매파들의 로비의 결과였다.  미사일방위 로비의 핵심에 있는 이 연구소는 바로 미사일방위 사업의 주 계약 업체들인 보잉과 록히드 마틴, TRW 등으로부터 2백만 달러 이상의 지원을 받는 등 방산업체들이 확실히 밀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95년 말까지만 해도 미국 정보기구들은 「향후 15년간 미국에 대한 미사일 위협」이라는 보고서에서 "앞으로 15년 안에 미국 본토를 위협할 미사일을 개발하거나 획득할 국가는 기존 핵무장 국가 이외에는 없다"며 미사일방어 사업에 사망선고를 내리다시피 했다. 

이러한 사망선고에 불만을 품은 공화당 의원들이 별도의 `중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미사일 위협을 재검토하자고 나섰고, 그 결과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가 구성됐다.  그리고 이 럼스펠드 특별위원회는 1998년 보고서를 발표하여 "북한과 이란 등이 미국을 공격할 미사일을 개발하려고 결정만 하면 그로부터 5년 안에 이를 이룰 수 있다"며 미사일방어가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미국 정보기구들의 분석을 일거에 뒤집은 이 보고서는 `사망선고`를 받은 미사일방어 사업을 순식간에 부활시켰다.  안보정책연구소와 공화당 의원 등 미사일방어 사업을 원하는 매파들이 럼스펠드 보고서를 진리인양 퍼뜨린 결과였다.  공교롭게도 이 보고서가 나온 지 한 달만에 북은 광명성 1호를 발사했고,  미사일방어 추진론자들은 이 시험발사가 럼스펠드 보고서의 진리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제 북의 미사일은 미국의 본토와 국민을 위협하는 `가장 시급한 안보문제`로 부상했고 그 결과 1999년 3월 미 의회는 미사일 위협의 심각성에 상관없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한 빨리" 미사일방어 체제를 배치하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클린턴 대통령은 6월 이에 서명했다.
 
그러나 럼스펠드 위원회는 물론, 「페리 보고서」를 작성한 페리 전 국방장관,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의 미사일이 매우 부정확하며 공격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북의 미사일의 용도가 전쟁억제용으로 제한된다는 결론도 내리고 있다.  이미 1997년 CIA, DIA (국방정보부), NRC, 공군 등 군사정보를 다루는 고위관리들이 노동1호와 관련한 설명회에서 노동1호는 명중률이 떨어지고 유도장치가 없어 효율적인 전략공습용이라기 보다는 테러용 무기로 설계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페리 전국방장관은 1999년 9월 평양을 방문하고 온 직후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주요 이유는 전쟁억제라고 믿는다"며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을 억제하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북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북은 우리를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즉 필자가 위에서 제시한 것과 같은 분석을 이들도 했으며 같은 결론을 내렸다는 말이다.  매파 정치인들이나 언론은 마치 북의 미사일이 미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고 국민을 대량살상할 것같이 떠벌리며 미사일방어의 시급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나 정부기구, 분석가들은 현실이 이와 멀다는 것을 알고 있고 북의 미사일은 전쟁억제용이라는 점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들은 왜 미사일방어를 추진하고 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잠시 냉전시대로 돌아가 당시의 핵전략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핵전략에서 상식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방어는 나쁜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상대방을 말살시킬 수 있는 핵전력을 쌍방이 보유하고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방어가 곧 공격이라는 역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소련을 말살시킬 수 있는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소련은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은 곧 자신의 말살을 의미하므로.  만약 쌍방이 모두 이 같은 말살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쪽도 전쟁을 원치 않으며, 전쟁은 억제된다.  서로가 서로를 말살할 수 있는 핵전력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것, 이것이 냉전시대를 관통한 핵억제전략의 본질이며 `전략적 안정성`이라는 표현의 내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쪽이 상대방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어력을 획득하면 상황은 근본적으로 변한다.  방어수단을 확보한 측은 상대방의 핵억제력을 두려워 할 이유가 더 이상 없다.  전쟁을 개시해도 말살되는 것은 상대방뿐이며 자신은 방어망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방어력의 획득은 공격력의 획득과 같은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말살시킬 수 있는 핵전력으로 전쟁을 억제하는 상황에서 방어력은 이 전략적 안정성을 결정적으로 깨뜨린다.  미국과 구 소련은 이 같은 공통인식을 1972년 탄도요격미사일 조약으로 공식화했다.  상대방의 핵미사일을 요격할 미사일은 미·소 각각 두 곳에만 배치하고 상대방의 핵억제력을 근본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는 방어체제는 설치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한 것이다.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전국미사일방어 체제는 바로 이 탄도요격미사일조약을 위반한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전국미사일방어 기술은 러시아 핵무기를 무력화하는데도 즉각 사용될 수 있으며, 미사일방어 체제가 러시아와 인접한 알래스카에 배치된다는 점등이 러시아의 의구심을 높여주고 있다.  전국미사일방어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전략적 안정성`을 깨뜨리고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공격력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러시아의 군사적인 굴복을 강제하고 세계유일의 경찰국가로 행세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체제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의 우려는 러시아 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지금까지 중국은 최소의 핵전력으로 전쟁을 억제한다는 전략 하에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15-20기만을 보유하고 있다.  `깡패국가`들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적국 미사일 수백기를 요격할 수 있는 전국미사일방어 체제를 미국이 완성하는 순간 중국의 장거리 핵전력은 바로 고철이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중국은 미국에 대한 전쟁억제력을 잃고, 미국의 군사력 앞에 속수무책이 된다.  따라서 미국이 방어체제를 추진하면 중국은 핵미사일 배치를 늘리고 다탄두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대응수단을 강구하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미국의 유럽 동맹국들 역시 우려하고 있다.  `방패`를 갖춘 미국은 동맹국의 안전에 상관없이 군사력을 휘두를 수 있고, 만약에 러시아와 전쟁이라도 나는 경우에 러시아는 미국의 핵전력에, 유럽은 러시아의 핵전력에 말살이 되고 미국만이 살아 남을 것이라는 것이다.  전국미사일방어 체제는 다른 강대국들의 핵무기를 모두 무력화시킬 방패를 확보하여 말 그대로 `천하무적`의 미국을 만들겠다는 패권주의의 발로인 것이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는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전략적 안정성`을 파괴하고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위험성을 높이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미국의 군사력으로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이러한 계획은 국제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주의적 인식은 미사일방어체제의 파급효과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갖고 있다.  미군이 미사일방어를 추구하는 목적은 매우 간단하고 구체적인데도 이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밑에서 강조하겠지만 미국 미사일방어의 주목표는 북한이다.  이런 단순명료한 현실을 무시한 채, `북위협`은 단지 구실에 불과하고 진짜 목표는 다른 곳, 즉 중국과 러시아에 있다는 음모론적 주장은 근거도 없고 현실 이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미군이 미사일방어를 추진하는 것은 북의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 미국의 군사전략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이로 말미암아 러시아, 중국, 심지어는 나토 동맹국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부정적인 부산물에 불과하다.
 
미군이 미사일방어체제를 추진하는 목적은 이 체제를 구성하는 양대 축의 하나인 전역미사일방어 구상에서 더 잘 드러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탈냉전 군사전략과의 연관 속에서 미사일방어를 보아야 한다.
 
미국은 냉전이 끝난 후 「양대전쟁전략」을 기본 군사전략으로 채택했다.  중동에서는 이라크 같은 국가와, 한반도에서는 북한과 동시에 전쟁을 해 승리를 거두겠다는 전략이다.  1980년대 말까지 미국이 소련을 `주적`으로 상정하고 있었다면 「양대전쟁전략」이 정식화된 1993년부터 미국의 `주적`은 북한과 이라크이다.  다시 말해서 1993년까지 북한은 미국의 `주적`인 소련의 동맹군으로서 의미가 있었고 미군의 전략도 이를 반영했다.  그러나 1993년부터 미군의 주요 타격대상은 북한으로 상정되었고, 한반도 군사상황은 미군과 북한군의 전면적이 대치상태로 재편된 것이다.  1994년 여름 미국과 북한이 전쟁직전의 상태까지 갔었던 것은 북의 `핵문제`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잘못 불거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가 갖고 온 필연적 귀결이었다.  1994년부터는 이 전략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군사예산이 집행되기 시작했고 미군의 군사력 재편과 군사훈련도 이에 맞추어 진행되기 시작했다.  1994년 팀스피리트 군사훈련이 취소되는 대신 RSOI훈련 (미 본토나 해외에서 파견된 미군이 한반도에 투입되어 즉각 전투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매년 시행되기 시작한 것이나 1995년 한미연례안보회의에서 미 본토에 주둔하고 있는 1군단과 3군단을 유사시 한반도에 증파하기로 결정한 것, 그 다음해 한·미 양군이 텍사스에서 공동모의전투훈련을 한 것 등이 모두 「양대전쟁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이었다.  이 전략을 한반도에서 실현하기 위한 작전계획이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5027계획」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있었으니 바로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이 그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북은 이미 공격능력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북을 `주적`으로 하는 미국의 공세적 전략을 막아낼 능력도 없다.  전쟁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미국 후방의 인명을 `위협`하여 전쟁을 억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미국은 전쟁에서 인명피해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북이 미사일개발에 전력을 기울인 것은 미국의 「양대전쟁전략」에 대한 대응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북의 미사일은 「양대전쟁전략」을 시행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미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지고도 전쟁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양대전쟁전략」의 이러한 아킬레스건을 보호해줄 가죽신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미사일방어체제이다.  미군의 입장에서 미사일방어는 북의 미사일에 대응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기본 군사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필수수단이다.  위에서 얘기했던 군비경쟁의 논리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 첨예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를 배치하는 순간 미군은 인명피해를 걱정할 필요 없고 「양대전쟁전략」을 완성하게 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이 북한의 핵개발 중단이건 완전 항복이건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가 완료되는 것이다.  미국이 미사일방어에 한 걸음 접근할수록 한반도는 전쟁에 한 걸음 가까워진다.  한민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남북정상회담이나 남북경제교류, 이산가족상봉과는 아무 관계없이 말이다.
 
현재 미국방부는 「양대전쟁전략」을 재검토, 수정하는 과정에 있으나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것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전략이 미국과 북한과의 첨예한 군사적 대치를 완화시킬 것 같지는 않다.  동시에 두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한다는 기존의 전략적 과제 대신 새 전략은 한 지역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바, 미국과 북한과의 대치를 더욱 첨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행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하기 전에는 북한이 미국의 `주적` 중의 하나로, "압도적 승리"를 거두려는 대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새 전략에 "미국본토 방어"가 추가된 것도 심상치 않다.  캐나다나 멕시코가 미국본토를 공격할 가능성은 없으므로 "미국본토 방어"의 핵심은 미사일방어에 있다고 보이며 (테러리스트 방지는 부차적), 따라서 북한과 미사일을 둘러싼 대치도 더욱 심각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의 미사일작전에 맞서 미국은 탄도미사일방어 체제를 추구하는 한편 주한미군 방어용으로 패트리옷 미사일을 이미 배치했다.  부시행정부는 내년 국방예산 가운데 미사일방어체제 연구개발비로 올해보다 40%가 늘어난 83억달러를 의회에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이번 7월 14일 미사일 요격실험의 성공으로 이러한 예산증액이 의회의 승인을 받을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으며, 한국은 패트리옷과 러시아제 S-300 시스템 중에서 하나를 선택, 이를 구매하려고 했으나 IMF때문에 잠시 연기했다가 1998년 12월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오발사고 이후 23억 달러를 들여 이 사업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했다.  1999년에는 북의 미사일 기지 공격이 가능한 정밀 미사일 「뽀빠이]를 구매하겠다고 나섰고 해상미사일방어체제에 필수적인 이지스함 구매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함께 추진하는「전역미사일방어」 사업의 하나로 2000년부터 앞으로 5-6년 동안 해상전역방어체제 개발에 2억여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는 등 박차를 가하고 있고, 미사일 기지 선제공격마저 운운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 군비경쟁의 핵심축은 북의 미사일 개발과 한·미·일의 미사일방어 개발 사이의 경쟁으로 변화한 것이다.
 
북의 미사일이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이다.  그러나 북에게 미사일 개발의 포기를 강요하거나, 미사일 방어체제를 도입하는 것, 또는 선제공격을 전술화하는 것 등은 군비경쟁의 본질을 놓친 미봉책일 뿐이다.  이러한 대책은 북의 또 다른 대응을 불러오고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선제공격 대응의 경우 북이 이를 북침준비로 규정하고 대응할 빌미를 줄 뿐더러, 북이 장거리포와 미사일의 발사준비 태세를 강화, 유사시 즉시 발사가 가능하도록 해 군사적 긴장상태는 더욱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선제공격의 효용성에도 문제가 있다.  걸프전 당시 미국은 현재 한국이 구입하려는 정밀 미사일로 이라크의 미사일 발사대를 파괴하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실제로는 거의 파괴한 바 없다. (이라크와 같이 날씨가 좋고 숨을 데 없는 사막에서!)  미국이 미사일방어 체제를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이 체제, 특히 전역미사일방어 체제를 한국에 배치하는 친절함을 베푼다고 해도 국민 대다수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  미사일 방어체제는 한반도와 같은 상황에서는 군사기지와 같은 핵심적인 거점만을 보호할 수 있지, 북의 미사일이 서울 같은 대도시를 겨냥한다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미사일방어 체제가 기술적으로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도 없다.  참고로 MIT대학의 테드 포스톨 교수와 조지 루이스 교수는 91년 중동전에서 패트리어트가 단 하나의 스커드 탄두도 격추하지 못했다고 입증한 바 있다.  설사 서울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체제를 개발하는데 성공해서 이를 한국에 배치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대문은 활짝 열어놓은 채 울타리의 개구멍을 막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미사일방어체제라도 북의 단거리 미사일과 장거리포에는 속수무책이며, 실제로 이들 단거리 미사일과 장거리포의 잠재적 파괴력은 몇 개 되지 않는 중거리 미사일 (현재까지는 없는 장거리미사일)의 파괴력과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이 전반적 군사력 열세의 상황에서 전쟁억제의 수단으로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라면 이 미사일을 방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사일의 존재이유를 선제공격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무기의 개발과 도입을 중단하고 군축과정을 시작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체제의 구축은 남북의 화해와 협조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현재 한반도 군사대치의 본질이 북을 `주적`으로 `찍고` 있는 미국과 이에 안간힘으로 대처하고 있는 북한과의 긴장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미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로 남북간 평화체제를 만들어 갈 토대를 만들었고 작년의 정상회담으로 당국자간 화해의 마당으로 성큼 나가서고 있다.

이제는 미국의 차례이다.  미국은 북과의 관계정상화에 선뜻 나서야 할 것이며, 북을 제일의 적으로 찍고 있는 「양대전쟁전략」(또는 신전략)을 수정하는 최소한의 성의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북의 `미사일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사일방어 구축이 아니라 대북 적대전략의 포기이다.  북이 가지고 있는 위기감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미사일 위협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수단이며, `햇볕정책`의 진수가 아닐 것인가.  북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스스로 외투를 벗을 수 있는 길, 우리 모두가 미사일 볼모에서 풀려나는 길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북미관계의 정상화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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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및 저서

미국 시카고대학 물리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니아대학 정치학과 박사
현 미국 코넬대학 정치학과 교수

미국의 군사전략과 대한정책 관련 논문 다수
편역서, 『탈냉전과 미국의 신세계질서』 (역사비평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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