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평화3000’은 주요 대북 협력사업 중의 하나인 장충성당에 있는 콩우유공장을 현장방문했으며, 아울러 평양시내-백두산-묘향산을 참관하였다.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과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면서 느낀 방북기를 일기식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김 기자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평양일기를 작성한 적이 있기에 이번 방북기 제목은 구별을 위해 ‘김양희 기자의 다시 쓰는 평양일기’로 한다. / 편집자 주

2008.9.27(토)

약속을 지키게 된 평양행

▲ 전광판 네 번째 줄에 '평양'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드디어 북녘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

지난해 5월 평양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나는 이젠 다시 오지 못 할 곳을 떠나는 마냥 아주 펑펑 울었다. 남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누가 보는 앞에서 절대 울지 않는 내가 북녘을 떠나면서 꼭 이산가족이 헤어지기라도 한 듯 그렇게 운 것이다.

음식이야기 기사를 쓰면서 북녘의 음식은 어떤 지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 시작한 방북취재가 세 차례나 진행되면서 이제는 여러 가지 제약으로 다신 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듯하다.

그때 난 “키가 나보다 작으니 그냥 내 동생을 하라”고 놀려댔던 북측 로승일 안내원을 오빠로 삼았고 오빠의 “내년에도 꼭 오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이산가족 아닌 이산가족이 됐던 것이다.

그리고는 정확히 1년 하고도 4개월여 만의 평양행, 1년 후에 오라는 약속을 4개월여 밖에 미루지 않은 것이지만 그동안의 남북관계를 볼 때 이번 평양 방문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관계는 악화되기만 했고 그러던 중 터진 금강산에서의 사고는 10년 넘게 아무렇지 않게 갈 수 있었던 금강산관광마저 단절시켰다.

또 그동안 어쩜 저리 모든 것들을 다 망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인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지난 9월 민주노동당을 비롯, 각종 단체의 평양행이 좌절되자 어쩌면 민간 교류마저 막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강산관광이 아주 단절된 것처럼.

사실 처음 평양에 가기로 한 날짜는 9월 18일부터 20일까지였다. 전날까지도 평양에서 초청장은 오지 않았고 결국 난 회사에 낸 휴가를 철회해야했다.

다시 27일부터 30일까지라는 날짜가 나왔지만 이 역시 어찌될지 몰라 휴가를 내지도 않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휴가 때 뭐할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귀찮은 터에 그냥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고 했고 사정이 생겨 여행 일정이 미뤄졌다고만 했다.

이런 가운데 또 휴가를 냈다가 미뤄진다고 하면 실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휴가는 휴가대로 날려버리고 평양은 평양대로 못갈 수도 있던 터였다.

이제까지 나만 그랬는지 모르지만 이번까지 합치면 4차례의 방북 중 3차례나 날짜가 미뤄진 것이다. 그래도 전엔 다음번엔 당연히 가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평양취재를 준비했지만 이번엔 어쩐 일인지 초청장이 왔다는 소식이 들리기 전까지 초조하기만 했다.

공교롭게도 취재를 가도 그저 한식의 세계화 토론회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평양냉면의 우수성을 떠드는 연자 덕분에 평양을 떠올렸고, 원래 떠나기로 했던 18일에는 일 때문에 일산에 갔다가 들른 호수공원에서 평양의 대동강을 보았다. 마음으로 평양을 오가길 수차례, 그렇게 한 주일이 흘러가고 드디어 평양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유감 , 전자여권

▲ ‘평화3000’ 실무자들이 는 방북 증명서와 이름표 등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새벽부터 급히 서둘렀던 탓인지, 공항에 예정된 시간인 아침 6시 30분보다 삼십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느긋한 맘으로 약속된 장소로 갔더니 벌써 사단법인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 참관단 현수막이 걸려있고 몇몇 실무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성국 구로시민센터 대표는 나보다 더 서둘렀던지 한 시간이나 일찍 왔다고 한다. 곧이어 통일뉴스 이원구 운영위원을 비롯,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둘 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평화3000’ 실무자들이 여권이나 다름없는 방북 증명서와 이름표 등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해외여행과 다를 바 없지만 다만, ‘평양전세기’라고 뜬 화면 앞에서 짐을 부쳤다.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하나라도 더 보려는 평양에서의 일정 때문에 그렇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람들이 별로 없는 이른 시간보다는 공항에 사람이 가득한 시간에 우리가 평양에 가는 것을 당당히 알리고 관심을 유발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짐까지 부치고 난 뒤, 잠깐의 짬이 났지만 직업병 탓인지 가만 앉아 있으면 불안하고 왠지 돌아다니면서 뭐라도 하나 더 보고 느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자리가 복잡하기도 하고 화장실도 들릴 겸 공항 내를 돌아다녔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항 직원들 여럿이 모여 아침 조회를 서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또 비행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인지 여행복 차림으로 긴 의자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여행자들은 여행자들대로 또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행복한 꿈을 꾸고 있으리라.

그러던 중 한 여행객의 손에 들려진 전자여권을 봤다.
‘헉! 제게 그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전자여권이란 말이냐?’

정보가 쉽게 유출돼 기술이 뒷받침 된다면 원거리 유출이나 위, 변조가 가능하고 유럽연합에서 공식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보안전문가 그룹 FIDIS는 보안문제와 신분위조의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 2006년 “빠른 시일 안에 국제민간항공기구의 현 전자여권 표준을 폐기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자여권을 도입한 45개국 중에서도 단 4개국만이 도입하고 있는 지문을 수록했으며 이명박 정부가 그리 좋아라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도 전자여권에 지문을 넣기는커녕 앞으로도 지문을 넣을 계획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 뿐인가 다른 나라는 지문 등을 자국 외에서는 읽히지 못하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주민등록번호까지 넣었다니 이건 뭐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꼭 불량배가 “돈 좀 있냐?”고 묻기도 전에 알아서 찾아가 돈이며 옷이며 신발이며 다 상납하는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창피해.

동행하는 ‘겨레하나’ 참관단

▲ '겨레하나' 참관단이 평양 출발에 앞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저 멀리 ‘겨레하나’ 참관단이 보였다. 겨레하나의 양묘장과 콩우유 참관단도 3박 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하기 때문에 평양에서의 일정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전세기를 이용해 시작과 끝은 함께하는 것이다.

이전 방북이 늘 ‘겨레하나’를 통해서 갔기 때문에 안면이 있는 분들이 많았다. 항상 취재에 도움을 준 ‘겨레하나’ 손미희 국장, 북녘 콩우유 기계 설비를 돕는 녹천주방의 주대원 대표, 광주의 현지 스님 등 반가운 분들과 인사를 주 받았다.

현지스님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 공교롭게도 TV에서 ‘불교계 대통령 사과 수용’이라는 보도기사가 나왔다. 현지스님과 일행인 듯한 스님 몇 분이 그 기사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스님 저 보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야 당연히 마음에 안 들지. 여긴(불교계) 어른을 모시고 있는 데고 하니 어른께서 일단 수용을 하신다면 어쩔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별로 마음에 들진 않네.”
“아 그럼 스님도 불교계 항의 집회로 시청에 오셨었어요?”
“아니 그땐 내가 일이 있어 오지 못했지만 우리 광주만 해도 앞으로도 사찰별로 불교계 탄압을 비판하는 행사를 벌일 생각이었는데...”

내가 알기론 그동안 불교계가 내세웠던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어청수 경찰청장의 경질, 조계사 농성단의 수배해제 등 요구안들 중 수용된 것이 거의 없는데도 벌써 사과를 수용하는 것은 협상에서 조금 밀린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계산적인가?ㅋㅋ

비행기 탑승에 앞서 ‘겨레하나’ 양묘장 참관단이 기념촬영을 한다.

단장인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남북대화가 단절된 이 시기에 우리는 먹구름을 제치고 밝은 하늘을 열기 위해 평양을 간다. 우리가 푸른 숲을 가꾸고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은 통일 염원의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우리의 평양길이 평화 통일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며 “정부는 북녘에 조건 없는 인도적인 지원을 해야 할 것이고 우리는 3박 4일 동안 평화의 오작교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면세점을 들르지도 않고 바로 비행기를 탑승하러 갔다.

남과 북은 서로 다른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여권을 사용하지도 않고 외국을 나갈 때 출입을 하는 면세점을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강산을 방문할 때도 동해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이지, 남북출입국사무소가 아니다.

그런데 또 우스운 것은 관세문제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나라인지 외국에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의 기준이 적용된다. 예를 들면 외국에서 들여올 수 있는 양주의 기준은 한 병인데 이 기준이 그대로 북녘에도 적용이 되어 들쭉술 등 북녘의 이름난 술을 단 한 병씩밖에 못 들여온다. 뭐 가끔씩 봐주는 사람들은 두 병도 봐주고 나 역시 개성에서 남녘에 들어올 때 4병까지도 가지고 들어온 적이 있긴 하다만, 어쨌건 원칙으로는 한 병이 맞다.

국가보안법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하는데 북녘도 어쩔 땐 같은 민족의 한 국가였다가 또 어쩔 때는 완전히 다른 남남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일정한 기준과 조건에 따라가 아니라 정부의 편리에 따라서 말이다.

‘조선일보’마저 돕는구나

▲ 방북단은 평양전세기를 이용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기자]

어쨌건 뭐 면세점에 들를 수 있다고 해도 그다지 살 것도 없는 나는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신문, 그중에서도 조선일보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집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확인한 조선일보에는 역시나 흥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려 있었다. ‘북한에서 휴대폰이 사라지고 있는 까닭?’이라는 제목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북측 당국은 2003년부터 휴대전화 탐지기를 국경지역에 배치해 중국의 휴대전화 사용자를 색출해 전화를 사용하다 걸리면 간첩죄로 처벌까지 한단다.

또 북측 내부에서 개인 유선전화의 사용도 금지하고 있으며 올해 4월부터 지방에서 모든 개인 유선전화를 회수하고 시외전화는 해당지역 우체국에서 신분을 밝히고 걸도록 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퍼지던 9월 초부터는 평양시내도 시외전화의 사용을 금지토록 하고 개인의 유선 전화를 회수토록 하고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아! 이거다. 내가 꼭 이것을 취재 해야겠구나.’

조선일보가 대북소식통을 인용해서 기사를 쓰곤 하는데 그 대북소식통이 얼마나 정확한 소식통인지 아니면 그저 삼류 연예기사들처럼 ~카더라 통신인지 꼭 알아내겠다는 어떤 비장함마저 솟구쳤다.

사실 나도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긴 했다.

평양 취재를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은 북녘에 대해 무엇을 가장 궁금해 할까,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알아오자는 생각에 떠나기 전날 꽤 많은 이들에게 ‘3박4일의 일정으로 방북취재갑니다. 북녘에 대해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어떤 내용이라도 연락주세요, 최대한 알아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돌렸다.

그랬더니 가장 많이 돌아온 것은 ‘질문 없음’. 답변이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또 가시는 구나 부럽다’ 그런 내용과 ‘좋은 것 많이 보고 오라’라는 식의 응원의 답변이 가장 많았다. 그들에게도 다시 일일이 물어보니 “뭐 특별히 궁금한 게 없는데” 한다.

이제는 평양을 다녀오는 것이 많이 흔해진 일이고 또 이번에 내 신랑, 아내도 간다는 식으로 지인들의 가족이 가는 경우도 많았다. 북녘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북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덜 궁금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렇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한 사람들 중에 가장 많은, 아니 대부분의 질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었다.

추모연대 이승헌 기획국장은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프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는데도 단지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 통일부에서도 확인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를 모두 확대재생산 하고 있다”며 “김 기자님이 가셔서 꼭 안 아프다는 증거를 잡아 오세요”했다.

정말 웃긴 것은 여성지에 다니는 후배 기자인데 워낙에 여성지가 사생활까지 치밀하게 들춰내야 하기 때문인지, 그 녀석은 아주 내게 제목까지 뽑아줬다.

‘독점 취재, 김정일 병상인터뷰’라고. 얼마나 아픈지, 또 언제쯤 다 낫는지 등을 물어보고 오란다. 그럼 바로 스타기자가 될 것이라나?ㅋㅋ

이 외에도 내 친구는 북녘의 안내원(나의 친구는 정확히 ‘니 북녘 남자친구’라고 표현했다.) 영철이는 잘 지내고 있는 지 궁금해 했고 대학시절 문학동아리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한 후배는 북녘의 문학에 대해 물어봤다.

남북평화재단의 대북우유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이는 북녘의 어린이들에게 우유급식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했고 한 선배는 남북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체격차가 정말 큰 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또 보험사에 다니는 한 지인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녘에도 보험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모든 질문들이 다 소중하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정말 특별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주변사람들은 물론 나도 궁금하던 터라 내가 취재할 수 있는 최대의 한도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관련한 모든 정황을 포착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은 고민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조선일보 기사는 나에게 방향을 제시했다고나 할까?

우선 유선전화 등을 사용할 수 없는 지 등을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다.

평양 가는 길, 조선일보까지 이토록 도우니 분명 좋은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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