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행 지음/
서울 : 백산서당(
bshj@chollian.net, 02-2268-0012)/ 2001/
1245쪽/ 10만원


<서평> 이태섭(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

『김정일』을 보면 김정일이 보인다.

▶ 김정일
이찬행 지음/백산서당
민족통일연구소 이찬행 연구위원이 또 역작을 냈다. 아니 이번에는 가히 대작이라 할만한다. 지난 2∼3년 동안 통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어디서 무얼하고 있나 했는데, 두문불출 망우당(忘憂堂) 서재에서 세상 근심 다 잊고 자료 더미에 묻혀 김정일 총비서와 씨름하고 있었단다. 지난 시절의 테러와 옥고로 아직껏 몸조차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그렇게 몇 년을 김정일 연구에 심취해 있었다니, 정말이지 그 열정이 대단하다.『김정일』은 그 뜨거운 열정의 아름찬 결실이다. 
 
이찬행 위원이 김정일 총비서를 화두로 삼고 김정일 연구에 몰입해 온 지 어언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미 그동안 많은 저서를 내었지만, 그 으뜸은 단연 『인간 김정일 수령 김정일』(열린세상, 1994)이다. 이 책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본격적인 김정일 연구를 최초로 시도한 작품으로서, 김정일 총비서에 대한 인식이 천박하기 한량없던 당시 풍토에 단비와 같은 큰 공헌을 하였다. 물론 반북 냉전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던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그 댓가는 실로 혹독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인간 김정일 수령 김정일』의 연장선상에서 그것을 대폭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지난 10여년간 이찬행 위원이 일관되게 천착해온 김정일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원고지 9,000여 매에 1,200쪽이 넘는 그 방대한 규모에서 보듯, 출생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정일 총비서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그야말로 `김정일 대사전`이라 할만하다. 김정일을 알고 싶으면 『김정일』만 보면 될 정도이다. 특히 이찬행 위원은 방대한 분량의 1차 자료에 입각해 매우 세밀하고 엄밀한 문헌 분석을 시도하는 한편, 국내외에서 출판된 김정일 관련 연구서와 연구 논문들을 총망라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기존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찬행 위원은 원문 인용 각주를 일일이 원문과 대조하며 검증하는 치밀함과 세밀함을 보여 주었으며, 확인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자료를 가지고 쓴 국내외 2차 문헌들의 오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찬행 위원의 학문적·학자적 자세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역사도 모르고 북한의 공간(公刊) 문헌도 읽지 않고, 읽는다 해도 자신의 주관적 목적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 또는 인용하여 그 의미를 호도하며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북한 연구의 학문적 시민권"을 획득했다고 학자연 하는 뭇 연구자들에게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시민권? 그것은 실력과 전문성 보다 간판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병폐일뿐이다. 이찬행 위원은 김정일학의 최고 전문가이다.
 
최고 지도자로부터 시작해서 최고 지도자로 끝나는 북한 사회에서 최고 지도자에 대한 연구는 북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열쇠이다. 김정일을 모르고서는 북한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이루 헤아릴수 없을 만큼 무수한 김정일 연구서와 연구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소위 `김정일 신드롬`에서, 보듯, 김정일 총비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아직 일천하다 못해 무지몽매하기 그지없는 형편이다. 손에 꼽을 정도의 극히 일부 연구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존 연구서들 역시 무지몽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북 냉전 이데올로기에 물든 형형 색색의 안경을 쓰고 보기 때문이다.
 
이찬행 위원은 시종일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객관적이며 통일지향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김정일을 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의 지적대로 "냉전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사고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저서에서 이찬행 위원은 `내재적 독해법`에 입각하여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이론적 차원에 국한시켜 김정일 총비서의 인간·사상·리더십 등 그 전모를 밝히는 데 최대한의 심혈을 기울여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 총비서의 실체를 보다 명료하게 확인하고 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는 한편, `불변 속의 변화`의 개념으로 김정일 시대의 전략 노선과 변화 내용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 연구 목적대로, 이찬행 위원은 김정일 총비서에 대한 기존의 그릇된 인식을 하나하나 바로 잡으며 김정일 총비서의 실체를 전면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다. 반북 냉전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횡행하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이찬행 위원의 논지는 여전히 시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방대한 자료 섭렵과 치밀한 분석, 최상의 내용 등 그 애쓴 흔적으로 보아 김정일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로 주목할만한 연구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포괄적이어서 모든 것을 다 검토하기는 어려운 바, 여기서는 중요한 몇가지 측면에 한정하여 이찬행 위원의 논지를 한번 검토해 보기로 한다. 
 
먼저 김정일 총비서의 출생지와 관련하여, 이찬행 위원은 현재까지 공개된 중국측의 공식 사료를 활용하여 김정일의 부모(김일성과 김정숙)의 행적을 추적함으로써 기존의 지배적 견해인 `소련 출생설`의 오류와 허점을 비판적으로 논증하고, 소련 출생설은 "그 어떤 정확한 물증도 증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 근거 또한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김정일의 성장 과정과 관련하여, 편부 슬하에서 정신 이상자, 황태자 등으로 길러졌을 것이라는 기존의 추측과는 달리 이찬행 위원은 김정일 총비서가 당시 북한의 사회·교육 체계 속에서 정상적인 교육 과정을 밟으며 학습(인식)과 활동(실천)에서 스스로의 적극적인 노력과 남다른 열정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북한 사회의 역사적 발전 방향과 궤를 같이하며 어떻게 `주체의 세계관`을 형성해 나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 역시 수령의 전사였던 것이다.
 
『김정일』의 백미는 역시 김정일 총비서가 어떻게 김일성 주석의 유일 후계자가 되었으며, 이후 어떤 정치를 펼쳤는가 하는 것이다. 기존의 대부분의 연구들은 부자 권력 세습의 측면에서 아버지의 후광으로 김정일 총비서가 김일성 주석의 유일 후계자로 옹립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찬행 위원은 간접적으로 일정한 기회의 불평등은 있었겠지만, 김정일 총비서가 김일성 주석의 유일 후계자로 추대되는 데 있어 직접적으로 보다 중요한 요인은 김정일 총비서 스스로의 노력과 재능이었다고 논증하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가 아버지의 후광 속에 어느 날 갑자기 지도자로 부상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 이미 준비된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북한의 사회주의 노선은 단결의 정치, 단결 사회주의의 건설이었으며, 이를 위해 1960년대 중반 북한은 수령 체계의 확립을 전국가적 목표로 추구하고 있었다. 이찬행 위원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는 바로 이와 같은 북한의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즉 유일 사상 체계의 확립과 관련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영화 등 문화 예술 부문을 중심으로 한 사상 사업(선전 선동 사업)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였으며, 이것이 김정일 총비서가 김일성 주석의 유일 후계자로 추대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 총비서는 유일 사상 체계의 확립이라고 하는 당시 북한의 최대 정책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북한식의 검증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후계자로 추대되기 이전에 이미, 후계자의 제1요건인 사상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또 이찬행 위원은 1974년 김정일 총비서가 김일성 주석의 유일 후계자로 추대된 이후 그의 정치 활동을 분석하면서 김정일 총비서의 조직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사상과 조직은 사회주의적 실천의 양 수레바퀴였던 것이다. 특히 이찬행 위원은 1970년대 수령의 절대화, 주체사상의 체계화, 사상의 제도화, 조직의 공고화 등 당시 북한의 국가적 목표였던 단결 사회주의로서의 수령 체계를 완성해 나가는 데 김정일 총비서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후계 체계도 함께 구축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기존의 대부분의 연구들은 1970년대 김정일 총비서의 정치 활동을 그저 부자 권력 세습으로서 권력 장악 과정으로만 파악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찬행 위원은 단결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김일성 주석의 혁명 위업, 즉 그의 사상과 노선과 업적을 사상, 조직, 리더십, 권력 등의 제반 영역에서 온전히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역사 과정으로서 김정일 후계 체계 확립 과정을 세밀히 분석하고 있다. 이 부분이야말로 『김정일』의 백미 중의 백미이다. 일심단결은 김일성 주체 노선의 핵심이자 김일성 주체 사상의 핵심이며, 또 일심단결은 김정일 총비서의 혁명 철학이기도 하다. 이찬행 위원의 지적대로 김정일 총비서가 역사에 도전하는 화두는 인간과 단결이며, 일심단결은 "조선노동당의 영원한 철학이자 화두"이다.
 
이러한 인식에 바탕하여 이찬행 위원은 1980년대 이후 사상 - 군 - 정 - 당으로 이어지는 김정일 총비서의 순차적인 영도권 계승 과정을 분석하면서 김정일 총비서의 리더십의 특징을 밝혀내고 있다. 이어 이찬행 위원은 `우리식 사회주의`에 바탕한 김정일 총비서의 전략 노선과 각 부문별 정책 방향을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김정일 시대의 노선과 정책은 단결의 정치에 바탕한 김일성의 사회주의적 발전 전략의 계승 완성으로서 김일성 시대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지만, 정세 변화에 맞게 `주체식 실리주의적 경제관`으로서 사회주의의 제도적 틀 내에서 실리와 효율을 강조하는 등 일정한 변화가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물론 그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방향으로의 개혁이나 개방은 아니지만, 주체식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다소 더디고 느리더라도 의미 있는 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김정일 총비서의 전략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현재의 인류 역사 발전 단계의 한계를 고려하면, 지적 교만에 빠지지 않는 한, 이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식의 사회주의 실천은 그야말로 "전인미답의 길"이다. 이에 대한 이찬행 위원의 결론은 "역사에 도전하는 북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이다. `역사의 종언`을 운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찬행 위원은 김정일 총비서가 역사에 도전하는 내용을 크게 `계승과 발전`, `계몽과 신화` 두 가지로 지적하고, 그것을 수령의 유훈 정치라는 명제로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곧 북한 역사에서 하나의 신화가 된 북한 인민의 영원한 수령 김일성의 혁명 위업, 주체 혁명 위업의 종국적 완성이다. 이찬행 위원 역시 여기에 주목하여 수령의 유훈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 운영 방식으로 김정일 총비서의 선군 정치를 분석하고, 이 선군 정치를 단결의 정치에 바탕한 수령 체계의 확대 강화로 설명하고 있다.
 
유훈 정치와 결합된 수령 체계의 확대 강화라는 분석 틀을 통해 이찬행 위원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곧 수령 영생 정치이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전까지 기존의 대부분의 논의들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 북한에서도 승계 위기와 혼란이 발생하여 곧 체제가 변질되거나 붕괴될 것으로 예단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예상은 모두 빗나가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정일 총비서가 사망하면 북한에서도 그야말로 승계 위기와 혼란이 발생하여 곧 체제가 변질되거나 붕괴될 것이라는 예단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번에는 이 예상이 적중할까?
 
그런데 이찬행 위원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구호에서 보듯, 김일성 주석 이후 최근까지 북한은 수령 영생 정치를 통해 그 어떤 사람이 최고 지도자가 되든 수령의 혁명 위업을 더욱 안정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모색해 왔다는 것이며, 이것이 유훈 정치와 결합된 수령 체계의 확대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누가 이끌지 아직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역시 안정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60∼1970년대에 확립된 수령 체계 역시 수령의 혁명 위업을 안정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던 것이다. 이쯤되면 북한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김정일』 한 권에 다 녹아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찬행 위원은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인정하고 이론과 현실을 오가며 비판적으로 검토했다고 하지만, 이론에 비해 현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며, 이론적 분석 역시 정교함이 덜한 부분도 적지 않다. 물론 저자의 문제 설정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이 이 책의 근본적인 결함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찬행 위원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 책의 주된 연구 목적은 이론적 차원에서 김정일 총비서의 인식과 가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담아야할 내용의 많은 부분을 저자 스스로 누락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시대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수정 보완해야 할 부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또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추천사에도 지적되어 있듯, "이 책이 담고 있지 못한 내용은 정말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한 것이고, 이 책에 잘못 기술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이북에 대한 정보 수집 능력과 인식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연구에 있어 이찬행 위원의 공에 비하면 과는 미약한 것이며, 과는 우리 연구자 모두가 함께 채워야 할 우리들의 몫이자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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