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은 언제 만날까? 미국의 오바마 새 행정부가 들어선 지도 두 달째 접어들고 있는데 아직 그 행방이 묘연하다. 양국이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는 최대공약수는 무엇일까? 보다 본질적으로 북미관계의 역사에서 미국이 북한을 대화의 파트너이자 평화공존의 상대로 인식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페리 전 국방장관의 1999년 발언이 아닌가 싶다. 페리는 1990년대 말 북한에서 핵문제에 이어 미사일문제가 불거지자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북한을 넘나들면서 ‘페리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저 유명한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말한다. 이 말은 당시 ‘북한 붕괴론’이라는 환상에 젖어있던 대북대결주의자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었다. 아무튼 페리의 이 말 한마디에 북미는 양국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말은 북한을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최근 미국측에서 잇달아 나오는 대북 핵과 미사일(인공위성) 관련 발언들도 이와 관계가 있을까?

북한은 지난 2006년 10월 지하핵실험이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을 핵무기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핵장치(nuclear device) 폭발실험’으로 규정했다.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미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JFC)가 ‘2008 합동작전 환경평가보고서’에서 아시아에 5개 핵무기 보유국이 있다면서 처음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거론했다. 이어 국가정보위원회(NIC)도 ‘글로벌 트렌드 2025’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무기 국가’로 표기했다. 이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올해 들어 게이츠 국방장관, 리언 파네타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북한의 핵무기 제조, 실험 등을 인정했다. 특히 NIC는 지난해에 이어 최근 발간한 ‘전세계 보건실태의 전략적 의미’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기술했다. 더 나아가 2차 핵실험 얘기도 나오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의 마이클 메이플스 국장은 3월 10일, 북한이 지난 2006년에 이어 추가로 핵실험을 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인공위성’ 문제만 봐도 그렇다. 북한은 2월 24일 시험통신위성인 ‘광명성 2호’를 운반로켓 ‘은하 2호’로 쏘아 올리기 위한 준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2일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4월4-8일 사이에 위성체를 발사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를 두고 한.미.일이 미사일이라고 규정하거나 또는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그게 그거라면서 요격하겠다느니, 유엔 안보리 결의 1718에 대한 위반이라며 대북제재를 운운했으나 최근 인공위성으로 정리되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의 현실적 판단이 결정적 몫을 했다. 미국 국가정보국의 데니스 블레어 국장이 10일 “북한이 발사하려는 것은 우주발사체이며, 그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밝혀 우주발사체가 인공위성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어쨌든 미사일’이라고 노래를 부르던 한국과 일본이 난처해졌다. 특히 다음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미사일 문제에 대해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사실상 북한과의 미사일 회담을 제안했다. 이 역시 ‘어쨌든 대북제재’를 합창하던 한.일로서는 까무라칠 노릇이다.

이처럼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인정하고 또한 이번 발사체가 인공위성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페리의 발언에 근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북미가 표면적으로는 한미연합 ‘키 리졸브/독수리연습’과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준비로 인해 ‘강 대 강’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게다가 바로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대북 ‘미사일 회담’ 제안은 인공위성 발사 후 북미간 대화 일정을 어느 정도 붙잡아주고 있다. 다만 일말의 우려는 한.일의 행태다. 미국이 사실상 인공위성으로 인정했음에도 한.일이 미사일이라고 우기면서 대북제재 운운하면 한.미.일 삼각관계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고 이명박 정부가 금지옥엽처럼 받드는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요즘 부쩍 강화된 한.일공조로 대북제재를 논한다든지, 특히 한국측에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여로 대북압박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처럼 한국도 미국을 있는 그대로 보라. ‘있는 그대로 보자’는 ‘페리 발언’의 교훈은 어디에나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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