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의 말이 다의성(多義性)을 가질 경우 그 말의 가치는 올라간다. 그 말이 원칙과 현실을 담고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27일 동교동 자택을 찾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의 면담자리에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내려 한다”며 이는 “성공 못한다”고 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더 나아가 DJ는 “이명박 정부는 무슨 수로도 (남북관계 발전을) 역행하지 못한다. 만약 역행한다면 김영삼 정부 시절의 통미봉남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 DJ의 이같은 비판과 경고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먼저, 남북관계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의도적 파탄’이라는 아주 쉬운 표현을 통해 남북관계 경색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을 엄중히 묻고 있다. 둘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들에 대한 야성(野性)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의도적 파탄’이란 말이 갖는 파괴력을 통해 야당의 대여(對與) 투쟁의 방향과 선명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셋째, 무엇보다도 DJ의 통일에 대한 집념이 화끈하게 드러나 있다. DJ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나라와 민족을 망치게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 DJ의 통일에 대한 집념은 이미 오바마가 미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아주 강렬하게 표출된 바 있다. 부시의 뒤를 잇는 공화당 매케인이 아니라 클린턴과 연관을 갖는 민주당 오바마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는 오바마의 당선이 “미국민의 위대한 양심을 세계에 과시한 혁명적인 사건”이라며 극찬했다. 젊은 날 ‘풍운아’였던 DJ 자신이 오바마를 ‘검은 케네디’만이 아니라 ‘젊은 DJ’로 봤을 듯하다. 오죽하면 그가 “우리 한국은 이제 남북관계의 정체에서 벗어나 미국과 손잡고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을까?

◆ DJ는 이명박 정부만이 아니라 미국의 두 행정부 그리고 북측에 대해서도 무슨 얘기든 할 수가 있다. 보기 드물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미국의 두 전현직(클린턴, 부시) 대통령을 접한 인물이기에 그렇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 정책은 부시 정부의 실패한 정책”이라고 단정했다. 아울러 “클린턴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전면적으로 지지했다”면서 “(북미관계가) 거의 다 해결되는 분위기였는데 부시 대통령이 파탄시켰다”며 부시 행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동일시했다.

◆ DJ는 남-북-미의 역학관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는 “북한의 최대 소원은 미국과 관계개선”이라면서 “미국과 관계개선을 받아줄 정권이 오바마 정권”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더 나아가 “북미간에 관계가 개선되는데 어떻게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 다투겠나”하고 되물었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의 대북 강경정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도 DJ의 이같은 통찰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DJ를 단순히 정치적 반대자 정도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DJ는 민족문제 전문가이자 통일 원로다. DJ의 통일에 대한 집념을 존중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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