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승리다. 아니 그보다는 49%의 승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라는 전제하에서라면.."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 범대위)의 한 관계자는 30일 저녁, 정부. 서울시.야당.유족 등의 ‘극적 타결’된 합의내용을 이같이 평가했다. 새해를 이틀 앞둔 이날, '승리했다'는 말이 용산 남일당에서 새어나왔다.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던 '용산참사'가 "정부를 대표해 정운찬 국무총리가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유가족들에게 유감을 표명"하고 "유가족 위로금, 용산철거민 보상금, 장례 소요비용은 재개발 조합 측에서 부담"키로 합의하면서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사건 발생 345일 만이다.

당장, 고인들에 대한 장례식이 치러진다. 내년 1월 9일, 서울 시내에서 각계각층이 참가한 가운데, 범국민적 애도의 장이 될 것이라고 용산 범대위는 밝혔다. 1년이 다 되도록 상복을 벗지 못했던 유족들의 숙원이 이뤄진 것이다. 유족들에 대한 위로금과 장례비용까지 모두 해결됐다.

또한, 합의사항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종교계 지도자들을 포함한 위원회를 구성해 남은 절차들을 절차에 맞게 처리하는 일만 남았다. 유족들과 용산 범대위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로 "최소한의 조건이 대부분 수용"된 것이다.

그러나 '49%의 승리'는 용산참사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있다. 이면에는 역설적이게도 '51%의 패배'가 존재한다.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유족들의 외침도 같은 맥락이다.

◇ '51%의 패배'

1) 핵심세력들, 유족들의 요구보다 '선거 정국' 고려해 합의
손 털고 나오면 끝?..재개발 대책 등 근본적 해결 조치 없어

▲ 유족들과 용산 범대위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참사와 관련한 합의내용을 발표하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일단, 표면상으로는 유족들이 요구하는 정부 책임자의 사과 및 유감 표명을 정부가 받아들였다. 정운찬 총리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유족 여러분들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중재 노력을 자처한 오세훈 서울시장도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유족들이 내건 '최소한의 조건'은 수용했다고 하나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정부의 책임 의식은 여전히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유감 표명과 보상금 등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는 '명분 쌓기'에 주력하는 태도다.

용산 범대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이 문제를 내년까지 끌고 가면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지 않았겠나. 더구나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라며 "오세훈 시장도 선거를 앞두고 같은 당의 원희룡 의원, 민주당의 이계안 의원 등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자신을 표적으로 삼으니까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용산참사 해결을 요구하며 협상을 요구했던 유족들의 바람은 2주 전 급물살을 타면서 합의까지 도달했다. 지난 300여 일이 넘도록 외쳤던 바람은 불과 2주 만의 짧은 시일 안에 해결될 수 있었던 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인(私印)간의 문제라며 '요지부동'이었던 유력 인사들이 이 문제를 연내에 해결하기를 바랐을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범대위 관계자는 "연말 굵직한 사안들 속에서 용산참사를 해결했다는 부분을 '극적 타결'이라는 형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여론을 물타기 하려는 '여론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야당 등 정치권은 문제 해결에서 아주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핵심세력의 손익계산서가 합의 도출을 좌우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합의에서 표면상 유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사건의 본질을 숨기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고 이성수 씨의 부인 권명숙(47) 씨도 "공식적으로 타결이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지만, 타결되지 않은 채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냉동고에 365일 긴 시간 열사분들을 두고 있을 수 없어 유가족이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결단'이 해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유족들의 심정과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진 부분이다. 범대위 관계자는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면 해를 넘기고 싶지 않을 것이고, 우리도 특별한 계기가 없었던 차에 타결이 이뤄졌다. 시기가 겹쳤던 지점이다"고 말했다.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유족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을 덜겠다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얘기다. 즉, '용산참사'에서 손 털고 나왔다는 '해방감'이 이번 합의에서 크게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정부가 문제 해결의 근본적 의지가 있다면, 재개발 정책과 구속된 철거민들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보여야 한다는 비판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법적 책임을 떠안은 부분이 없다는 것도 이런 부분에 힘을 싣는다. "정부가 도의적 책임을 진 것일 뿐, 수사기록 3천 쪽 공개 또는 구속자의 석방 등 법적 책임을 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2) 앞으로 용산은?

▲ 올해 3월, 서울 용산 남일당 건물 앞에서 1차 범국민고발인대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가 치러지고, 내년 1월 20일 참사 1주기 행사까지 마친 뒤 유족들과 용산 범대위는 25일에 용산 남일당 건물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산 범대위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에서 "장례 이후에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뉴타운.재개발 정책의 개선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유족들도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에 중점을 둘 것이라며 향후 활동방향을 잡았다.

범대위 관계자는 "장례를 치르고 나서 용산 범대위가 적절한 체계로 바뀌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이 문제 역시 의문사처럼 수십 년이 지나고 나면 진실이 밝혀질 사안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고 길게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에서도 구속된 철거민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미공개된 수사기록 3천 쪽과 관련한 부분들이 이슈로 나올 것 같고, 전향적인 판결을 내릴 수도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런 판결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대응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구속된 철거민들은 법원의 1심 재판 판결에 항소했고, 내년 1월 6일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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