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상임대표, 수필가)

이 연재 글은 치과의사인 이병태 원장이 지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참관했다가 쓴 방북기이다. 이 방북기는 평양-백두산-묘향산-청천강의 순서로 7회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현재 이병태 원장은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치의학 관련 남북교류사업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 편집자 주

백두산(8) 여기는 압록강 상류

▲ 백두산 정상에 있는 비석물 '국가기진점' [사진-이병태]

개울을 건너면 동네가 달라지고 고개를 넘으면 군(郡)이나 도(道)가 갈린다. 말도 달라져 사투리가 생기고 풍습이 달라진다. 나는 지금 백두산 정상에 서 있다. 나침판도 없어 동서남북을 헤아릴 수 없다. 감(感)으로만은 참으로 허전했다.

‘아마도 여기서 이쪽으로 우묵한 것을 보니 흘러내려 가면 압록강이고, 그 강이 중국과 경계인데.’

이런 생각을 하던 중 내 눈에는 범상치 않은 시멘트 빛깔의 인조 비석물이 확 들어왔다. 디카로 땡겼다. ‘국가기진점’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것이 세종로 사거리에 있는, 각 시와 도의 도로 노선의 기점·종점 또는 경과지를 표시하는 ‘도로원표’(道路元標)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어떤지, 누구한테 물을 수도 없었다.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다.

이제 백두산 정상을 떠나야 했다. 향도봉역 주차장에서 승차하고 30분 정도 내려오는 동안 고원과 평지의 오른쪽은 골이 깊어졌지만 푹 꺼진 협곡을 이루는 것 같았다. 마치 철원의 한탄강처럼 말이다. 이건 완전히 내 상상이었다. 나는 우리나라 지도에서 백두산 표시 ▲에서 바로 왼쪽 빗변이 하방(下方)으로 이어지는 중국과의 국경선 점선 표시를 따라 하산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누구 하나, 여기가 어딘지 묻지 않았고 또 가르쳐 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고원 초원에 차려놓은 도시락 점심을 무리지어 먹었다.

▲ 고원지대에서 점심. 멀리 백두영봉이 보이고 왼쪽 버스대열 아래는 압록강 상류이며, 왼쪽산은 중국이다. [사진-이병태]

청명한 가을 하늘에 바람 한 점 없는 깨끗한 날이다. 어찌 이리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가 있을까. 우리가 점심 도시락을 먹는 곳은 짐작에 형제폭포 근방의 고원이었다.

“선생. 날씨 좋고 따뜻하고 날파리도 없고 도시락 밥 맛, 음식 맛 좋아, 아주 좋습니다.”
“아, 그렇습네까. 잘 잡수고 맛있다니까 우리도 좋습네다. 여러분들 아주 복 받았습네다. 먼저 팀은 올랐지만 못 봤습네다. 눈보라가 치댔습네다. 야아, 오늘 정말 좋습네다.”

“선생, 비가 오면 어디서 먹습니까?”
“버스에서 먹지요! 아니면 안전한 장소가 또 있습네다.”

백두폭포와 형제폭포를 볼 수는 없었다. 짐작컨대 점심 먹던 평원 바로 오른쪽 밑 어디쯤에 형제폭포, 백두폭포가 있을 것 같았다. 답답하기만 했다. 중국자료에는 제운폭포가 있는데 그 표현이 형제폭포와 같지만 이것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백두산에 또 가야겠다.

백두산(9) 백두산과 장백산

▲ 백두산 정상을 탐방하고 향도봉쪽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방북단 일행. [사진-이병태]

명칭대로라면 나는 장백산을 수도 없이 올랐다. 백두산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백두산 관련 산서(山書)를 냈지만 그 자료나 탐험과 유람은 전부 중국을 통해서 해 왔었다.

이번에 서울(인천) --- 평양(순안) --- 삼지연공항 --- 백두산(백두역-향도역) --- 베개봉호텔 --- 삼지연공항 --- 평양(순안) --- 서울(김포)로 오는 동안, 느낀 점이 많다. 한 마디로 만감이 회오리친 것이다.

지금 중국은 장백산 관광이 자국내 산업으로도 돌아가고 남는다. 1989년 이후 대한민국 사람들이 홍콩으로 북경, 심양을 돌아 그들의 장백산을 보면서 확 달라졌다. 연길공항은 지금의 삼지연 공항 규모와 비슷했는데, 제주공항 조금 못 미칠 정도로 커졌다. 규모와 시설이 작던 연길 공항이 커진 것은 동포적 연결과 공감대였던 것이다. 1989년과 1990년경, 연길 --- 장백산 --- 천지/천문봉 접근로는 비포장이거나 아주 자연적이었다. 서울서 관광객이 많이 가다보니 지금처럼 발전했다.

중국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중국은 다민족(56개)국가이다. 중국은 편리주의 경제 국가이다. 이는 느낌을 말한 것이지 결코 경제학 용어가 아니다. 통제경제, 자유경제가 다 통한다는 뜻이다.

한 가지, 중국 길림성(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하던 장백산 관광사업에서 수입이 아주 많아지자 중앙(북경)정부에서 가져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장백산으로 가는 곳은 잘 개발되어 있고, 장백산 입구부터 산상(천문봉)에 오르는 자동차도 미국․ 유럽 비슷하게 개발해 놓았다. 이러는 동안에 속된 말로 왕창 변했다. 한국말/조선말로 통했었는데 지금은 한어/중국말로 해야 한다. 동북공정이 확 다가 왔음을 이미 나는 느꼈던 것이다.

백두산(10) 현실과 희망

▲ 삼지연 베개봉의 스키장 슬로프. 건물들 뒤에 있는 베개 모양의 봉우리가 베개봉이다. 그 베개봉 왼쪽에 스키장이 보인다. [사진-이병태]

1. 중국 쪽보다 우리 쪽이 더 자연스럽다. 이는 개발이 덜 했다는 뜻도 된다. 허전해 보이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2. DPRK 백두산을 과감하게 열어야 한다.

ㄱ. 철저한 통제를 하면서도 보아야 할 곳(예. 백두폭포, 형제 폭포, 고원과 능선 및 봉우리들)을 안내, 공표하자.
ㄴ. 대피소, 휴게소(예 : 소규모 호텔)를 백두역, 형제폭포 부근에 두면 어떨까.

3. 계절별로 활용하자.

ㄱ. 여름철 : 봄부터 눈이 내리기 전까지 일반관광과 등산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
ㄴ. 겨울철 : 스키와 스노보드를 이용한 젊은 층을 불러들이자. 그리고 동계스포츠를 연다.

4. 학술적으로, 민족적으로

각계각층(예 : 기후, 기상, 산림, 원예, 작물, 민속, 문학, 예술, 토목, 건축...)이 세상에 밝혀져서 중국이 하는 것에 묻히지 말아야겠다.

5. 저술적으로

장백산/백두산을 개인적으로 가보고, 그때마다 자료스러운 것을 놓치지 않고 샀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자료들이 보잘 것 없다고 본다. 그런데 세간에 발표되고 쓰여진 것들을 볼 때면 한심스럽다면 지나치고 아주 부족하게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료가 없는 것인지, 있는 자료를 채 보지 못한 것인지 어찌 이런 수준일까 할 때가 더러 있다. 관심을 가지고 보는 필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향도역-백두역으로 내려가는 길. 이 차도에는 현지 돌 블럭으로 깔아놓았다. [사진-이병태]

남과 북, 남북과 일, 남북과 중국, 남북과 미국... 이런 복잡한 상황에 있다. 내가 첫 백두산 등정에서 코끼리 다리 만지듯 하고 온 처지여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초중고, 대학, 대학원을 다니면서 예습했던 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예습 했을 때면 대부분 그때마다 효험을 보았다.

이번 백두산은 나름대로 예습을 하고 갔지만 너무나도 당황했다. 산에 대해 일러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날 선배 따라 다녔던 산악생활이 떠올랐다. 그 배고픔에 나는 일러주고 있다.

백두산(11) 당일치기도

▲ 삼지연의 베개봉호텔. [사진-이병태]

백두산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말로만 되겠나. 민족정기를 일깨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친목계, 여행, 유랑, 순례, 관광, 체력단련, 단합대회, 학술발표, 연구조사 등을 하면서 가까워지려면 삼지연공항 이용을 우선적으로 하면 된다.

ㄱ. 평양 --- 삼지연
ㄴ. 서울 --- 원산 --- 삼지연
ㄷ. 부산 --- 원산(함흥) --- 삼지연.
이상은 전 구간을 육로를 이용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을 구상하여 토목공사를 벌이면 몇 년 내 가능하다.

ㄹ. 서울(김포공항, 7시발, 기내식) --- 삼지연공항(9시) --- 백두봉(11~12시) --- 고원 형제폭포(1시 점심) --- 삼지연공항(4시) --- 서울(김포공항, 7시)
이상 시간은 항공시간, 출입경 절차를 적절히 하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사업은 중국도, 미국도, 일본도, 소련도 그 어느 나라와도 관계없다고 본다. 손에 손잡고, 터놓고 남북 우리끼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개발된 장백산과 자연 그대로의 백두산을 본 나는 왠지 가슴이 뛴다. 고려항공 비행기에 앉아 그 창공에서 왼쪽 창밖으로 깨끗하고 잔잔하게 보이던 백두영봉이 눈에 선하다.

아, 백두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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