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정국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진실을 밝히라”는 의원들의 추궁이 난무한다. 정상회담 문제는 이 대통령의 “김정일 위원장을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1월 29일)는 <BBC>방송 회견, “북핵 그랜드바겐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1월 30일)는 <CNN> 인터뷰, 그리고 지난 2일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 하에 남북정상이 만나야 한다”는 국무회의에서의 발언 등으로 상승되어 왔다. 아울러 북측에서는 남측의 국방장관, 통일장관, 국정원장, 외교통상장관을 올해 경인년(庚寅年)에 빗대 ‘을사오적 찜쪄먹을 경인4적’이라 맹비난하면서도 이명박 대통령만은 예외로 두고 있다. 지난해 이 대통령에 대해 ‘역도’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정상회담 등 최후의 수는 남겨두겠다는 의사로 보인다. 남북이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다는 배경이다.

정상회담과 관련한 남북의 이 같은 직.간접적 발언은 그간 물밑에서 돌던 풍문들을 수면 위로 끌려 올렸다는 점과 아울러 일단 성사되면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런데 특히 남측의 경우 공론화 되는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무슨 상품판매처럼 너무 가볍게 취급되는 듯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정상회담이 자칫 희화화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외국에서 민족문제를 너무 일방적으로 한꺼번에 말하고 또한 이 과정에서 참모들이 대통령의 ‘말씀’을 ‘마사지’해서 축소, 각색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말씀’인 “연내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와 참모가 ‘각색’한 “안 만날 이유가 없다”와는 그 의미가 천지차이다. 이는 일종의 역린(逆鱗)이다. 나아가 상대편인 북측으로 하여금 어긋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어쨌든 정상회담이 갖는 비밀성과 은밀성을 고려할 때 최근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발언들은 과도할 정도로 공개, 각색되고 있다. 남측이 정상회담을 원하는지, 그 진정성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은 꼭 필요하고 또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최근 남북관계를 보면 난색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남북관계는 꽉 막혔던 1,2년 전과 다를 바 없다. 한마디로 남북관계 개선은 요원한데 정상회담 언술만 난무한다. 당국 간 관계는 최근 들어 자주 만나는 편이나 어느 하나 제대로 합의를 못 보고 있다. 민간 차원은 교류는커녕 대북 인도적 지원조차 선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상회담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최소한의 물꼬가 필요하다. 나아가 남측의 대북 대결주의 정책도 전혀 바뀌지 않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해 들어서만도, 언론에 보도된 ‘북한급변사태-부흥계획’, 김태영 국방장관의 대북 선제타격론, 그리고 통일연구원이 발간한 ‘통일대계 탐색연구’에서 북한이 가장 민감해 하는 ‘최고수뇌부’에 대한 근거 없는 유고 전망 등이 나왔다. 남측 당국의 정책 전환 의지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정상회담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또한 최소한의 남북관계 개선이나 대북 대결주의정책 전환 등이 무망한 상태에서 정상회담이라는 말만 자꾸 떠도는 것은 그 진의에 관계없이 일을 그르치게 하기 쉽다. 정상회담을 상품 판매하듯 하면 희화되는 것은 물론 주위에 잡상인들이 끼기 마련이다. 벌써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고 일부 단체나 개인이 나선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상회담은 정치브로커가 개입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남측 당국은 민족적 대사인 정상회담을 자꾸 희화화해선 안 된다. 특히 이전에 두 번에 걸친 정상회담에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라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와 관련한 굵직한 합의들이 나왔다. 이렇듯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무게에서 볼 때 남측 당국이 확실한 주도권을 갖고 진정성 있게 정상회담을 정상회담답게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