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 비난과 여성 종업권 탈북책동 등의 혐의를 받고 북 당국에 억류됐던 유성진(44) 씨가 137일 만에 추방 형식으로 석방됐다.

유 씨는 13일 오후 5시 10분 석방돼 8시 30분께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당초 정부 당국이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 도착시간으로 예정했던 시간을 두 시간이나 넘긴 9시 10분께. 드디어 유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기나긴 억류 생활을 마친 이가 '고국의 품'에 안기는 장면치곤 사뭇 분위기가 어색하다.

▲13일 저녁,  137일 만에 추방 형식으로 석방된 유성진씨는 기자들의 관심을 뒤로 한 채 미리 대기중인 차량을 이용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떠났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베이지색 모자, 연두색 윗옷, 검정색 바지, 흰색 운동화 복장을 한 유 씨는 취재진 앞에 서기 전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때 시선을 곧추세우고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려는 모습이었지만, 얼굴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공식석상에 모자를 쓰고 나온 것도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수 십 대의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출입사무소 입경장 앞에 선 유 씨는 "무사히 돌아오게 돼 기쁩니다. 많은 노력과 관심을 가져 주신 정부 당국과 현대아산,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포토타임'을 위해 미리 준비해 외운 흔적이 역력했다. "정부가 꽤나 '교육' 시켰나 보네"라는 얘기가 흘러 나올 만 했다.

5개월 가까이 억류됐다 고국땅을 밟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기뻐하거나 안도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눈물이라도 좀 흘리지..." 지난 3월 북.중 경계 구역을 넘어 유 씨와 거의 비슷한 시간(141일)을 북한에 억류돼 있다 석방된 유나리.로라링이 석방됐을 때의 장면을 기대했을 터. 감동적인 장면을 기대했던 일부 기자들의 안타까움(?) 섞인 목소리가 새 나왔다.

이날 '귀환장면'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기자들의 질문을 뿌리치고 검정색 승합차에 올라타던 유 씨의 모습이다. 유 씨는 귀환 소회를 읽듯이 빠르게 말한 뒤 정부 관계자 등의 호위를 받으며 발걸음을 옮겼고, 억류 당시 상황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체 답하지 않았다. 특히 유 씨는 스스로가 팔로 기자들을 거칠게 뿌리치며 달아나듯 승합차에 올라탔다.

◆ 유 씨가 모습을 나타내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기자들 사이에선 남쪽 땅에 다시 돌아오게 된 소회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이 나왔었다. 유 씨가 받고 있는 혐의에 대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국민들에게 심대한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한 유감표명이 있을 것이란 당연한 추측이었다.

그러나 유 씨의 첫 마디는 "무사히 돌아오게 돼 기쁩니다"이다. 흡사 테러단체에 붙잡혀 사지에 내몰렸다 풀려난 피랍자들의 일성과 비슷한 뉘앙스다. 그러나 유 씨는 영문도 모른 채 '인질'로 잡혀 있던 것이 아니다. 북한 당국으로부터 북한 체제 비난과 여성 종업원 탈북책동 등의 혐의를 받고 장기간 조사를 받은 것이다.

아직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유 씨가 3월 30일 억류돼 8월 13일 석방되기까지의 과정은 외형상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에 따른 적법한 절차다. 이 합의서 제10조 신변안전보장 2항은 "북측은 인원이 지구에 적용되는 법질서를 위반하였을 경우 이를 중지시킨 후 조사하고 대상자의 위반내용을 남측에 통보하며 위반정도에 따라 경고 또는 범칙금을 부과하거나 남측 지역으로 추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유 씨가 국민들에게 '무사귀환'을 말하려면 혐의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부인이 전제돼야 한다.

이 문제는 사실 귀환 소회를 말한 당사자의 탓만은 아니다. 정부 당국이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에서 다섯 달 가까이 머무른 유 씨에게 취재진 앞에서 자유롭게 말하게 했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유 씨의 발언은 사실상 정부 당국의 입장으로도 보인다. 정부는 북한의 유 씨 조사결과를 곧바로 공개하지 않고 확인작업을 거친 후 발표할 계획이다. 현대아산 쪽은 "정부 당국의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이 사건에 대해서 입을 닫을 태세다.

국민들은 당분간 북한이 아무 잘못 없는 우리 국민을 137일간이나 붙잡고 있었는지 혹은 유 씨가 '물의'를 일으켜 놓고도 한마디 사죄 없이 '무사귀환'을 보고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13일 유 씨의 '무사귀환' 장면이 어색하게만 보일 뿐 진심어린 공감을 못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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