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관 기자(ckkim@tongilnews.com)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
[구술] 김석형 [채록] 이향규
[출판사] 선인
무려 720여쪽.
단행본의 책으로는 쉽지 않은 부피이다.
그러나 이 책에 쓰인 김석형 옹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부피는 얼마나 두터운 것일까.

서울대학교 한국교육사고자료총서의 일환으로 선인 출판사에서 펴낸 `김석형구술자료집 -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는 구술자료집이라는 흔치 않은 책이다.

비전향 장기수로 만 3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91년 78세의 나이로 출소하여 2000년 87세의 나이로 북으로 돌아간 김석형 옹.

그 전 생애를 김석형 옹이 직접 구술(口述)하였고, 이향규(34세, 여) 경남대 북한대학원 통일교육전공 책임교수가 녹취·정리한 글이 이 한권의 책으로 엮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김석형 옹이 자신의 삶을 구어체로 생생하게 회고하는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향규 교수의 중간중간의 질문도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다보면 몇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한 인간의 삶이 이처럼 한 시대의 역사를 철저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될 것이다.

김 옹의 개인사는 곧바로 한반도 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 시기, 해방정국, 전쟁과 복구, 남조선 생활, 못다한 이야기 등 책의 목차 자체가 역사적 시기구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김 옹은 그 모든 과정을 자신의 주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한시도 놓지 않고 깊이 개입해 온 특별한 인물이다.

따라서 현대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 북한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 어떤 다른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생생한 역사적 사실들을 들려줄 것이다. 그가 만난 역사적 인물들의 세세한 행적이나 그가 겪은 작은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손에 잡히듯 살아있게 묘사되어 있다.

또한 독자들은 김 옹이 보여준 한 인간의 내면의 신념과 확고한 가치관의 힘에 놀라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한 인간이 격동의 시대에 그토록 강건한 자신의 신념을 갖고 전 생애를 일관되게 헌신할 수 있을까. 만 30년의 잔인하고 혹독한 감옥생활을 이겨내고 책의 제목처럼 조선노동당원으로서 자신을 굳게 지켜나가 결국 그토록 그리던 고향이자 마음의 조국에 돌아가게 된 그 힘의 근원이 과연 무엇일까.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김석형 옹은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역사적 사실들과 만난 사람들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는지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 의아해 할 것이다. 오랜 수형생활을 견디기 위해 과거를 곱씹어 기억하고 살아온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며, 김 옹의 철저한 생활태도와 비상한 기억력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될 것이다. 

해방정국에서의 북한 정권의 정책 시행 과정이나 방해공작이라든지 한국전쟁시기의 세세한 내막 등 이전까지 자세히 접해보지 못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부분중 상당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귀신`이라는 찬탄을 받을 정도로 북측에서 훌륭한 정보계통 일꾼이었고, 혹독한 감옥생활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신념을 지켜온 김 옹의 삶을 통해 한반도의 현대사와 한 인간의 삶의 진실을 호흡해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이 책은 아무리 두꺼워도 반드시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옹의 투철한 생애와 긴 구술을 채록·정리한 이향규 교수의 노력이 빚어낸 역작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오!`는 다시 나오기 쉽지 않은 책임에 틀림없다.

2000년 9월 북으로의 송환 이후 `북조선 생활`을 직접 들어, 김 옹의 삶의 마지막 장을 쓰고 싶다는 이향규 교수의 바램이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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