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숙 (천도교중앙총부 교무차장)



▶6월 14일 경복궁에서 속초항으로의 출발을 앞두고 배웅을 나온 청년
학생들이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6월 14일부터 16일까지 2박 3일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설레임, 가슴벅참, 놀라움!

나의 감정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상념에 젖어 본다.   
 
6월 14일 전날밤, 북쪽 땅을 밟아 본다는 설레임으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짐을 챙기는 둥 마는 둥 새벽에 집을 나섰다.
서울의 출발지인 경복궁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 공동선언 1주년을 맞이하여 남북이 한마당이 되어 이번에 금강산에서 대토론회를 가진다고 한다.
남측의 7대종단(천도교,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민화협(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 통일연대 3단체와 북측의 민화협, 범민련 등이 참가하여 남북이, 그것도 민간단체들이 모여서 역사적인 한 획을 긋는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그리고 그 현장에 참여한다는 가슴벅참으로 14일 오전에  경복궁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올랐다. 

속초항에 도착하니 젊은이들이 현수막을 들고 환영을 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부르면서.
왠지 어깨가 무거워 오면서 우리의 숙원인 통일이 꼭 눈앞에 다가온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현대아산이 제공하는 설봉호를 타고 드디어 배가 출항을 하였다.
배 속에서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한창이다.
갑판으로 올라갔다. 확 트인 바다는 수평선만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DMZ지역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왔다는 모대학의 이 교수님과 정 이사님은 통일의 당연성을 확고히 가지고 있는 듯 말씀하시는 것에 힘이 들어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학생인 듯 싶은 사람들이 열심히 토론들을 하고 있다. 드디어 장전항 (고성항)에 도착을 하였다. 밖은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민족대토론회장인 금강산 호텔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창밖으로 북측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기를 업고 옆에는 보따리를 들고 어딘가 열심히 씩씩하게 가고 있는 사람, 들에서 3∼4명씩 일을 하고 있는 모습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감자를 캐는 듯 싶었다.
길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다들 씩씩한 걸음걸이였다. 조금 더 갔더니 길가에서 남측 사람들이 탄 차를 향해서 미소지으며 열심히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반가와서 그런 줄 알았다. 나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버스가 가면서 뒤쪽을 보니 군복을 입은 두명의 남자가 손흔드는 아낙네 아래에 앉아 있지 않은가! 그때의 썰렁함이란....

▶대토론회를 진행하는 속에서도 객석에선 참가자들의 남북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북쪽에도 남쪽 못지 않게 가뭄 때문에 피해가 많단다. 그런데 우리가 가기 얼마 전에 비가 내려 겨우 모내기를 했다고 한다. 들에는 흰염소가 많이 눈에 뛴다. 정책적으로 흰 염소 양육을 장려한단다. 그리고 논에는 소가 논일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송아지가 따라 다닌다. 그림같은 장면이다. 그런데 그것을 본 나는 왜 마음이 편치 않을까?                

행사장인 금강산 호텔앞에 도착하였다. 북측 사람들이 양옆으로 늘어서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악수를 서로 청하면서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벌써 남북측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한 모습들이다.

행사가 시작되고 파랗게 칠해진 한반도가 그려진 단일기 입장과 게양 순서이다. 단일기가 북녘땅 금강산 호텔앞에서 게양될 때의 감격이란!!!!
 
남북의 인사 6명씩 번갈아 가면서 주제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주제발표를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옆에 앉은 남북한끼리 서로서로 이야기 하느라고 장내는 일순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학생들 쪽은 더욱 그랬다.
주제발표 후 공동보도문 발표가 있었고 일본 역사왜곡사건에 대한 공동성명이 있었다. 남북이 공동으로 멋진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어서 북측에서 제공하는 오찬연회를 하였다. 이 자리 또한 남북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식사하면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나의 옆자리에는 북측 민화협에서 나온 분들과 김철주 사범대학 예능학부에서 나온 학생들이 자리를 같이 하였다. 바로 왼편에 앉았던 사람은 김일성 대학을 나온 엘리트 출신이었다.
오늘 토론회 소감이 어떠했느냐고 먼저 물어본다. 그래서 외세의 힘을 빌리지 말고 자주적으로 통일을 하자는 내용이며 그렇게 통일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정 선생과는 말이 통할 것 같다면서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 시작한다.
자기 가정사이야기 하며 심지어는 농담까지 해가면서 분위기가 익어간다.
그리고 나의 개인 접시가 비기도 전에 음식을 갖다 주면서 친절을 베풀어준다. 
남측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을 요소를 다 가지고 있는 사람 같다.

다른 젊은 학생들 쪽에선 벌써 놀이가 한바탕이다. 남과 북에서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하는 것 같다.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역시 젊은이들이라 서로 화합하는 시간도 빠른 것 같다.

연회를 마치고 남북이 준비한 소공연을 보고 북측의 교예단 공연을 보기 위해 온정각에 있는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연장은 현대에서 지었는데 총 8억 중 2억이 무대 셋트를 하는데 들었단다. 공연장 모습도 대단했지만 정말 교예단의 묘기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왔다. 세계 써커스 대회에서 수상경력도 화려했다. 그들의 묘기에 감탄을 하면서 저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교예단의 한 묘기가 끝나고 다음 묘기를 준비하는 장막마다 배우 둘이 나와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관중석에 있는 사람들을 무대위로 불러 내어 배우와 관객이 동시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도록 그들은 유도하였다.
또 하나의 남과 북이 단결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관중석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교예단 공연 후 분임별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정치, 경제, 여성, 종교 등 10개의 분야별로 나뉘어 분임토의에 들어갔다. 짧은 시간에 무슨 큰 성과를 얻을 수야 없겠지만 남과 북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같이 이마를 맞대고 토론하고 접촉을 하였다는 그 하나의 몸짓만으로도 우리는 큰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두손 꽉 잡고 한목소리로 부른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사진 - 통일뉴스 송정미기자]

마지막날!
금강산 산행을 남과 북이 같이 하는 날이다. 큰 사람의 물결이 한덩어리가 되어 산을 타고 있었다. 서로 서로 이야기를 하느라고 웅성웅성 산이 울리기 시작했다.
북측 청우당에서 나왔다는 젊은 두 사람이 남측에서 참가한 연세 많으신 분을 옆에서 부축하여 산을 오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북측 여성 한 분은 금강산을 설명하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북측 사람들을 위한 식수란다. 그래서 손은 씻지 말고 마시기만 하라고 한다. 물맛이 깨끗했다.
목적지인 구룡연 폭포에 도착하였다. 벌써 모여대 교수님은 커다란 무명천을 깔아 놓고 도착한 사람들에게 붓으로 또는 손에 먹물을 묻혀서 감회를 적어 달라고 한다. 나름대로의 감상을 적느라고 분주하다.

하산을 하여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남북한 천도교측 사람들이 삥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같은 민족 같은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친해졌다.
다시 버스를 타고 김정숙휴게소에 모였다. 여기서 송별식을 한다고 한다. 모두들 손에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이렇게 만나면 되는데...
이렇게 손을 잡으면 되는데...
무엇이 그동안 우리를 이렇게 만나지 못하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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