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이 한 편의 단막극처럼 끝났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향후 북미관계를 비롯한 그 파장은 만만치 않다. 일단 눈에 보이는 과실은 억류된 두 여기자가 석방된 것이다. 두 여기자가 로스앤젤레스 부근의 공항에 내려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이를 두고 북한과 미국의 대차대조표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미국의 북한전문가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의 견해처럼 “미국과 북한 양쪽 모두에게 승리”라고 평가할 수도 있고, 또한 러시아측 한 학자의 표현대로 이로 인해 “북한과 미국 양측 모두에 돌파구가 됐다”고 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짧은 1박 2일의 여정이 어쩌면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기나긴 여정의 첫 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모든 새로운 현실은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다. 그리하여 북한은 클린턴 ‘특사’를 통해 특별사면(특사)을 단행했다. 하지만 북한은 단순히 특사(特使)를 통해 특사(特赦)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 북한은 왜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받아들였을까? 그가 오바마 대통령과 정당을 같이 한 전직 대통령이자,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이라는 현실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아가 그가 대통령 재임시인 1994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북미간 대결국면을 협상국면으로 전환시킴으로서 결국엔 제네바 북미합의를 이루고 또한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뮈니케 이후 방북을 진행하다가 무산된 역사적 요인도 감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클린턴을 선호한 결정적 이유는 다른데 있다. 무엇보다도 1994년 김일성 주석 서거시 클린턴이 미 대통령 자격으로 조의를 표하는 편지를 보냈기 때문인 것으로 봐야 한다.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대국상’ 때 북한으로서는 적대국 수장이 조의를 표한 것에 두고두고 마음에 빚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미국에 은전을 베풀어야 할 시기가 오자 클린턴을 상기하는 것은 ‘혁명적 의리’를 중시하는 북한으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한으로서는 클린턴 ‘특사’를 통해 여기자들을 ‘특사’로 석방하는 것이 15년 전 조의 표명에 대한 응당한 배려인 셈이다.

이처럼 북한이 클린턴 ‘특사’를 통해 두 여기자를 ‘특사’하는 은전을 베풂으로서 북한은 미국과 남측에 적지 않은 파장과 부담을 주었다. 먼저, 오바마 행정부는 빚을 지게 되었다. 여기서 클린턴이 특사냐 아니냐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북한이 특사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또한 클린턴이 두 여기자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사과를 했느냐 안 했느냐도 지엽적인 문제다. 누가 봐도 북한땅을 ‘불법입국하여 반공화국 적대행위’를 한 두 여기자를 특사로 석방한 북한의 인도주의적 가치를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미국은 북한에 두 여기자 석방이라는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북한의 미국계 두 여기자 석방이 남측으로까지 불똥이 튀어 압박으로 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지금 시기에 북에는 남측의 현대아산 유모 씨와 며칠 전 동해안에서 나포된 ‘800 연안호’ 선원들이 억류되어 있다. 당장 미국은 여기자 석방을 위해 전직 대통령이 움직이는 판인데 우리는 뭘 하고 있냐는 항의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에서는 북한이 이 두 ‘인질’을 죄명에 맞게 정치적으로 활용할 게 뻔하다. 문제는 남측이 아무런 대응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분명한 건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특사’로 받아들여 두 여기자를 ‘특사’로 석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특사(特使)를 통해 특사(特赦)만 한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를 노련하게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북한은 클린턴을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 전달자로 묘사함으로서 ‘특사’로 받아들였다. 특사이어야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은 그 특사와의 면담을 통해 양국의 “공동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폭넓은 의견교환”을 나눴다. 아울러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식적으로’ 클린턴의 방북이 북미간 “신뢰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고 ‘북미간 신뢰구축’을 미래완료형으로 기정사실화했다. 미국에 올가미를 건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두 여기자 석방이라는 ‘부채’에다 북미간 신뢰구축이라는 ‘약속어음’까지 받아놓았다. 이 정도라면 ‘억류 여기자의 석방과 핵 협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미국측의 입장이 옹색해졌다. 핵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구축’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부채와 약속어음을 받은 미국이 이를 외면할 명분이 없기에 북한과 대화에 나설 공산이 커졌다. 이제 남측이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북미대화가 활성화될 경우 ‘통미봉남’은 기우가 아니다. 남측이 정신을 차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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