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 사이에 냉각기가 지나가는가? 북한이 27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6자회담 불참을 거듭 알리면서도 북미 직접대화를 의미하는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대화방식은 따로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북한의 이같은 적극적인 언명은 향후 진행될 북미대화에서 주도권을 쥐자는 원려(遠慮)로 보인다. 마침 이보다 앞서 북미관계가 대화모드로 바뀌는 조짐들이 있어 왔기에 그 가능성에 무게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인공위성발사(4월 5일)와 2차 핵실험(5월 25일) 이후 추가 조치를 삼가해 왔다. 7월 들어 뉴욕채널을 통해 북미가 만난다는 소문이 무성하던 중 최근 부쩍 ‘대화’를 의미하는 발언들이 나왔다. 그 공식적인 첫 발언이 ‘역설적이나마’ 15일 이집트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 참석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서 나왔다. 그는 “우리에게 있어서 자주권존중과 주권평등의 원칙이 없는 대화와 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며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자주권존중과 주권평등의 전제 아래 6자회담이 아닌 다른 회담은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북한의 본격적인 대미 대화요구 공세를 예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곧바로 북미는 21-23일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첫 충돌했다. 설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 내용이 그리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 동의하면”이라며 부시 행정부 때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연상시키는 단서를 달았지만 북미관계 정상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대북 에너지ㆍ경제 지원 등이 모두 포함돼 있는 포괄적 패키지를 북측에 제안했다. 이에 리흥식 북한 외무성 군축국장은 “포괄적 패키지는 말도 안 된다”고 일축하면서도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를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지속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는 열 개의 적대적인 말보다 한 개의 우호적인 말에 귀가 더 쏠리는 법이다. 전문가들이 대화쪽에 방점을 찍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24일(현지시간)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신선호 대사가 “6자회담 복귀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못박으면서도 “우리는 (미국과의) 대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어떤 협상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북미간 대화재개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도 청신호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이 정도 군불때기라면 북미가 다시 대화할 채비를 차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다소 성급할지 모르지만 북미가 다시 대화에 나선다면 그 방법과 내용은 무엇일까? 주요 변수가 될 북측의 입장을 보자. 먼저, 대화방법과 관련 일단 6자회담으로만은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6자회담을 부정해 왔고, 미국은 6자회담과 함께 그 속에서 양자회담은 가능하다고 밝혀 왔다. 공통분모는 북미 양자대화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양자 직접대화로 갈 공산이 크다. 양자회담이 본격화된다면 6자회담이 진행된다고 해도 그 위상과 가치는 부시 행정부 때보다 크게 위축될 것이다. 다음으로 대화내용은? 북측은 비핵화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위에서 밝힌 비동맹운동 정상회의에서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면서 그 이유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북한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군축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향후 북미회담이 열린다면 비핵화가 아닌 군축이 될 것임을 선수 친 것이다.

왜 비핵화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인가? 북한의 핵전략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유무(有無)에 따른 ‘맞춤형 전략’이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먼저,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포기할 경우 북한은 한반도비핵화로 들어간다. 이 경우가 지난 9.19공동성명에 입각해 진행해온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유지할 경우 북한은 핵군축 입장이다. 이런 뜻을 북한은 이미 수차례 외무성 발언 등을 통해 밝혔다. 특히 올해 1월 13일 외무성 담화에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과 핵위협의 근원적인 청산이 없이는 100년이 가도 우리가 핵무기를 먼저 내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적대관계를 그대로 두고 핵문제를 풀려면 모든 핵보유국들이 모여 앉아 동시에 핵군축을 실현하는 길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북한은 지금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북한의 인공위성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를,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의 일환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기에 북한이 미국과 대화에 나선다면 자주권존중과 주권평등의 전제에서 군축회담을 요구할 것이다. 이래저래 북미관계에서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 여부가 관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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