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正史)와 야사(野史)로 된 산(山)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저자에 의해 동시에 나왔다. 한 편은 역사서『전남유격투쟁사』(선인)이고, 다른 한 편은 장편소설 『남도빨치산』(매직하우스)이다.

20년 전 붐을 이뤘던, 해방공간과 전쟁전후에 활동했던 빨치산의 삶과 투쟁을 다룬 소설과 연구서들을 상기한다면 이 책들이 지금 발간됐다는 게 다소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책들에 대한 무례(無禮)다. 이 책들은 ‘지금’ 나온 게 중요하다. 보다 정확하게는 얼마든지 묻힐 수 있는 이야기가 한 ‘인간’에 의해 이제야 나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세월이 하도 흘렀기에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역사서와 소설이라는 두 장르로 나눠 나온 것부터가 심상치 않는데다가, 역사서는 400쪽이 넘을 만큼 방대한데 장편소설은 한 술 더 떠 모두가 6권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래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걸 토해내고자 했을까?

『전남유격투쟁사』, ‘팔순 고령이 된 옛 동지가 바치는 이름 없는 묘비명’

▲ 『전남유격투쟁사』(선인, 418쪽, 2008) 표지. [사진제공-선인]
이 책은 그 제목이 말해주는 대로 6.25 전후 시기에 전라남도 일원에서 전개되었던 무장유격투쟁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이같은 책들이 갖는 공통점이 있듯이, 이 책 역시 저자가 빨치산 대열에 가담했던 사람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책무, 그 참담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은 단순히 그때 그 역사를 단순히 재현하고 있지 않다. 너무도 오랜 세월이 흘렀기에 그때 그 역사는 기억의 저편에 있다. 저자는 젊은 빨치산 시절에는 투쟁을 위해 발로 뛰었겠지만 이번에는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팔순 노구(老軀)를 이끌고 발품을 팔았다.

빨치산 전력을 가진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어야 했고, 현지 주민들을 만나서 그들이 겪었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실들을 탐문해야 했으며, 이 고을과 저 고을, 이 산 저 산의 전적지를 답사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시 발간된 공기관의 발행물과 신문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갖고 있는 자료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문건 사본 등, 시간과 경비가 허락하는 대로 섭렵하고 분석했다.

저자는 이같은 방대한 작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할까? 동지들의 지난날 생활과 투쟁들을 평가하거나 옳고 그름을 판정하려 하는 것일까? 그러기엔 역사가 너무 멀리 가 있다. 저자 스스로 표현하듯 단순히 “그들은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견디었고, 이렇게 싸웠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조국해방전쟁 전후 시기의 조선로동당 활동 약사(略史)”는 6.25전쟁 시기 전남 도당 산하 당원과 대중전사들이 어떻게 싸웠는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2부 “전남 유격투쟁 약지(略地)”에는 전라남도 지역에서 전개되었거나, 전남 소속 부대들이 참가했던 무장유격투쟁 성과를 날짜순, 조목별로 밝혀 놓았다. 제3부 “인명록”에서는 6.25전쟁 전후 시기에 전라남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빨치산 전사들을 주축으로 일부 애국인사들의 이름을 밝혀 두고 있다.

그런데, 기이한 점은 한 때 빨치산 붐이 일어났지만 사실 빨치산 투쟁사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서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이러던 참에 혹자는 왜 이 책이 전라남도 빨치산에 국한되어야 하는가 하고 아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쉬워 할 것 없다. 이 책을 필두로 제대로 된 경상남북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등 유격투쟁이 정리돼 나오길 기대하자.

게다가 이 책에는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극히 생소한 수많은 이름들이 나온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전체 빨치산 투쟁 참가자들 중, 아니 전남지역 참가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의 이름일 뿐이다. 이것 역시 아쉬워할 것 없다. 이같은 정리조차도 놀라운 일이다.

그리하여 『전남유격투쟁사』는 여기에 다 기록되지 못한 숱한 젊은 넋들에게 이제는 팔순 고령이 된 옛 동지가 바치는 이름 없는 묘비명이라 할 수 있다.

『남도빨치산』, ‘동시대인들 앞에 거리낌 없이 내놓을 수 있는 패잔의 기록’

▲ 『남도빨치산』(매직하우스, 전 6권, 2008) 표지. [사진제공-매직하우스]

역사서 『전남유격투쟁사』만으로 부족했을까? 아니면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데는 픽션이 더 괜찮다고 여겨서일까? 저자는 이 책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그래서 산으로 들어갔고, 생존을 위해 살며 싸웠고, 그 본디 사명을 다하다가 끝내는 괴멸되었다”는 것을 나는 실상 그대로 알리고 싶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싸우다가, 어떻게 죽어갔는가 하는 것을 있었던 그대로 기록으로서 남겨두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들의 삶 자체가 처절함 그것이었음으로 있었던 그대로 쓰면 될 일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는 사실조차 쓰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변명이나 주장이나 찬양이 아니다. 사실만 적시하는 것도 저자의 오랜 바람이었고 사명이었다.

소설 『남도빨치산』은 6.25전쟁을 계기로 영호남 지방, 특히 전라남도 지방에서 벌어졌던 무장유격투쟁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당대 실지로 있었던 일들을 뼈대로 하고 있으므로 이 소설은 그 어떤 역사물보다 사실적(事實的)이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 엮은 것이 역사라면, 사실로 증명되지 않는 일들, 즉 미처 모르는 일들은 그 서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소설 『남도빨치산』은 그 미처 모르는 일들에 허구(虛構), 즉 진실의 다리를 걸쳤다. 똑같게 많은 것은 줄이고, 성글게 적은 것은 보태면서 사실이 닿지 않는 허방을 예술적 진실로 메웠다. 그럼으로써 보다 사실적(寫實的)이고자 했다. 이 글이 소설 형식을 취한 이유다.

그래서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극소수 몇몇 사람을 제하고는 다 실명이 아니다. 실지로 활동했던 인물들을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그 인물들에 ‘진실’의 옷을 덧입힌 것이 캐릭터의 이름들이다. 그러므로 어떤 등장인물에 굳이 실명을 대입시키려 하지는 말아야 한다. 공연한 헛수고일 뿐이다.

저자는 저자 자신이 겪었던 빨치산의 생태를 그들 내부 시각으로, 그들 일원이 되어서 그리려고 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당파성 시비가 거론될 수 있다. 의도적으로 어느 편을 든 것이 아니냐, 하고 생먹어 들어오는 일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의 양지나 음지, 승자나 패자, 그 어느 면에 대해서도 조명할 수 있는 것이 문학 창작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라면 그런 면들을 다 다룰 수 있다. 즉 표현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이 패잔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역사와 동시대인들 앞에 거리낌 없이 내놓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이 소설 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우리네 말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소설을 읽다가 이런 우리네 말을 만나는 것은 이 소설을 읽는 덤이다.

저자 정관호 소개

1925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남.
원산교원대학 교원으로 재직하던 중 6·25전쟁으로 전라남도 강진에 내려왔다가 후퇴하지 못하고 빨치산 대열에 가담. 6.25전쟁 당시 재산기관지 '전남 노동신문' 주필 역임. 1954년 4월 전남 백운산에서 생포되어 형을 삶.

저서로는 음악 오디오 에세이집 『영원의 소리 하늘의 소리』,『소리의 고향』이 있고, 시집들 『꽃 되고 바람 되어』,『남대천 연어』,『풀친구 나무친구』,『한재』,『아구사리 연가』가 있다. 이외에도 역편저가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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