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얘기를 들었어야 하는데...'라고 고백하고 반성해야지, 우리한테 '해법을 내 달라'고 이렇게 나와야 맞는 것 아니냐."(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일한 지 2년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돼 있는 법 시행 일(1일)이 째깍째깍 다가오자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기싸움을 벌이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 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일갈이다.

민주당을 포함 야 4당과 시민사회단체가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개정에 반대하며 한 배를 탔지만, 속이 터지는 것은 비단 민주노동당만은 아니다. 비정규직 차별 시정과 정규직 전환을 뼈대로한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불리는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기 전부터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대량해고 사태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하며 반발했었다.

민노당도 "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대규모 해고 및 외주화가 자행되고, '백지 근로계약'과 같은 전근대적인 노동조건이 확산되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법이 아니라, 고통입법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2007년 6월 12일 국회 정당대표 연설 中)고 비판했다.

실제 당시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던 이랜드 사태를 비롯해 각 사업장에서 노사갈등 등 혼란이 발생해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었다.

그러나 정부는 법을 홍보하는 데만 열을 올릴 뿐 실질적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노동부는 법안 정비나 구체적 대책마련은 없이 오히려 '대량해고설'을 조장하며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것(2년→4년)으로 법을 개정하는 데 매달렸다.

정치권도 법의 허점과 부작용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법안 손질에 나서지 않았다. 비정규직법은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작품.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아직까지도 법안 개정의 뼈대조차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정부여당으로서 비정규직 문제를 꼼꼼히 점검해 오지 않다가, '대량해고' 운운하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법 시행 유예'로 끄려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법 시행을 3년 유예하는 것을 뼈대로 한 개정안을 법 시행 일주일 전인 24일에야 뒤늦게 발의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을 통해 사태를 수습하려는 미봉책을 냈다는 점에서 노동계와 시민사회계로부터 비판이 무성하다.

비정규직법 제정을 주도해 '원죄'를 갖고 있는 민주당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태가 지금에 이르도록 비정규직법안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은 물론 '5인 연석회의'에서 '준비기간' 명목으로 '6개월' 유예를 들고 와 한나라당과 노동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 '유예 불가'를 원칙으로 한 양대 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으로부터 눈총을 샀던 점은 곱씹어 볼 대목이다.

비정규직 문제로 온 사회가 멍들었던 지난 2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 재현되는 '씁쓸한 상황'이지만, 자신이 소속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유예 협상'을 하는 와중에도 "노동계와 합의 하지 않은 안은 상정할 수 없다"고 칼을 빼든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주도로 법 시행이 유예되지 않은 것은 노동.시민계에 그나마 '위안'이다.

특히 추 위원장이 '5인 연석회의'를 '외부'로 취급하면서 국회법 절차에 따라 표결처리 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상식적 주장'에 대해 '또 다른 상식'으로 맞선 대목은 '비정규직 문제'가 재편되지 않기 위해서 정부와 정치권이 무엇을 발판으로 삼아야 할지를 시사하고 있다. 추 위원장의 '마이웨이'가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면 말이다.

"환노위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구조가 안 돼 있다. 기업 편에 서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환노위에서 그런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온다."(30일 안상수 의원 등 한나라당 측 항의방문 자리에서)
"그러면 대상자인 노동계의 의견을 듣자는 것이 잘못됐나? 법의 보호 대상자, 법익(法益 )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안 듣겠다는 게 말이 되나? 듣겠다는 제가 잘못됐나?"(법 시행 된 1일 새벽 기자간담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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