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평화3000’은 주요 대북 협력사업 중의 하나인 장충성당에 있는 콩우유공장을 현장방문했으며, 아울러 평양시내-백두산-묘향산을 참관하였다.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과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면서 느낀 방북기를 일기식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김 기자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평양일기를 작성한 적이 있기에 이번 방북기 제목은 구별을 위해 ‘김양희 기자의 다시 쓰는 평양일기’로 한다. / 편집자 주


단고기와 자연산 송이버섯

▲ 평양단고기집에 남측 사람들이 들어오자 북측 접대원들이 박수를 치며 맞이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친 일행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평양단고기집으로 향했다.

지난 2005년 첫 방북 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단고기집에서의 식사라고 할 만큼 좋은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점심 만찬도 적게 먹었을 정도로 기대가 컸다.

나뿐 아니라 단고기집에 기대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북녘의 단고기가 워낙 맛있기로 소문이 났고 유명하기 때문에 평소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이번엔 한 번 시도해 보겠다”며 이곳을 찾았다.

평양단고기집도 보수공사를 했는지 지난 2005년보다는 식당 내부가 좀 더 화려해진 듯하다. 자리를 잡고 앉자 순서대로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개고기가 혐오식품으로 꼽혀 식품위생법 상으로 관리되지 못하지만 북녘은 해마다 요리대회를 하는 등 단고기 요리를 민속요리로 계승 발전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때문에 남녘에서는 개고기 요리가 수육이나 탕 정도에 그치지만 이곳에서는 부위별로 다양한 요리가 나온다. 우리가 먹는 이번 단고기 요리는 총 밥과 김치까지 모두 9가지 간편화된 코스 요리이며 전체 코스 요리는 28가지나 된다고 한다.

단고기는 옛부터 제단에 올리던 고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녘에서 부위별로 코스 요리를 먹는 이유는 부위별로 먹어 한 마리를 모두 맛볼 수 있도록 한 것이란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라고 하지만 나는 북녘의 단고기 요리에 실망을 해 본 일이 없다. 모두들 흐뭇한 표정으로 나오며 단고기를 먹지 않은 이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숙소로 이동하면서 단고기를 먹지 않은 이에게 “어떤 음식을 먹었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은 놀라웠다. 이들은 따로 모여 자연산 송이로 만든 버섯전골을 먹었다 한다.

자연산 송이보다 ‘혹시 단고기를 먹지 않는 이가 있을지 몰라 어제 산에서 직접 딴 자연산 송이를 대접한다’고 했다는 북녘 봉사원의 말을 전달하는 그의 대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숙소에 돌아온 일행은 평양에서의 첫날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바로 양각도호텔의 회전전망칸식당으로 올라가 회포를 풀었다.

여기서 이창훈 경희총민주동문회 사무국장은 “가슴이 뜨거워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했다. 일행은 내일 백두산 일정에 차질이 생길지 몰라 뜨거운 가슴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2008. 9. 28

삼지연공항 가는 길

▲ 삼지연공항.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오늘은 백두산으로 향하기 위해 삼지연으로 떠나야 한다. 아침 일찍부터 밥을 먹고 짐을 챙겨 나왔다. 막상 산에 올라가면 좋지만 올라가는 과정을 무척 힘들어하는 나로서는 백두산 일정이 사실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악착같이 가긴 하겠지만 힘이 빠지면 지친 마음에 취재를 소홀히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백두산을 가 본 적이 있는 몇몇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정상까지 올라가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천지가 띡 보인다고 이야기를 해줘 부담이 덜 됐다.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천지에 다다르기 전에 내려서 걷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헉~ 백두산에 이틀 전 첫눈이 내려 버스가 천지까지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부는 그럼 버스로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간 뒤 그 다음부터는 걸어올라 가면 좋겠다고 하기도 했고 또 일부는 천지를 보지 못할까봐 걱정이라고도 했다. 소문은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확대되고 또 확대되면서 급기야 눈이 허리까지 내렸다고 하고 허리까지 쌓인 눈을 헤치며 천지를 향해 오르는 것도 아주 색다른 맛일 것이라고 한다.

어쨌건 참관단은 서둘러 평양순안공항으로 향했다. 평양순안공항에서 삼지연공항으로 향하는 고려항공을 타는 것이다.

현재 시간은 오전 7시 20분 정도.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거리에는 수십명씩 모여 청소를 하러 나왔다. 늦잠을 잘 법하기도 한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강제성을 띤 것이 아닌가 싶어 안내원에게 물었다.

“쉬는 날인데도 많은 분들이 나와서 청소를 하시네요.”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 근처의 도로나 공동 구역을 나눠 청소를 합니다.”
“안 나오면 어떻게 되죠? 벌금을 물거나 혹시 제재가 있나요?”
“할 수 없지 어쩌나? 안 나오면 이웃주민들에게 눈총을 받지.”

겨우 이웃주민의 눈총이 무서워 쉬는 날 이렇게 일찍 내 집도 아니고 공동구역을 청소하러 나오다니, 남녘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사회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인 북녘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반면에 남녘은 겨울마다 내 집 앞 눈치우기 캠페인을 벌이고 벌이다 못해 통 먹히질 않으니 이제는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물린다고 정했다. 돈이면 뭐든 통하는 자본주의 국가임을 자랑하듯 눈을 치우는 일도 돈으로 해결을 보는 것이다. 그나마 겨울눈이 아니면 대문 앞 도로 청소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고려항공 비행기 내부의 ‘담배를 피우지마시오! 박띠를 매시오!’ 문구.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평양에 전세기를 타고 들어왔듯, 삼지연공항에 가는 길도 ‘평화3000’ 참관단만이 전세기를 타고 간다. 이미 고려항공을 몇 차례 타 봤지만 고려항공 내부의 ‘박띠를 매시오’ 같은 문구들은 볼 때마다 새롭다. 참관객들은 고려항공 내부를 신기한 듯 찍는데 이전과 달리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사진을 찍지 말라고 부탁을 한다. 삼지연공항까지는 50분이 걸린다고 하니 금세 도착하는 셈이다.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을 한다. 이전 김포공항에서와 중국 북경공항에서 평양에 들어 갈 때 고려항공은 “혁명의 수도 평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식의 기내방송을 했는데 국내선이라 그런지 별다른 기내방송이 없고 다만 남녘과 마찬가지로 간단히 비상시 탈출 요령 등을 설명한다.

나는 운 좋게 창가 쪽에 앉아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날씨가 어찌나 좋았던 지 육안으로도 논이며 작은 집들까지 다 보였다. 신기하게도 평양 순안 공항 근처에서는 논과 밭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백두산이 개마고원 근처라서 그런지 남녘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산세가 험한 산맥들이 펼쳐진다.

북녘의 식량자급률은 70%에 이르는데 농지가 10% 정도이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산 등이 90%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 큰물 피해나 가뭄 등의 자연재해 외에도 매년 식량난이 발생할 수밖에... 다행히 올해는 아직까지 풍년이라니 수확 직전에 큰물 피해만 없으면 된다고 하니 제발 무사히 풍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천지 보고 야했지’

▲ 삼지연공항에서 백두산 가는 길. 양쪽 길 주변에는 이깔나무 밀림이 펼쳐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삼지연공항은 순안공항에 비해서 규모가 작았다. 백두산 관광을 앞두고 민주노총, 추모연대 등의 단체가 남녘에서 피치를 지원했다고 하는데 빠듯한 일정에 그 표식 등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삼지연공항이 이곳이고 이런 모습이구나’ 눈으로 담을 수밖에.

삼지연공항에는 우리만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신분 확인 등의 절차 없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활주로 옆에 있는 버스로 이동해 바로 백두산으로 향했다.

날씨는 매우 맑았지만 이곳은 북녘에서도 가장 추운 곳으로 벌써 영하의 날씨를 자랑한다. 백두산 천지는 영하 10℃에 육박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부터 옷을 단단히 입어야 한다.

백두산 삼지연 공항에서 백두산까지 버스로 1시간여 거리라고 한다. 버스를 타고 한참 가다보니 이깔나무 숲이 나온다. 이깔나무들은 꼭 금강산의 미인송들처럼 쭉쭉 뻗은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이곳은 여름 다음에 바로 겨울이고 워낙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오다보니 단풍이 드는 기간이 일주일 정도로 아주 짧다고 하는데 우리가 마침 그 때를 맞춰 왔다고 했다. 영광스럽게도 백두산의 일주일밖에 볼 수 없다는 단풍을 보게 된 것이다.

함께 참관을 온 최성호 공인회계사는 “캐나다의 벤푸 국립공원도 침엽수림이 많다”며 “그곳은 나무만 팔아서도 앞으로 70년 이상을 먹고 산다고 해 부러워했었는데 여기도 비슷한 모습이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주민들의 삶의 현실은 모르겠지만 이번 참관 중 북녘에서 깨끗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많이 느꼈다”고 덧붙였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보니 어느새 나무 병풍은 사라지고 키 작은 풀들만이 있다. 가파른 길을 한참 가다보니 저 멀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으로 ‘혁명의 성산’이라고 적힌 산 정상도 보인다. 산 오른쪽에는 ‘삭도’라고 불리는 케이블카도 보인다.

▲ 백두산 천지 오르는 길.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전경수 안내원은 “학교 다닐 때부터 해서 백두산에 스무 번도 넘게 와봤는데 올 때마다 민족의 성산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처음 천지에 도착했을 땐 어떤 생각이 들었냐”는 나의 질문에 돌아온 그의 대답은 황당하게도 “야했지” 한다.
‘헐~민족의 성산인데 뭐가 야해?’
나의 황당한 표정에 그는 더 당황해 했다.

“야했다니까!”
“예?”
“야! 하고 감탄사밖에 안 나왔다고.”
‘아 그런 거구나’

그럼 그렇지, 민족의 성산 백두산 앞에서 웬 빨간 비디오 생각을...ㅋㅋ ‘야하다’는 의미의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고 할까? 세파에 찌들고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그리 환호성을 지를 만큼 크게 감동할 일이 없고, 막상 생각해보니 이전에도 그리 크게 감동을 한 일이 별로 없었던듯한데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정경수 안내원은 해맑은 표정으로 백두산을 보고 “야”하고 탄성을 질렀다니 더욱 기대가 될 수밖에.

산에 오르기 전에는 이틀 전 눈이 왔다고 해 걱정이 컸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아 정상 부근에 희끗희끗 눈이 쌓여있을 뿐이고 차가 오르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사실 강원도의 깎아 지르는 낭떠러지를 곡예 하듯 운전하는 버스도 타봤기 때문에 이 높은 백두산을 어떻게 길을 닦았겠느냐 하며 어느 정도 각오를 했었지만 정상 근처까지는 길이 잘 닦여 있어 생각보다 훨씬 안전하게 차가 오르고 있다.

북녘의 솜씨 좋은 운전사 아저씨 덕분에 일행 중 하나가 “북녘에서 운전면허를 따려면 어찌해야하나?”하고 물었더니 학원을 다녀 시험을 보는 남녘과는 달리 운전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서 수련을 마친 이들에게 운전면허가 나온다고 한다.

“백두산에서 보는 해돋이가 가장 멋있다”

▲ 백두산 천지.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드디어 케이블카 정상인 ‘향도역’에 버스가 도착했다. 바로 앞에 천지가 보였고 정상인 장군봉까지는 1000m가 남았다. 장군봉과 반대방향으로 100m를 내려가면 천지로 가는 계단이 있다. 천지를 계단으로 내려가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정상에 오르기 전 화장실에 들렀다. 백두산의 향도역 근처에 있는 화장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화장실이니 안 가볼 수 없었다.

산에는 맑은 날씨에 눈이 거의 녹았지만 응달진 화장실에는 엊그제 왔던 눈이 발목까지 쌓여 있다. 스위스에 가면 산 아래는 초원으로 꽃들이 만발해 있지만 기차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오르면 아무 곳을 찍어도 엽서사진이 될 만큼 눈이 가득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데 백두산도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일행이 모이자 해설강사의 설명을 시작한다. 백두산은 항상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항상 희게 보이고 웅장하고 장엄한 크고 작은 산들을 한품에 안고 있는 노장의 머리와 같다고 해 ‘백두산’이라고 불렸다.

▲ 백두산 향도봉에 써 있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 왼쪽 건물이 향도역.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백두산의 향도봉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 글씨로 ‘혁명의 성산’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길이가 216m, 높이가 50m나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을 ‘혁명의 성산’이라 이름을 붙인 후 북녘에서는 백두산을 혁명의 성산, 영웅의 산이라고 부른다.

서쪽에 위치한 장군봉은 2,750m, 동쪽에 위치한 향도봉은 2,712m에 이른다고(남녘의 백과사전에는 백두산의 높이가 2744m라고 되어 있으며 이후의 자료도 북녘의 해설강사의 설명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1116년부터 1167년 사이에 분출된 화산으로 생긴 천지는 길이가 14.4km에 이르고 넓이는 9.165 평방km에 이른다. 깊이는 평균 213m에 이르고 최대 깊이는 384m나 되며 넓이는 5,500만 입방km다.

백두산 천지에는 지난 1984년 산천어 100마리를 방생했는데 지금은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지난 1963년 처음 백두산에 올랐고 이후 1993년까지 총 6차례 이곳을 찾으며 항일 무장투쟁 시기를 하나씩 떠올리곤 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주석과 함께 1963년 처음으로 이곳에 올랐고 1999년까지 14차례에 걸쳐 찾았다고 한다. 특히 지난 1998년에는 4차례나 백두산에 오르며 “백두산에 오르며 손발도 얼어보고 해돋이에 심장도 달궈봐야 혁명을 알 수 있다”며 “백두산에서 보는 해돋이가 가장 멋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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