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국가인권위, 위원장 현병철)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국내 5개 단체와 6명의 개인에 대해 '2009 대한민국 인권상'(인권상)을 수여했다. 수상자 가운데는 사단법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한기홍 대표도 있었다.

지난 10월 말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인권상에 내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단체의 수상자격 논란과 국가인권위의 정부 '코드 맞추기' 의혹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수상 단체를 추천한 곳이 행정안전부라는 점 역시  비난 여론에 한몫했다.

줄기차게 계속된 시민사회단체들의 내정 철회 요구에도, 국가인권위는 인권상 수여를 강행했다. 국가인권위는 비난 여론을 설득하기 위한 어떠한 설명이나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국가인권위가 수상 기준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부분은 의혹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국가인권위는 "중앙행정기관, 입법.사법기관, 지방자치단체 및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추천.의뢰한 총 45명(단체 포함)에 대하여 공적심사위원회의 공정한 절차와 심사를 통하여 포상대상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심사 기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특히 이번 인권상에는 수상 단체를 선정한 심사위원회가 어떻게 선정됐는지에 대한 '기준' 역시 빠져 있다는 부분도 쉽게 의혹이 풀리지 않는 지점이다.

▲ 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 '2009 대한민국 인권상' 을 수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인권상 심사위원회 선정 기준은 = '공적심사위원회'는 최혁 제주대 석좌교수가 위원장을 맡았다. 내부위원으로는 유남영 상임위원, 김태훈 비상임위원, 김옥신 사무총장이, 외부인사로는 김덕현 변호사, 강경근 숭실대 교수,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 등 총 7명으로 구성됐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10월 말, 인권상을 선정하는 심사위원회가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이번에 꾸려진 심사위원회가 보수 일색이라며 위원회 선정 기준에 의혹을 제기했다.

인권단체의 한 활동가는 "인권단체들이 그전부터 심사위원단을 꾸리는 기준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해 왔지만, 어떠한 설명도 없다"며 "심사위원단 선정에서 객관적인 기준 같은 게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번 심사위원단은 전체적으로 보수 일색이라는 평가가 인권단체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라며 "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이 뽑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위원장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10일 <통일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공적심사위원회의 외부인사는 위원장님이 인권전문성 등을 감안하시고 위촉했다"며 "심사위원회를 선정하는 기준은 구체적으로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인권단체 활동가는 특히 "위원장인 최혁 교수를 비롯해 강경근 교수 등 외부인사와 김옥신 사무총장, 김태훈 비상임위원 등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보수 인사들"이라며 "7명 가운데 과반수가 보수 인사들로 채워졌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짚었다.

현병철 위원장이 "위촉"한 외부위원 가운데 눈에 띄는 인물은 강경근 교수다. 그는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후보자 당시 정치편향성 논란 등으로 인사청문보고서 채택과 관련해 곤욕을 치렀다. 그는 올해 대대적인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되려 비난하며 '시국선언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내부위원으로 인권상 선정에 참여한 김태훈 비상임위원은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인권소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가인권위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김 비상임위원은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의제에 북한 인권문제를 채택하도록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안건을 발의한 바 있다. 또 그는 지난 4일, 촛불집회를 진압한 경찰에 대해 징계토록 한 국가인권위의 징계 권고가 지나치다고 밝히기도 했다.

▲ 이번 인권상 수상을 놓고, 심사위원회와 수상 단체 선정 기준이 빠져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현병철 위원장(사진 가운데)이 기념식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인권단체 쪽은 "국가인권위에서 나오는 보수적인 결정에 김태훈 비상임위원이 대부분 관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임명 과정에서 '인권 문외한'이라는 비판이 계속됐던 신임 김옥신 사무총장도 현 위원장의 입장과 태도를 그대로 반영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인권 단체가 인권상에 선정된 것을 두고, 그간 북한인권법 발의 등 북한 인권 문제를 강조해 온 정부와 여당에 대한 '코드 맞추기'라는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현 위원장 취임 이후 첫 번째 인권상에 '북한 인권' 활동을 내세운 단체가 선정됐다는 점은 앞선 의혹들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국가인권위의 독립성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 현병철 위원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우리 위원회의 위상이나 역할을 둘러싸고 일부에서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같은 원칙을 확고히 준수하며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한다면, 그동안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평가나 국민들로부터 받아온 사랑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독립성' 논란을 부인했다.

◇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선정 기준은 = '사단법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지난 1999년 세계인권선언 51주년을 즈음해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 실현'을 목표로 창립했다.

심사위원회는 이 단체가 "인터넷 신문 <데일리 NK>를 창간하고 지속적인 캠페인.포럼.국제회의를 통해 북한의 인권 실상을 대내외적으로 알려왔으며, 탈북자 모임을 결성하고 지원하는 등 탈북자 인권향상에 기여"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 단체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이 대통령에게 북한 인권 문제에 주력할 것을 강조했다. 단체의 이사장으로 있는 유세희 교수는 올해 초,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 신임고문으로 위촉됐다.

단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햇볕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북한을 대화와 협력의 주체가 아닌 '타도와 전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같은 입장들을 계속해서 피력해 왔다.

지난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이른바 '건국절 논란'에 대해서 이 단체는 2006년부터 주장해 왔다. 또한, 이 단체의 기관지 편집장 등을 지낸 김미영 한동대 교수는 학교 내 '노무현 분향소 설치를 반대한다'는 총학생회의 성명에 관여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잇따라 열고,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인권상 수상을 반대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특히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올해 초, 미국 국무부와 30만 달러 지원협약을 체결한 단체다. 올해 처음으로, 미 국무부는 그동안 민간단체 민주주의진흥재단(NED)을 통한 간접지원 방식에서 북한인권.민주화 사업계획을 공모해, 심사하는 형식을 거쳐 이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인권단체들이 "이 단체가 '인권단체'로서 독립성과 정체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인권단체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재정의 독립성을 지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 이 단체가 북한 인권 활동과 탈북자 인권 개선을 주제로 하는 학술세미나 및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이전의 활동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2009년은 '용산참사', '쌍용차', '집회.시위의자유', ‘표현의 자유’ 등 어느 때보다 인권침해 논란이 계속됐던 한 해였다. 국내의 인권 상황이 급격하게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이 단체에 대한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제시되지 않는 한, '북한 인권' 단체의 인권상 수상에 따라다니는 의혹은 이 정권 들어 내리막길을 걷는 국가인권위의 위상을 더욱 추락시키기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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