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7일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이벤트를 거행했다. 이는 하루 전인 26일 북한이 핵프로그램 신고서를 제출하고 이에 맞춰 미국이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이 폐지 조치를 결정한데 이은 행사로 전세계의 화끈한 주목을 받았다. 한 언론매체는 27일 오후 5시 5분께 실시된 북한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당시 상황을 “굉음과 함께 폭파된 냉각탑은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고 전했다. 화면에서 보기에도 높이 20여m의 첨성대 비슷한 이 냉각탑은 요란한 굉음과 함께 뿌연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이른바 ‘북핵문제’의 한 상징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단 몇 초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간 이 냉각탑이 준 의미는 각별했다. 냉각탑은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가동을 중단한 뒤 미국이 인공위성을 통해 감시한 표식이었다. 이 탑 꼭대기에서 나오는 수증기의 유무가 원자로 가동의 유무를 알려주었다. 말하자면 북미간 20여년간 핵대립의 한 상징물인 셈이었다. 그런 냉각탑을 북한이 먼저 폭파하겠다고 제안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당연히 ‘전략의 나라’ 북한이 냉각탑 폭파를 단순한 이벤트 정도로 허비할 리는 없다.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10.3합의에 따른 비핵화 2단계 마감의 상징적인 사건이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세계에 알리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이벤트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숱한 부침 속에서도 가장 가시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한 당사자인 미국은 환영을 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부시 대통령은 26일 북한이 서방 언론들을 초청한 가운데 영변의 냉각탑을 폭파.해체하는 것을 ‘전례없는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것은 (북핵문제 해결과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27일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수 개월간 노력해 온 불능화를 위한 걸음으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고 말했다. 부시나 라이스가 모두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한 견해는 타당하다. 그만큼 미국이 북한을 상대하면서 핵문제를 풀기가 지난한 과정일 것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도 대체로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굳은 결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역시 한 당사자인 북한은 어떨까? 북한은 핵신고서 제출과 맞물린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이 폐지 조치와 관련 27일 “이를 긍정적인 조치로 평가하며 환영한다”면서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중요한 것은 미국이 우리의 핵억제력을 산생시킨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근원적으로 송두리째 철회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분명, 북한은 이번 냉각탑 폭파로 테러지원국이라는 고깔을 확실히 벗겨버리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북한 역시 이게 전부이자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북미관계는 지난 60년 넘게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이번 냉각탑 폭파라는 가시적인 사건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관계라는 북미간 불신의 구각을 깨트리는 첫 신호로 되기를 바란다. 북한에게 있어 이번 냉각탑 폭파 역시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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