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본관으로 이전하고 지난 22일 현판을 새로 걸었다. 왼쪽부터 통일부 김호년 기획조정실장, 현인택 장관, 홍양호 차관, 김천식 통일정책실장. [사진제공-통일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본관 4층에 황금색 빛깔의 '통일부' 현판이 새로 걸렸다. 청사 별관에서 외교통상부 '셋방살이'를 지내던 통일부가 22년 동안 지냈던 옛집에 다시 복귀한 것이다.

2년 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통일부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집권 초기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통일부 폐지론을 들고 나와 외교부와 통폐합을 시도했다. 결국 통일부는 '해체'는 모면했지만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친 뒤 외교부에 '더부살이'해야 했다.

지난 22일 외교부로부터 진정으로 '독립'한 날 현인택 장관은 통일부 직원들과 기자들을 불러 모아 떡과 음료수를 차려 놓고 집들이를 했다. 이 자리에서 현 장관은 "새 청사에서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통일부의 새 시대를 열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통일부의 새 시대'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층의 눈치만 보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8일 이명박 대통령이 '신종플루 치료제 대북지원' 검토 지시가 나오고 나서야 통일부는 그동안 '미뤄온 방학숙제 하듯이' 올해 국제기구와 민간단체에 대해 지원을 잇달아 결정했다. 그러다보니 올 한해 정부의 대북 인도 지원액 500억원 중 438억원이 12월에 집중됐다.

북.미대화가 재개되고 중국.일본의 대북러시가 예상되고 있는 시점에도 통일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몇 개월 전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있다.

북한이 가을 추수가 끝나 올 겨울에는 그럭저럭 먹고 지내겠지만 춘궁기가 시작되는 내년 3월이 되면 머리를 숙이고 나와 이 정부의 '대북 원칙'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통일부 주류의 시각이 '기다리는 전략'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신압록강대교 건설과 두만강개발계획 등 북.중 접경지역 협력사업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이다. 중국도 역시 북한과의 경협에 불만이 많아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고, 북한도 남측으로부터 지원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남북경협 배제론’은 타당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명박 정권 2년 동안  통일부의 생존방식은 철저하게 이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인 '남북관계'를 죽일 수밖에 없는 게 이 정부 하에서 통일부의 역설적인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2년 동안 금강산.개성관광은 중단됐고, 북한 내륙에 진출한 기업들은 방북하지 못해 파산 위기에 몰렸다. 대북지원과 남북사회교류는 통일부의 불허로 쪼그라들었고 남북을 오가는 인원, 차량, 선박도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합의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통일부의 '남북관계 죽이기'에서 결정판은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간 비밀접촉'이었다. 8월 말 현인택 장관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만났지만 북핵폐기,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불발됐다. 뒤이어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나서 남북간 공감대를 형성됐지만, 고위 외교안보팀의 반발과 11월 통일부의 마무리 작업으로 최종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관계를 죽인 대가로 통일부는 살아남았다.

더부살이를 면하고 본가로 돌아왔으며, 내년에는 증액 25.7%라는 기록적인 예산까지 따냈다. '보수적' 인사로 꼽히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홍양호 통일부 차관의 공이 혁혁하다는 평이다. 

내년 2월이면 개각을 앞두고, 2년 동안 장수해온 홍 차관뿐만 아니라 1년 동안 통일부를 이끌어온 현인택 장관의 교체설도 나온다. 하지만 선거용 개각이라는 점에서 이 정부의 보수층 끌어안기가 더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통일부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을지 모르나, 남북관계는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에 어떤 희망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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