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로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북남관계 전면차단을 포함한 중대결단”을 내릴 수도 있음을 천명했다. 북측의 기질로 보아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남측더러 6.15선언과 10.4선언 계승과 함께 남북대화를 요구해 왔는데, 이명박 정부가 미적미적 대며 화끈한 답변을 안 해왔기 때문이다. 북측으로서도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지난 4월 1일과 5월 30일자 <로동신문> 논평원의 글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일차 충고나 경고였다면, 이번 것은 그 내용과 대상 그리고 시기에 있어 최후통첩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 논평원의 글은 내용에 있어 이명박 정부의 그간 대북정책을 총화하고 있으며, 과녁은 “이명박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며 이 대통령을 직접 정조준하고 있다. 문제는 왜 지금이냐는 시기다. 북측은 아마 시기를 저울질 해 온 것 같다. 마침 그 시기가 온 것일까? 미국과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가 해결되고 또한 뒤늦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9월 5일 담화가 발표된 직후다.

북한은 지난 11일 미국과의 ‘북핵대결’ 2회전에서 ‘원안대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무리한 핵시설 검증 요구를 잠재우고 테러지원국 해제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미루자, 핵시설 불능화 중단 및 원상복구 조치로 맞서면서 ‘대화냐 대결이냐’로 몰아갔다. 미국에 최후통첩을 보낸 것이다. 이는 북한이 핵을 소유하고 있는 ‘실리’와 무엇보다도 “북미간 어떤 합의들에도 핵신고서 검증문제와 테러지원국 해제를 조건부로 규제한 조항이 없다”는 ‘명분’에서 앞서 있기에 가능했다. 이제 북측은 부시 행정부 말기부터 새 정부가 출범해 대북정책을 입안할 때까지 최소한 시간을 벌거나 미국측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담보받았다. 따라서 이제 북측이 남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 즉,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친 뒤 ‘이라크 다음엔 북한’이었듯이 북한 역시 미국과 테리원국 해제 문제를 푼 뒤 ‘미국 다음엔 남한’인 셈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9절 60돌 기념행사 때 불참한 것을 두고 남측발 ‘건강이상설’이 돌더니 더 나아가 ‘급변사태설’마저 나왔다. 이때 북측의 심기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북측은 이번 논평원의 글에서도 남측의 대북정책과 대북행태 등을 모두 열거하고는 못 참겠다는 듯 “우리의 최고 존엄을 감히 건드리는 것은 우리 체제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공공연한 선전포고”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최고 존엄’이란 김 위원장을 말한다. 따라서 북측은 남측의 ‘무분별한 도발’에 대해 한 번 크게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마침 그때가 왔다. 외부에서 보기에 부재중인 김 위원장의 9월 5일자 담화를 통해 정리하고자 한 것이다. 지금 북한은 언론매체를 통해 담화를 ‘불후의 고전적 노작’, ‘역사적인 노작’이라 칭하면서 대대적인 해설과 홍보작업에 한창이다. 담화에는 “조국의 자주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우리 민족이 들고나가야 할 기치는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이라고 명시돼 있다. 교시적 성격을 갖는 이 담화에 근거에 남측을 추궁할 ‘명분’이 마련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논평원의 글은 범상치 않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남측 정부의 태도다. 통일부 대변인은 논평원의 글에 대해 ‘북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당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대변하는 글’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북측의 최후통첩성 발언을 하나의 불만 정도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남측은 매사가 이렇다. 이게 문제다. 논평원의 글에도 남측이 “‘대화’요, ‘진정성’이요 하면서 마치도 북남관계에 관심이나 있는 척 요술을 부리고 있다”며 꿰뚫고 있다. 북측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도 ‘대화냐 대결이냐’에서 택일을 해야 한다. 여기에선 ‘요술’을 부리거나 어물쩍거릴 시간이 없다. 논평원의 글에도 그 답은 나와 있다. 6.15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는 일이다. 북측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현실적 ‘실리’에 근거해 그간 선점해 온 6.15와 10.4의 ‘명분’으로 남측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실물경제가 위협받는 판에 북한발 최후통첩마저 올바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이는 이명박 정부에게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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