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개정된 북한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문구가 삭제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옛 헌법 29조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중략) 창조적 로동에 의하여 건설된다”는 등 3개 조문에 있던 ‘공산주의’ 단어가 삭제된 것이다. 28일 언론에 공개된 북한의 새 헌법에 따르면 이외에도 ‘국방위원회’와 ‘선군정치’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했다. ‘국방위원회’와 관련 현재 김정일이 맡고 있는 국방위원장을 국가의 최고영도자로 명시했으며, 아울러 옛 헌법에서 “국가주권의 최고군사지도기관이며 전반적 국방관리기관(100조)”으로 명시됐던 국방위원회가 새 헌법에서 “국가주권의 최고국방지도기관(106조)”으로 새롭게 규정됐다. 또한 ‘선군사상’과 관련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명시한 옛 헌법과 달리 새 헌법은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3조)”고 명시해 김정일 시대의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동일 반열에 올려 놓았다.

이번 새 헌법은 11년 전인 1998년의 이른 바 ‘김일성헌법’을 개정한 것이다. 세상이 바뀌면 그를 해석하고 반영하는 법도 당연히 바뀌기 마련이다. 이번 새 헌법은 국방위원장의 지위와 역할의 상승, 그리고 선군사상의 명시 등으로 보아 ‘김정일체제’의 완성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1998년 헌법이 ‘김일성헌법’이라면 이번 2009년 헌법은 ‘김정일헌법’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새 헌법에서의 핵심은 이념문제(선군사상)나 권력문제(국방위원회)에 있다기보다는 새로운 사회문제(사회주의)에 있다고 봐야 한다. 통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둘 다 자본주의 이후에 발생하는 새로운 사회로 알려져 왔다. 사회주의는 그 새로운 사회의 첫 번째 형태이며 공산주의는 여기서 발전한 ‘더 높은 단계’의 사회주의이다. 이를 저 유명한 문구에 따라 분류한다면 사회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실적(행위)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이고, 공산주의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이다. 둘 다 능력에 따라 일하는 건 같은데, 각각 실적과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데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사회인 공산주의는 인류의 이상세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여기에는 한편으로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사회라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허황된 사회’라는 양 극단의 평가가 교차했다. 공산주의는 전인미답의 길이다. 그런데 사회주의는 지금 우리 곁에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가는 길목에 있다. 사실 사회주의는 현실 세계에서 있어왔고, 지금도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유사(類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와 정당도 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현실 사회주의 나라의 하나였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이 1991년에 해체됨으로서 인류의 이상세계로 가는 사회주의도 물거품이 됐는가 하는 시대가 있었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이 새로운 사회실험의 실패에 대해 통탄해마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러던 참에 북한이 이번 새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회주의는 내가 제대로 한번 해 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에서 26∼28일 추석 이산가족 상봉 1차 행사에서 남측 기자단과 만난 북측 관계자가 지난 4월 개정된 북한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문구가 빠진 것과 관련, 김 위원장이 “공산주의는 파악이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예사롭지 않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건설의 대문을 여는 해’로 잡았다. 불과 3년 남았다. 이를 위해 북한은 올해 2009년을 ‘강성대국건설에서 분수령을 이르는 해’로 규정하고 ‘150일 전투’에 이어 ‘100일 전투’에 돌입했다. 강성대국건설을 향한 북한의 집념이 놀랍다. 얼핏, 강성대국건설이 사회주의사회의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북한이 새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했다는 것은 ‘공산주의 삭제’ 그 의미보다는 그것을 통해 사회주의를 명확히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북한이 이상(공산주의)을 버렸다는 표현보다는 현실(사회주의)을 택했다는 표현이 바람직할 것 같다. 현실 사회주의는 실패했다는 담론이 기정사실화 되어있는 현 시기 북한의 ‘우리 식 사회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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